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은
하나님께서 물로 세상을 심판하시던
노아 시대의 홍수와 관련해서 대비하게 하신
방주의 건조 기간에 대하여 질문하셨습니다.
그것은 님의 교회에서 전도사가
일반적으로 노아가 방주를 건조한 기간을 일백 이십 년이라고 하고 있고,
또한 '약속 그리고 구원'을 쓴 그라프(S. G. DE. GRAAF)의 말에서도
창세기 6장 3절의 "사람의 날이 일백 이십 년이 되리라"를
사람의 수명이 줄어들었다는 뜻이 아닌
앞으로 하나님께서 120년이 지나면 홍수로써 세상을 심판하실 것을 의미하신다는 뜻이라고 하고 있고,
영어 성경을 보아도 그런 의미로 생각되며,
지금까지 교회에서 반론 없이 그렇게 인정되어 왔으니 교회의 전통을 따르는 것이 맞다고 여겨져서
의문이 풀리는 듯 했다고 했으나,
어느 목사님은 노아의 방주시대 이후로는 인간의 수명이 120년이 되었다고 하고 있고,
다른 주제의 설교 중에도 이렇게 말하는 데다가,
노아의 홍수와 관련한 성경의 여러 구절을 종합하여 보면
방주의 건조 기간이 일백 이십 년이 되지는 않는 것 같기에,
이 의문을 풀려고 질문을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님의 질문은
창세기 6장 3절이
방주의 건조 기간이 일백 이십 년이 걸릴 것을 말씀하시는 것인지,
아니면 사람의 수명을 일백 이십 년으로 줄게 하실 것을 말씀하시는 것인지를
확인하는 것 속에서
노아의 방주 건조 기간이 대체 얼마나 걸린 것인지를 알고자 하셨습니다.
이에, 님의 궁금증을 풀기 위해 다음과 같이 필요한 설명을 드림으로써 답변해 드리고자 합니다.
1. 창세기 6장 3절의 해석적 의미에 대하여
창세기 6장 3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노아가 500세가 넘은 후에 셈, 함, 야벳 세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 당시의 시대적 상황은 인류가 불어나기 시작하면서 땅 위 곳곳에 퍼져 나가 살게 되었고, 그들은 자기들의 마음에 드는 대로 다만 육체의 정욕을 좇아서 살았습니다. 이런 시대적 상황은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6:5) 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참으로 악하였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사람들을 땅 위에서 쓸어버리시겠다고 하셨으며, 여기에는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도 모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을 비롯하여서 땅 위에서 호흡하는 생물들은 모두다 쓸어버리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까닭을 창세기 6장 3절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구절이 무엇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인지를 다른 한글 번역 성경을 통해서 보겠습니다.
공동번역입니다. "그래서 야훼께서는 '사람은 동물에 지나지 않으니 나의 입김이 사람들에게 언제까지나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사람은 백 이십 년밖에 살지 못하리라' 하셨다."
표준새번역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셨다. '생명을 주는 나의 영이 사람 속에 영원히 머물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은 살과 피를 지닌 육체요, 그들의 날은 백 이십 년이다.' "
현대인의성경입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은 죽어야 할 육체이므로 내 영이 영영 사람에게 머물러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내가 그들에게 120년 동안의 여유를 주겠다. "
현대어성경입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사람은 어차피 쓰러질 수밖에 없는 살덩이에 지나지 않으므로 내 숨결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는 못할 것이다. 또 영원히 함께 하도록 하지도 않을 것이다. 사람의 목숨은 길어야 120년밖에 안 될 것이다.' "
이상의 여러 종류의 한글 번역 성경을 보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은 땅 위의 사람을 죽어야 할 육체로 규정하고 있으며,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이 영원히 함께 하지 않을 것이며, 그에 따라서 이제 이들의 수명, 곧 목숨은 길어야 120년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말입니다. "그들의 날은 일 백 이십 년이 되리라"는 말씀은 당시 사람들을 땅 위에서 쓸어버리시기 위해서 내리시는 심판인 홍수가 임하기 전의 사람들에게 남아 있는 날수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그들의 날이 일 백 이십 년이 될 것이다" 라는 것은 홍수 심판이 행해진 이후에 사람들의 수명이 120년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홍수 심판이 행해지기 전에는 므두셀라에게서 보듯이 986세를 살고, 또 다른 사람들은 수 백 세를 살던 수명이었는데, 홍수 심판이 행해진 후에는 사람들의 수명이 줄어들어서 120년으로 제한을 받게 되었다는 것으로 해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날이 일백 이십 년이 될 것이다"를 사람의 수명을 120년으로 줄이신 것으로 해석하여서 설교하는 형편입니다. 그러나 이 해석은 올바른 것이 아닌 그릇된 것입니다.
