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故 김도빈영가 천도재
일시 원기109년 10월 1일 오전 10시30분
장소 인천교당 3층 대각전
공양 숭의가든 별관
설법 월산 김일상 원로교무
오늘 이 시간 종재 받으시는 김도빈영가, 잘 가셨다가 잘 오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조금 전에 독경하실 때 맨 마지막 경전으로 독경한 금강경은
부처님의 말씀을 함축적으로 담아놓은 깨달음을 꽉 좁혀서 남겨주신 법문이라고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32장까지 있습니다만 보통 5장까지 하면 금강경의 내용이 다 드러나기 때문에
5장까지만 이렇게 독경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5장 맨 마지막 구절에 범소유상(凡所有相)이 개시허망(皆是虛妄)이니
약견제상(若見諸相)이 비상(非相)하면 즉견여래(卽見如來)라 표현해 주셨습니다.
이 말씀이 뭐냐면, "세상 모든 것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단 한 가지도 없다. 그것을 알면 곧 부처다"라는 말씀이에요.
부처는 다른 사람 아닙니다. 진리를 깨달은 사람을 부처라고 그래요.
우리하고 다른 것이 없어요. 깨달았느냐 깨닫지 못했느냐 하는 그 차이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깨달았기 때문에 늘 마음이 편안해요.
알면 편안하고 또 자유로워서 무엇에도 묶여 있지를 않아요.
그런데 중생들은 모르니까 불안하고 무언가에 묶여서
돈이 됐든 명예가 됐든 인연이 됐든, 이런 것이 꽉 묶여서 집착하기 때문에
자유롭지도 못하고 편하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너희들 그렇게 살지 말라, 그렇게 살아도 아무 도움이 안 된다.
너한테 도움이 안 된다, 그 말씀을 해 주신 거죠.
제가 어제 좀 일찍 올 줄 알았어요.
차 안 막히면 일찍 올 줄 알았는데, 열심히 온다고 왔는데도 6시간이나 걸렸어요.
이렇게 올라 온 그 인연이 뭐 때문에 제가 여기에 와 있겠습니까?
그냥 교무님이 종재에 오라고 하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죠.
오늘 중재를 받으시는 도빈영가의 어머니하고 저하고 좀 인연이 있어요.
그러니까 어머니가 오라고 하니까 또 왔다고 할 수도 있죠.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하지 않아야 되는 거죠.
제가 어제 오면서 들을 보니까 벼가 노릇노릇 익어가고 있어요.
모를 내고 벼가 저렇게 익어가면 익은 뒤에 어떻게 될까요?
익은 뒤에 저렇게 계속 저러고 벼가 10년이고 100년이고 있을 겁니까?
일정 시점이 되면, 낱알이 그냥 다 떨어져요.
과일도 그렇고 모든 것이 다 그런 거예요.
이게 인연의 이치에요.
인연이 있으면 유지가 되고 인연이 다 하면은 떨어지는 거예요.
그 단순한 진리를 몰라서 스스로 자신을 볶고 사람 관계에서 어렵게 만들고 그러고 있는 거예요.
왜 이걸 모르느냐 하는 걸 부처님이 경칠하시는 겁니다.
간단하게 생각하세요.
은중님도 마음에 담아놓고 이생만 살고 내생은 안 살 겁니까?
전생은 살아서 이생이 왔는데, 전생일은 다 잊어버리고 이생 하나만 가지고 안달할 겁니까.
인연 있으면 만나는 거고 인연이 다하면 헤어지는 거예요.
그게 다반사예요. 그게 자연의 진리예요.
그러니까 가장 중요한 건 뭡니까? 지금 만나는 인연에게 최선을 다하는 거에요.
일반적으로 말하면 미워하거나 사랑이 아니에요. 그건 자칫하면 집착으로 변질이 돼요.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지, 다른 거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어요.
