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미 미주리대 신문대학원 연수(미 국무성
초청) 84 년 조선일보 기자로 입사. 정치부기자(국회 총리실 외무부담당),
경제부기자(삼성, 현대, 선경 등 업계담당)를 거쳐 91 년부터 95 년 말까지 4
년 6개월 동안 조선일보 주일특파원으로 활약했다.
도쿄특파원이던 92 년 쓰레기통을 뒤지는 일본 주부들을 소개한
환경시리즈로
한국의 쓰레기운동을 선도했으며, 93 년 38 년만의 자민당 붕괴 시에는
호소카와 총리 취임을 특종 보도하는 등 복잡한 일본정치를 간결하고 독특한
문체로 소개해 각광을 받았다.
유창한 일본어로 일본 후지TV 생방송 프로그램에 패널리스트로 참가하고
일본의 각 지방단체와 정치단체로부터 연사로 초빙 받는 등 국제적인 외교,
시사문제 평론가로 일본에서 더 알려져 있다.
귀국 후에는 조선일보 국제경제팀장. 월간조선 기자로 집필, 저술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펴낸 책으로는 역서 [2020 년, 일본이 사라진다], [세계가 뛰고 있다]
"학술논문 종합정보기관으로서의 일본 신문" 등이 있다.
(여는 글)
(하나의 출발점에 서서...)
91 년 여름은 몹시도 더웠다. 그러나 4 년 6개월의 동경 특파원 생활을
시작하기 위해 나리타공항에서 내린 필자에게 동경은 그 무더위 속에도 춥게만
다가왔다. 단지 '한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한국인에게는 집을 주지
않겠다" 일본 집주인들 때문에 마음에 드는 집을 구하는데 무려 3개월이
걸렸다. '한국인 기자'가 동경에서 집을 얻기까지 들어야 했던 24번이나 되는
'no'의 이유는 참으로 다양했다. "한국인들에게는 김치 냄새가 난다",
"한국인들은 시끄럽다", "한국들은 사기꾼이 많아 믿을 수 없다" 등등.
계약하려 왔다가 부동산회사측에 "왜 한국인이라고 하지 않고 외국인이라고만
했느냐"며, "한국인은 무조건 싫다"고 일어난 집주인 앞에서 할 말을
잃었었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온 요즘 동경에 처음 부임했을 때와 비슷한 '추위'를
느끼고 있다. 우리 주변의 일본에 대한 편견 또한 그들의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지식인들이나 일본을 안다는 몇몇 사람들조차 아직도
식민지 시대 같은 대일관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수박 겉핥기식으로 사실
확인도 안된 것들이 단지 '일본'이라는 주어 하나로 일본이 설명된다는 듯
각종 출판물에 버젓이 실리고 있다. 심지어 이름 있고, 지위 있는
학자들까지도 일본에서는 이미 학계의 연구가 끝나 정설로 되어 있는 것을
마치 자신이 새로운 발견이나 한 듯 책을 내거나 자신의 이름을 붙인
'학설'까지 내놓기도 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일본'에서 공부하고 온
학자들이나, 주재원들이 구미 등 다른 나라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사람들에
비해 찬밥취급 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모든 편견과 아집과 차별적 요소들이 우리를 춥게 만든다.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도 여기에 있다. 이 책은 결코 어려운 학술서가
아니다. 또 현학적인 잡학을 늘어놓은 책도 아니다. 기존의 '일본 속의 한국
문화'를 다룬 책들과도 다르다. 이 책은 '경제적인 시각'으로 일본의 본질을
분석하고 '일본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담으려 했다.
전후 50 년이 지난 지금, 2차 세계대전의 책임을 채 청산하지 않은 패전국인
일본이 "이제는 더이상 고개 숙여 살지 않겠다."며 머리를 쳐들고 있는 새로운
국제질서가 태동하고 있다. 군사적으로는 지난 9월에 있은 미일 방위협정
개정에서 보듯 미국은 일본에게 동아시아의 군사적 패권조차 분담시키려 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이미 국경이 의미 없는 글로벌 사회가 21세기의 마지막
개막과 함께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 36 년 동안 '식민지시대의 피 정복민'이었다는 사실에
열등의식을 갖고 있거나, 반세기 전의 이승만라인 때 같은 '대일본 쇄국주의'
속에서 아직도 일본의 실체를 보지 않고 부정만 하려 한다. 정신적으로는
기존의 패배의식 속에 갇혀 있으면서 배일이나 극일, 지일 등의 테크닉 어느
하나만으로도 문제들을 풀어 보려하거나 혹은 '일본은 없다'는 식의 허탈한
부정론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의 의도는 글로벌화하는 세계 속에서 일본을 풀어
헤치는 '해일론', 아^36^예 틀 자체를 녹여버리는 '용일론'이다. 어쩌면 일본의
역사와 땅, 그리고 일본인까지 한꺼번에 '소화해 버리는' 정신적인
탄일론이라고 해도 좋다.