2. 노아의 사적(事蹟)에 대하여
하나님은 세상을 물로 심판하여 사람을 비롯해서 무릇 땅 위에서 호흡하는 모든 생물을 다 쓸어버리실 것을 작정하셨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 노아의 사적을 창세기 6장 9-12절에서 다룹니다. 8절에서의 "노아는 여호와의 은혜를 입었더라"의 노아가 여호와께 입은 은혜가 무엇인가를 설명하여 줌으로써 여호와의 은혜를 입은 노아의 삶을 반복하여 설명하는 것입니다.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였습니다. 그를 이렇게 표현한 것은 욥1장 1절과 8절을 떠올리게 합니다.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욥은 아브라함과 동시대의 사람이므로, 노아보다는 후대의 사람입니다. 이 두 사람에게 각각 말해지고 있는 것은 사람들은 악하여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는데,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없었는데, 그런 그들 속에서도 노아(또한 욥)는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입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음의 사적을 보면 그러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노아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세 아들을 낳았는데 셈과 함과 야벳입니다. 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패괴하였습니다.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서 쓰여지고 있는 '패괴(悖壞; corrupt)란 말은 '부정한', '타락한' 이란 뜻으로서 당시 사람들의 부패의 심함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강포'(强暴; violence)는 '격렬', '폭력'이란 뜻으로서 사람의 행동이 매우 폭력적이고 난폭함을 의미합니다. 노아 시대에 사는 사람들이 악하여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은 특성을 그들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부패함이 심하였는지를 들어서 알게 해주 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난폭함을 가하는 것이 너나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에게서 매한가지일 정도였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의식이 전혀 없는 불신앙이 사람들에게 강포함이 충만하였다고 하는 말씀으로 해주십니다. 이렇게 죄의 세력이 당시의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었으며 죄악의 행동이 모든 사람에게 죄의식을 갖지 못할만큼 일반화, 보편화되어 버렸습니다. 전적 타락하여 부패한 인간의 본능과 본성이 어떠한 것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도록 하나님께서 은혜를 노아에게 입히셨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하나님과 동행한 자로 살았는데 이것이 그의 의로운 모습이요 완전한 모습입니다. 노아는 세 아들을 낳아서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온 땅에 충만한 가운데서 그 아들 앞에서 하나님을 말하는 자로서의 선지자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럼으로써 하나님의 구원의 언약을 보존하였으며, 아들인 자손과 더불어서 구원의 언약 속에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관계를 지속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세 아들이 하나님께 돌아온 자로서 살도록 인도하였습니다.
그런 노아의 모습을 볼 때 후세의 사람들에게 그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로 기억됩니다. 당시 아무리 죄의 세력이 크다고 할지라도 노아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에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는 죄가 관영하는 속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있게 하여서 무릇 하나님께 대한 마음이 지켜지는 것 속에 있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노아는 죄의 관영함 속에서도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었으며, 이는 홍수 심판으로부터의 구원으로 나타났습니다.
3. 홍수 심판의 예언과 방주 예비를 명하심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이르셨습니다. 그 말씀은 다음과 같은 내용입니다.
