[사진의 기억] 떡방앗간 다녀오는 길
출처 중앙SUNDAY :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26581
설 준비, 경기도 양주, 1974년 ⓒ김녕만
농촌에서 설날은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첫날이면서 또한 서서히 한해 농사를 준비해야 하는 시점이었다. 지금이야 시도 때도 없이 1년 내내 비닐하우스 농사를 짓지만 50년 전만 해도 농사일에 시와 때를 맞추는 일은 아주 중요했다. 설날이 지나면 눈이 비로 바뀌어 내린다는 우수(雨水)가 찾아오고 꽝꽝 얼었던 땅이 녹기 시작한다. 곧 밭을 갈아 씨 뿌릴 준비를 해야 한다. 따라서 설 명절에는 설빔을 갖춰 입고 배불리 먹으며 이웃과 윷놀이를 즐기는 호사를 누리고자 했을 법하다.
설을 앞두고 가장 바쁜 곳은 방앗간이었다. 가래떡이 가득 담긴 커다란 양은 다라이를 머리에 이고 부지런히 집으로 돌아가는 며느리와 화로를 들고 따라가는 시어머니의 모습이 정겹다. 명절 대목에는 동네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니 차가운 바람 술술 들어오는 방앗간에서 순번을 기다리자면 한나절, 며느리 추울까 아예 화로를 들고나왔다. 기다리는 동안에도, 양은 다라이를 이고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에도 곱은 손 녹이는데 요긴한 화로는 요즘의 핫팩인 셈이다.
어머니와 할머니가 방앗간에 가시는 날은 아이들에겐 가슴 설레는 신나는 날이었다. 집에서 기다리자면 시간이 너무 더디게 가서 방앗간으로 두세 번은 뛰어갔다가 돌아오곤 했다. 사람들로 비좁은 방앗간에서 얼씬거리면 어머니의 핀잔을 듣기 일쑤였다. 그러나 집에 돌아오면 다시 좀이 쑤셔서 또다시 방앗간으로 달려갔다.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드디어 어머니가 이고 온 다라이에서 하얀 천이 걷히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가래떡. 그 증기를 얼굴에 쏘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금방 나온 말랑말랑한 떡도 맛이 있지만, 화로에 구워 먹는 쫄깃한 맛은 일품이었다. 겨우내 화로 옆을 맴돌며 보물찾기하듯 재를 뒤적거려 잘 구워진 밤이나 고구마를 꺼내 먹고 화로 위에 석쇠를 올려 요거조거 구워 먹던 재미를 잊을 수 없다. 지금도 그 시절 설날을 떠올리면 화롯불처럼 가슴이 따뜻해진다.
김녕만 사진가
빛명상
효, 근원에 대한 감사
설은 비단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한다는 의미만이 아니다. ‘나’라는 존재의 근간이 되는 가족들과 선조들을 되돌아보는 시간이다. 일 년 이라는 긴 여정을 시작하기에 앞서 먼저 나 자신과 가족들을 점검하는 것이다.
그래서 새해 첫날 아침, 가장 먼저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선조들께 정성을 다해 차례를 지내고 부모님께 세배를 드린다. 이것을 효孝 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다른 말로 하면 내 생명의 ‘근원에 대한 감사함’을 갖는 것이다.
‘근원에 대한 감사’는 부모님과 선조님이 나에게 무엇을 해주시고, 베풀어주셨기 때문에 그 대가에 따른 감사가 아니다. 지금 ‘나’라고 하는 존재가 있게 해주신 것과 내가 살아 숨 쉬는 그 자체에 대한 순수의 감사다.
효, 근원에 대한 감사 새해 첫날 아침
출처 : 빛(VIIT)향기와 차명상이 있는 그림찻방
2021년 1월 18일 초판 1쇄 P. 320-321
복福을 주는 조상,
화를 주는 조상
죽은 사람의 마음은 단지 육체가 없을 뿐 산 사람과 똑같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은혜를 입으면 감사를 표하고 답례를 한다. 반면 괴롭거나 힘이 들 때는 가까운 가족에게 그 고통을 호소하고 도움을 달라고 청한다. 죽은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돌아가신 선조가 밝고 좋은 곳으로 갔다면 후손을 도와 잘되게 도와준다. 흔히들 ‘조상이 돌봤다’는 표현이 바로 이에 해당한다. 반면 그 마음이 어둡고 불편하다면 그 고통을 살아 있는 후손들에게 전달한다. 이런 경우 후손은 알 수 없는 우환이나 어려움, 고난을 겪게 된다. 일이 될 듯 될 듯하다가 이루어지지 않고, 무언가 모를 답답함 혹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고통 받기도 한다.
