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도성을 한바퀴 도는 데 10시간 정도 소요되지요.
꼭 한번 걸어보셔요. 제가 문화유산채널에 올린 글입니다.
자료 출처:
http://www.k-heritage.tv/brd/board/275/L/CATEGORY/330/menu/256?brdType=R&thisPage=1&bbIdx=12449&searchField=&searchText=
서울 한양도성(사적 제10호)은 도심의 경계를 표시하고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축조된 성으로 현존하는 전 세계의 도성 중 가장 오랫동안(1396~1910, 514년) 도성 기능을 수행하였다. 그뿐 아니라 조선시대에는 성곽을 한 바퀴 도는 순성이 유행했다고 한다. 서대문인 돈의문을 시작해 성곽 40리 길을 한 바퀴 돌고 종로길을 관통하면 가운데 ‘중(中)’자가 그려진다고 한다. 이는 적중할 때 ‘중’ 자로 순성을 하면 과거시험에서 합격한다고 믿었다고 한다. 일반 백성 역시 도성을 돌면서 성 안팎의 꽃과 버들을 감상하며 한양의 아름다움에 취했다고 한다. 18.6km, 성곽을 거닐며 600년 동안 변화된 한양의 역사를 가슴속에 새겨보면 어떨까.
△ 한양도성 백악구간에서 바라본 북한산
백악구간 (혜화문-숙정문-백악마루-창의문 4.7km, 3시간)
4호선 한성대입구역 5번 출구를 빠져나오면 인도 옆에 자리한 혜화문을 보게 된다. 성문이라는 것이 길 가운데를 놓여 있어야 제 맛이지만 외진 곳에 비켜 있어 버스정류장만큼이나 옹색하게 보인다. 성벽은 성북동 주택가로 이어지는데 고급빌라의 담벼락이 되기도 하고 경신고등학교 교사의 축대가 되어 학생들의 수다 소리를 들으며 걷게 된다. 서울과학고등학교부터 성곽은 제 모습을 찾게 된다. 부근에 유명한 왕돈가스집이 여럿 있으니 성곽 오르기 전 미리 체력을 보충하는 것이 좋다. 와룡공원부터 말바위까지는 높다란 성벽을 옆에 끼고 부엽토로 다져진 흙길을 거닐게 된다. 만추의 낙엽길도 좋지만 성벽 위에 눈이 소복하게 쌓인 겨울 풍경 또한 볼만하다. 목책교를 넘으면 말의 머리를 닮았다는 ‘말바위’가 손짓하는데 ‘서울시 선정 우수조망명소’ 전망대가 서있어 경복궁과 광화문 빌딩 숲, 남산은 물론 관악산까지 조망이 가능하다.
말바위 안내소에서 400m쯤 가며 한양의 4대 문이자 북대문인 숙정문이 나온다. 산악지대에다 연결된 도로가 없기 때문에 출입문의 기능은 상실했다. 더구나 북쪽은 풍수지리상 음기가 강한 곳이어서 ‘숙정문을 열면 장안 여자들이 음란해진다’라고 여겨 문단속을 철저히 했다고 한다. ‘북쪽은 음, 남쪽은 양’이라는 음양의 원리가 건축에 반영되었다고 보면 된다. 대신 가뭄 때는 문을 활짝 열어놓고 음기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숙정문부터 곡장까지는 능선을 따라 계단이 이어진다. 성벽 너머로 70년대 요정정치의 산실인 삼청각이 내려다보인다. 한때 남북적십자회담, 한일회담 등 막후 협상장소로 이름을 날렸던 곳으로 지금은 서울시가 인수해 공연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성벽 바깥쪽으로 곡장이 툭 튀어나왔다. ‘구부러진 성벽’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곡장은 그 특이한 지형 때문에 적의 동태를 살피고 방어하는 데 사용되었다. 곡장 끝은 타이타닉호의 뱃머리 같아서 이곳에 서면 북한산의 장쾌한 풍경은 물론 그림 같은 인왕산을 감상할 수 있다. 곡장에서 백악산까지는 용이 옥구슬을 향해 휘감아 도는 형상을 하고 있어 서울성곽 여정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청운대에 서면 경복궁-광화문-숭례문이 자를 그은 듯 일렬로 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성돌에는 공사책임자와 직책과 이름이 새겨져 있다.
성벽에는 글씨가 음각된 돌을 볼 수 있는데 공사일자, 감독관, 공사 책임자의 직책과 이름이 꼼꼼하게 새겨져 있다. 조선 팔도에서 인력을 동원해 성곽을 쌓았는데 보수가 필요하면 이름을 보고 공사책임자를 불러들였다고 하니 일종의 ‘공사실명제’인 셈이다.