그 동안의 패배의식과 열등의식을 완전히 녹여버리고 역전의 발상을 통해 그
동안의 선입견을 훌훌 벗어버리지 않는 한, 중앙청 꼭대기를 백만번 잘라
없앤다 해도 우리의 정신적 해방은 요원한 일이다. 오히려 21세기 대변혁의
시대에 우리와 일본을 포함한 다른 선진국들과의 정신적 종속관계는 더욱
깊어지기만 할 것이다.
이 책을 읽는 이는 더 이상 일본이 외국이 아니라 경상도 옆 '동해'라는 강
건너편에 있는 한국의 '일본 남북도' 정도로 동경은 말 그대로 '동서울' 정도로
보이는 전혀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일본과 연결된 직업을 가지고 있거나 일본과 관련된 일을 하는 각 업계의
일선의 비즈니스맨들에게 일본을 공략할 수 있는 전혀 다른 신선한 시각과
시원한 공감, 그리고 무한한 사업의 아이디어를 제시해 줄 것이다. 일본어를
처음 배우거나 일본을 처음 접하는 젊은이들에게는 일본을 보는 전혀 다른
시각을 제시해 줄 것이며, 그 시각의 유무에 따라 NHK 뉴스가 단 3개월만에
들리기도 하고, 아니면 일본어는 '영원히 가까워질 수 없는 외국어'로 계속
남을 것이다. 학계나 정치, 외교 일선의 전문가들에게도 기존과는 다른 틀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 땅에서 고생하며 일본인들에게 차별을 받으며
살아온 80 만 재일 한국, 북한인들에게도 이 책은 앞으로 당당히 "나는
한국인이며 조선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할 것이다. 이 책을
준비하는 과정은 참으로 방대한 작업이었다. 구성과 자료수집에 5 년 반이,
정리, 분석에만 1 년이 넘게 걸렸으며, 이제 그 조그만 결실의 여행을
독자들과 함께 떠나려 한다. 또 이 책의 내용들은 특파원으로 부임했던 당시
일본 마이니치신문으로부터 연재하자는 제의를 받았지만 사양하고 때를
기다렸다가 이제 한국에서 출간하게 됐다.
이 책은 결코 완성이 아니다. 하나의 출발점일 뿐이다. 지금 독자들이 서
있는 그 곳에서 이 책이 주는 '관점'을 통해 새롭게 발견하는 일본이라는
존재의 모든 다른 모습들이 곧 이 책의 속편이 될 것이다.
2000 년을 3 년 앞둔 초겨울의 어느날
고려 말 이집 선생의 뜻을 받든 둔촌재에서 일위 씀
(추천의 글)
('골목대장'에서 벗어나야)
주돈식(전 문화체육부 장관, 전 조선일보 편집국장)
'등잔 밑이 어둡다'는 우리 속담이 가장 잘 어울리는 데가 한국과 일본 두
나라간의 관계다.
좋든 싫든 우리와 일본은 뗄 수 없는 역사적 관계가 있음에도 우리는 일본을
너무도 모르고 있다. 도대체 알려 하지를 않는다. 일본은 한반도 식민지
경영을 위해 우리의 풍수와 정감록이라는 민간예언서까지 연구한데 비해
우리는 어떤 일본 연구를 해 왔는지 돌아볼 때다.
일본 안에는 지금도 한반도 관찰자(코리아 워처, Korea watcher)를
자처하는 사람, 이 타이틀을 직업으로 삼은 프로 저널리스트들이 기백 명이
넘는다. 그에 비해 우리는 정말 일본문제만을 프로로 전공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는지 의문이다.
이런 지적 비중이 심한 불균형 속에서 부지영 전 동경특파원이 바쁜 일정
속에서도 틈을 내어 이처럼 깊은 일본 연구서를 냈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특히 부특파원의 글은 단순한 수상도 아니고, 역사적 문맥에서, 그리고
언어학적인 관점에서 전문가 못지않게 하나하나의 과제를 분석하며 접근한
깊이 있는 글이다.
보다 깊이 일본을 알 수 있고 글로벌 시대를 맞아 한일 관계를 재정립하는
데 많은 기여가 있을 것을 확신한다.
평소 우리는 일본을 무시하고 일본이 한반도 유사시에 대비한
방어계획이라고 세우면 우리는 "또."하는 거부반응을 보인다.
그러면서도 IMF 파동이 나면 부총리가 제일 먼저 일본으로 건너가 협의를
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처지다.
이중성을 극복하지 못하면 언제나 '골목대장'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제
부끄러워도 미워도 샘이나도 우리의 갈 길은 뻔하다.
부특파원의 이 책은 바로 이런 안목에서 가치가 있고 감히 많은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부특파원과는 본인이 과거 조선일보에 몸담고 있을 때부터
밀접한 관계가 있어 그의 출판을 온 마음으로 축하한다.
