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相生)을 바라며…
이윤미
인간의 사유(思惟)에 의한 판단이 각종 선입견을 갖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생각이 획일적이지 않고 다양하기 때문에 세상에는 많은 선입견들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인간이 가진 수많은 선입견들 중의 하나가 바로 장애인에 대한 것이다. 대부분의 비장애인들은 평범함에서 벗어난 대상에 다름의 차별을 두고 그 대상을 수용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장애인들을 자신과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가 아닌 특별한 존재로 여기며, 그들을 자신의 삶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철저하게 배제시킨다.
「청각장애인으로 살아가기」에도 비장애인이 장애인에게 가지는 여러 형태의 선입견이 일화로 드러난다. 이 글을 읽으며 작년 11월쯤 KBS 1TV의 인간극장에서 방영된 청각장애인 발레리나 고아라 씨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고아라 씨는 생후 4개월 때 심한 고열로 감각신경성 난청에 걸려 청각장애 3급을 진단받았다. 그래서 오른쪽 귀는 소리를 전혀 들을 수 없고, 왼쪽 귀는 보청기를 껴야 겨우 박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그녀가 발레를 한다. 발레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춰야 하는 무용극이다. 따라서 청각장애인이 발레를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처럼 보인다. 그러나 고아라 씨는 무대에 오르기 전 곡 전체의 악센트와 비트를 외우고, 음악을 듣고 연습을 하는데 보통 사람들의 세 배 이상의 노력을 하며 발레리나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그녀는 장애를 가진 자신도 모두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서 다른 사람도 힘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스타킹(TV 프로그램), 미인 대회, 모델 선발전 등 다양한 분야에 늘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또한 그녀는 교육열이 높은 어머니에 의해 어릴 때부터 수화가 아닌 구화를 배웠는데, 이 구화를 구사하기 위해서 한 음을 천 번 넘게 연습했다고 한다. 이런 각고의 노력으로 지금 그녀는 수화와 구화를 모두 할 수 있게 되어 청각장애인뿐만 아니라 비장애인과의 대화도 가능하게 되었다.
이런 고아라 씨의 삶과 「청각장애인으로 살아가기」의 저자인 소장님의 삶은 어딘가 모르게 닮아 있다. 단순히 두 사람이 청각장애인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어서가 아니다. 두 사람은 끊임없이 비장애인들과 소통하며 청각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개인의 삶만 생각한다면 개인의 영달(榮達)만 추구하면 될 일이다. 굳이 ‘청각장애인인권문제연구소’라는 비영리민간단체를 설립하여 청각장애인의 인권 보장과 인식 개선을 위해 애쓰고, 사회복지법인의 설립과 부산청각장애인복지관의 건립을 20여 년 동안 요원할 필요가 없다.
대학교 3학년 때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밤늦게 귀가한 어느 날 너무 피곤한 나머지 눈에서 콘택트렌즈를 빼지 않고 그대로 잠이 든 적이 있다. 다음 날 아침에 콘택트렌즈를 빼고 학교에 갈 준비를 하여 학교에 가서 첫수업을 들으려는데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 너무 당황스러웠지만 친구들에게 부축을 부탁하여 학교 근처의 안과에 갔다. 안과에서는 어젯밤에 내가 콘택트렌즈를 끼고 자는 바람에 각막이 손상되어 앞이 일시적으로 안 보이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날 하루 동안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빛이 없는 어둠의 세상이 너무 무섭고 두렵게 느껴지는 하루였다.
이 경험 이후로 나는 장애인들 중에 시각장애인이 일상생활을 하는데 가장 불편을 겪을 것 같다는 생각을 줄곧 해왔다. 그러나 「청각장애인으로 살아가기」를 읽으며 장애인에게 경중(輕重)은 성립 자체가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듣지 못하는 것도 보지 못하는 것 이상으로 불편함이 많다는 사실을 소장님의 삶 속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장애를 가진 장애인들 역시 불편함이 많을 것이다.
장애의 발생 비율을 보면 선천적인 경우보다 후천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이는 시기상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누구나 잠재적으로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현재 비장애인이 장애인에게 갖는 선입견과 차별적인 태도는 후에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되돌아올 지도 모른다. 이러한 점을 많은 비장애인들이 자각하기를 바란다. 이와 더불어 법이 없어도 장애인이 복지와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인 인프라가 속히 구축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