△1ㆍ21 사태’ 소나무
청운대를 조금 지나면 총알 자국에 시멘트 치료(?)까지 받은 ‘1ㆍ21 사태’ 소나무를 만나게 된다. 이곳은 1968년 김신조를 비롯한 무장공비가 청와대를 습격할 때 전투를 벌였던 현장으로, 나무에는 15발의 총알 자국이 상흔처럼 남아 있다. 오르막의 끝은 청와대 뒷산인 백악산이다. 정상 바위에 서면 광화문, 남산은 물론 상명대학과 구기동 주택단지, 인왕산 성곽과 기차바위 능선, 세종로의 마천루까지 조망된다. 북악산으로 더 알려진 백악산은 경복궁은 물론 청와대의 진산이다 소나무 그늘 아래 쉴 수 있는 공간이 놓여 있으니 다리품을 팔아도 좋다.
백악마루에서 창의문까지는 급경사 계단길이다. 중간에 돌고래쉼터가 있어 숨을 고르며 탁 트인 경치를 감상하는 호사를 누려도 좋다. 산을 내려오면 창의문이 기다린다. 인조반정 때 반정군이 이 문을 통해 도성으로 들어갔던 혁명의 문이다.
△산수화와 소재가 되었던 인왕산
인왕구간 (창의문에서 숭례문까지 5.3km 3시간) 창의문에서 길을 건너면 윤동주 문학관이 반긴다. 시인은 누상동에서 문학 친구 정병욱과 하숙을 하면서 종종 인왕산에 올라 시정을 다듬었다고 한다. <별 헤는 밤>, <자화상> 등 그의 대표작은 바로 이 시기에 쓰여졌다. 물탱크를 개조해 만든 문학관이 서 있으며 시인의 언덕에서 꼿꼿하고 순결한 그의 정신을 음미하기에 좋다.
다시 순성길을 걷다 보면 인왕 스카이웨이와 만나고 인왕산 능선을 따라 성곽길이 이어진다. 제법 경사가 가팔리 숨이 차오르지만 시원한 경치가 지친 다리를 어루만져준다. 빼곡한 숲을 보니 한때 인왕산에 호랑이가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지네가 지나가는 듯한 성곽과 불꽃 모양의 북한산이 산수화를 그려내고 있다. 잠시 도성에서 벗어나 기치바위까지 다녀올 수 있도록 문을 열어 놓았으니 거대한 암반에 엉덩이를 붙이고 파노라마 같은 한양의 풍경을 감상하는 여유를 가져도 좋다.
인왕산은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다. 선바위, 부처바위, 치마바위 등 기묘한 바위가 흥미로운 전설을 만들어 내고 있다.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인 <인왕제색도>를 상상하며 인왕산 산세를 감상하면 더욱 의미 있겠다. 마지막 힘을 내 계단을 오르면 인왕산 정상이 나온다. 한양을 감싸고 있는 내사산인 북악산, 낙산, 목멱산을 한눈에 굽어 볼 수 있으며 외사산인 북한산, 아차산, 관악산, 덕양산까지 조망이 가능하다. 또한 청계천과 한강 그리고 경복궁과 창덕궁 등 한양의 중심부를 절묘한 각도에서 내려다볼 수 있다.
△성곽에 핀 코스모스, 직장인의 산책로 역할을 하고 있다.
인왕산 정상에서 무학동으로 이어지는 성곽 길은 아리랑의 춤사위처럼 부드럽다. 쭉쭉 뻗은 빌딩과 성냥갑 같은 집들 그리고 고궁이 한데 어우러진 모습이 고마울 따름이다. 무학동을 지나면 성곽 주변은 온통 코스모스 밭이다. 딱딱한 성곽에 가을 옷을 입힌 것 같다. 점심시간이면 성곽길은 직장인들의 산책코스로 바뀐다. 순성안내쉼터에서 돈의문까지는 민가가 들어차 있어 성곽의 흔적을 찾기 쉽지 않다. ‘한양도성 순성길’ 푯말을 따라 길을 찾아야 한다. 미로 같은 주택단지를 벗어나면 최근에 성곽을 복원한 월암근린공원이 나온다. ‘봉선화’, ‘고향의 봄’을 작곡한 홍난파의 노래비를 볼 수 있다. 다시 길을 따라 내려가면 삼성강북병원이 나온다.
△ 김구선생의 애국심을 엿볼 수 있는 경교장
병원 안쪽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로 사용되었던 경교장(사적 제 465호)이 자리 잡고 있다. 해방 후 김구 선생이 이곳에 집무를 수행하다가 서거한 비운의 현장이다. 그 아래에 서울의 4대문 중 유일하게 형태를 찾을 수 없는 돈의문터가 자리 잡고 있다. 일제 강점기 때 도로 확장공사로 허물어졌다고 하는데 신문로 횡단보도를 건너며 돈의문을 마음속으로 그려보자. 길은 다시 정동길로 연결되며 정동제일교회를 돌아 배재학당을 지나가게 된다. 큰길을 건너 중앙일보 담벼락을 따라 가면 상공회의소에 닿게 되고 국보 제1호인 숭례문과 마주하게 된다.