97 년 12월
제1장 일본어가 한국어로 보이는 장
(장을 여는 말)
기업명과 어감으로 풀어보는 한국어의 일본섬 사투리
일본의 독도망언 이후 한일관계는 여전히 삐걱거리고 있다. 계속되는
한일정상회담과 외무장관회담에도 불구하고 독도문제는 양쪽 모두에 의해
팽팽하게 평행선을 달리고 있고,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벌어지는 정신대
피해자 등 우리측의 항의시위에 대응하여 이제는 일본 우익단체들이 동경의
주일한국 대사관 앞에서 버젓이 독도탈환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일본과 어업협상이 진행되는 와중에서도 일본정부는 소위 자신들이 설정한
직선기선을 넘어오는 한국 선박에 대해 여전히 나포와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직선기선을 기준으로 한 일본 정부의 단속이 위법이라는 일본 사법부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상황은 별로 달라지지 않고 있다.
지금 여기서 우리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우리에게 일본은 무엇인가. 또 일본에게 있어 한국은 무엇인가.
우리는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으로 보다 근본적인 명제를 던지고자 한다.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의 논리대로라면, 일본은 우리 땅이라는
주장이다. 일본은 고대 우리 한반도 인들이 개척한 동북아의 프런티어였으며,
지금의 일본은 그 위에 세워진 말하자면 동북아의 미국 서부, 혹은 동해의 LA
같은 그런 존재다. 지금까지도 역사적으로 한국식 이름과 민속신앙 등의 일본
전래루트를 찾은 '일본 속의 한국 문화'(김달수), 고대 한국어와 고대 일본어의
상관관계를 모색한 '노래하는 역사' (이영희), 신문에 연재되기도 했던 '일본
속의 한국이름' 등의 시도가 있었으나, 우리의 시도는 보다 근본적인 것이다.
우리는 현대 일본어조차 한국인에게는 결코 외국어가 아니며 오히려 한국어의
일본섬 사투리라는 명제에서부터 출발하려 한다. '언어는 최고의 박물관'이라는
람스테드의 말처럼 오히려 몇 천년전의 세월 속에서 낡아버린 유적 몇 점을
나열하는 것보다는 일본어 나아가 현재의 일본 그 자체가 고대부터 찬란했던
한국문명의 살아있는 유적이라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이 장에는 어려운
학술서나 논문을 인용, 정리하기보다 우리에게 낯익은 일본 기업들의 이름이
한국어의 동경 사투리라는 예부터 시작해 보려고 한다. 우리들의 머릿속에
이미 입력되어 있는 한국어와 너무도 많이 들어 낯익은 일본 회사의 브랜드가
같은 어원을 가진 말들이며, 나아가 일본인들이 세계에 자랑하고 있는 이름과
브랜드들이 한국어의 일본섬 사투리라는 것을 한 번 실감해 보자.
또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최근에 일본의 일부 양식 있는 지식인들이
인정하듯, 단지 일왕이 한반도로부터의 도래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일본인을
만들어온 어머니 존재가 바로 한국인이었다는 사실도 같이 찾아 올라가 보자.
이 여행에 필요한 항공권이 있다면 그것은 단지 한국과 일본의 오묘한 관계에
대한여러분의 끊임없는 호기심뿐이다.
첫째 이야기: '아침해 맥주'의 나라
일본인과 해의 궁합
우리 문화에서 가장 큰 명절이라면 역시 추석과 설날이 꼽힌다. 추석이
충만한 풍요의 명절이라면 설은 시작의 명절이다. 추석을 상징하는 것이
달이라면 설을 상징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새로 떠오르는 신년의 해,
즉 새해다.
현해탄 건너 일본인들도 우리처럼 구정을 쇠는 것은 아니지만 메이지유신
이후 모든 전통절기를 양력으로 바꿈에 따라 양력 1월 1일엔 우리와 비슷하게
떡도 빚고, 여러 단으로 된 술잔에 술을 먹으면 새해의 안녕을 빈다.
설뿐만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일본사람들은 해를 좋아한다. 국호를
일본이라고 한 것은 '해의 근본' 나아가 '해가 뜨는 곳'이라는 의미이고, 우리는
보기만 해도 지겨운 일장기는 흰바탕에 썰렁하게 붉은 해만을 그려 놓은
히노마루다.
그런데 이토록 해를 좋아하는 일본인들이 알면 까무러칠 일이지만, 그토록
좋아하고 숭상하는 '히'가 실은 한국말이라는 사실이다. 엄밀히 말하면
한국어의 일본섬 사투리다. 학문적으로는 '고대 조선어의 일본지방식
변천어'라고 길고 어렵게 표현 하지만 이를 우리가 쉽게 쓰고 있는 일상용어로
바꾸면, '한국어의 일본 사투리'가 되는 것이다.
