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연혁
고창(高敞)은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高敞邑)과 고수면(古水面)·아산면(雅山面) 일대를 아우르는 옛 지명으로 백제 때 모량부리현(毛良夫里縣)이라 하다가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고창현(高敞縣)이 되어 무령군(武靈郡: 靈光)이 관할하였다. 1018년(고려 현종 9)에는 고부군(古阜郡)에 속하였다가 1401년(태종 1)에 다시 고창현으로 감무가 파견되었고 1413년에는 현감이 배치되었다. 1895년(고종 32)에 지방제도 개정으로 고창군·무장군·흥덕군으로 나누어져 전주부에 소속되었다가, 1904년에 고부의 부안면이 편입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무장군과 흥덕군을 고창군으로 합병하고, 1916년에 대산면·공음면·상하면의 일부는 영광군에, 영광군의 대마면(大馬面)·홍농면(弘農面)·진량면(陣良面)의 일부는 고창군에 편입되었다. 1935년에 17개 면이 14개 면으로 편합되었다가 1955년 고창면(高敞面)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성씨의 역사
고창오씨(高敞吳氏)는 고려 정종 때 한림태학사(韓林太學士)를 지낸 오학린(吳學麟)을 시조로 하고 있다. 아들 오질(吳質) 역시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지냈고, 손자 오세문(吳世文)이 승보시(陞補試)에 장원급제하여 동각시학(東閣侍學)에 이르며 가문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그 후 6세손 오계유(吳季孺)는 충숙왕 대에 수충보절좌리안사공신(輸忠保節佐理安社功臣) 삼중대광도첨의(三重大匡都僉議) 찬성사(贊成事)에 올랐고 모양군(牟陽君)에 봉해졌다. 모양은 고창의 옛 이름으로 이로인해 관향을 고창으로 하게 되었다. 그 이후 대대로 관로에 두루 진출하여 가문을 빛냈다
주요 세거지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매촌동
경상북도 영풍군 이산면 조암리
경상북도 월성군 외동면 개곡리
충청북도 옥천군 동이면 금암리
황해도 벽성군 서석면 연근리
황해도 연백군 금산면
황해도 평산군 용산면
인구분포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고창오씨는 5,285가구 총 16,716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