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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업장군 묘소(충북 기념물 67호) written by 한국의 능원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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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높은 산등성이 위에 위치하고 있는 임경업장군 묘역 |
충주 권역 답사와 사과따기 체험 행사시 충주에 너무 일찍 도착하여 임경업장군 묘를 둘러 볼 수 있었습니다. 임경업장군 묘는 마을 입구에서 산 등성이까지 1km 이상의 비탈길을 굽이굽이 돌아서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정화사업으로 인해서인지 높은 곳인데도 주차장도 있었으며, 25인승까지는 올라갈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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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역 입구 전경. 임경업장군 묘는 전방에 보이는 묘역군 뒷편으로 위치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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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경업 장군 묘는 묘역군 좌측의 계단으로 올라야 합니다만, 묘역군 안으로 지나서 올라가도 됩니다. |
병자호란 때의 명장 임경업(林慶業, 1594∼1646) 장군의 묘소이다. 광해군 10년(1618) 무과에 급제한 후 인조 2년(1624) 이괄의 난을 진압하는데 참여하여 큰 공을 세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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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여 미터 정도의 계단을 오르면 임경업장군 묘역이 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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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화사업으로 인해서 묘역은 깨끗합니다만, 새로 조성한 동자석과 무인석은 조잡해서 눈에 거슬리고... |
병자호란 때에는 의주부윤으로 있으면서 백마산성에서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등 나라를 지키는 일에 주력하였다. 청을 반대하던 장군은 병자호란이 끝난 뒤 반대파에 의한 모함으로 희생되었다. 숙종 23년(1697) 다시 좌찬성의 관직이 내려지고 충렬사에서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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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경업장군 묘역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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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석물은 묘비와 망주석 그리고 석양만이... |
▲ 봉분 뒤에서 내려다 본 모습 |
묘는 부인 전주 이씨와의 합장묘로 큰 편이며 봉분 아랫부분에는 화강암으로 둘레석을 둘렀다. 주위에는 멀리서도 무덤이 있음을 알려 주는 망주석과 신도비 등이 놓여 있다. |
충민공 임경업 영정(충북 유형문화재 17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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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인 충민공 임경업(1594∼1646) 장군의 초상화이다. 초상화는 시선이 정면을 향하고, 구름무늬 바탕의 관복을 입고 앉은 전신좌상으로, 가로 90㎝, 세로 160㎝의 크기이다. 비단 바탕에 채색하여 그렸는데, 공이 47세 때에 명나라 황제에게 모습을 보이기 위하여 명나라 화공이 그렸다고 전한다.
얼굴의 선을 짙게 그려 안정적인 인상을 주며 옷 주름은 붓으로 죽죽 그어내려 도안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관복의 가슴과 등에 있는 흉배의 모양은 인조 때에 나라에 공이 컸던 무신에게 내렸던 독특한 문양이다.
그림의 배경에 보이는 탁자 위에는 소나무와 대나무 및 매화가 꽂혀있는 백자 화병이 있고, 금빛 연꽃받침에는 해태모양의 향로가 놓여 있는데 향로의 연기가 실타래처럼 피어오르고 있다. 특히 주인공의 뒤에 배치한 탁자는 매우 독특한 발상인데, 그 위로는 용을, 아래로는 인물산수를 그려놓았다. |
임경업장군 비각(전남 문화재자료 4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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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안읍성 내의 객사로 들어가는 입구 도로가에 있는 한채의 비각과 그 안에 서 있는 비로, 임경업 장군의 어진 다스림을 기리고 있다. 임경업(1594∼1646)은 조선시대 중기의 명장으로, 인조 4년(1626) 이곳 전라도 낙안지역의 군수로 부임해왔다. 인조 6년(1628) 3월 서울지역으로 옮겨갈 때까지 낙안읍성을 쌓는 등 어진 다스림을 베풀었으며, 병자호란과 정묘호란 때에도 큰 공을 세웠다. 이 지역에는 그에 관한 많은 전설이 내려오고 있는데, 그를 이 지역의 수호신으로 신봉하기도 하여 매년 정월 보름이면 낙안면 주인들에 의한 큰 제사가 행하여 지고 있다. 비각은 앞면 1칸·옆면 1칸으로 되어 있으며, 지붕은 팔작지붕을 얹었다. 앞면과 옆면의 기둥사이에는 붉은 막대들을 세워놓았고, 뒷면은 길다란 널판을 끼워 벽을 이루게 하였다. 비각 앞에는 ‘전군수임장군비각 영건표적비’가 자리하고 있고, 비각 앞면 윗부분에 ‘차임장군비각판상운(1893, 신병우)’과 ‘비각문관중건기(1952, 김상언)’이라 새긴 두 개의 현판이 걸려 있어, 영조 24년(1748)에 비각을 세운 후 1893년과 1952년에 각각 보수를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올린 모습이다. 받침돌의 거북머리는 눈이 타원형으로 그려져 있고, 귀가 표현되어 있으며 코는 닳아서 잘 보이지 않는다. 등은 볼록해져 있으며, 중앙에는 비를 꽂아두기 위한 네모난 홈을 두었다. 머릿돌에는 구름속을 헤치는 용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비몸 앞면 중앙에는 ‘군수임공경업선정비’라는 비의 명칭을 세로로 새겨 놓았고, 왼쪽 아래부분에 건립연대를 적어놓았다. 이 기록을 통해 임경업이 군수직을 마치고 서울로 떠나던 인조 6년(1628)에 이 비를 세웠음을 알 수 있다. |
임경업장군 묘역 위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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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표 ↑ 좌측 짙은 녹색 부분에 임경업장군 묘역이 있습니다. 소재지 : 충북 충주시 풍동 산4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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