흔히 일본어는 배우면 배울수록 어렵다고 말한다. 우리는 '일'이라는 한자를
천자문 그대로 '날 일'이라고 해서 '일'이라는 음독만 하는데, 일본인들은 어떤
경우에는 우리의 일과 비슷한 중국음을 따서 '니치'라고 음독하고 어떤 때는
'히'라고 전통적인 발음대로 뜻을 새겨 훈독을 해서 외국인들을 골탕먹인다.
그러나 그것은 그 동안의 일본어 교과서가 서양인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생긴 것으로, 우리는 그 서양인들을 위해 쓰인 일본어 교과서나 교재를
가지고 고민할 필요가 없다. 한국어를 모르는 외국인들에게는 일본어가
골탕먹일 수 있으나 한국말을 할 수 있는 한국인의 머릿속에는 이미 일본어가
기본적으로 입력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문법에서 발음까지, 심지어는
한자의 발음까지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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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히'는 한국어 '아침해'의 일본 사투리
우리말 '해'의 일본식 사투리가 '히'이고, 주로 고유어일 때 훈독을 한다는
사실만 알면 이 문제는 쉽게 풀린다. 일본어 히(hi)가 한국어 해(hae)와
동계라는 사실은 이미 1백년 전 메이지 초기에 한국어와 일본어 양쪽 모두에
능통했던 W. G. 에스턴(대영제국 왕립 아시아 연구, 1879). 가나자와에서
시작해 전후의 하토리. 오노 스즈므 등 저명한 학자들을 거치며 일본의
한국어^5,23^일본어 비교연구분야에서는 정설로 굳어진 지 오래다.
우리쪽에서도 김사엽. 서연범. 재미학자 박병식. 그리고 노래하는 역사
시리즈의 이영희 같은 분들이 연구를 해왔다. 다만 연구의 양이 일본쪽에 더
많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어쨌거나 학문적으로는 여러 설이 있지만 가장
그럴 듯한 학설의 하나는 태양을 뜻하는 고대한국어인 '하라(hara)' (한자)의
어원에서부터 현대 한국어의 '해(hae)'와 일본어의 '히(hi)'가 되었다는 식이다.
하라(고대한국어)해(한) 히(일)
그러나 우리 모두가 한일 양국 언어비교론을 전공하려는 것이 아닐 바에는
그 진수만 기억하자. 일장기의 '히'는 현대 우리말 해의 고어에서 온 말이라는
것을.
일본 사람들이 '조'를 한자발음으로 '쵸'라는 음으로 읽을 때보다
'아사(asa)라고 읽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 말이 실은 고대 한국어에서 나온
까닭이다. 한국사람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지만 단군할아버지가 고조선을
건국하던 B. C 2333 년 당시 국호를 조선이라 하고 아사달에 도읍했다는
기록을 보면 당시에는 분명 현대의 중국말 챠오센이나 그 중국말에서 따온
한자발음인 조선이라고 읽혀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많은 학자들이 연구와
문헌들을 종합하면 조선은 '아사+달'='아침 들', 혹은 '아침 나라'라는 현대어로
풀 수 있다. 일본이 3세기에 와서야 히미코(해의 무녀, 우리말 해님이)라는
족장이 야마토라는, 큐슈 일부를 다스리는 부족국가를 세우고 일왕도
인정했듯이 4세기에서 7세기에 들어서야 그나마 한반도의 도움을 얻어
고대국가의 틀을 마련했던 것과 비교하면 일본보다 약 2천 5백년이나 앞서서
'아사'라는 말이 생긴 것이다. 아사달의 '아사'가 일본말이라고 얘기할 한국인은
없을 것이다. 오늘의 '아사'라는 말은 우리의 관점에서는 고대 조선어이며
따라서 광의의 한국어 이며, 그 한국어의 동경사투리가 현재 일본어에
남아있을 뿐이다. 결국 우리는 많은 문헌들을 통해서 일본 현대어 '조'의
'아사'가 표기만 히라가나로 되어있을 뿐 우리 현대어 '아침'과 어원이 같은
고대 한국어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고어시간에도 배웠듯 15세기의
'아 과 비교해도 같은 처음 계열인 스, 즈, 츠가 서로 바뀌어 일본어에서는
'아사'라는 형태로 아 ^25,135^ 아삼 ^25,135^ 아사, 현대 한국어에서는
모음만 바뀌어 아 ^25,135^ 아침으로 된 것이다. 한반도 안에서도 각 지방의
방언에 따라 '형님'이 '성님'으로 자음이 바뀌기도 하고, '많다'는 뜻에 '하다'가
'허다'가 되는 식으로 모음이 바뀌기도 하는데 이 정도면 굳이 어려운 학문적
루트 찾기 숨바꼭질을 하지 않고도, 직감적으로 '아사히(조일)'라는 일본어는
'아침해'라는 한국어의 일본어 사투리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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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대표적 기업 '아침해 그룹'
복잡한 이야기는 그만하고 여기서 흥미로운 제안을 하려고 한다. 일본어가
한국어의 일본섬 사투리라면 우리는 일본어를 외국어가 아니라 우리가 쓰고
있는 현대 한국어, 그것도 표준어로 바꾸어 부를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오늘의 일본에서 방금 우리가 한국어로 풀어 낸 아침해의
일본 사투리 '아사히'가 이름으로 붙은 일본 기업을 찾아보자. '아사히'라는
이름의 기업은 참으로 많다. 일본 최고의 신문이 아사히(조일) 신문이고,
최근에는 일본에서 베스트5에 드는 은행이 아사히 은행으로 통합, 개칭됐으며,
아사히 생명은 역사적으로나 국제, 경제적 위치로나 일본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보험회사이다.