내가 어떤 인연을 향해서 한 것이, 나중에 다 다시 되돌아 나한테 오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잘하는 일 밖에 없어요
교도님들이 말하기를 어떤 일 당하면 내가 원불교를 잘 믿었는데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있냐고해요.
그럼 원불교 교무는 대박 나겠네요.
교무도 20살에 죽기도 하고 40에 죽기도 하고 100살 넘게 살기도 하고
그러면 안 아프고 사냐? 어떻게 안 아파요?
인간이 생로병사라는 태어나면서부터 우리도 자연의 진리에 따라서 그렇게 사는 거예요.
안 아프고 사는 사람 없어요.
많이 아프냐, 적게 아프냐, 크게 아프냐하는 차이가 있는 것이지
그럼 왜 그런 차이가 있게 됐을까
그건 내가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악독스럽게 했으면 푸짐하게 나한테 돌아올 것이고
좀 부드럽게 하고 저 사람 좋게 해줬으면 좀 적게 올 것이고, 지금 그대로 오는 것이 자연의 진리예요.
살다 보면 암도 걸리고 또 그러다가 죽기도 하고, 또 태어나고 그러는 것인데
그것에 내가 마음이 확 묶여 가지고 있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원불교 믿는다고 무슨 문제 안 일어나는 거 아니에요.
그러면 하나님 믿으면 문제 안 일어날 것이냐
아니면 부처님 믿으면 문제 안 일어날 것이냐하는 것은 진짜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하나님을 믿거나, 부처님을 믿거나, 내가 어떻게 하고 살았느냐의 결과가 오늘이고
내가 어떻게 살아왔느냐가 다음 이어지는 이 과정이 그냥 자연의 진리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가시는 분은 잘 가고, 보내는 분은 잘 보내는 거예요.
그냥 보내는 게 아니라 잘~ 가고, 잘~ 와서, 잘~ 살아야 된다.
이것밖에 없어요.
도민영가에게 잘 가는 것이 뭔지, 제가 부처님 말씀 그대로 빌어서 부탁을 드리려고 합니다.
잘가는 것은 딱 두 가지예요. 살아서 연습을 많이 하셔야 돼요. 살아서 연습 않하면 잘 가기 어려워요.
이렇게 얘기를 계속하는 것은 그러더라도 이생에 연습을 많이 못 했어도
계속 옆에서 누군가가 이렇게 얘기를 하면 그쪽으로 마음이 쏠리니까 안내를 하는 거예요.
그리고 막 죽어가는 사람 병원에서 엘브민을 놓으면 금방 깨어나잖아요. 그런 힘을 주는 거예요.
이 생에 지은 복 가운데 후손들이 나의 재를 잘 지내주는 것도 복 중에는 정말로 큰 복이에요.
다음 문 열어 가는데 도움 주는 것이기 때문에, 그럼 어떻게 가는 게 잘 가는 것이냐.
중생은 집착으로 살고 깨달음은 해탈이에요.
집착이라는 게 뭐냐면 내가 살면서 가졌던, 모든 인연이 됐든 그것을 대표적으로
탐심, 진심, 치심, 삼독심이라고 얘기를 해요. 이건 독한 거다. 극약과 같은 것이라 가깝게 하면 안된다.
그걸 알려주려고 탐진치를 삼독심이라고 얘기를 한 것이에요.
그러니까 삼독심에 빠져드는 거는 집착이에요. 거기에서 헤어나면 해탈이에요.
그러니까 내가 어딘가에 묶이지 않으면 되는 거예요.
해탈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해탈하면 집착이 없고, 집착하면 해탈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생을 살면서 어느 것에도 묶이지 마세요.
자식에도 묶이지 말고, 돈에도, 명예도, 거기에 빠져드는 순간에 영혼은 어두워지는 거에요.
그러면 먹지도 말고 그냥 누워서 가만히 있으라는 얘기냐? 그거 아니에요.
명예를 누려도 마음 비우고 누리고, 뭘 가져도 마음 비우고
그것이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인 그게 해탈이에요.
