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에 대한 나의 짝사랑이 시작된 건 13년 전 정확히 7월 28일이었다. 그 날은 결혼 날짜를 26일 남겨두고 양가 어른들의 결정과 성화만큼이나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한 여름에 그와 내가 정신없이 결혼식을 올린 날이다. 언제나 무심하리 만치 무뚝뚝한 그는 결혼식까지도 그 사람답게 객지에서 연락도 없이 결혼식 전날 오후에 올라오자마자 친구들과의 댕기풀이로 밤을 꼬박 새고서는 술 냄새도 가시지 않은 채 결혼식장에 도착했으니 지금 생각해봐도 참으로 기가 막힐 일이었다.
하지만 그날의 후지끈한 열기만큼이나 더위를 피해 벼락에 콩 볶듯이 식을 올리고 친구들과 뒤풀이를 하는 동안까지도 전날의 취기에 벗어나지 못했던 그는 그곳에서 친구들이 마구잡이 식으로 권하던 폭탄주 몇 잔에 결국,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게 다행이었는지 불행이었는지 1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난 아직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으니 아직도 그를 만나보지 못한 것에 따른 미련이 남아서일까?
그리고 곧바로 정신을 잃고 골아 떨어진 그는 몇몇 친구들의 등에 업혀서 식장과 가까운 한 모텔로 옮겨졌고 밤새 잘 익은 홍씨 냄새를 폴폴 풍기며 깊이 잠든 그를 바라보며 남겨진 나는 혼자 이불을 덮어쓰고 폐백 때 시어머니께서 던져주신 밤 네 개를 다 먹어 버렸다. 그리고 시댁에 보지도 못한 그를 그리며 신혼 여행지에 잘 도착 했노라는 전화를 드렸다. 하지만 친정에 전화를 할 때는 나도 모르게 닭똥 같은 눈물이 쏟아졌고 얼굴에 번진 눈물처럼 흐릿하게 켜 둔 텔레비전에서는 밤부터 태풍에 따른 긴급 속보 자막이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하는 수 없이 친정 둘째 언니를 불러 카메라와 지갑만 달랑 남기고 신혼여행을 위해 싸두었던 짐을 모조리 돌려보낸 후 느지막이 부시시한 모습에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일어난 그를 재촉해서 지난 세월동안 가깝고도 멀기만 했던 그를 대신해서 만나고 온 곳이 일박 이일의 경주였다. 그리고 도착한 그날, 곳곳에 전봇대가 쓰러지고 우산마저 뒤집힌 말 그대로 태풍의 가장자리로 인해 정전이 된 경주시내 호텔에서 새로운 내 인생의 제 2막 출발 서막을 태풍과 함께 두려움도 없이 시작했다. 그와 함께 하루종일 그는 일년 내에 그를 만나러 꼭 다녀 오자며 모 은행 CF마냥 큰소리를 쳤다. 하지만 살아오면서 말처럼 모든 것이 이루어질 수는 없다는 것을 한 해는 모든 걸 곱씹으며 새겼고 또 한해는 스스로 체념하고 느끼고 맨 나중엔 체념마저 익숙함으로 깨달으며 더 이상 그에 대한 기억은 티끌마저 남지 않게 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로부터 꼭 13년을 앞 둔 지난 주 어느 날, 저녁 준비를 하는 내 등뒤에서 퇴근을 하고 온 아이아빠가 흐르는 말처럼 한마디 툭 던지고 욕실을 향했다.
"열흘 뒤에 당신 애인 만나러 갈 거야." "애인?" "응.."
항상 남들 앞에서 그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입을 꾹 다물어 버리는 내게 한편으로는 미안해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그런 나의 고집스러운 미련에 타박을 했던 아이아빠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말이었다. 그리고 항상 매스컴이나 지면으로 그에 대한 이야기만 들려도 부러운 눈초리를 떼지 못하고 멍하니 바라보며 지난 13년간 그리움을 간직하는 나를 두고 아이아빠는 그를 나의 애인이란 호칭으로 불렀던 것이다.