'아사히 맥주'하면 일본을 여행하는 사람은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일본을
대표하는 맥주의 하나이다. 아사히 맥주가 처음 발매된 것이 지금부터 백년
전인 1892 년 (명치 25 년)의 일이고 아사히(조일) 신문의 창간호도 1879
년(명치 12 년)에 나왔다. 그만큼 아사히는 일본인들의 가슴속에 뿌리박힌
대표적인 일본 브랜드인 셈이다.
그러나 우리는 신문에서, 책에서, 혹은 맥주라벨에서, 아니면 사업관계로
'아사히'라는 일본말을 만나게 될 때 다음부터는 "아 이것은 우리말 아침해의
일본말 사투리랬지"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속으로 우리말 아침해로 바꿔서 불러
보자. 그 이름들이 아침해 신문으로, 아침해 맥주로, 또 아침해 은행으로 다가
올 것이다. 아니 '아사히'라는 이름 속에 파묻혀 살고 있는 일본인들에게, 그
말이 실은 한국어라는 것을 재치 있게 설명해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20세기 초반 한때 겪었던 일제시대의 정신적 사슬을 벗어
버리지 못하고 꼴같지도 않은 열등의식 속에 갇혀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한때는 그것이 '극일론'과 '지일론' 논쟁을 낳기도 했고, 최근에는
'없다', '있다'의 논쟁으로 번지기도 했다. 그러나 진정한 극일은 "가보니 아무
것도 아니더라"는 무인도 발견 CF식의 한탄이 아니라 "가보니 몇 천년 전부터
우리 것이더라"는 대륙적인 대일관의 정립과 공감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속으로 다시 한 번 되뇌어 보자 "아사히는 아침해. 독도는 우리 땅 일본도
우리 땅."
둘째 이야기: 해돋이와 히타치의 비밀
세계최대의 전자메이커 해돋이 사
일본어를 전혀 모르는 일반 독자들이라도 이미 잘 알고 있는 일본의
대표적인 브랜드가 또 하나 있다. 히타치(HITACHI)가 그것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종합 전자전기 메이커로 가전제품은 물론 컴퓨터를 포함한
정보통신시스템, 사회 인프라시스템 등을 취급하며 세계를 통틀어 약 33
만명의 사원을 거느리고 있는 일본을 대표하는 최첨단 기업 중 하나이다. 96
년도에 미 포천(Fotune)지가 선정한 세계 500 대 그룹기업 가운데서의 랭킹이
종합 13위, 전기산업으로는 세계 제1위에 랭크되어 있으며 계열회사가
913개에 이르는 실로 전세계적 거대기업의 하나이다. 이 그룹의 모기업 격인
히타치(일립) 제작소는 창업연도가 1910 년(명치 43 년)으로 일본인들이
자랑하는 역사적인 기업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회사의 이름이 바로 한국말이라면 놀라서 나자빠질 히타치의
직원들이 또 약 33 만명은 될 것이다. 열혈 우익계열의 젊은이들이라도 있다면
필자를 살해하겠다고 현해탄을 건너올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을 한일
양국의 학자들이 이미 증명하고 있는 명백한 사실이다.
히타치의 회사명은 일어로는 '일립'로 표기하는데, 이것 또한 아침해 맥주
아침해 신문만큼이나 똑 떨어지는 100% 한국어의 일본 사투리다(저자 주:
앞으로 우리의 주체성을 살리고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한국어의 일본
사투리로 간주되는 용어가 이 책에 다시 등장하는 경우에는 우리말로 바꿔서
표기하려 한다. 우리 독자들끼리 만나 이야기하거나 컴퓨터 통신을 할 때
이렇게 바꿔 부르는 채팅이라도 해보면 재미있을 것이다. 장래에는 이런
이야기들을 할 수 있는 인터넷 웹사이트를 꾸며 볼 예정이다.)
히타치의 '히'가 우리말 '해'에 해당한다는 사실은 앞에서 설명한 바 있고,
수많은 고명하신 학자들께서 한일 비교문화론을 통해 증명했으므로 다시
부언할 필요는 없겠다.
