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음력 5월5일)은 한 해중 양기가 가장 성(盛)하다는 단오(端午)다. 수릿날ㆍ천중절ㆍ중오(重午)절ㆍ단양(端陽)이라고도 불린다. 우리 조상은 이날을 여름이 시작되는 날로 여겼다. 진정한 의미는 농경의 풍작을 기원하는 제삿날이다. ‘농부월령가’에는 단오가 “물색(物色)이 생신(生新)한 날”로 표현돼 있다. 이런 길(吉)한 날 음식이 빠질 수 없다. 단오 무렵에 약성이나 맛이 절정인 채소는 익모초ㆍ쑥ㆍ오이 ‘3인방’이다. 한방에선 단옷날 오시(午時, 오전 11시∼오후 1시)에 뜯어 말려놓은 쑥과 익모초의 약성을 최고로 꼽는다. 민간에선 이날 이른 아침에 쑥을 베어다가 다발로 묶어서 문 옆에 세워두면 액을 물리칠 수 있다고 믿었다.
익모초, 쑥, 오이 약성 절정
익모초(益母草)는 ‘어머니에게 이로운 풀’이란 뜻이다. 성질이 따뜻해서 특히 아랫배가 냉한 여성에게 이롭다. 입맛이 떨어지는 봄ㆍ여름에 생즙을 내어 먹으면 식욕이 되살아난다. 잘 붓는 사람이 먹으면 부기가 빠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방에선 여성의 생리나 출산 전후의 질환에 두루 처방한다. 어혈(瘀血)을 없애고 자궁의 혈액순환을 돕는다고 해서 임신부에게도 권장한다. 오이는 성질이 시원하고 수분이 풍부해서 갈증해소용으로 그만이다. 갈아서 술(소주)에 넣으면 숙취 해소에도 유익하다. 단오 즈음에 맛이 절정인 과일은 앵두ㆍ복숭아ㆍ살구 ‘3총사’다. 복숭아나 살구의 즙을 쌀가루에 버무려서 쪄 먹는 음식이 단오의 절식인 도행병이다.
선조들은 “앵두 익어 붉은 빛이 아침볕에 눈 부신다”(‘농부월령가’ 중)고 노래했다. 앵두는 5월 중순 무렵 붉게 익으며 새콤달콤한 맛이 나는 과일이다. 앵도(櫻桃)라고도 한다. 체리(버찌)의 ‘사촌’인 과일이다. 그래서 영문명이 ‘Korean cherry’다. 앵두의 3대 웰빙 성분은 안토시아닌ㆍ유기산ㆍ펙틴이다. 안토시아닌은 껍질에 든 검붉은 색 색소성분이다. 유해(활성)산소를 없애는 항산화 물질이자 염증을 가라앉히는 소염 성분이다. 유기산(사과산ㆍ시트르산 등)은 신맛 성분이다. 신진대사ㆍ피로회복을 돕고 입맛을 북돋아준다. 펙틴은 수용성(水溶性) 식이섬유로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데 유용하다.
무더위에 입맛 돋우는 앵두
한방에선 앵두를 위를 보호하고 피를 맑게 하며 무더위로 허덕일 때 입맛을 돋우는 약재로 간주한다. 우리 조상은 단오 무렵 앵두를 이용해 편과 화채를 만들어 드셨다. 앵두편은 지금의 젤리와 같은 음식이다. 다음 5단계(앵두를 가볍게 찐다→굵은 체로 살만 발라낸다→설탕을 넣고 졸인다→녹말을 넣어 굳힌다→생밤과 함께 담아낸다)를 거치면 완성된다. 앵두가 없으면 살구ㆍ모과로 대체할 수 있다. 동아시아 최초로(1670년) 여성(안동 장씨)이 쓴 조리서인 ‘음식디미방’엔 “앵두편이 위장을 건강하게 하고 대장ㆍ소장을 깨끗하게 한다”고 기술돼 있다.
앵두화채는 씨를 뺀 앵두를 설탕ㆍ꿀에 재웠다가 오미자 물에 넣고 실백을 띄운 음료다. 앵두화채가 서민용 음료라면 제호탕은 왕실용(조선) 음료다. 궁중의 내의원이 제호탕을 만들어 왕에게 진상하면 왕은 이를 기로소(연로한 공신이 모이는 곳)에 내려 보냈다.
단옷날 왕이 신하에게 하사하는 것이 하나 더 있다. 일종의 구급약인 옥추단이다. 가운데에 구멍을 뚫어 오색실로 꿰어 차고 다녔다. 심한 복통ㆍ구토ㆍ설사 증세가 나타나면 물에 타서 먹기도 했지만 대개는 무병장수를 바라는 마음으로 몸에 지녔다.