목멱구간 (숭례문-N서울타워-광희문 5.4km 3시간) 남대문 저잣거리에서 칼국수로 끼니를 때우고 남산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밀레니엄서울힐튼호텔 맞은편이 조선신궁터로 일제 강점기 때 내선일체를 강요하며 일본정신을 주입했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성곽으로 말끔히 복원되었다. 남산도서관 옆에 안중근의사기념관이 자리 잡고 있고 김구선생, 손병희 선생의 동상이 서있음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하겠다.
△ 내선일체를 강요했던 조선신궁터는 성곽으로 복원되었다.
제법 가파른 경사길을 오르면 남산팔각정과 N서울타워가 나온다. 조선시대 태조가 개국한 후 이곳에 국사당을 세워 민속신앙을 주관했던 곳이다. 타워 아래 전망대는 외국인이 가장 북적거리는 곳으로 서울의 발전상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남쪽으로는 한강과 강남 일대를, 북쪽으로는 한양의 진산인 북악산과 서울의 고층건물을 조망하게 된다.
△ 전국의 봉수에서 12시간 이내에 소식을 전해 받을 수 있는 목멱산 봉수대
목멱산 봉수대(서울특별시 기념물 제14호)는 전국 각지에서 보내오는 봉수를 받았는데 낮에는 연기,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를 알아볼 수 있도록 했다. 전국 어디서든 12시간 내에 남산 봉수대에 도착했다고 한다. 남산을 기점으로 성곽은 아래쪽으로 향한다.
순성길은 남산 순환도로를 따라가기도 하고 성곽 바깥쪽으로 계단길로도 이어진다. 그렇게 남산 기슭을 따라 내려오면 국립극장을 거처 도로를 건너면 반얀트리클럽이 나온다. 여기서부터 서울신라호텔까지는 정원 옆구리에 끼고 걷게 된다. 골프연습장도 지나가고 울타리 넘어 호텔 정원 조각품을 감상하는 재미 역시 쏠쏠하다. 서민주택이 몰려 있는 다산동을 지나가게 되는데 한양의 남동쪽을 내랴다 볼 수 있도록 정자가 서 있다. 이 숲길이 끝나는 지점에 장충체육관이 자리 잡고 있다. 1963년 세워진 국내 최초의 돔 경기장으로 김일 선수의 박치기의 추억이 서린 곳이다. 장충체육관에서 광희문까지는 도로확장과 주택 건설로 성곽 대부분 훼손이 되어 그 흔적을 찾기 어렵다.
△ 도성에서 시신이 빠져나가는 문인 광희문
‘순성길’ 푯말을 찾아 어렵사리 주택가를 헤매다 보면 한양의 동남쪽 문인 광희문이 나온다. 도성 안에는 무덤을 쓸 수 없어 성 안의 시신은 소의문과 광희문을 통해 나갔다고 한다. 시구문(屍口門)이라 부른 이유는 이 때문이다. 도성 밖은 노제 장소였기에 무당집이 많아 신당리라 불리었는데 오늘날 신당동의 유래는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낙산구간 (광희문-서울 흥인지문-혜화문 2.3km 1시간 10분) 광희문에서 대로를 건너면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이 나온다. 그 안에 자리한 동대문 디자인플라자(DDP) 건물은 세계적인 거장 자하 하디드의 작품으로 한강과 청계천 등 역동적인 서울의 모습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역사적 흔적을 현대적 건물과 절묘하게 연결시켜준 아이디어가 독특하다.
△ 도성의 물이 빠져 나가는 이간수문
원래 훈련도감의 별영인 하도감과 화약 제조 관서인 염초청이 있었던 자리였는데 1925년 일제는 일본 왕세자 결혼 기념으로 이곳에 경성운동장을 지었고 훗날 동대문운동장이 바뀌어 근현대 한국 스포츠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했던 현장이다. 발굴된 성곽은 길게 이어지다가 도성의 물이 빠져나가는 이간수문과 오간수문을 만나게 된다. 서울에서 가장 지대가 낮아 내사산에서 내려온 물이 청계천으로 모여 이곳을 통해 도성 밖으로 흘러나갔다. 옹성을 품은 흥인지문을 지나면 다시 성곽은 서울의 좌청룡에 해당하는 낙산을 따라 오르게 된다. 생긴 모양이 낙타의 등처럼 생겨서 낙타산, 타락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내사산 중에서 가장 낮아 편안하게 산책할 수 있다. 서울디자인센터에는 한양도성박물관이 있으니 도성의 의미와 그 역사를 배우면 한양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성벽 바깥 창신동은 조선시대 퇴직한 궁녀들이 모여 살았던 곳이며 성벽 안쪽은 벽화가 아름다운 이화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서울의 몽마르뜨 언덕이라 불리는 낙산공원은 붉은 노을과 야경이 볼만하다. 성곽은 가톨릭대학을 따라 이어지며 혜화문에서 그 끝을 맺는다.
첫댓글 네...
체력단련 겸 히말라야 준비운동 겸 완주 하고 싶습니다..
감사하구요...
한양도성 순성길을 1구간씩 나누어서
완주했습니다. 시간을 내서 매년 걸어보려고 합니다.
한양도성에 대해서 더 공부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