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영월(청령포[단종 유배지])^^
금표비^^ 금표비 설명^^
신재철 회장님 민물고기로 어죽을 끓일 수 있도록
봉사해 주시고 매밀전 한 박스도 봉사해 주셔서
산악회원 모든님들이 맛나게 먹고 감사했습니다.
정자에서 민물 어죽을 끓여 점심을 먹고 이동 하려 합니다.
신재철 회장님께서 직접 민물고기 강원도에 주문하셔서 맛나게
잘 먹었습니다.신 회장님과 밤잠 안 자고 양념 준비와 끓여주신 여자
수석부회장님도 감사드립니다~꾸~벅~(^0*)
♧[강원도]영월(청령포[단종 유배지]).장릉(단종의 무덤).김삿갓 유적지♧
♧[강원도]영월(청령포[단종 유배지]).장릉(단종의 무덤).김삿갓 유적지♧
▣ 청령포▣
강원도 영월군 남면 광천리에 있는 명승지.
지정종목 명승
지정번호 명승 제50호
지정일 2008년 12월 26일
소재지 강원도 영월군 남면 광천리 산 67-1
종류/분류 명승지
크기 면적 204,21㎡
↑ 청령포 /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유배되었던 곳이다.
1971년 12월 16일 강원도기념물 제5호로 지정되었다가 2008년 12월 26일
명승 제50호로 변경되었다. 영월군 남면 광천리 남한강 남한강 상류에
있다. 강의 지류인 서강(西江)이 휘돌아 흘러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고 한쪽으로는 육륙봉(六六峰)의 험준한 암벽이 솟아 있어서 마치
한반도처럼 생긴 지형이다. 1457년(세조 3) 6월 조선 제6대 임금인 단종
(端宗)이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유배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그해 여름, 홍수로 서강이 범람하여 청령포가 물에 잠겼다. 단종은 강 건너
영월부의 객사인 관풍헌(觀風軒)으로 처소를 옮기기 전까지 두어 달간
이곳에서 생활하였다. 워낙 지세가 험하고 강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단종이
이곳을 '육지고도(陸地孤島)'라고 표현했다고 전한다.
청령포에는 단종이 그곳에 살았음을 말해 주는 단묘유지비(端廟遺址碑)와
어가, 단종이 한양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다고 전하는 노산대, 한양에 남겨진
정순왕후를 생각하며 쌓은 돌탑, 외인의 접근을 금하기 위해 영조가 세웠다는
금표비(禁標碑)가 있고 관음송(천연기념물 349)과 울창한 소나무숲 등이
남아 있다. 단종은 그해 10월 관풍헌에서 17살의 어린나이에 숨졌다.
슬픈 역사가 남아 있는 유서 깊은 유적지가, 휘돌아 흐르는 서강과 어우러져
자연 경관이 뛰어난 명승지이다. 보호면적은 204,241㎡로, 영월군이 관리한다.
◎영월 장릉 [寧越 莊陵]◎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산133-1번지에 있는 조선
제6대 왕 단종의 무덤이다.
지정종목 사적
지정번호 사적 제196호
지정일 1970년 05월 26일
소재지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산 133-1
시대 조선
종류/분류 왕릉
크기 면적 3,495,236㎡
↑ 장릉 전경 / 조선 제 6대 임금 단종의 능이 있는 곳에서 내려다 보이는
모습으로 제향시 제물을 차리는 정자각과 단종을 위해 목숨을 바친
충신264인의 위패를 모신 배신단사 등이 있다.
