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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기 91년 5월 16일 반야심경 ♠
▶ 청년 강연자 : 이지현 교우님
▶ 설법 : 김제원 교무님
▶ 청년 강연자 강연 범위 :
【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고 심무과애 무과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고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
▶ 교무님 설법 ◀
『 제 1 부 』
오늘은 7번째 반야심경 시간입니다. 강의는 모두 9차례입니다. 실은 20번이고 1년이고 해야할 것인데 말입니다. 예습은 다 해오시죠?
학문이나 사상, 이념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 몸과 마음이 바로 반야다 라는 것을 공부하고 있는 겁니다. 이 몸과 마음과 반야라는 단계가 어떠한 것이고 그 관계가 어떠한 것인가를 알고 확인하는 것입니다.
■ 복습 ■
반야바라밀다심경은 주로 어느곳에 쓰입니까? 독경으로, 주문으로서 많이 쓰이죠. 원불교나 불교 다니시면 화구에, 혹은 땅속에 들어갈 때 이 반야심경을 듣는데 그 때 알아들으려면 공부좀 해야 겠지요?
2. 또 반야를 설명하는 의미로 쓰입니다. 배우신 분들은 뜻을 새기면서 독경해야 하는 것입니다. 뜻을 모르고 하면 그것은 음악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3. 행심 반야바라밀다시 - 관자재보살이 깊은 수행을 하고 계실 때 무엇을?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했는데, 어떻게? 오온이 개공한 것을 비추어보았다. 그래서 무엇이 일어났느냐.. 다 비워보니까 일체의 고액을 건넜더라. 그래서 도일체고액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고 명예가 있고 인연이 좋고 잘 풀리고 해도 그 사람의 마음속에는 고통이 있습니다.
옛날 페르시아 왕이 신하들에게 인간의 역사에 대한 책을 써보자는 생각에서 인간의 역사에 대해 서술해 오라고 합니다. 그랬더니 학자들이 온갖 이야기를 다 써와서 책이 너무 두꺼워 질 것 같으니, 다시 간결히 써오라고 했답니다. 그러나 그것도 맘에 차지 않아 좀더 간단히 해봐라...했더니 결국 학자들이 한두자로 축소한 것이 바로 苦(고)였습니다.
오늘 고에 대해서 배웁니다. 오온이 개공함을 모르면 고통을 건널수 없습니다. 그럼 오온이 무엇이었지요? 색수상행식이 바로 오온이었습니다.
오온이라는 것중에서 색은 ‘육신’이다. 우주로 말하면 유형한 것을 이야기한다고 했습니다. 색은 지수화풍이 인연을 따라 모여 있는 것이었죠?
만약 이 육신이 참 나라면, 정말 가치있는 것이라면 어떻게 불에 집어넣고 땅에 묻습니까. 고로 이 육신이라는 것은 참 나가 아닌 것이지요?
여기 있는 분들중 절반은 열반 후 불속으로 갑니다. 한 시간이면 뼈 요만큼만 남습니다. 일체가 고통이라는 것을 뛰어 넘으려면 색이 공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여기에 또 돈, 명예, 권력, 집, 차 이런것들이 모두 공하다는 것이겠지요? 성형수술 했어도 다 마찬가지고 운동을 열심히 하나 화장품을 비싼 것을 쓰던, 다 똑같습니다. 그저 공합니다.
그래서 색이라고 하는 것은 가치있는 것이 아니라 공한 것입니다. ‘허망한 것’이 아니라 ‘공한것’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습니다. 아무것도 아닌것이 아니라, 모이면 소중하나 금방 흩어지기 때문에 공하다 라는 말입니다. 색은 참 나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나의 손, 나의 몸, 나의 무엇”이라고 명친하고 ‘나’라고는 하지 않는다고 지난시간에 이야기 했습니다. 나의 소유요 나의 도구요 나의 이용물일 뿐입니다.