따라서 나의 뿌리가 되는 부모님과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비록 돌아가셨지만 이분들과 나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계속 연결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육체가 사라져도 그 안에 담겨 있던 마음은 영원히 죽지 않고 존재한다. 그리고 그 돌아간 마음이 살아 있는 후손들과 계속해서 파장을 주고받는 것이다. 부모의 마음이 편하지 않으면 자식의 마음 또한 편할 수 없고, 자식이 편하지 않은데 부모라고 해서 마음이 좋을 리 없는 이치와 같다. 다시 말해 돌아가신 선조들의 마음은 우리의 현실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에너지를 주고받는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이다.
뿌리가 건강해야 가지와 잎사귀도 건강하다. 과학이 아무리 발전하고 물질문명이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해도 이 근본의 우주 섭리는 결코 바뀌지 않는다. 우리 조상들이 설, 추석과 같은 큰 명절, 그리고 그분의 기일까지 합쳐 최소 일 년에 세 번은 돌아가신 조상을 생각하고 그분들께 감사하는 시간을 갖는 풍습을 만들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요즘 세태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설날과 추석이 지닌 본래의 아름다운 뜻을 잃어버리고 이를 장기 휴가나 해외여행의 기회쯤으로 여기는 듯하다. 입시생을 둔 가정에서는 자녀가 명절을 쇠지 않고 공부하는 것을 당연시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 후손들이 설, 추석은 연중 휴가정도로, 제사는 무의미한 관습 정도로 인식한다고 해도 놀랄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러한 후손을 둔 선조는 외롭고 허무한 영혼이 되어 결국 후손들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매년 잊지 않고 일 년에 두 번, 설과 추석에 돌아가신 선조들의 마음을 빛(VIIT)으로 정화하는 시간을 가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이 빛(VIIT)을 받으면 마음이 정화되듯 돌아가신 분들의 마음도 빛(VIIT)을 받으면 밝고 가벼워진다. 그리고 그 결과 그 후손들의 삶 또한 밝고 행복하게 바뀐다. 빛(VIIT)으로 선조들의 마음을 정화하는 과정에서 반짝이는 반딧불과 같은 모습의 선조들의 마음을 보았다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얼굴을 알 수 없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큰절을 하고 사라지는 꿈, 이전에는 때가 묻어 시커먼 옷을 입고 계시던 분이 이제는 환하고 깨끗한 옷을 입고 나타나시는 꿈을 꾸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을 통해 현실이 바뀐다는 점이다. 뿌리가 건강해지면서 시들었던 잎사귀에도 생기가 도는 것이다. 무언가 모르게 어렵고 풀리지 않던 일이 수월하게 진행되고, 이유를 알 수 없이 고통스러웠던 몸이 건강해지기도 한다. 간절하게 바라던 일이 이루어지거나 마음이 편안하고 개운해지며, 친척과 가족 간에 화합하는 것도 모두 선조 정화를 통해 우리가 얻게 되는 혜택이다.
출처 : ‘빛명상’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행복순환의 법칙
초판 1쇄 발행 2009/09/14
2021/06/01 초판 45쇄 P. 222-224
감사합니다.
선조마음정화식을 열어주신 우주마음과 학회장님께 감사와 공경의 마음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선조마음 정화식 새겨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조마음정화식을 열어 주신 우주마음과 학회장님께 감사와 공경의 마음 올립니다.
선조마음정화식을 열어주시는 우주마음 학회장님께 감사와 공경의 마음올립니다
감사합니다.
효, 근원에 대한 감사.... 선조마음정화식을 열어주신 우주마음과 학회장님께 공경과 감사의 마음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