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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덕 신드롬
신드롬은 의학이나 심리학에서 사용하는 개념으로 여러 개의 증상이 하나로 연결되지만 그 원인을 분명히 규명하지 못할 때 쓰인다. 흔히 ‘증후군’(症候群)이라고 번역한다. 물론 원인은 불 보듯 환하게 알더라도 그 처방이 대증요법에 그칠 뿐 원인치료를 못하고 방치할 때도 그냥 증후군에 머물 수 있다. 최근 우리 사회의 의식을 지배한 윤창호 신드롬, 김용균 신드롬, 김복동 신드롬 등이 그것이다.
‘윤창호’(22세)는 음주운전으로 목숨을 잃은 부산출신 대학생이다. 또한 윤창호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게 하려고 그의 친구들이 행동하여 입법화(도로교통법 개정안)한 법 내용의 별칭이기도 하다. 음주운전 사고에 대한 처벌을 강화했음에도 여전히 반복되는 음주운전 행위는 마치 윤창호 법을 비웃는 듯하다. 원인을 알지만 증후군에 머무는 셈이다.
‘김복동’(92세)은 국민할머니였다. 뉴욕타임즈는 할머니의 부고기사를 쓰면서 “가장 거침없던 불굴의 활동가”라고 소개하였다.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평화인권운동가로 살았다. 종군위안부의 아픔이 그의 평생을 파편화시켰음에도 오직 일본‘국’의 반성과 회개를 요구했을 뿐, 동일본대지진 피해자 돕기 등 일본‘인’에 대한 박애심을 외면하지 않았다. 재일조선학교를 꾸준히 돕던 할머니는 유언으로 그 유지를 이어줄 것을 당부하였다. 나비 김복동의 날개짓은 금새라도 문제해결을 가져올 듯 하나 여전히 완고한 벽에 갇혀있다.
‘김용균’(24세)은 또 어떤가? 두 달 전에 태안화력발전소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참변을 당한 청년은 ‘위험의 외주화’로 상징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참을 죽음으로 증언하였다. 때늦은 장례식에서 용균의 어머니는 더 이상 아들을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다며 통곡하였다. 독자를 잃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어머니였으나 의로운 고집으로 외아들의 죽음을 통해 수많은 김용균들을 살려냈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려면 아직 멀었다.
해마다 증후군은 늘어만 가는데, 처방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그 때마다 사람들은 쉽게 흥분하고, 분노하지만 짐짓 반발에 그치는 경우는 얼마나 많은가? 사회적 공분이 청와대의 신문고를 연신 두드릴 때마다 기대감보다 실망감이 쌓이는 것은 그만큼 현실의 벽이 차갑고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최근 신드롬이 또 하나 늘었다. 윤한덕(51세)은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으로 지난 설 연휴에 병원 사무실 자기 의자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심장마비라고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과로사이다. 그는 의사로서 평생 가장 고달픈 응급실을 지켰다. 위험한 현실은 응급환자만의 다급한 처지가 아니었다. 세상을 향해 응급한 현실을 외치던 의사는 결국 스스로를 보호하기는커녕 응급조치 한 번 받지 못하고 스러진 셈이다.
‘윤한덕 시드롬’으로 우리 사회가 눈시울을 붉히는 이유다. 그는 응급실을 찾아온 환자나 그 가족이라면 느껴보았을 다급함과 분노를 품고 산 당사자 아닌 당사자였다. 윤한덕의 분노는 이런 말로 압축된다. “응급실에서 전공의(인턴, 레지던트)를 다 쫓아내고, 경험 많은 교수들이 응급실로 실려 오는 중환자들을 진료해야 한다.” 그는 왜 교수들은 외래에서 차분히 앉아 별로 중하지도 않은 환자를 보고 있냐고 물었다.
윤한덕은 응급환자를 맨 처음 접하는 응급구조사의 역할을 확대하는 일에도 앞장섰다. 심근경색이 온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판단하려면 심전도검사를 해야 하는데 만약 응급구조사가 직접 하면 불법이다. 응급구조사가 심전도 검사의 준비 작업으로 몸의 이곳저곳에 전극을 붙이더라도 버튼은 인턴의사가 직접 눌러야 합법이다. 이를 어기는 경우 자칫 최고 징역 3년의 처벌받는다니, 누군들 응급환자를 응급으로 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고 윤한덕 교수는 공중시설에 설치된 ‘심쿵이’(자동심장충격기)에 이런 문구를 붙여야 한다고도 주장하였다. 그 7가지 중에 3항은 “쓰러진 사람을 보면 적극적으로 도우십시오. 그로 인해 겪게 될 송사는 보건복지부가 책임지겠습니다”이다. “당신이 할애하는 십여 분이 누군가에게는 수십 년의 시간이 됩니다”라는 말도 있다. 그는 심폐소생술을 하다 문제가 생겨도 그 사람의 책임을 면하게 해주자는 ‘착한 사마리아인 법’(선의의 응급의료에 대한 면책)을 제안하였다.
신드롬은 그리스 말에서 온 것으로, 본래 ‘함께 달리다’란 뜻이다. 우리 사회가 지닌 불확실성으로 미루어 볼 때 별별 신드롬은 앞으로도 계속 양산될 것이다. 다만 이를 처방불능의 모호한 증후군으로 미루지 말고, 적극적으로 대안적 처방을 마련하는 사회적 공감과 긴급한 노력이 요청된다. 무고한 희생을 미리 막아내고, 사회적 재난을 예방하기 위해 우리 사회는 정말 함께 달려야 한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기사로만 알게 된 분이지만... 본인의 소명과 사명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감당하신 분 같습니다.
하늘나라의 안식을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