한국사람들 보면 색이 난줄 알고 살지요. 그렇지 않다면, 즉 내가 아니라면 왜 색에다가 돈을 쓰고 에너지를 쓰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색이 나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던지 아니면 색이 무엇인지 제대로 모르는 것입니다. 정말 가치있는 것이 무엇인줄 알면 거기다 에너지를 쓸 것인데 그렇지 못하니까 색에 거의 모든 시간을 투자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오온이 개공하다는 것에서 색이 공하다는 그 첫째를 모르고 있다는 것 아닙니까? 에너지를 허비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고급 중생은 마음이 ‘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정말 마음이 참 나입니까?. 육신이 내가 아니라고 할진댄 마음이 나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무엇이 받아들이고 생각하고 의지작용하고 합니까? 마음이 들어서 그렇죠. 육신의 대장은 마음이지요? 그렇지만 그렇지 못할때도 많죠? 낼 시험인데 육신은 자라고 그러지요. 마음은 술 먹지 말라는데 몸은 술을 마시게 되지요? 참 묘합니다. 마음이라는 것이 들어서 지금 우리가 이렇게 강연도 듣고 이러고 있지만, 그 마음이라는 것이 어디있느냐? 답은...‘공’이다 라고 했습니다. 공이라는 것은 공이불공, 즉 공은 공인데 공이 아니다라는 뜻의 공입니다. 이게 무슨 소리냐? 공은 그저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비어있으면서 있을 건 다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진공’이라고 합니다. 아무것도 없으면 ‘무’라고 하지 ‘공’이라고 안하죠? 컵이 비어있으면 ‘빈컵’이라 그러지 ‘컵이 없다라고 하지는 않지요?’컵은 있는데 비어있다라는 것이 빈컵의 의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명히 듣고 아는 것은 있는데 비어있습니다. 듣고 아는 그것은 어디에 있냐. 있긴 있는데 없다. 유이비유라 합니다. 그러니까 여기저기 금강경을 살펴보면 고 있고 없고 없고 있고 이런 말이 자주 나오지요? 바로 공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공이다’ 라는 것은 본인이 확실히 증득해야 합니다. 증득하는 방법이 바로 바라밀..육바라밀과 팔정도라는 것입니다. 다시 얘기하자면 계 정 혜 삼학이기도 합니다. 경전이라던가 설교라던가 각종 화두 연구, 의두로서 공부를 해야 합니다.
지금 제 얘기를 듣고 있는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을 식이라고 해요) 어디에 있어요? 완전한 중생은 색에 공을 들이다 죽고, 조금 고급 중생은 어떤 마음이라는 실체가 있어서 죽을 때는 함께 소멸한다라고 생각을 하지요. 그러나 사실은 오온이 개공합니다. 즉 색수상행식이 공입니다. 이것을 조견해서 알수 있다는 거지요? 조견이라는 것은 자성의 지혜광명으로 비추어 보는 것입니다.
생각이 생각을 일으켜 비추는 것은 조견이 아닙니다. 분별심으로 마음이 이것이다 하는 것은 조견이 아니죠. 오온이 개공한 반야자리는 생각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관조로서 깨쳐 얻어야 합니다. 그래서 새벽에 좌선하고 산에 앉아서 수양을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아무리 천재라 해도 오온이 개공한 자리를 알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조견을 하지 않는다면 말이지요. 이 자리는 텅 비어 있을 때 솟아올라 확인하는 자립니다. 수양 없이는 불가능하지요. 그래서 과거 선지자들은 반드시 수양을 했던 것입니다. 수양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은 육신에 놀아나고 망상에 놀아난다는 것과 같습니다. 수양을 하지 않으면 착각을 합니다. 돈. 육신 등이 나인줄 알고 착각하고 자존심 세우며 사는 것이지요.
어렵죠?? 그렇죠?? 지금 사실 무척 어려운 얘기를 하고 있지요? 한번도 안가보고 나하고 관계가 없고 거리있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요? 날마다....순간마다 쓰고 있는 내 자리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옛날 얘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고 원불교도 아니고 기독교도 아니고 불교도 아니고,,
지금 이 ‘내 마음’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영어 못해도, 인물 못나도, 돈이 없어도, 이 마음... 이 마음이라는 것을 알면 됩니다. 돈보다 위력이 있는 것이 마음입니다. 이것은 돈을 오게 하기도 합니다.
