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벌써 계절이 한여름을 지나고 있네요.
이곳 키르기즈스탄의 들판은 내리쬐는 뜨거운 태양아래 목말라하고 있습니다.
길가에 잡초들 마저도 누렇게 힘을 잃고 바스라져 버립니다.
간간히 천산산맥 자락에 녹지 않은 눈들을 바라보며 더위를 잊어봅니다.
러시아 속담에 두번 이사하는 것은 집에 불이 난 것과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난 4월에 살던 월세 아파트에서 급히 여관으로, 여관에서 다시 다른 월세 아파트로 두번 이사를 하면서 불 난 집 같은 상황을 지냈었습니다. 하지만 지나고 나니 참 감사하게도 짧게 적응기간을 지났고 안정되었습니다.
코쇼이 마을에서 우연히 만난 엘디야르는 한국에서 5년간 일하고 돌아와 올해 대학을 졸업한 친구인데 이 곳에서 유일하게 저를 ‘형님’이라고 부르는 키르기즈 친구입니다. ^^
엘디야르 부모님과도 자주 만나고 그 친구가 사는 마을로 이사갈 준비까지 했었는데 계약날짜를 앞두고 등기서류를 은행에서 되찾지 못하고 있다는 집주인의 말에 결국 다른 집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아쉽게도 엘디야르는 지난달 사귀던 자매와 결혼하고 곧 러시아로 떠나게 되었지만 그 가족들과는 계속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소액대출회사의 대표인 막사트는 토크막에서 만난 가장 소중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저희 가정이나 막사트 가정이나 생각하고 바라보는 바가 비슷해서 만날때마다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편안함과 진지함이 있습니다. 주 안에서 변화된 삶을 경험한 과정도 비슷하고 아이들도 셋이고 나이도 비슷해서 참 좋습니다.
은혜로 사는 사람들이 이 땅에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들을 나누고 함께 고민하는 기쁨이 있습니다.
게다가 막사트 가정이 몰도바 하늘학교에서 공부하던 시절에 보았던 비닐하우스에 관심이 있어서 함께 지역사회를 위해 어떻게 비닐하우스 재배기술을 활용할지 고민 중에 있습니다.
조만간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 비닐하우스 재배관련 세미나를 열어볼 예정이기도 하구요.
지난번 어려운 시기에 저희 가정을 도와주었던 구잘 아주머니와 주마벡 아저씨네 가정과는 이제 거의 매일 만나고 함께 식사도 하고 텃밭도 가꾸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주변에 살고 있는 아저씨네 친척들 잔치에도 여러 번 얼굴을 내밀게 되어 이제는 프로그레스 마을에서는 낯선 이방인 신세는 면했습니다.
게다가 주마벡 아저씨네 처남이 고려인이어서 아저씨는 마을 사람들에게 처남네 친척이 이사온다고 소개하고 있는데 주변 이웃들도 모두 좋은 분들이어서 감사합니다.
러시아 속담에 집을 사지 말고 좋은 이웃을 사귀라는 말이 있는데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아저씨네 부모님이 살던 빈집에서 저희가 살면서 비닐하우스를 지을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기본적인 집수리를 하고 다음 달에는 프로그레스 마을로 이사할 예정입니다.
때로는 얼굴도 모르는 동네 아저씨들이 언제 비닐하우스 지을꺼냐고 물어오면 당황스럽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감사하기도 합니다.
생각보다 이곳 농촌 분들이 비닐하우스에 대해서 관심이 커서 그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비닐하우스 관련 자재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고 노동 습관도 우리랑 많이 다르고 기후 역시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어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올해 여름에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자재를 기초로 한국에서 비닐과 관수자재 등을 가져와 시범적으로 비닐하우스를 설치해서 동네 분들과 더불어 재배를 시도해보려고 합니다.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진행될지 그리고 그 일들을 통해 어떻게 이 지역사회가 새로와질지 함께 두손 모아 주세요.
이제는 제법 큰 소리로 키르기즈 사람처럼 인사도 하고 기본적인 대화를 나누기도 하지만 아직은 대부분의 대화는 러시아어로 소통하고 있습니다. 확실히 이곳 시골마을들에서는 수도 비쉬켁과는 달리 키르기즈어로 다가가면 더욱 반가워합니다. 그래서 저나 아내는 9월부터 시작되는 학기에도 키르기즈어를 계속 배울 예정이구요.
지성이와 인애는 홈스쿨링을 통해 교육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사갈 프로그레스 마을에서는 키르기즈어 학교만 있고 마을에서도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중학교 나이가 되면 토크막이나 비쉬켁으로 학교를 옮기는 형편입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 너무 무리해서 키르기즈어와 러시아어로 공부를 하게 하는 것보다는 마을 아이들과 사귀면서 언어를 자연스럽게 배우고 홈스쿨링을 하기로 했습니다. 주중에 음악학교나 체육학교에서 피아노, 수영, 축구 등을 적성에 맞게 학원에 다니듯이 배우고 있는 중이구요.
이제 프로그레스 마을에 들어가면 지성이는 마을 아이들처럼 말을 타고 양이나 소를 모는 법도 배우겠고 인애는 화덕에 빵을 굽고 야생 산딸기와 블루베리로 잼을 만드는 것을 배우게 되겠지요.
언젠가는 저도 자동차보다 말을 모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질 날이 오겠지요. ^^
하늘이는 보는 사람들마나 여기 사람처럼 생겼다고 모두들 너무 반가워합니다. 저희 가정이 하늘이 덕을 보는 셈이지요. ^^ 이제 말도 많이 하고 프로그레스에 가면 마당에서 혼자 살구며 산딸기며 오이 따먹느라고 하늘이 옷은 엉망이 되지만 잘 자라는 모습에 참 감사합니다.
오랜 만에 소식을 전하다 보니 너무 길어졌네요.
프로그레스 마을에 병풍처럼 펼쳐진 눈덮인 천산산맥의 아름다움을 전할 방법이 없네요.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좋은 사람들과 함께 지낼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합니다.
그리고 함께 두손 모아 주시는 모든 분들께도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또 소식 전하겠습니다.
은혜 가운데 항상 평안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