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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지맥 4구간
2009.03.22 (일)
산길 : 전재~매화산~비로봉
거리 : 11.8km
구간거리
전재~3.7~매화산~1.2~수레너미~6.9~치악산비로봉......11.8km
(비로봉~5.8~신흥동)....17.6km
Cartographic Length = 18.5 / Total Time: 06:46
산꾼들에게 있어 비(雨)는 애시당초 ‘가까이하기 싫은 당신’이다만 요즘처럼 전국토가 메마른 즈음에야 감히 비가 안내리길 바란다면 그건 반역죄로 다스려질 일이다. 부산에서 올라가는 동안 점차 멎는 기색이 보이긴 한다만 역시나 ‘다행’이라는 소리도 버스 안에서 우리끼리 할 소리였고...
어쨌든 줄줄 내리는 비는 맞지 않았고, 날씨 탓인지 감시원도 없어 영월지맥 유일한 통제구역에서의 ‘과태료 50만원’도 수월케 넘어갔다. 대신 오리무중의 조망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초장 전재에 있는 '목장길 따라' 점잖게 진행했고, 목장영역과 들락날락 얽혀있는 881봉(H) 오르는 능선은 마루금에서 한칸 비켜난 우측(서) 능선으로 올랐다. 매화산 오름길과 수레너미에서 천지봉 오름에 장딴지가 땡글땡글해진다.
날씨 맑은 날이야 매화산을 쳐다보고, 또 비로봉을 향해서 진행을 하면 되겠지만 안개속의 산길에서는 자칫하면 어문능선을 탈 우려가 있다. 먼데 보이는 조망이 없으니 지도와 GPS나 열심히 딜다보며 진행할 밖에, 오늘 구간은 순전히 지도 갖고 논 셈이 되었다.
(시간표)
10:25 전재
11:43 매화산
12:32 수레넘이재
13:26 천지봉
14:47 배너미재
15:32 비로봉
16:20 사다리병창
16:40 계곡길 갈림
17:05 구룡사
10:25 전재 (510m)
비는 그쳤지만 완전히 멎은거는 아니라 비옷들을 걸친다. 물방울이 날리는 정도라 할까 비옷을 입기도 그렇고 안입기도 그런 애매한 상황이다. [우천면] 대형 입간판이 있는 구진종합농산 입구에서 목장 들어가는 길을 따라 올라간다.
마루금은 갈림길 초입에서 우측 능선이 맞겠지만 이런날 축축한 숲으로 들어가기가 선뜻 내키지 않는다. 그대로 시멘트 포장길 따라 올라가면 구진종합농산 정문의 방역시설이 설치된 정문을 통과한다. 농장에 사람이라도 있으면 제지당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도 내다보는 사람이 없어 끝까지 올라갔다.
왼쪽으로 초지가 펼쳐지는 시멘트길 10분에 임도는 왼쪽으로 휘어가고, 기울어진 원두막이 있다. 이제 목장영역을 벗어나야 한다. 세 가닥의 전기철선을 타넘어 밖으로 나가는데 전기는 흐르지 않는다. 우리처럼 목장 안쪽으로 다닌 사람은 없는지 철선은 비교적 양호하다.
울타리 바깥쪽으로 넘어 나오면, 지맥 마루금은 목장울타리 철선에 바짝 붙은 채 능선으로 올라가는데, 우리는 뚜렷하게 난 조은길따라 우회를 했다. 마루금도 좋지만 이런 날은 신발보전에 더 신경이 쓰인다. 그것도 산행 후반부라면 모를까 초장부터 젖은 풀숲에 빠지는건 가능하면 사양하고 싶은 것이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목장 울타리를 넘어 나온 지점(원두막)부터 881봉 헬기장까지 마루금은 왼쪽능선을 두고 우측 능선으로 오르게 된 셈이다. 물론 중간에 계곡을 건너감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비가 오는 날씨라 물이 졸졸 흘러내리는 개울을 건너자니 너무 뻔뻔해 지는거 같기도 하다만 군부대 철조망쯤으로 여기자. 하기사 마루금을 따르는 일도 목장 울타리를 넘나들어야 하므로 민폐를 끼치면서 마루금 고집할 일은 없는 것이다.
(전재)
(×881봉)
11:15 881m (H)
그래서 그런지 이쪽으로도 많이들 다닌 모양인지 길은 너무나 뚜렷하다. 목장 영역에서 헬기장까지의 거리도 이쪽이 더 짧다. 넓은 헬기장에 올라서니 왼쪽 모퉁이에 마루금을 따라 올라온 길도 보이고 지맥은 우측이다. 넓은 헬기장이라 나름대로 조망도 있을법 하다마는 사방천지 보이는건 허연 구름뿐이다.