육신이라는 것, 동반자요 친구라고 하는 그 육신이라는 것은 미안하지만 일생만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라는 것은 영생을 함께 합니다. 잘 때도 죽어서도 내생에도 함께 합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면 어려워하고 답답해 합니다. 지금 이렇게 ‘나’라는 존재를 강조하는 이 말은 원불교라는 종교를 넘어서 ‘내 이야기’입니다. 남자든 여자든 나이에 상관없이 ‘내 얘기’입니다. 나라는 실체를 깨쳐 알아서 그 안자리, 그것을 반야라고 합니다. 반야라는 것을 모르면 바닷가에서 모래성 쌓다가 현생을 마치는 것입니다. 풀잎에 맺힌 이슬과 같이 햇빛이 비추면 사라져 버리는 인생입니다. 반야라는 것을 모르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반야를 강조할만하지요??
사리자야 ...반야라고 하는 것은 색불이공 색증시공... 색과 공.. 색과 공이 다르지 않다. 색은 지수화풍이 모인것이라 했죠. 색은 흩어지면 공이라는 이야깁니다. 그래서 색과 공은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색은 실체가 없다, 공이다, 색의 실체는 바로 공이더라.그런 이야기입니다. 왜 공이죠? 공이라고 공감 하십니까? 확실히 공이에요? (대답 :예.) 반야심경 강의 끝나면 색은 곧 공이니까 다 부질 없다면서 모두다 저한테 공양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_____^
공이라고 하는 것은 허망한 것이 아니라 실다운 것을 말합니다. ‘텅빈 충만’이라고 합니다. ‘하나다’ 그 말입니다. 공은 둘이 아닌 하나입니다. 저 일원상 부처님을...일원상이라 하고 반야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공즉 시색은 무엇이냐..원불교로 말하면 사은입니다. 과거 불교에서는 공병 걸리는 사람이 많아서 다 허망하다 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공이 늘 주가 되고 색은 잠깐 있는 그 무엇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공병에 걸리곤 했는데 사실 정확히 말해서 공과 색은 차이가 없습니다. 그래야만 집착에도떨어지지 않고 허무에도 떨어지지 않습니다. 공과 색이 하나라는 것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나타나 있는 것이 법신불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원불교에서는 ‘처처불상 사사불공 신앙’이라 합니다.
사리자야 시제법공상은..불생불멸하고..... 지난주에 설명했었죠?
불생불멸이요 불구부정이요 부증블감이라. 불생불멸은 시간은 의미하고 나머지는 공간을 이야기 합니다. 공간중에서 불구부정은 질을 이야기 하고 부증불감은 양을 이야기 합니다.
불생이기 때문에 불멸이 있는 것입니다. 지금 제 목소리를 듣고 분명히 아는 것이 있다면 그것도 어느 시기에 생겼던 것이고 그래서 그 실체가 있을 것인데 생긴 것이 없고 없어지는 것이 없다는 이야기 인 것입니다. 왜 생긴 것이 없어요? 다 눈을 감아 봅시다. 제 목소리를 듣고 아는 것을 마음이라고 합니다. 지금 분명히 마음이 있지요? 그럼 태어나기 전 태중에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태중으로 들어오기 전에는 마음이라는 것이 있었습니까?