조선 제6대 왕 단종(端宗 1441~1457, 재위 1452∼1455)의 무덤으로,
1970년 5월 26일 사적 제196호로 지정되었다.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어 영월에서 죽음을 당한 후 동강에 버려진
단종의 시신은 영월의 호장(戶長) 엄흥도(嚴興道)가 몰래 수습하여 동을
지산 자락에 암장하였다.오랫동안 묘의 위치조차 알 수 없다가 1541년
(중종 36) 당시 영월군수 박충원이 묘를 찾아내어 묘역을 정비하였고,
1580년(선조 13) 상석·표석·장명등·망주석 등을 세웠다. 1681년(숙종 7)
단종은 노산대군(魯山大君)으로 추봉되고, 1698년(숙종 24) 11월 단종으로
추복되었으며, 능호는 장릉(莊陵)으로 정해졌다.장릉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을
세우지 않았으며, 석물 또한 단출하다. 봉분 앞에 상석이 있고, 상석 좌우에
망주석 1쌍이 서 있으며, 그 아랫단에 사각형 장명등과 문인석·석마(石馬)
각 1쌍이 있으나 무인석은 없다.묘가 조성된 언덕 아래쪽에는 단종을 위해
순절한 충신을 비롯한 264인의 위패를 모신 배식단사(配食壇祠),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엄흥도의 정려비, 묘를 찾아낸 박충원의 행적을 새긴
낙촌기적비, 정자각·홍살문·재실·정자(배견정 拜鵑亭) 등이 있다. 왕릉에
사당·정려비·기적비·정자 등이 있는 곳은 장릉뿐인데 이는 모두 왕위를
빼앗기고 죽음을 맞은 단종과 관련된 것들이다.
※ 세조 [世祖, 1417~1468]
조선 제7대 왕(재위 1455~1468). 세종의 제2왕자. 어머니는 소헌왕후 심씨,
비는 정희왕후이다. 무예에 능하고 병서에 밝았으며, 진평대군·함평대군·
진양대군이라 칭하다가 1445년(세종 27) 수양대군(首陽大君)에 봉해졌다.
세종의 뒤를 이은 문종이 재위 2년 3개월 만에 승하하고, 12세의 어린 나이로
단종이 즉위하였다. 수양대군은 권람·한명회·홍달손·양정 등 30여 인의
무인세력을 휘하에 두고 야망의 기회를 엿보다가, 1453년(단종 1) 10월
무사들을 이끌고 김종서를 살해한 뒤 사후에 왕에게 알리고 왕명으로
중신들을 소집, 영의정 황보 인, 이조판서 조극관·찬성 이양 등을 궐문에서
죽이고 우의정 정분 등을 유배시켰다. 그리고 안평대군을 강화도로 유배시킨
뒤 사사(賜死)하였다. 이와 같이 일거에 실권을 잡은 수양대군은 영의정부사,
이조·병조판서, 내외병마도통사 등을 겸하면서 병마권을 장악하고 좌의정에
정인지, 우의정에 한확을 임명하고 집현전으로 하여금 수양대군 찬양의 교서를
짓게 하였다. 1455년 단종이 선위(禪位)하게 하고 마침내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그의 치적에는 괄목할 만한 것이 많다.
① 재상의 권한을 축소시키고 6조의 직계제를 부활시켜 왕권을 강화했으며,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하였다.
② 진관체제를 실시하여 전국을 방위체제로 편성하였으며 북방개척에도 힘썼다.
③ 과전을 폐하고 직전법을 실시, 현직자에게만 토지를 지급하여 국가수입을
늘렸다. 또한 농서를 간행하여 농업을 장려하였다.
④ 제도를 정비하고 많은 서적을 편찬하였다. 법전을 제정하고자 최항·노사신
등에게 명하여 《경국대전》을 편찬하게 함으로써 성종 때 완성을 보게 한 것은
그의 치적 중에서도 특기할 만하다. 그의 능은 경기 남양주시의 광릉(光陵)이다.
★방랑시인 김삿갓의 문학과 풍류 -영월 김삿갓 유적지 ★
병연’이라는 본명이나 ‘난고’라는 호보다 ‘김삿갓’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조선의 방랑시인 김삿갓.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에는 그의
문학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김삿갓 시비와 문학의 거리, 묘와 생가
등이 자리한 김삿갓 유적지가 자리하고 있다. 난고 김병연은 순조11년
홍경래의 난 때, 조부 익순이 홍경래에게 항복한 죄로 폐족된 이후
황해도 곡산으로 피신해 성장했다. 20세가 되는 해 장원급제를 했으나
그 내용이 조부를 모욕한 것이어서 관료의 길 대신 참회의 길을 택한다.
그의 시들은 조선후기 시대를 비판하는 해학과 풍자, 풍류를 담고 있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영월군 하동리 노루목은 경북 영주와 충북
단양이 경계를 이루는 3도 접경지역으로 산맥의 형상이 노루가 엎드려
있는 듯 보여 노루목이라 불린다. 이곳의 정취는 김삿갓이 생전에
‘무릉계’라 칭했을 만큼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영월군은 태백산맥에서
갈라져 김삿갓 유적지에 이르는 계류를 ‘김삿갓 계곡’이라 이름 붙였으며
매년 10월초에는 ‘난고 김삿갓 문화 큰잔치’를 개최하고 있다.