지도를 보면 이 헬기장에서 매화산이 바로 빤히 쳐다보이겠다만 도무지 보이는게 없어 오히려 진행방향 잡기에 신경이 더 쓰인다. 잠깐 내려섰다가 급경사에 붙고 두어차례 턱을 밟고서야 정상에 오르는데, 이름처럼 거창한 봉우리로 기대했는데 막상 올라서고 보니 묘 한기가 봉긋한 정상부를 통째로 차지했다. 조망마저 없으니 실망은 더하다.
11:43 매화산 (梅花山 1,083.1m △25 재설)
횡성군 우천 안흥 강림면, 원주시 소초면이 갈라지는 4면봉이다. 문패없는 묘가 있는데, 이 어르신은 4개면을 관할한다. 과연 이 어른의 살아생전 주소지는 어디였을까?
매화산 올라선 입구에서 왼쪽으로 안흥 면계따라 내려가는 길이 더 뚜렷하다. 북진하는 사람들에게는 방향도 비슷해 안흥면계 능선으로 들어가기 쉽겠다. 국립공원지역이라 그런지 리본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런대로 조은자리라 여겨져 밥을 먹고 가기로 한다.
매화산 뒤쪽 (남)은 암릉에다 거의 직벽수준이라, 이리저리 휘돌아 내려가다보니 방향감각이 없어진다. 낭떠러지 절벽을 급격하게 내려서다보면 마치 계곡으로 떨어지고 말 것 같다. 땀께나 흘리며 올라선 구름위의 매화산이지만 순식간에 지상으로 내려앉는 듯 하다. 그나마 잡을 곳이 충분하므로 그리 큰 어려움은 없다. 암릉 절벽을 다 내려서고도 길은 하염없이 내려앉는다.
12:30 헬기장 (×754m)
급한 내림길이 다할 때쯤 오래 묵은 헬기장이 나온다. 보도블럭이 여기저기 흩어진 채다. 헬기장을 지나가면 이내 고갯길 안부가 나온다.
12:32 수레넘이재 (706m)
고목나무 한그루가 당산나무 역할을 하는 그럴듯한 고개 흔적이 보인다만 폭이 좁아 수레가 넘어다녔겠나 싶다.
수레넘이
수레넘이는 마을이름이고 고개는 ‘수리재’인데 조선 태종이 각림사라는 절을 찾아갈 때 수레를 타고 넘었다는 고개로 원주시 소초면 학곡리와 통한다. 각림사는 현재 남아있지 않지만 후에 강림면 이름을 만들게 되었다는 유래다.
새말IC 옆에 있는 학곡저수지 물은 여기서 시작이 되어 한다리골을 통해 내려가겠다. 왼쪽 강림리로 내려가는 골짜기는 어령골이다.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는건 허연 안개구름 뿐이라 오늘 산행은 순전히 지도놀음이 된다. 수레넘이재를 건너면 신나게 떨어진 만큼 다시 꾸역꾸역 올리는 일이 기다린다.
(매화산)
(수레너미재)
(천지봉)
13:03 965.0m (△안흥443)
비도 아니고 안개도 아닌, 안개비라 해야하나 촉촉한 물방울이 날아다닌다. 비옷을 입으려니 땀이 찰거 같고 셔츠만 입자니 시간이 지날수록 더 젖을 것 같고, 참으로 애매한 갈등을 만드는 날씨다. 30분간 꾸준히 고도 올리는 작업을 하니 우측에 봉우리를 두고 살짝 비켜가는 길이다. 지척의 봉우리를 외면하랴, 올라서니 삼각점이 기다린다.
965봉에 올라서니 대충 올릴 고도는 다 올린거 같고, 이제 그런대로 평탄하게 진행이 될거 같다. 초장 매화산 오름에 용을 썼고, 날씨까지 우중충한데다 잠시나마 고달픔을 떨칠 조망이라고는 전혀 없으니 그 피로도가 가중이 되는거 같다. 오늘 같은 날은 산행의 즐거움은 찾을 수도 없고 거저 묵묵히 의무적인 산길 잇기에 매진할 뿐이다.