그러나, 그를 곧 만날 수 있다는 기쁨에 들뜬 나는 그날 늦은 밤까지 비행기 예약(그때는 좌석이 5편이 있었고 우리가 필요로 한 건 6편이었다.하는 수 없이 우리 가족 수만큼 4편 예약을 하고 말았다.)을 하고 계획을 짰지만 갑자기 정한 날짜에 모든 건 촉박하고 짧은 날짜만큼이나 갑작스러움에 괜시리 마음까지 바빠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를 만나기 위해 투자할 경비가 극성수기라는 모든 것 하나까지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정말 만남 자체를 포기하고 싶었다. 차라리 그 경비라면 며칠 뒤 틀니로 고생하시는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갈 내가 먹어본 것 중 가장 부드럽고 입안서 살살 녹는 것처럼 맛있었던 언양 숯불 갈비를 양껏 사 드릴수도 있을 터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아무리 곰곰이 생각해 봐도 우리 가족끼리만 그를 만난다는 것 자체가 죄송하고 그리도 송구스러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짧은 기간을 남겨두고 잡았던 한여름의 우리 결혼식마냥 모든 걸 정신없이 밀어붙이는 아이아빠로 인해 우왕좌왕하는 와중에도 모든 계획은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고 계획은 더 이상 변경이 없는 걸로 보였다. 하지만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매일 밤마다 항공 스케줄을 확인하던 우리에게 하늘에서 빈 좌석을 하나 씩 하나 씩 선물로 내려주기 시작했다. 그제 서야 망설임 없이 친정 어머니와 시댁에 연락을 드렸다. 당신들도 함께 그를 만나러 가자고 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시어머님께서는 다니시는 직장 때문에 다음에 가자는 말씀을 주셨고 친정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이유로 사양 하셨다.
하지만 경제적인 이유보다 그를 만나러 간다는 것 역시도 당신의 기력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걸 재차 강조한 덕에 친정 어머니와 여름마다 우리 가족 여행에 빠지지 않는 조카 상준이와 함께 그를 만나러 떠날 수 있게 되었다. 올해만 지나면 연세가 일흔이 되시는 내 어머니. 아무리 생각해봐도 장사를 그만 두시면 기력 또한 당신 연세만큼이나 급격히 꺾여버릴 것만 같아 보인다. 정말 길어봐야 몇 년 되지 않을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해마다 당신을 모시고 가고 싶은 건 나의 욕심일까? 언제나 마음은 청춘이신 당신이지만 몸은 절대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는 법이 없으니 나중엔 더 좋은 외국이라도 모시고 싶어도 당신의 거동이 못 따르면 그때부터는 할미꽃인 당신은 영원한 앉은뱅이 꽃이 되고 말리라.
그리고 드디어 결혼한 지 13년이 며칠 지나는 다가오는 8월 2일에 우리가족과 내 어머니, 엄마의 비디오가게로 인해 여행은 꿈도 꿀 수 없는 내 큰 아이와 동갑인 내 조카 상준이는 지난 13년간 꿈 속에서나마 내 애인 노릇을 톡톡히 해 왔던 제주도로 휴가를 떠난다. 비록 짧은 여행이지만 그와 나에겐 잃어버린 신혼여행이 될 자리이자 내 어머니께는 일년 내내 단 하루도 쉬시지 않는 장사의 틈바구니에서 벗어난 잠시의 휴식공간으로 그리고 내 아이들이나 조카에겐 일년동안 간직할 추억의 장으로 많이 보고, 느끼고 사랑하며 돌아올 계획이다. 그리고 오늘 밤, 잊고 있었던 그리움을 찾게 해 준 조금 늦었지만 끝내 약속을 지킨 아이아빠와 시원한 맥주를 한잔하며 다음 여행에는 시어머니를 꼭 모시고 가겠다는 나의 새로운 약속과 함께 고맙다는 인사를 진심으로 전해야겠다.
**** 예누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