어젯밤에 꿈도 없이 잠을 잤는데 그때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래서 의두요목에 꿈도 없이 잠을 잤을때 그 아는 영지는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도 있지요. 부모로부터 몸을 받기 전에 그것은 어디에 있나? 이 자리를 ‘부모미생전’이라고 합니다. 지금 아는 이것이 실체가 있을까요? 언제 없어질까요? 형상이 있나요? 그래서 무형무체다라고 합니다. 언제 생겼다고 생각하십니까? 부모로부터 몸 받을 때 생겨서 죽을 때 없어진다고 생각하시지요? 만약 흔적이라도 있어서 생겼다면 그것은 생겼을 것이고 생겼던 그것은 다시 언젠가는 멸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생긴 것도 없고 멸한바도 없이 여여자연합니다. 이것은 생가만으로 알 수 없고 수양으로 압니다. 분별심과 주착심을 놓아버린 그 자리에서 알 수 있습니다..그래서 어떤 일을 당할 때 생각을 멈추라 고 말합니다. 그것은 번뇌망상과 분별 주착심에서 멈추라는 것입니다.
어떤 스님께서 자신에게 찾아와 괴롭다 하는 사람에게 “그래? 괴로움을 가져와봐라”했더니 그자가 괴로움을 찾아보다가 아무것도 없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실체가 없는 것이지요. 그러자 스님이 “니 괴로움을 다 없애주었다.” 라고 말했습니다.
불로초 불사약으로 영생을 살아보려 했던 사람들이 있지요? 그들이 찾던 그것이 바로 반야입니다. 진시황은 이것을 몰랐습니다. 아직도 산삼이다 뭐다 그런 것이 나와서 삶을 조금 연장하긴 하겠지만, 결국 우리는 모두 죽습니다. 그런데 가도 간 바 없고 와도 온 바 없이 영생을 함께 하는 그것, 그것에는 더러움도 깨끗함도 없습니다. 더럽다 깨끗하다는 것은 우리의 분별이지요. 증감도 없고 툭하고 터져서 전체가 하나입니다. 이만한 것이 없지만, 전체가 다 있습니다.
6근 6경 6식을 더해서 18계라 합니다. 안이비설신의가 색성향미촉법을 만나 6식을 만듭니다. 그런데 텅빈 6근이 텅빈 6경을 만나 텅빈 6식을 만듭니다.
코가 향을 맡는데 향수는 좋다는 느낌을 내고 똥냄새는 더럽다고 합니다. 눈이 색을 봐서 분별을 하고 귀가 소리를 듣고 코가 향을 맡고 분별을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실체가 없는 것이 없는 것을 만나서 안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6근을 ‘인’, 6경을 ‘연’ 6식을 ‘과’라 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설한바가 없다 했었습니다. 49년간 팔만대장경을 설했는데도 사실은 설한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사실 내가 설을 했지만 나라고 할 만한 존재가 없는 고로 설한 바가 없다는 것이지요.
이 공을 아는 사람만이 실생활에서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인내도 뛰어 넘습니다. 인내라는 것은 나라는 것이 있어서 참아주는 것이지만, 공의 세계에서는 참고 있는 주체가 없습니다.
12인연은 삼세를 말합니다. 한 영혼이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 것 까지를 설명하는 것을 말합니다. 첫째가 (1) 무명입니다. 무명이라는 실체가 있는 줄로 알지만, 보통 무명이란 것도 없고 실체도 없습니다. 중생은 죽었을때 어둠에 가리는데 어둠의 첫째가 착심입니다. 둘째가 업입니다. 보통사람은 나라는 것이 공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거꾸로 갑니다.무명다음에 (2)행입니다. 정신없이 중음을 돌아다닙니다. 거꾸로 보면서...(3) 식을 일으킵니다. 부모 태중에 들어가는 순간을 식이라고 합니다. 보통 중생은 빨려 들어갑니다. 그래서 음욕에 의해서 빨려 들어간다 라고 합니다. 거꾸로 보고 가지요. 무명이 강할수록 우마에 빨려 들어갑니다. 그다음에 (4)명색...그 다음이 (5)육입..육근. 안이비설신의가 생깁니다. 식부터가 태중이고,,, 태중에서 나와서는 (6)촉 - 세상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 다음이 (7)수 - 수라는 것은 모든 감각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애기가 태어나면 앙~~~ 울지요. 그 다음에 무엇을 하면서 살아가느냐? (8)애 (9)취 (10)유 를 하면서 살아갑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좋아하십니까? 돈이잖아요. 젊은 사람들은 여자 ,남자 ,조금 더 크면 명예를 좋아합니다. 일원상 서원문에 ‘심신작용을 따라.’에서 그 심신작용이 애,취,유 입니다.