단오 전후에 즐겨먹은 떡은 수리취 절편이다. 수리취는 잎이 작고 뒷면이 하얀 당귀 싹을 말한다. 떡에 넣는 수리취를 떡취라고도 한다. 삶은 수리취를 멥쌀가루에 넣어 찐 뒤 둥글게 만든 떡이 수리취 절편이다. 수레바퀴 모양의 떡살을 박았기 때문에 차륜병(車輪餠)이라고도 한다. 단오를 수릿날 또는 수렛날이라고도 부른다. 수리는 수레(車)를 뜻한다. 수리취가 없으면 대신 쑥을 넣었다. 먹으면 입안에 쑥 향이 가득해진다.
혈관건강, 두뇌발달에 좋은 준치
단오가 든 4∼7월이 제철인 생선은 준치다. ‘썩어도 준치’(낡거나 헐어도 가치 있는 것을 가리킨다)라는 표현 덕에 유명해진 바로 그 생선이다. 생선 가운데 가장 맛있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다. 진어(眞魚)라는 별명을 얻은 것은 이래서다. 다만 잔가시가 너무 많은 것이 흠이다. “맛좋은 준치는 가시가 많다”(무슨 일이나 다 좋은 것은 없다는 뜻)는 속담도 있다. 우리 선조는 단옷날 준치만두와 준치국을 만들어 드셨다.
잔가시를 빼고 살만 바른 뒤 둥근 완자를 넣어 끓인 것이 준치국이다. 준치 살을 밀가루에 여러 번 굴려 만든 것이 준치 만두다. 등 푸른 생선의 일종인 준치엔 혈관 건강ㆍ두뇌 발달에 이로운 DHAㆍEPA 등 오메가-3 지방과 간 건강ㆍ시력 보호에 유익한 타우린(아미노산의 일종)이 풍부하다.
찹쌀로 빚은 청주인 창포 술은 단오 음식과 가장 잘 어울린다. 창포 뿌리를 넣은 주머니를 술독에 매달아 창포향이 스며들게 한 술이다.
박태균 중앙일보 식품의약전문기자
단오에 즐기던 민가와 궁중의 세시풍속
여성 창포를 삶은 물로 머리를 감았다(머리에 윤기가 나게 하려고) 창포뿌리로 비녀를 만들어 머리에 꽂았다(복을 빌기 위해) 단옷날 새벽 상추밭에 가서 상추 잎에 맺힌 이슬을 받아 분에 개어 얼굴에 발랐다(버짐이 피지 않고 피부가 고와진다고 여겨)
남성 창포뿌리를 허리에 차고 다녔다(벽사의 효험을 기대해서) 쑥ㆍ익모초ㆍ찔레꽃 등을 따서 말려 두었다(단옷날 오시에 딴 것이 가장 양기가 왕성하다고 여겨) 대추나무 사이에 돌을 끼워 놓았다(대추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궁중 궁중에선 부채를 만들어 왕에게 진상했다(단오선) 제호탕과 옥추단(玉樞丹)이라는 환약을 왕에게 바쳤다 왕은 제호탕과 옥추단(玉樞丹)을 다시 신하들에게 나눠줬다
단오 무렵에 권할만한 건강 음료
제호탕 - 해독효과, 강력한 살균력 생맥산 - 기운없을 때 마시면 효과
“그윽한 향과 신 맛이 짐의 식욕을 돋우는구나. 대신들도 한번 맛보게나.” 조선 후기 학자 홍석모가 지은 ‘동국세시기’에 나오는, 단옷날 왕과 신하의 정겨운 모습이다. 신하들에게 나눠준 것은 제호탕이다. 제호는 불교에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맛이 좋고 자양분이 풍부하다”는 뜻이다.
‘제왕의 음료’인 제호탕은 맛과 약성이 뛰어나다. 한방에선 대개 땀을 많이 흘려 기력이 쇠진한 사람에게 권장한다. 마시면 생기가 나고 삼복더위를 물리칠 수 있다고 봐서다. 여름에 약해진 위(胃)의 기(氣)를 보(補)하는 용도로도 처방한다. 금세 갈증이 풀리고 가슴 속이 시원해지며 입안에서 향기가 오래 간다. 뒷맛도 깔끔하다. 소화 불량ㆍ오래된 기침ㆍ가래ㆍ설사ㆍ복통ㆍ피로를 호소하는 사람에게도 추천한다. 주독(酒毒) 해소와 식중독 예방에도 유효하다. 해독 효과와 강력한 살균력을 지니고 있어서다. 여름에 제호탕을 마시면 식중독 균을 죽이되 건강엔 무해한 자연의 살균ㆍ소독약을 복용하는 셈이다. 주재료는 오매(烏梅)다. 까마귀처럼 까맣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6월 말∼7월 초에 딴 푸른 매실(靑梅)의 껍질ㆍ씨를 벗긴 뒤 질그릇 냄비에 넣어 연기가 나지 않을 때까지 말린 것이 오매다. 한방에선 소갈증(消渴症, 갈증으로 물을 많이 마시고 음식을 많이 먹으나 몸은 여위고 소변 량이 증가하는 병)을 돕는 약재로 쓴다. 당뇨병의 한방명이 소갈증이다.