'히'가 '해'로 풀리면 다음은 '타치(tachi)'가 왜 우리말 '돋이(toji)'인지만
풀면 되겠다. 다른 현학적인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영어로 일본의 '립'이
'tachi'로, 한국어의 '돋이'는 'toji'로 발음되기 때문에 일단 자음의 배열과
뜻이 같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학자들의 연구결과를
빌려서 설명하면, 일본어가 고대 조선어에서 파생된(혹은 뿌리가 같은)
언어이기 때문에 현대의 일본어와 현대의 한국어 사이에 규칙적이고도 일정한
1 대 1의 대응^5,23^치환관계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조금 더 과학적으로 탐구
여행을 하고 싶은 이들은 이 장의 끝에 붙은 한국어와 일본어의 과학적인 1
대 1 대응관계를 연구 분석한 학자들의 이야기를 먼저 보아도 좋을 것이다.
한국의 표준말과 방언 사이에도 이러한 규칙성은 존재한다. 예를 들면
표준말의 '형님'이 방언 '성님'으로 'ㅎ'과 'ㅅ'사이에, '^36,36^라고 해도'의
어미가 '^36,36^락캐도'식으로 'ㅎ'과 'ㅋ'사이에 치환되는 경우다. 이 정도의
자음이 바뀌었다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국어와 일본어 사이에도 한국 내의
방언가에 존재하는 것과 거의 동일한 규칙적인 변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처럼 한일 양국의 학자들이 약 280 년간 연구해 온 한일 양국어의
발음대응규칙에 따라 변환된 사례에서 보듯이 ㅅ, ㅈ, ㅊ 등 3가지 치음
사이에서 현대 한국어의 'ji(지)' 발음이 일본어의 'chi(치)' 발음으로
바뀌었다고 보면 히타치와 해돋이의 수수께끼는 간단히 풀린다. 즉 히타치는
해돋이라는 한국어와 정확히도 자음에서부터 모음에 이르기까지 1 대 1로
대응하는 '한국어의 일본 사투리'인 것이다. 이제 나머지 하나, 모음인 아(a)와
오(o)가 서로 다르다고 다른 나라 말이라고 한다면 사투리의 정의조차 모르는
국수주의자이거나 이보다 더욱 협소한 지방주의자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한국말 사투리(saturi)는 지방의 고유언어, 즉 방언을 뜻하는데, 일본어에서
시골을 뜻하는 마을 '리'를 '사토'로 훈독한다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한국 현대어 '사투리'나 일본의 시골을 뜻하는 '사토'나 모두 '사토' '사투'라는
공통된 의미의 단어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히타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정리를 하자면 결국 히타치는 해돋이의
일본어 사투리, 보다 정확한 표현으로는 동경지방 사투리로, 이 한국말
'해돋이'의 일본식 사투리가 지금 세계 최대의 전기, 전자제품 메이커의
이름으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혹시라도 여러분이 쓰고 있는 일본 전자제품 가운데 히타치 제품이 있다면
속으로 다시 한 번 되뇌어 보자. "너 우리말 해돋이의 일본 사투리라며.
혹시라도 여러분이 거래를 하거나 비즈니스관계를 맺고 있는 회사 가운데
히타치 계열의 회사가 있다면, 그리고 조금은 사적인 전자메일이나 텔렉스라도
보낼 수 있는 상대회사의 일본인 카운터파트가 있다면 지금 당장 텔렉스를
하나 기안해 보자.
"어떤 책을 통해 여러분의 회사명인 히타치가 한국말 해돋이의 일본
사투리라는 것을 알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그 때문에 전망이
어두워 보이던 중요한 계약 하나가 성사될지도 모르겠다. 혹시라도 성공을
거두게 되면 필자와 같이 골뱅이를 안주 삼아 우리나라 맥주 한잔씩이라도
하면 어떨까.
그러나 계약 하나의 성사보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해돋이 전기사를 포함한
일본을 꿰뚫어 보게 될, 여러분의 무의식 속에 자리잡기 시작한 한일관계를
보는 전혀 새로운 '시각'이다.
(일본어를 한국어의 일본사투리로 직접 푸는 열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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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포인트 어드바이스)
학계에서 진행되어 온 여러 가지 언어학적 차원의 연구결과를 여기에서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겠고, 일본 역사서 중 가장 오래된 기록중의 하나인
고사기에서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정립된 한일 양국 학자들의 연구를 토대로
가장 단순한 몇 가지 규칙들만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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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5,23^일본어 사투리 변환 규칙 (자음편)
(1) 대원칙으로 같은 말을 해도 일본어는 한글의 받침에 해당하는 것이
없어서 받침은 그 다음 모음(주로 아, 으)으로 넘어간다.
