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 참사 그리고 멈춰버린 1년
김은호(안산희망교회 목사, 기장 생명선교연대 세월호대책위위원장)
날씨가 좋아 모두들 아주 기쁘고 들뜬 마음으로 수학여행을 떠났습니다. 수학여행비가 없어 수학여행을 못갈 뻔했지만 이웃의 도움으로 수학여행을 떠나게 된 친구, 별로 수학여행이 내키지 않았지만 부모님의 설득으로 수학여행을 떠나게 된 친구, 수학여행에 가서 할 공연을 준비한다고 한 달 넘게 공연 연습을 한 친구들, 그렇게 325명의 아이들이 각자 자기만의 이야기를 갖고 수학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배가 출발해야 하는 6시 30분에 안개로 인한 시정주의보가 내려져 출항이 연기되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8시 30분이 되었을 때 인천해경에서 인천항 운항 관리실에 연락해 시정이 양호해졌음을 통보하였습니다. 그렇게 4월 15일 밤 9시 세월호는 인천항에서 출발하였고, 출항의 뱃고동 소리에 아이들은 환호하였습니다. 이 배에는 생애 처음 쿠르즈 여행을 떠나는 단원고등학교학생들 외에도 초등학교 동창생들과 환갑 기념 제주도 관광을 가는 노인, 주기적으로 왕복하는 화물트럭 기사, 새로운 터전을 찾아 이사하는 가족, 2박 3일간 세월호 식당에서 일하고 11만 7천원을 받기로 한 아르바이트 대학생 등 447명의 승객을 태우고 제주도로 향해 인천 앞바다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4월 16일 아침이 밝아왔습니다. 바다는 신기할 정도로 잔잔했고 마치 호수와 같았습니다. 7시 30분부터 단원고 학생들을 비롯한 배의 승객들은 아침식사를 했고, 갑판에서 일반 승객들이 휴대폰 카메라로 병풍도의 풍경을 촬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8시 49분 배가 왼편으로 약간 기울다가 갑자기 크게 기울었습니다. 그렇게 세월호는 비명과 신음 등이 넘치는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냉장고에 깔린 학생들이 있었고, 로비 기둥에 머리를 찧은 승객이 있었습니다. 넘어진 여학생 쪽으로 소파가 미끄러져 여학생의 얼굴을 때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배가 기울기 시작하고 나서부터 9시 50분까지 ‘선내에 움직이지 말고, 대기하라’는 방송이 한 시간 이나 반복되어졌습니다. 그리고 해경 경비정 123정과 헬기가 9시 35분 경 세월호에 접근하였습니다. 하지만 9시 38분경 기관부 선원들이 해경 고무단정을 타고 탈출하였습니다. 그리고 9시 49분경 선장과 갑판부 선원, 그리고 필리핀 가수 부부를 구조한 123정은 세월호로부터 멀찍이 떠났습니다. 그리고 결국 탈출 방송을 한 번도 하지 못한채 10시 14분 세월호는 물기둥을 뿜으로 침몰하였습니다. 시시각각 아이들로부터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단원고 학부모들은 단원고등학교로 모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전원구조라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나왔습니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바다에 빠졌다가 구조되어 추울것이라는 생각으로 옷을 들고 다들 진도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진도로 향하던 차 안에서 시신이 인양되었다는 소식을 듣기 시작하였고, 무엇인가 잘 못되었다는 사실을 직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언론은 계속해서 수백 척의 항공기와 군함들이 아이들을 구조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은이 어머니의 가거차도에 있는 주민들과 전화를 해본 결과 수백 척의 항공기와 군함들은 고사하고 실제로 구조 잠수부들도 투입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진도 팽목항에 도착한 부모님들은 250여명의 아이들이 여전히 배 속에 갇혀 있는데도 아무런 구조도 하지 않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극심한 충격에 빠질 수 밖에 없었고, 사비를 털어 직접 배를 타고 사고현장으로 가서 울부짖는 일 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벌건 대낮에 아주 잔잔한 바다에서 일어났던 세월호의 침몰사고, 정부는 구조를 하지 않은채 손 놓고 있었고, 언론으로 생중계 되었지만 언론들은 계속해서 거짓말로 일관하던 4월 16일은 세월호만 침몰한 것이 아니라 이 나라 정부와 언론도 함께 침몰한 날이었습니다.