창세기 6장 11-13절.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땅과 함께 모든 사람을 멸하시겠다고 하신 심판의 선언입니다. 여기서 '온 땅', '땅',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 등의 말은 세상과 세상 모든 사람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쓰여진 말입니다. 심판의 대상은 죄악이 관영하여 사람의 마음에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인 모든 사람,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가득한 모든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사람의 상태는 어느 일부분에 속한 사람들을 두고서 하는 말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하나님 앞에 타락하여 부패한 자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두고서 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심판의 대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노아 외의 모든 사람이 심판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래서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를 심판하시는 심판이었습니다.
14-17절.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그 방주의 제도는 이러하니 장이 삼백 규빗, 광이 오십 규빗, 고가 삼십 규빗이며, 거기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 홍수 심판에 대비하는 방주 예비를 이르는 명령입니다. 하나님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멸절하는데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 곧 호흡하여 숨을 쉬는 모든 생명 있는 것을 천하에서 멸절함으로써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을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노아 때에 일으킨 홍수는 이처럼 죄가 있고, 그 죄의 지배를 받는 죄인된 모든 사람에게 미친 세상적인 것이었습니다.
18-21절.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자부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 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 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케 하되, 새가 그 종류대로, 육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 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케 하라. 너는 먹을 모든 식물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식물이 되리라." 하나님께서 노아와 언약을 세우시기 위하여 노아에게 그의 가족과 함께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각기 암 수 한 쌍씩(정결한 짐승과 공중의 새는 암 수 일곱 씩, 부정한 것은 암 수 둘 씩, 7:2-3) 방주로 이끌어 들여 노아와 함께 생명을 보존케 하라고 이르신 명령입니다. 곧, 하나님께서 노아와 언약을 맺으시기 위하여 홍수와 방주를 지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언약에서 물에 의한 자연적 심판으로는 더 이상 심판을 보여주지 않을 것을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에 의하여서 심판을 행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언약은 하나님은 물에 의해 심판하였으나, 하나님의 구원으로 노아와 그 가족, 그리고 숨쉬며 살아가고 있는 모든 짐승과 함께 영원토록 언약을 맺는 것으로 생명의 보존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나타내 알게 하여 주시는 것입니다(창9:9-17).
하나님께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바로 하나님 앞에 이르러 그들을 땅과 함께 멸절시키기 위하여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이 방주를 '노아의 방주'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 방주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무엇인가 하면, 방주를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하는가 하면, 교회의 모형이라고 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홍수 심판과 방주 예비의 목적은 언약을 세우시기 위한 것으로서 언약에 의하여서 장차 그리스도로 인한 구원의 예표를 제시하여 주신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는 그 안에 하나님의 언약을 그 내용으로 담고 있어서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에 대한 예표로 주어진 것이며, 방주 그 자체는 단지 노아와 그의 가족을 홍수 심판에 의한 멸망으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요 수단, 곧 쓰여진 도구에 불과할 뿐이며, 그 이상의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노아의 홍수에서 생각해 보아야 할 또 하나는, 하나님의 심판은 전우주적으로서 온 세상에 미친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는 그 홍수의 영역, 범위에 있어서 '세상'에 미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창조한 세상에 미친 홍수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을 심판하시는 것으로 행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노아의 홍수는 한 지역에 있었던 부분적인 것이냐, 아니면 모든 지역에 있었던 세상 전체적인 것이냐 하는 논란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더욱이 홍수가 부분적인 것이든, 세상 전체적인 것이든지 간에 홍수의 목적은 죄에 대한 심판이요 세상에 대한 심판의 예표이며, 그 심판으로부터의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언약으로 담고 있는 것이므로 분명히 그렇습니다.