그런데 이것 없으면 못 산다하고 거기에 마음이 확 묶여버리면 거기 못 떠나는 거에요.
지금 은중씨는 자녀한테 묶였는지 안 묶였는지 모르겠어요.
그건 본인만 알지 어떻게 알겠어요?
돈암교당에서 근무할 때였어요.
교구에서 요인훈련을 하면 제가 가끔 강의를 하게 됐는데 그무렵에 진주교당을 갔어요.
남강변 터미널 옆에 있는 교구청을 겸하고 있는 교당인데 강의를 하게 되었어요.
지금도 참 선명하네요.
법당이 마루였는데 가운데에 은중씨와 젊은 또래가 앉아 있었는데 서른이나 되었을거에요.
40년은 된 얘기에요.
강의를 마치고 돌아와서 이 젊은 사람 잘 키워 내는 게 좋겠다 싶어서 두 사람한테 똑같이 편지를 보냈어요.
좋은 인연으로 만나서 고맙다 하는 편지를 썼는데 은중씨는 반응이 있었고 한 사람은 반응이 없었어요.
그러니까 한 사람은 누군지도 몰라요. 근데 은중씨는 그 뒤로 인천오고 지금 포항에 있는데
그 과정을 제가 대략 알게 된 거죠. 그러니까 모든 것이 인연의 수치예요.
내가 마음을 어떻게 썼느냐에 따라서 인연은 이어져 가는 거고
또 마음을 그것이 극악하게 썼으면 등지고, 마음을 좋게 썼으면 이렇게 합해지고
그래서 상생과 상극의 인연이 형성되는데 상극의 인연이 있으면 불행한 거예요.
힘들어요. 고통이 많다는 얘기예요.
그 다음에 상생으로, 내가 잘 해가지고 상생만 되면 그냥 보면 볼수록 좋은 거예요.
처음 보는 사람도 참 저 사람 좋네, 만약에 그렇게 마음이 된다면
그건 지금 인연이 제대로 시작이 안 돼서 그렇지 좋은 인연이다 그 얘기예요.
근데 주는 것 없이 미워, 길거리에 가도 눈도 흐릿해지고 하면
언젠가 이 인연은 좀 불편한 문제를 걸어 놓은 겁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그냥 살 때 잘 사시면 돼요.
어떻게? 몸과 입과 마음, 잘~ 쓰면 되는 거예요?
저같이 이렇게 오라 그러면 금방 오면 돼요.
오는데 거기 가려면 어쩌고 어쩌고 사연을 붙이면 인연은 끊어지는 거에요.
그러니까 어떤 인연과 상생으로 이어지려면 해달라는 대로 해주면 돼요.
그것이 죄 짓는 일 아니면 해달라는 대로 해주시고 다 따져가지고 그렇게 하면은
받을 때도, 따져서 이거 줘야 되나 말아야 되나 하게 됩니다.
간단한 진리니까, 도빈영가 이생에 잘 살았어요. 이제 떴으면 잊어버려야 돼요.
그리고 만나서 잘 살았어요. 엄마도 잘 보내줘야 돼요.
붙들어 잡는 순간 나도 안 좋고 가는 인연도 안 좋아요.
그래서 살때 열심히 살면 되는 거예요. 보낼 때 잘 보내면 되는 거에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마음에 담지 마라.
윤중님이 200살 살았다고 합시다. 다 떠났는데 나만 200살을 살고 있어.
그게 좋은 일일까요? 갈 때 가야 되는 거예요.
천년 만년 살면 좋을 줄 알지만 그건 진짜 어리석은 사람이 갖는 생각이에요.
갈 때는 미련 없이 잘있어, 그렇게 생각하고 가고, 보낼때도 잘 가~ 우리 다음에 만나는 데 뭐
그렇게 의식이 복잡해야 됩니까, 잘 가는 것은 집착만 놓으면 됩니다.
도빈영가가 이생에 살면서 있었던, 인연들과 있었던, 또 일하면서 있었던
마음에 이것 때문에 내가 못 가겠다 하는 것만 딱 놓으면 그냥 밝은 길이 있는 거에요.