그 다음이 (11) 생 (12) 노사입니다. 그래서 이 12인연을 계속 윤회합니다. 그래서 중생은 이 윤회에 끌려 다닙니다. 불보살들은 계정혜 삼학 삼대력으로 굴리고 다닌다 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을 탐진치에 끌려 살것이냐 아니면 삼학으로 굴리고 살 것인가가 수양력을 통해 정해집니다. 여기까지가 복습입니다.
『 음악과 휴식 』
연주곡 : (1) The last walts - 영화 올드보이 삽입곡 -
(2) 친구여 - 조용필 -
『 제 2부 』
간식 맛있게 드시고 음악 잘 들으셨어요? 무엇이 그랬습니까? 마음이 분명히 듣고 느꼈죠?
중생은 오온이 자기인 줄 알고 사니까 이기적이고 주관적인 삶을 산다고 했습니다. 내가 시내에 나가면 급히 볼일이 있어서 나간 것이고 다른 사람은 쓸데없이 간 것이지요? 이런 생각을 보십시오. 전부 주관적이죠. 전화할 때에도 나는 꼭 필요한 통화이고 다른 사람은 쓸데없는 얘기 하느라고 길게 통화하는 것이지요?
■ (사성제 중에서) 고제 ■
‘나는 지금까지 행복했다 즐거웠다’라고 생각되는 시간이 여러분 삶에서 얼마나 몇 프로나 됩니까? 즉 낙 생활이나 복락생활이 얼마나 됩니까? 어떤 사람은 그러데요. 화투를 치고 돈 따서 오는데 즐거웠다고 하데요. 어떤이는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훔치고 나서 행복했다고 하데요. 자, 부정하게 행복한 마음까지 다해서 얼마나 내 인생에 행복했습니까?
중생의 재미는 무엇이냐 하면 ‘인간락’입니다. 맛있는 것, 좋은 음식 이런 것들은 다 색에 좋은 것입니다. 그 반대인 고통... 인간의 대부분의 역사는 고통입니다. 나는 내 인생을 살면서 정말 고통이다... 괴테는 81년 중 죽기전 14일만 즐거웠다 합니다. 여러분은 몇 분 몇 초나 행복하십니까? 불보살은 금강자성이라, 불매요, 불멸이라, 불구부정이라..금강자성자리..이 자리에 함께할 때 비로소 행복합니다. 반야의 세계에 대한 강의를 들을 때에도 불행하다고 하는 사람은 도대체 어느 순간에 어디에 가서 행복합니까? 행복하지 않는 괴로움의 첫째가 바로 ‘생, 노, 병, 사’입니다. 이것은 ‘자연적 고’입니다.
생로병사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올 수 밖에 없는 고입니다. 조만은 있을지언정 자연적 흐름입니다. 애기가 나오는 고통이 어머니의 분만 고통보다 10배는 고통스럽답니다. 남편이 부인한테 “고생했네...”하면서 “다음에 하나 또 낳읍시다”고 하면 정말 남편을 죽이고 싶을 정도라고 합니다만...그것보다도 더한 고통을 애기는 10배나 받는다고 합니다. 생로병사중에 병이 가장 고통입니다. 얼마나 아프면 죽여 달라고 할까요.
그러나 어쩔 수 없는 고통인 생로병사도 마음을 어떻게 먹는 가에 따라 다릅니다.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받아들이라.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면 자연적인 고통도 수용이 됩니다.
생로병사에 애별리고, 원증회고, 구부득고, 오온성고를 더해서 4고 8고라고 합니다. (1)애별리고 - 가까운 인연과의 이별하는 고통을 말합니다. 친구도 가고..스승님을 잃은 슬픔, 이런 것들이 모두 애별리고입니다. 이 네 가지를 ‘작용적 고’라고 합니다. 장자는 마누라가 죽자 꾕과리를 치고 춤을 췄다고 합니다. “너는 죽어서 좋겠다. 빨리 죽고 다시 와라”이런 마음이었겠지요.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고통이 굉장하다고 합니다. 그 고통으로 인하여 생명이 5년이나 단축 된답니다. 자식이 가면 더 괴롭죠.