이 시기 하동면을 방문하면 추모제와 퍼포먼스, 관광객이 참여하는
떡매치기, 칡 술 시음 등 다양한 행사와 대규모 백일장이 개최된다.
올해 축제는 10월7일부터 10일까지 열린다. 가족과 함께라면 2003년 10월에
개관된 김삿갓 문학관도 들러볼 만하다. 이곳에서는 멀티미디어를 활용한
다양한 자료가 상영돼 이해를 돕는다. 오전9시부터 오후6시까지. 입장료는
어른 2,000원, 어린이는 1,0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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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후기 ★
2012년 5월 29일 강원도 영월(청령포[단종 유배지]).장릉(단종의 무덤 ).
김삿갓 유적지를 다녀왔습니다.버스 한 대 40명이서 사무실 앞 7시 출발하여
제일 먼저 강원도 영월(청령포[단종 유배지])에 갔습니다.[단종이 노산군
으로 강등되어 유배되었던 곳입니다]
영월 김삿갓 유적지는 백일장에서 조부를 욕되게 하는 시를 썼다는
자책감으로 평생 방랑 시인을 지낸 방랑시인 김삿갓. 그의 업적을 기리고
문학적 위상을 재조명하기 위해 조성된 곳이 바로 김삿갓 유적지이다. 이곳에는
시비와 문학의 거리가 조성되어 있으며, 김삿갓의 묘와 생가가 있습니다.
김삿갓 유적지는 단순한 유적지가 아니다. 그의 작품과 갖가지 조형물들이
함께 갖춰진 조그마한 공원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비석에 새겨 놓은 김삿갓의
각종 한시를 비롯하여 그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는 삿갓을 쓴 동상들이
이색적인 볼거리를 만든다. 초라한 그의 무덤 앞에 서면 왠지 숙연함을
느끼기도 한다. 김삿갓유적지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그의 문학을 접해
볼 수 있다. 유적지라는 딱딱함 보다는 자그마한 산책로를 걷고 있는 부드러움
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김삿갓유적지를 찾게 만드는 힘이다. 무엇인가
크게 끌어당기는 힘은 없으나 은근히 녹아드는 매력. 김삿갓유적지를 두고
하는 말이다. 영월을 방문했다면 조용히 그 은근한 매력 속으로 한 번쯤은
빠져 볼만 합니다.
단종은 1441(세종 23년)년에 문덕과 단종 출산 후 사흘 만에 승하하신 현덕왕후
사이에 태어났습니다. 세종이 친히 등에 업고 이야기 들려주시며 키울 정도로
기뻐하시며 귀여워 해주셨답니다. 10세에 왕세자로 책봉되었다가 1452년
12세에 왕위에 올랐습니다. 20세 전에 왕위에 오르면 대비 또는 대왕대비가
수렴청정하는 것이 관례였으나 단종에게는 불행하게도 이를 대신 해줄 어머니나
할머니가 안 계셨습니다. 단종 3년(1455) 수양대군이 계유정란을 일으켜 왕의
자리를 빼앗고 1456년 단종을 노산군으로 봉하고 영월로 쫒겨나 17세에 세상을
떠나 시신은 동강에 버려졌었습니다. 호장 엄홍도(영월엄씨)가 몰래 시신을
선산이었던 이곳에 직접 매장하고 온 가족이 숨어 지냈다고 합니다. 태어나면서
부터 왕세자 교육을 받고 자라 그 모습이 아주 단아하여 단종이라 하였답니다.
한양서 영월까지 7월 장마 겪으며 오는 일주일을 후환을 두려워하는 호위 나졸들
때문에 식사를 하지 못하였답니다.
좋은 여행지, 역사 탐방지를 택하여 주신 회장님께 감사드리며 늘 건강하시고,
울 회원님들도 다음 달 좋은 산행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요~!! 안녕~!!
2012년 5월 31일^^☎☎☎♡^^*
노산대로 올라가는 중~^^
노산대^^ 김삿갓 유적지로 이동중~창밖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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