그렇게 해탈하고 가시고, 가는 길에 가장 중요한 것은 집착을 안는 거예요.
그 청정한 일념을 챙기라고 했어요.
그 다음에 그렇게 챙겨도, 마음에 챙겨도 잘 안 돼요. 한번 해보세요.
원불교 열심히 30년 40년 다녔어도 죽비 딱 치고 일분만 입정합시다 하면
마음이 입정이 돼야 되잖아요. 청정일념이 돼야 되잖아요. 그런데 금방 마음이 어디로 가요?
장독으로 가는지, 집으로 가는지, 시장으로 가는지, 몇 번을 왔다 갔다 하죠.
그렇게 안 하는 분은 지금 여래에요.
그런데 눈 딱 감고 하는 순간에, 내가 지금부터 마음을 모아야지 하는 집착부터 시작이 되는 거예요.
쉽게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집착을 안 하고 살기가 참 어려워요.
그러면 이 집착의 껍질을 조금 벗어버릴 수 있는 방법이 뭐냐하면, 원이라는 거예요.
원을 크게 세우면 작은 것은 큰 원 속에 다 묻혀버려요.
예를 들어서 1억을 벌려는 사람은 일원 이원 다 소중하게 생각하지만
1억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일원은 머릿속에, 마음에 담아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인생에 큰 원을 가지고 있으면 욕심들이 다 없어지게 돼 있어요.
그 인생의 가장 큰 원이 뭐냐? 교도님들 이거 많이 들으셨잖아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원, 가장 바람직한 원은 성불제중이다.
너를 알고, 너를 만나는 모든 대상과 상생으로 살아가는 그 길이다.
그 뜻을 가지고 다음 생으로 건너가는 것이 자력이에요.
그 원을 크게 세우면 그냥 마음이 맑아지게 돼 있어요.
우리가 도빈영가, 오늘 떠나는 길, 인생 끝났어요. 아무리 생각해본 들 별 의미가 없어요.
지나간 일이에요. 그러니까 다 놓아버리고 잘 가시고, 이제 가면 올 거 아니에요, 안 올 수 없어요.
지가 무슨 능력으로 안와요.
옛날에 시골에 방앗간이 있었어요. 어른들은 알고 요새 30~40대는 모릅니다.
방앗간이 전기로 돌리는 게 아니라 발동기라고 그랬죠.
발동기가 어느 정도 크냐에 따라서 방앗간의 크기가 달라지는 것인데
그 발동기와 천정의 둥근바퀴로 연결되어 있고 탈곡 과정마다 둥근 바퀴가 있어요.
원동기 큰 바퀴하고 중심되는 바퀴에 벨트를 연결해 돌려서 방앗간이 움직이게 되는데
일정 과정이 되면 벼가 쌀이 되게 끔하는 과정이 되요.
그러니까 내 힘이 있으면, 어느 정도 힘이 있느냐에 따라서 그걸 운전할 수 있는 거예요.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 힘을 갖추는 거예요.
이제 갔다 오셨어, 도빈님이 사람으로 와야지. 안 올 수 없어요.
우주의 이 수레바퀴가 발동기 돌아가듯이 돌아가면서 나도 그 안에 포함되요.
발동기가 멈추면 다 멈춰요.
내가 몸을 받아왔다고 가정을 합시다. 그러면 잘 살아야 될 거 아니에요?
잘 사는 것을 부처님이 딱 세 가지로 얘기를 해주셨어요.
하나는 청정일념을 배양하고 활용하라 그랬어요.
내가 욕심이나 탐심이나 진심 이런 것에 끌려가지 말고 마음을 일심을 유지하는 데 노력해라 그 얘기예요.
끌려가지 마라. 그게 잘 사는 거다. 그 얘기에요.
두번째는 상생의 인연을 배양하고 활용하라 그랬어요.