예) 한글의 '감사합니다'가 일본식 발음으로는 '가무사하무니다'로 발음된다.
햄버거 집 '맥도널드'는 '마그도나르도'다.
(2) 한글의 ㅅ, ㅈ, ㅊ 등 처음은 대개 일본어에서 'ㅅ'으로 수렴되거나
바뀌는 경우가 많다.
예) 아침해 맥주의 한글 아침 ^25,135^ 아 ^25,135^ 아삼이 일본어에서
'아사'로 발음 됨.
(3) 한글의 ㄹ받침은 일본어에서 츠(tsu)로 바뀐다.
예) 한자어인 교실이 '교시츠'로 발음 됨.
(4) ㅂ, ㅍ, ㅁ 등의 순음(입술소리)도 서로 바뀌거나 소리가 엷어져
탈락된다.
예) 한자어인 막이 '바크'로 목이 '보크'로 모가 '보'등으로 발음 됨.
이외에도 그 규칙성에 대한 연구논문과 책은 필자의 서가를 하나 가득 메울
정도이지만 이 정도의 소개로 그치고, 필요할 때 인용하기로 하자.
셋째 이야기: 용비어천가 속의 시미즈
우주호텔을 건설 중인 샘물 건설
말이란 사회적으로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기에, 일본어 속에서
한국어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단어 하나를 발견 해 낸다는 사실 또한 엄청난
의미를 갖는다. 아침해 맥주, 아침해 신문, 해돋이 전기에서 보듯이 전혀
이질적이고 껄끄럽던 언어와 대상이 다른 빛깔을 띠고 다가오는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관점에서 한글, 그것도 현대어로 직접 풀어 낼 수 있는 현대
일본어를 5 년 동안 찾아서 수집했으며 지금도 그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필자에게 연락주시기 바란다.)
기업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것은 너무도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국적을
불문하고 일반인들에게 가장 인지도가 큰 것이 바로 '상표' 혹은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가장 유명하고 큰 기업일수록 태평양을 건너온 구미식
용어나 국적불명의 회사명이 아닌, 한국어의 동경 사투리를 회사명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너무도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회사의 이름은 '아침해'처럼 창업 당시부터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이거나 혹은 조상의 유업을 잘 이어가는 일본인 전통대로
가문의 이름을 딴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가문의 이름', 즉 '성'이라고
하는 것은 실은 1천년 이전에 한국에서 전래되어 조상 대대로 물려온 것이
아니던가. 한국어의 일본사투리가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예를 들어 시미즈 건설이라는 회사를 보자. 1 년 매출액이 1조 4천
7백억엔(약 13조 2천억원, 96 년 기준)에 달하고 세계의 최첨단 건설공법을
보유하여 세계적인 대규모 건설프로젝트를 따내면서 세계적인 토목학회상이나
건설상을 휩쓸고 있는 일본을 대표하는 건설회사의 하나이다. 최근에는
대표적인 실적만 해도, 93 년에는 유명한 싱가포르 '니안 시티'를 준공했으며,
독자적으로 개발한 건물 자동시공시스템인 스마트 시스템은 94 년 미국의
노바상을 수상했다. 94 년 큐슈의 미야자키에 건설된 실내 해변리조트인
시가이어 호텔 오션 45, 95 년에 준공된 세계 최대의 매장 면적을 가진
상해의 제1야오한 백화점도 이 회사의 작품이다. 이 회사는 지난 88 년부터는
미국의 건축 설계회사인 벨 앤트로티 사와 우주개발에 대한 업무 제휴를 맺고,
이듬해인 89 년 우주 호텔 구상을 내놓아 세계의 건축계와 학계를 놀라게
했다. 다음 세기에 지어질 초고층 빌딩이나 지하를 달리는 자기부상열차
시스템의 시공 등 이 회사의 첨단건설기술이 적용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이다.
그런 시미즈 건설의 이름 역시 아침해, 해돋이에 이어 똑 떨어지는 한국말의
사투리다. 필자가 처음 일본어를 배울 때, "일본 사람들은 참으로 이상한
사람들" 이라는 생각을 가졌었다. 같은 한자 문화권이면서도 왜 '조일'이라고
써놓고 아사히라고 읽는지 '일립'이라 써놓고 '히타치'라고 읽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를 않았다. 그러다가 그것이 '아침해'와 '해돋이'라는 한글의 동경
사투리라는 사실을 알고서야 비로소 의문이 풀렸던 것이다.
요즘도 일본사람들은 가타카나로 외래어를 표기해 놓고 그 위에 한자나 또는
자신들의 용어로 뜻을 병기해서 그냥 읽고 있다. 예컨대 요즘 전세계의 재계에
불고 있는 "대경쟁시대가 오고 있다"는 제목을 달아놓고 대경쟁시대 위에
가타카나로 영어인 메가 컴피티션이라고 표기하고 그대로 읽어버리는 식이다.