그렇게 4월 16일 이후 단 한사람도 구조하지 못하고 9명의 실종자들을 남겨둔 채 그렇게 1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지난 1년여 년의 시간들 속에 피해자 가족들의 시간은 여전히 2014년 4월 16일에 멈춰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눈물로 모든 책임은 자기에게 있다. 가족들의 이야기를 잘 듣겠다. 마지막 한 아이가 돌아오는 날까지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약속은 이미 공허한 말장난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더 이상 4.16 피해가족들을 거들떠 보지도 않고, 가족들이 진상규명과 선체 완전한 인양이라는 요청을 애써 외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론에서는 유가족들이 원하는 것은 ‘우리 아이들이 왜 죽을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궁금함 즉 진실규명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사자 인정을 비롯한 각종 배보상과 관련된 보도를 일삼아 가족 피해자들로부터 끊임없이 지탄과 손가락질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4.16참사가 일어나자 마자 안산 시민들을 비롯한 전 국민들은 세월호 피해 가족들과 함께 해주었습니다. 엄마의 마음을 담아 온라인에서 만든 ‘엄마의 노란 손수건’에서 며칠 만에 수 만명의 회원이 가입되어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세월호 진실규명과 기억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들을 진행했으며, 이외에도 전국 각지에서 촛불모임을 비롯한 다양한 모임들이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에 전국 350만명이 함께 해주었으며, 전국 각지에서 수도 없이 진행된 유가족과 함께하는 국민간담회에는 국민들이 유가족들의 아픔에 공감하며, 4.16 참사를 더 이상 잊지 않고 기억하고, 진실규명을 위해 행동하겠다는 약속들이 1년여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이러한 지난 1여년의 시간들 속에 여전히 지난 4.16참사를 잊지 않고 계속해서 진실규명의 목소리를 내고, 4.16참사를 기억하고 안전한 나라, 안전한 마을을 만들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가족 피해자분들의 헌신과 열심히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가족대책위 분들의 활동을 보면서 많은 국민들은 이들의 아픔에 공감할 수 밖에 없었고, 함께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가족 분들이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것은 배보상과 관련된 이야기가 아니라 왜 우리 아이들이 그렇게 수장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입니다. 그 궁금증이 풀어져야 더 이상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는 안전한 나라가 될 수 있다고 믿고 있고, 자신들의 활동이 우리 나라를 더욱 안전하고, 정의로운 나라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단식으로 시작된 국회와 광화문 농성은 현재는 광화문에서 진실규명을 요구하고 있는 국민들과 함께 계속해서 농성이 진행 중에 있습니다. 특별히 광화문 농성장에서는 유민아버님인 김영오씨의 46일간 단식이 진행되었으며, 단식중에도 힘든 몸을 이끌고 계속해서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청와대로 행진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유가족들은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청와대로 향했으나 청운동 동사무소 앞에서 막히자 76일간 노숙 농성을 벌였으며, 11월 5일 ‘이후 더 이상 대통령에게 미련이 없다. 국민들께 감사하다’는 기자회견을 하며 청운동에서의 농성을 풀기도 하였습니다. 350만명의 국민들의 서명을 받기위해 각 지역에 있는 주민들 뿐만 아니라 가족피해자들도 조를 나눠서 반별로 전국을 누비며 직접 국민들을 만나면서 서명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을 필요로 하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곳이라면 국내외를 막론하고 방문하여 4.16 참사의 진실을 전하고 있습니다.
11월 10일 실종자 가족들은 이제 더 이상 잠수사들의 희생을 볼 수 없다는 마음으로 아쉽지만 선체 인양을 통한 아이들의 뼈조각 하나라도 찾고 싶다는 절박함으로 잠수 수색 종료에 합의하였습니다. 하지만 실종자 수색을 진행할 때는 선체인양을 주장하던 정부가 실종자 가족들이 수색 종료에 동의를 해주고 나니 이제는 여러 가지 핑계로 선체인양을 하지 않을 방법을 찾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 1월에 진실을 규명하고, 선체의 완전한 인양을 위하여 안산에서 출발하여 팽목항 까지 20일동안 450키로를 걷는 도보행진을 많은 국민들과 더불어 진행하였습니다. 여기에 지난 11월에 여야간 합의로 부족하게나마 통과된 특별법은 아직까지 출발하지도 못하고 있으며, 정부의 인력과 재정 축소 방침에 시작하기도 전에 삐걱 거리고 있습니다. 4.16 참사를 정부에 맡길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더 큰 관심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그래서 더욱더 국민들이 계속해서 특별조사위원회를 잘 감시하고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이제 어느덧 시간은 멈춰졌는데, 시계는 자꾸 움직여 4.16 참사가 일어난지 1년이 되어 갑니다. 여전히 밝혀진것도 없고, 해결된 것도 없습니다. 아직까지 구조되지 못한 9명의 시신이 차가운 바다 속에 남아있기에 추모조차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국민들이 4.16참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으며, 함께 하겠다는 약속을 넘어 행동을 보여주는 것이 4.16 1주기를 맞이하는 우리들의 자세가 아닐까 합니다. 특별히 우는자 들과 더불어 함께 울라는 우리 주님의 말씀에 따라 이 땅에 가장 아픈 곳인 4.16참사의 현장에 우리 기독교인들이 더 큰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아직까지 실종자로 남아있는 아이들을 위해 20일 넘게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는 은화와 다윤이 부모님들의 건강을 위한 기도 또한 잊지 말아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