그 말은. 내가 만나는 어떤 인연이 되었든, 등돌리는 인연을 없게 만들어라.
그런데 내 이익에 빠지면 등을 바로 돌리게 돼 있어요.
이해로 있는 관리를 하게 돼 있어요.
이익이 있으면 달려 들고 이익이 없으면 떠나는 것이 생명의 이치이기 때문에 그렇게 쉽게 살아.
그러지 마라, 떠나더라도 어떻게 해줘야 돼요? 잘~ 관리해줘라.
말 한마디라도 잘 해줘라. 그렇게 해서 그 인연이 너를 보면 반갑게 해라.
그게 잘 사는 거다. 그 얘기에요.
그런데 요즘 부부간에도 아침에 싸우고 저녁에 웃고, 또 그다음 날 아침에 또 싸우고 그냥 그러고 삽디다.
왜 그렇게 사는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 꼭 그렇게 살아야 되는 것인지.
그게 사는 걸 몰라서 그렇게 사는 거예요. 그리고 자기 이속 챙기느랴고
마음에 안 들면 화내고 자기 하자는 대로 해야 돼요.
상대방에게 배려하면서 사는 마음 정도만 되면
그 사람은 마음도 편안하고, 관계도 편안해질 수가 있어요.
세번째는, 공변된 마음을 배양하고 활용하라 그러셨어요.
공변된 것이라는 것은 내 마음이 공적이어야 된다라는 말이에요.
원근친소에 끌리지 않고 누구에게든지 잘 베푸는 거예요.
쉽게 얘기하면 보시를 많이 하면서 살라 그 뜻이에요.
제가 오늘 도빈영가 덕분에 우리 교도님도 부처님 말씀을 전해 들을 수 있게 됐는데
이 공덕이 도빈영가를 잘 가게 하는 기원이 되는 거예요.
그리고 오늘 여기에 이렇게 많이 오신 교도님들이 도빈영가의 능력으로만 이렇게 되는 거 아니에요.
저도 도빈영가는 잘 모르고, 어머니 은중씨 인연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그러면 도빈 영가하고 아무 인연이 없는 거냐? 안 그래요.
그래서 이 세상은 인연으로 거미줄처럼 보일듯 보이지 않게 얽혀져 있어요.
그러니까 인연을 소홀하게 해서는 안 되니까, 내 마음 깨끗하게 하는데 노력하고
만나는 인연 다 잘하고, 그렇게 마음 인연 가꾸고 실천하라.
그 다음에 줄 수 있으면 주는 것이, 모든 인연하고 관계가 가장 원만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지런히 원근친소 마음 갖지 말고 그 마음으로 살아라 하는 것이
정산종사께서 사람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는 세전을 밝혀 놓은 경전
세전 맨 끝에 나오는 말씀, 인생을 한마디로 정리해가지고 이렇게 살면 잘 사는 것이다 했거든요.
도빈영가에게 다시 강조하지만, 미련 없이 가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미련 없이 보내고
나는 이제 잘 살아야죠, 또 도빈영가는 와서 살 때 지금 부처님 표준해 준 이 세 가지 내용을
마음에 꼭 새기고 살아야 한다.
율산님한테 저 아들이 빚 갚으러 와요. 지금 빚진 거예요.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수는 있는데 이생으로 부터 보면 빚진 거예요.
빚졌으면 인과의 이치가 그냥 안 놔둬요.
빚 갚고 받은 바를 와서 갚게 하는 것이니까 또 만날 수밖에 없어요.
얼굴을 바꾸고 오니까 탈쓰고 오니까 몰라볼 뿐이에요.
모르는 내가 문제지 안 오는 건 아니에요.
도빈영가가 교당에 잘 다녔나요?
"학생때 좀 다녔어요"
오늘 참회문과 함께 쉽게 얘기를 했어요, 축원을 해 줬으니 잘 갈 것입니다.
첫댓글 문산님!
종사님 법문 포항교당과
지인님들께 공유합니다^^
감사합니다.
네. 건강잘 챙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