×1002봉에 올랐다가 다시 내려선 안부에는 우측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이 보인다. 지도상으로 계곡의 끝까지 따라가면 우리가 산행을 마칠, 바로 신흥동 버스주차장이 되겠다만... 다시 100m 가량의 오름이 기다린다
13:26 천지봉 1085.7m (△안흥444)
날씨가 좋아도 조망은 없어 보인다. 좁은 정상부에는 삼각점과 정상팻말이 있다만 지형도에 나오는 이름은 아니다. 지도를 한눈에 보면 매화산과 비로봉의 중간쯤으로 보인다만, 매화산에서 3.7km에 1시간반 걸렸고 비로봉까지는 5km가 넘으니 두시간은 더 가야 될듯하다.
13:34 ×1053
천지봉에서 비로봉 직전까지는 고도차가 거의 없이 평탄한 길이다. 진달래 숲이 빽빽해 맑은날도 보이는게 없겠다. 특별한 지형지물도 없고 지도상 표기된 봉우리 확인하는게 전부다. 30분 후 ×1114봉을 지나고 25,000도엽이 우천에서 부곡으로 넘어간다.
지형도상 ×1121봉 다음에 우측으로 꺾이는 봉우리가 1106봉쯤 된다. 지맥은 우측으로 꺾이고 왼쪽으로 갈라지는 능선이 있는데 지도상 그 왼쪽 골짜기 끝에 태종대가 보인다. 태종대는 부산에만 있는줄 알았는데 여기 강림면에도 있었네.
태종대 : 조선태종이 그의 스승 운곡(원천석)을 찾아 부곡리에 왔다가 만나지 못하고 돌아가는 길에 이곳에서 쉬어 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후에 주필대(駐蹕臺)라는 비석과 정각을 세웠다
안개속에 귀곡성 같은 암봉을 스쳐간다. 위로 쳐다보는 바위위에 굵은 노송 한그루가 위태해 보인다. 벽이 일부 허물어지고 있다. 무너진 바윗돌을 밟고 지난다.
14:47 배너미재 (1,004m)
물론 지형도에 나오는 이름은 아니지만 해발 1000m가 넘는 고갯길을 배가 넘었을 리는 없고, 양쪽 비탈을 보면 오히려 물빠진 갯가처럼 배를 대기 좋을만한 직벽이다. 희미한 흔적의 고갯길 우측 골짜기따라 내려가면 세렴폭포로 바로 내려가겠다. 호남정맥에도 주월재(舟越峙)가 있고 무넘이재도 흔하다. 글자 그대로 배가 넘고 물이 넘었다는 사실여부에 초점을 맞출 필요는 없다. 물이 넘었다고 무넘이재가 아니라, 물이 넘어 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무넘이재 인기라.
이제 비로봉 앞에 있는 마지막 고개이니 또 오를 일만 남았다. 도중에 잠깐 내림길도 있긴 하지만 고갯길 안부는 못되고 이어지는 오름이다. 두개 암벽 사이로 문처럼 열린 바람고개에서는 찬 에어콘 바람을 맞는다. 이어 잔잔한 산죽밭이 나오는걸 보니 비로봉도 다 온 모양이다. 코가 박히는 급비탈에 붙어 씩씩거리다 보니 커다란 간판이 앞을 막는다. 몸을 수구려 빠져 나오니 뒤쪽으로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문이다. 그러니까 전재 목장에서 여기까지가 등산로 아닌 통제구역이다.
(비로봉)
(조망은 그림으로만...)
15:32 비로봉 (雉岳山 飛蘆峰 ×1,282m)
허연 안개속에 돌탑이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신선탑, 용왕탑, 칠성탑이라는 불탑인데, 1966년 원주에서 과자를 만들어 팔던 용창중씨가 "3도가 보이는 산 정상에 3도의 돌을 이용해 3년 안에 돌탑 3개를 쌓아라!" 는 신의 계시를 받고 혼자서 쌓았다고 한다.
힘들게 오른 만큼의 보상도 전혀없는 날씨다만 높은봉에 올랐다는 환희대신, 월드베이스볼클라식(WBC) 준결승에서 베네수엘라를 이겼다는 소식에 모두 함성을 터뜨린다. 시간 맞춰 문자메세지로 알려온 것이다. 이후 하산하고 나서도 야구 얘기다. 내일 일본과 미국의 준결승전에서 일본이 이기면 우리와 다섯 번이나 맞붙게 된다는둥, 월드베이스볼이 아니라 한일베이스볼 이란다.
