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찔한 선교’
- 예멘 수도 한복판서 찬송가
하도 놀래, 신문을 보자마자 컴퓨터 자판기 앞에 앉았다. 엊그제 아침 5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우연히 성당에 가느라고 집사람이 집안에 던져 넣은 신문을 보다가, 상기와 같은 제목의 6단 사회면 기사를 읽었다. “저렇게 무모할 수가 있는가? 아무리 젊어서 그렇다고는 치더라도 누가 저렇게 젊은 사람들을 충돌 질 하였으며, 무슨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할 것이고, 그 후에 한국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저런 무모함이 알려져 만약 엉뚱한 한국관광객이 보복성 테러를 당할 경우의 책임은?” 끈임 없이 밀려오는 질문에 나는 답을 못하고 멍하니 천장만 처다 보고 있었다. 기사내용인 즉 이러했다.
“지난 10일 오후 7시쯤 예멘의 수도 사나. 최고 번화가 “핫다” 거리 한복판에 한국 청년 10여명이 모여 섰다. 이들은 기타를 치며,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예멘의 국교는 회교이다. 다른 종교의 전도와 집회는 현장에서 체포 당할 수 있는 위법행위이다” 안 잡히면 재미있고 그만이라는 무모한 행동은 제3국에서는 안 통한다. 현지인들로서는 죽고 사는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이다. 「자라보고 놀랜 가슴이 솥뚜껑 보고 놀랜다」고 30여 년 전, 80년대 초반으로 올라간다. 당시에는 김재성대사를 모시고 내가 주 요르단대사관 참사관으로 있을 때였다. 하루는 매우 쾌활하시던 김대사가 시무룩하여 내방으로 오셨다.
「솔직담백하고 성실하며 모든 일에 성의가 있으시던 김대사이었다. 과거와는 달리, 안색 이 달라져, 여간 걱정이 되지 않았다. “권 참사관, 그거 아셨어요?” 김 대사는 처음부터 나 까지도 의심하는 투로 의중을 떠 보았다. 답답하였다. 한참을 돌리시던 대사께서 나에게 물어보셨다. 다른 게 아니고 국민 대부분이 회교도였고 이스라엘과 사실상 대처하고 있는 왕정체제인지라 우리로서는 요르단이 조심스럽기 이를 데 없는 나라였다.
그런데 독실한 기독교신자이던 K참사관과 C건설관 P노무관 등 대사관직원 들이 목사님을 초청하여 온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아찔했다. “아뿔싸. 일이 터지고 말았구나. 미국도 하지 못하는 일을 우리나라 사람들이 마침내 해내고 말은 거야!... 회교와 기독교라!” 그렇게 생각하니 나는 코끝이 맹 해오는 것을 느꼈다. 그렇지 않아도 종교 때문에 요르단 정부가 유럽국가의 하나를 이상한 눈초리로 보고 있다고 지난번에 김대사가 회의석상에서 말씀 하신 바가 있었고, 회의에서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요르단 정부의 그런 눈초리는 아마도 믿을 만한 왕실 쪽에서 정보부보고를 보고 나온, 이야기일 것 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대사의 언급은 금시초문이었다. 현 체제를 법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는 명목상이었고, 정치적으로는 부정하는 일이라 사실 상은 큰일이었다. 요르단 정보부에서는 외국대사관이라고 하면 종교문제와 체제유지문제 때문에 유심히 처다 보고 있기도 했다.
“가만 계세요. 제가 물어보죠!” 그리고 나는 옆방의 K 참사관 방으로 갔다. 그리고는 단도 직입 적으로 문제의 이야기를 꺼냈다. 허나 그의 대답은 너무나도 평온하였다. “권 참사관, 내가 지금 바랄 것이 뭐가 있어요. 출세요? 그런 것 아닙니다. 아이들도 이미 커, 나이도 먹었고요! 물론 대사님 한데 사전에 말씀을 못 드린 것은 큰 잘못이요”
나는 이들에게 대들었다. “그렇다면 당신들은 대한민국의 대표요? 아니면 어느 교회의 대표요? 이 나라는 회교국과 다를 바가 없는 나라요. 꼭 이렇게 우리가 일을 저지를 필요야 없지 않습니까?” 교회 일만 아니면 그렇게도 유순하던 사람들이었다. 어쨌든 그들은 나의 이 말에 일보 후퇴하여 목사님 데려 오는 것을 연기하여, 지금도 나는 이들에게 감사하고 있다. 그리고 대사관 직원신분으로 임지에 나가면 그 나라의 체통을 봐 주어야지, 이를 부인하는 행위는 옳지 않다고 본다. 공무원 아닌 민간인 신분이라도 마찬가지 아닌가! 아니 민간인 신분이 내 경험상으로는 더 했다.
“인 솰 라 (신의 뜻입니다.)” 아랍 사람들의 말이다. 부정도 긍정도 아니지만 우리에게는 부정적으로 들리던 말이다. 그러나 아랍권에서 독실한 한국의 어느 분이 대사관저에서 교민 들하고 공공연히 예배도 보고 목사님도 모셔다가 성가를 불러대는 바람에, 그 나라 정부 에서 놀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기독교가 생겨난 지역에서 기독교를 전파하여야 한다는 논리였다고 한다. 「나도 지금 가톨릭신자가 되었고 김 대사도 가톨릭 신자로써 선종(善終)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큰 일이었다. 요르단과 예멘은 같은 중동이라고 해도 서로 다르다. 우선 회교가 국교냐 아니냐의 차이는 크다. 그런데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시간에 아무리 개화되었다고는 하지만, 가장 번화가에서 젊은 사람들 10여명이 찬송가라! 아마도 30여 년 전의 요르단과 같다는 생각이 났다.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 동안 여러 번 유사한 사건이 있었지마는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이라크 에서2004년 6월에 김선일씨가 무장단체에 납치되어 살해된 뒤 우리 국민들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우리가 노력하고 있고 또한 당연 하겠지만 국민들은 생활걱정이 적어지자 우리 정부에 대하여 “콩 내놔라 팥 내놔라” 할 정도로 많이 달라졌다. 박대통령과 최 대통령이 하시던 말씀이 지금 생각해 보니 틀림없이 맞았다. “민주주의를 위해서 우리도 노력하여야 하지만, 민주화가 되면 될수록 정부는 어려워진다!” 고 한 말씀 말이다.
만약에 저 종교문제 때문에 엉뚱한 한국사람들이 회교원리주의자들의 보복성 테러의 대상이 된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그때는 이미 저 젊은 사람들은 어디에 가 있는 지도 모를 때이고 이들은 또한 연락도 되지 않을 것이다. “책임 없는 민주주의란 민주주의가 아니다” 라는 말처럼 책임의식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선진국으로의 진일보다. 젊음도 좋고 무모함도 좋다. 그러나 책임의식이 가장 중요한 선진화의 첩경이다, 끝.
첫댓글 가슴을 움직이는 의미심장한 내용,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