4. 노아의 방주 건조 기간에 대하여
창세기 6장 22절-7장 9절은 노아가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음을 말씀하십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명하심을 따라 방주를 예비하였습니다. 그런데 노아가 방주를 예비할 것을 명령받아 준행함으로써 방주를 건조하여 완성한 기간에 의문을 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날은 일 백 이십 년이 되리라"고 하여서, 세상에 있는 모든 살아 있는 것을 쓸어버리시기 위하여서 홍수로 심판하시는 날이 임하기까지는 120년의 유예 기간이 허락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때 함께 방주를 건조하여 홍수에 대비할 것을 명령받은 것으로 여기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 백 이십 년이 되리라"는 말씀은 곧바로 방주 건조의 명령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건조하여 홍수에 대비할 것을 명령하신 때는 창세기 6장 9절 이하로서, 이때는 노아에게 셈과 함과 야벳 세 아들이 있었던 시기입니다. 그런데 창세기 5장 32절을 보면, "노아가 오 백세 된 후에( '500세가 넘은 후에'로 500세가 넘은 바로 직후 라기보다는 500세가 지난 나이를 시점으로 하는 것으로 한참이 지나서일 수도 있다.)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구절과 6장 3절과의 사이에는 사실 상당한 기간의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시기적으로 보면 5장 32절이 6장 3절보다 후대에 관한 것입니다. 노아가 하나님으로부터 "그들의 날은 일 백 이십 년이 되리라"는 말씀을 들은 것은 그의 나이 480세 때였습니다. 이는 홍수가 임한 때가 노아의 나이가 600세 되던 해인 것에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노아는 그의 나이 480세 되던 때에 하나님으로부터 장차 120년 후에 있게 될 세상 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예언을 듣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처럼 아직 그에게 방주 건조를 명령하지 않은 때에 훨씬 앞서서 사람의 남은 수명이 120년에 불과할 것을 노아에게 알려 주신 것은 하나님을 불신앙하는 사람들에게 '의의 전파자'(벧후2:5)로 세워 그에 의해 하나님의 의를 전파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말을 거부함으로써 하나님을 배척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날은 120년이 될 것임을 전함으로써 세상에 하나님의 심판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말입니다. 노아가 500세가 넘은 후에 셈, 함, 야벳 세 아들을 두었으며, 그에게 이렇게 세 아들이 있었다는 것은 홍수 심판을 예언하시며 방주를 건조할 것을 명령하시는 때인 6장 10절에서도 언급되고 있으며, 18절에서는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자부들과 그 방주로 들어가고" 라고 세 아들에게는 각각 아내가 있었던 사실로 보아 다 자란 장성한 성인이었으나 아직 자식을 두고 있지 않은 때에 하나님께서 노아와 언약을 세우시는 것이므로, 방주 건조를 완성하고 마침내 방주에 들어간 때인 노아의 600세 되던 해(7:6, 11)에서 연대를 추정해 보면 노아가 세 아들과 함께 방주를 건조한 기간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방주의 크기가 길이 135미터, 나비는 22.5미터, 높이는 13.5미터에 방주 내부가 상, 중, 하 3층의 구조로 되어 있었기에 상당한 건조 기간이 걸렸을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그럼에도 방주를 건조하는데 필요한 인력이 당시의 노아의 식솔로서만 노동 인력이었던 점과 원시적 장비(도구)였던 점을 감안하면 20-30년이거나 그 이상이라고 할지라도 몇 수십 년에서 최대 70-80년일 것이므로, 또는 노아가 세 아들을 둔 나이인 '500세가 된 후에'가 500세가 넘은 지 꽤(어느 정도) 세월이 지나면서 되어진 것일 경우에는 의외로 방주의 건조 기간이 이보다 짧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어떤 경우에서든지 간에 어쨌든 120년에 비해서는 방주의 건조 기간이 상당히 짧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노아의 방주 건조 기간을 120년으로 보는 것은 전후 문맥의 이해 없이 단지 "그들의 날은 일 백 이십 년이 되리라"는 구절을 노아의 방주 건조 기간으로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말씀은 방주를 건조하는 기간으로 말씀하시고 있는 것이 아닌 데도 말입니다.