지난번에 구룡사 계곡길로 내려 갔었으므로 이번에는 능선길인 사다리병창을 택했다. 지도를 보면 계속 진행하는 향로봉은 서쪽이고 사다리병창은 북쪽이 되는데, 일단 들머리는 다같이 북쪽을 향한다. 가장 높은 돌탑에서 바로 북으로 난 길이 사다리병창이다. 초입은 긴 나무계단으로 내려간다. [구룡사4.8 세렴폭포2.7km]
10분 내려가니 [세렴폭포2.4km] 이정표가 있고 등로는 험하지만 통나무로 보강이 되고 파이프 난간도 설치되어 있다. 거대한 바위뭉치가 있는 안부를 지나고 고도를 쑥쑥 떨어뜨린다.
16:20 사다리병창 (762m)
이 능선길 전체가 사다리병창이 아니고, 능선상에 마치 기차바위처럼 길게 이어져 있는 5~60m 가량의 바윗길을 말한다. 암릉의 날등이지만 안전시설이 되어있어 전혀 위험한건 없다만 우리는 그마져 무관심하게 옆의 흙길로 비켜 지났다. 위험보다도 오리무중의 조망에 젖은 바윗길에 별관심이 없어서다.
거대한 암벽군이 마치 사다리꼴 모양으로 되어있고 암벽 사이에 자라난 나무들과 어우러져 독특한 풍광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하여 ‘사다리병창길’ 이라 한다 병창은 영서지방 방언으로 벼랑 절벽을 뜻한다.
(사다리병창)
16:40 계곡길 갈림
구룡사에서 올라온 길이 계곡길과 사다리병창으로 갈라지는 곳이며 두 계곡의 합수부 이기도 하다. 우측 계곡으로 100m 올라가면 4-5단으로 된 아담한 세렴폭포가 있다.
이제 길은 신작로다. 이런길은 연인캉 어깨동무 해가며 느긋하고 속닥하게 걸어야 제맛이다. 청아한 계곡 물소리가 피부에 와 닿는다. 문득 알탕이 생각나지만 아직은 이르다. 저 물에 들어갔다가는 뻐덩뻐덩 얼어 버릴거라. 앞서가는 희중씨와 산행대장은 뭔일이 그리 바쁜지 뒤도 안돌아보고 내뺀다.
시인마을이라 써붙인 국립공원 사무실을 지나 산책로는 계속 이어지는데, 구룡사는 다리 건너 왼쪽이다. 지난번에 우측길로 갔으니 이번엔 구룡사로 가야겠다. 구룡사 직전에 우측에 시커먼 물이 출렁이는 소(沼)가 있다. 아홉 마리 용이 살았다는 구룡소다. 자그만 폭포 아래 어떻게 저리 깊고 넓은 소가 생겼을까 싶다.
17:05 구룡사
본래 절터는 깊은 연못으로 아홉 마리 용이 살고 있었는데 의상대사가 그 용들을 쫒아내고 절을 세웠다고 한다. 원래 九龍寺였는데, 거북바위의 기를 살리고자 龜龍寺로 바꿨단다. 四天王門 현판이 걸린 일주문에서 대웅전을 한번 쳐다보고 스쳐간다.
구룡사에서 주차장까지의 길 양편에는 거북무늬 선명한 황장목이 즐비하다. 껍질이 붉다고 해서 적송, 황장목, 아름다운 자태 덕에 미인송이라고도 일컫는 금강소나무는 조선시대 궁궐을 짓는데 사용했다고 한다. 주차장 나오기 직전 길가에 '황장금표'(黃腸禁標)를 알리는 안내판이 눈에 들어온다. 말 그대로 황장목을 베지 말라는 경고를 새긴 돌이다. 나라에서 찜한 귀한 나무들이기 때문이다.
(구룡소)
(구룡사)
첫댓글 맨날 땡땡이 산행이나 하며 농땡이치는 저는 대간이나 정맥길, 구석구석을 살피시는 분들을 보면 항상 존경합니다. 저는 이제는 돈 받고 대간길 갈래라고 물어보면 자신있게 "아니요"라고 대답한답니다 ^^
저는 아직도 가시구디를 헤매고 있습니다...한번 발을 잘못 들여놓으니 평생 팔자가 사납습니다... 한시바삐 업종전환을 해야하는데요..ㅎㅎ
저도 남연님과 비슷한 과입니다 ㅎㅎ 조은산님같이 남들이 잘 가지않는 우리땅 맥찾기 하시는 분들 정말 대단하신 분들이라 생각합니다. 업종전환은 잘 안되지 싶습니다. 담근발은 잘 꺼내지지 않더만요^^* 즐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