부재료인 초과는 몸의 습기를 없애고 배를 따뜻하게 한다. 축사인은 위를 튼실하게 하고 설사를 멈추게 하며 장을 깨끗하게 해준다. 임신부의 입덧도 가볍게 해준다. 백단향은 배가 아프거나 토할 때 처방되는 약재다. 꿀은 기침ㆍ통증 완화와 변비 예방 효과가 있다. 제조법은 간단한다. 오매ㆍ초과ㆍ백단향ㆍ축사인을 곱게 빻은 뒤 이 가루와 꿀을 섞는다. 이어서 걸쭉하게 될 때까지 달인 것이 제호탕이다. 냉장 보관한 뒤 생각날 때마다 찬 물에 몇 숟갈씩 타서 마시면 된다.
단오의 절기 음료는 아니지만 한방에선 더위가 시작되는 시기에 생맥산ㆍ송화밀수를 권장한다. 생맥산(生脈散)은 맥이 다시 살아나게 하는 묘약이란 뜻이다. 몸이 나른하고 기운이 없을 때 마시면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맥문동ㆍ인삼ㆍ오미자를 가루로 만든 뒤 이것을 물에 타면 완성된다. 인삼은 기를 올려 주고 맥문동은 진액을 보충하며 오미자는 기를 모아 준다. 또 맥문동과 오미자는 기도 점막의 건조를 막아준다. 마시면 땀이 덜 나고 갈증이 사라지며 식욕이 촉진된다.
5, 6월께 공기 중에 노랗게 날리는 송화(松花)가루도 훌륭한 자연의 선물이다. 우리 조상은 꽃이 피기 전의 송홧가루를 채취해 삼베 주머니에 담은 뒤 술을 부어 송화주를 마셨다. 가루로 다식이나 밀수도 만들어 먹었다. 생수에 꿀을 타고 여기에 미리 풀어 놓은 송홧가루를 넣고 저어준 것이 송화밀수다. 송홧가루엔 유해산소를 없애는 항산화 비타민인 비타민 C가 풍부하다. 또 타닌 성분이 들어 있어 설사를 멎게 하는데 유용하다. 미숫가루도 기력이 떨어지는 여름에 권할만한 식품이다. 찹쌀ㆍ멥쌀ㆍ보리쌀ㆍ콩 등을 찌거나 볶아서 가루로 만든 음식이다. 대개 꿀물이나 설탕물에 타서 차게 마신다. 다식ㆍ암죽을 만들 때에도 사용된다.
제호탕 재료 : 오매 600g, 초과 37.5g, 백단향 18.7g, 사인 18.7g, 꿀 3㎏ 제조법 ① 오매ㆍ초과ㆍ백단향ㆍ사인 등 네 가지 재료를 곱게 간다 ②간 재료에 꿀을 넣어 되직하게 반죽한다 ③ 반죽한 것을 한지를 덮어 약한불로 중탕해 연고상태가 될 때까지 3∼5시간 끓여준다 ④냉수에 타서 마신다 ⑤하루에 3∼5잔 마시면 좋다
생맥산(生脈散) 재료 : 맥문동 8g, 인삼 4g, 오미자 4g 제조법 ① 세 가지 약재를 물에 넣고 보리차 끓이듯이 끓여서 복용한다 ②이때 30분∼1시간 끓인다 ③ 신맛이 강한 오미자는 찬물에 우러나오게 한 뒤 그 물을 넣어서 끓여도 좋다
송화밀수 재료 : 송홧가루 2큰 술, 꿀 5큰 술, 물 1컵, 잣 1큰 술 제조법 ①송홧가루를 꿀에 잘 갠다 ② 생수에 송홧가루 꿀을 넣은 뒤 흔들거나 수저로 저어서 잘 섞는다 ③잣을 띄운다
앵두화채 재료 : 앵두, 설탕이나 꿀, 오미자, 잣 제조법 ① 앵두를 따서 깨끗이 씻은 뒤 씨를 빼서 설탕이나 꿀에 재워둔다 ②오미자 국물에 재워둔 앵두를 넣는다 ③잣을 띄워서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