5. 노아의 믿음에 대하여
방주의 건조 기간이 얼마나 걸린 것인가? 하는 것은 방주가 등장하는 것과 관련한 연대에 의하여 어느 정도 추정할 수 있으나 이것이 노아의 홍수나 방주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의 중심은 아닙니다. 우리는 노아의 홍수에서 모든 기식 있는 것이 다 죽임을 당한 하나님의 심판에서 구원 얻은 노아에 대해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히브리서 11장 7절에서 그의 믿음에 대해 언급하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여기에서 보는 바와 같이 히브리서 기자는 노아의 믿음에 대해 말해 줍니다. 노아의 믿음이란 무엇인가?. 다시 말해서 노아의 믿음이란 어떤 성격의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라고 하는 말은 노아가 어떻게 살았다고 하는 것, 곧 노아가 어떻게 무엇을 하며 사는 믿음을 가졌는가 하는 믿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노아의 어떤 행위를 말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노아라고 하는 사람에게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할 때,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의'(창6:8-9)에 근거하여 하나님을 믿은 믿음을 의미합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의에 의하여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로 살았습니다. 그 사실을 히브리서 기자는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 노아는 하나님을 믿은 사람이며, 그는 하나님께서 장차 일어날 일을 경고해 주셨을 때 홍수의 조짐 같은 것이 전혀 없었는데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다고 말해 주고 있습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의, 노아가 하나님과 동행한 의는 보지 못하는 잂에 경고하심을 받았을 때 그 말씀을 믿고, 그 말씀에 철저하게 근거하여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함께 산 믿음이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 사실을 '경외함으로' 라고 하는 한 말씀으로 표현하였습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당시 노아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홍수 전, 곧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그들의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하는 있는 일로 인하여서 홍수의 심판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였습니다. 노아에게 있어서도 홍수에 의한 심판의 조짐은 경고를 받은 처음부터 전혀 없었습니다. 그 후에도 여전히 세상엔 해는 햇빛을 내고 비구름은 비를 내렸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세상을 심판할 홍수라고 하는 조짐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노아에게서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은 그는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장차 일어날 일을 경고해 주셨을 때 홍수의 조짐 같은 것이 전혀 없었는데도 하나님의 그 경고하신 말씀을 믿었고, 그래서 그는 자기에 주어진 시간에 세상 사람들과 하나가 되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서 하나님과 하나 되어서 방주를 만들어 갔습니다. 노아의 방주 만듦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한 것이었습니다.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노아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방주를 만듦으로 그와 그의 가족을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일을 받들어갔습니다. 노아의 한 개인의 믿음이 그의 가족을 구원해 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의에 있게 하시는 은혜를 입히셨고, 그래서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자기들의 일 속에서 사는 가운데서도 노아와 그의 가족은 하나님 말씀의 순종 속에 두시고서 방주를 만들게 함으로써 노아와 함께 구원을 얻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노아의 믿음이 그의 가족에게 하나님을 말하고 드러내는 삶을 살았으며, 노아의 가족들 또한 노아와 같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경외하여 노아와 더불어 방주를 예비하여 만듦으로 홍수 심판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노아와 함께 입은 것입니다. 이 사실을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라는 말씀으로 하셨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의 온 가족을 하나님의 구원에 있게 한 노아의 믿음은 당시의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살므로 전혀 구원에 대한 예비 없이 살아간 모든 사람들과 놓고 볼 때 그들의 죄를 정죄하는 하나님의 심판이 되었습니다. 노아의 믿음은 드러나고 그들의 정죄 받음 또한 노아의 믿음과 함께 대조적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 스스로 부끄러움으 수치에 놓이게 하였습니다.
또한 노아는 당시의 모든 사람이 정죄 받는 불신앙으로 살아가는 가운데서 전혀 대조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여 살아간 그 믿음 때문에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받아들이시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의 믿음을 좇는 모든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의 약속에 참여한 복을 받은 아들을 말해주는 자가 된 것입니다.
이상으로 답글을 마치겠습니다.
님이 알고자 하는 답변은 참으로 짤게 간단히 할 수가 있습니다. 방주의 건조 기간이 얼마인지를 알고자 하는 것이기에 이에 대한 답변을 해드리면 되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장문의 긴 글로 답변을 드렸습니다. 이는 님이 알고자 하는 것과 함께 알아야 할 내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본 답글이 님이 알고자 하는 궁금함을 풀어주는 것일 뿐만 아니라, 노아 시대의 홍수 심판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는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