그 다음에 (2)구불득고 - 구하고자 하나 얻지 못한 고를 말합니다. 시험에 합격하고 싶으나 합격치 못하고, 아파트 당첨에 됐으면 하는데 안되고, 건강했으면, 또는 자식이 잘 됐으면 하는데 내 마음대로 안되지요. 구하고 구하고 또 구해도 얻지 못한다. 그래서 오는 고통, 이것을 구불득고라고 합니다.
그 다음에 (3) 원증회고 - 원수를 증오하지요? 그런데 그 원수같은 사람을 다시 만납니다. 어디서? 외나무 다리서 만나지요^^ 괴롭겠지요. 직장 문제로 상담하는 사람들 중에 “교무님 그 사람 때문에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직장을 옮겨야 겠어요” 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저는 “그려. 새로운 곳에 가면 좋은 놈만 있겄다 싶겠지? 거기가면 원수가 더 많을 것이니라. ” 하고 충고해 줍니다. 보통 사람은 ‘저놈’ 때문에 괴로워서 직장을 옮긴다. 고 말하지만 실은 내 마음이 저 사람을 싫은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작용해서 고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자신의 고통이 심하다고들 하나 모두들 다 실은 자신의 마음이 고통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다 8고에 들어가는 것이지요.
좋고 나쁜 인연이 가장 가까운 데서 생기고 다 마음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동기 교무님이 그러더이다. 자기 큰 교무님이 자기를 괴롭힌다고 말입니다. 5년 후에 그를 만나니까 다른 교무님 밑에서도 또 그러더이다.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너는 운이 없는가 보다. 나는 가는 곳마다 좋은 인연 뿐이고 앞으로도 좋을 것인데 너는 가는 곳마다 널 힘들게 하는 사람 뿐이구나. ” 내 마음이 좋아야지 선연을 만나게 되는 것 아닙니까?
(4) 오온성고 - 오온 성고란 색수상행식의 오온이 치성한 괴로움을 말합니다.
■ (사성제 중에서) 집제, 멸제, 도제 ■
기본 설명만 하지요. (1)고는 고통을 말하고 위에서 말한 4고 8고가 있습니다. 고는 (2)집착, 탐,진,치 욕심으로부터 옵니다. 이것을 해결하는 것은 (3)멸과 (4) 도 입니다. 멸은 없애는 것이고, 이 ‘멸’은 무엇을 통해서 할 수 있냐면 ‘도’를 통해서 할 수 있습니다. 도에는 ‘8도’가 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집...자연적 집, 작용적 집을 하겠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언제 ‘고집멸도’를 설했는지 아십니까? 부처님이 하층 신분인 수드라에게 우유를 받아 먹었을 때 도망간 다섯 제자들에게 찾아가서 고집멸도를 설했습니다. 고통은 탐진치 집착에서 오는 것이고 그것은 팔정도 수행을 통해서 고통을 넘길수 있다라는 내용으로 설하셨습니다.
다다음주 까지 해서 반야심경은 끝나고 그 다음 부터는 천도법문에 대해서 공부합시다. 감사합니다. -합장-
첫댓글 감사합니다~ ^----------^
법문을 접하면...늘~~ '인간이 삶' 이 '땅 짚고 헤엄치기' 인데... 금방까지도 얻으려고 하고 채우려고 하는 욕망에 급급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그리고 중생과 부처의 간격을 절감하는 것이다. 아~~ 수양만이 반야를 아느 者 만이 극복 초월 할 수 있다는데...그 누구랴???
풀리지 않는 심사를... 끝나는 날 질문으로서 채워 볼까^^* 가서 법문 받들지 못한 괴로움을 그렇게 풉니다. 합장합장합장.....ㅊ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