아침해도 해돋이와 마찬가지다. 한자가 전래된 덕분에 고유어를 한자라는
문자를 빌어 표기하면서도, 당시로서는 생소했을 중국발음, 즉 음으로 읽지
않고, 고유어인 아사히와 히타치로 읽은 것일 뿐이다. 그 덕분에 아침해와
해돋이라는 우리 한국어가 일본 속에서 살아남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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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비어천가에 웬 시미즈(?)
시미즈도 마찬가지다. 일본사람들은 왜 '청수'라고 써놓고 '시미즈'라고
읽는지 참으로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중국발음이 '칭수이'니
일본식으로 변형이 되더라도 적어도 한국식 '청수'와 비슷한 '쳉수'나 '칭수'
정도는 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했었다. 이러한 의문도 '청수'라는 것은
다만 한자를 빌어 표기한 것일 뿐, 실은 고유어를 표기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서야 비로소 풀릴 수 있었다. '시미즈(shimizu)'는 바로 한글
'샘물(saemmul)'의 동경식 사투리였던 것이다.
앞 절에서 한번 본 바 있는 한글 일본어 변환 규칙에 따라 이것을 정리해
보자.
(1) 우선 한글 샘물의 '새'는 아침해의 '해'가 '히'로 발음되듯, 복모음이
단모음으로 줄어들면서 로 변했다. 새 ^25,135^ 시. 고등학교 때 외운
용비어천가의 한 구절을 떠올려 보자.
' 미 기픈 물은.' 여기서의 미와 시미즈의 '시미'는 앞으로 보나
뒤로 보나 똑 떨어지는 같은 말이다. 미(saemi, 한글 15세기) ^25,135^
시미(simi, 일). 따라서 일본식으로 용비어천가를 읽으면 '시미즈 깊은
물은.'이 될 것이다.
(2) 다음으로 한글 '물'은 일본어 미즈가 되는데, 우선 한글의 받침 'ㄹ'이
일본에서는 'ㅊ'으로 바뀌는 말음 법칙이 적용된 다음, 'ㅊ'를 다시 치음간
변환에 의해 'ㅈ'으로 바뀌었다. 모음은 한글 '무'가 일본어에서 '미'로
변환되는 것이다. 물(mul,한) ^25,135^ 무츠(mutsu) ^25,135^ 무즈(muzu)
^25,135^ 미즈(mizu,일).
물론 무츠와 무즈는 존재하지 않는 용어이고 다만 한글과 일본어의
상관관계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 상정한 중간형태일 뿐이다. 그러나 한일간
사투리 변환법칙 두 개만 적용하면 '시미즈'의 의문은 그대로 풀린다. (1)과
(2)를 종합하면 한글의 '샘물'이 일본어 시미즈가 되는 것이다. 일본에 가서
일본말을 전혀 모르더라도 식당에서 그냥 '미즈'라고 하면서 손짓하면 물을
가져다 준다. 이것은 일본말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고대 조선어를 쓰는 사람이
타임머신을 타고 타임슬립한 격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당신은 고대 조선어를
발음했는데, 일본 사람들은 그 소리를 물로 알아듣는 것이다. 그렇다고 '미네럴
워터'를 달라는 말까지 '청수'(시미즈)라고 했다가는, '시미즈'라는 이름을 가진
우락부락한 점장이 나타날지 모르니 조심하도록. 미네럴 워터는 요즘
일본에서도 역시 미네럴 워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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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물'이라는 이름의 명소들
다시 시미즈를 사명으로 쓰고 있는 시미즈 건설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이
대단한 일본의 대표적인 건설회사에 한국말 '샘물'의 동경 사투리인
'시미즈'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은 무려 2백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04
년, 당시 일본 연호로는 문화원년이던 해에 시미즈 가스케라는 사람이 에도,
즉 지금의 동경 간다라는 곳에 자신의 성을 따서 '샘물' 건설을 창업한다.
'간다'는 왕궁 근처에 여러 장이 섰던, 우리의 종로 거리에 해당하는 것으로
'가지렁이'라는 곳은 말 그대로 대장간과 목수 등이 있던 육전 거리의
하나였다. 이 샘물 건설사는 창업초기에는 에도성 서환건축공사에 동원되는
전통적인 목수집이었으나, 1859 년 창업자의 사위인 세이시치가 가업을
물려받아 개항 항구였던 요코하마로 진출하면서 운이 트이기 시작한다.
요코하마에서 당시로서는 서양식 건물 건축기술을 터득한 그는 10 년도
지나지 않은 1868 년 일본 최초의 호텔인 동긴자의 쓰키지 호텔을 준공한다.
1872 년에는 일본 최초의 은행 제1 호점인 제1국립은행을, 1907 년(명치 40
년)에는 일본 최초의 본격적인 철골구조건축물인 마루젠백화범 본점 건물이 이
샘물사에 의해 준공된다.
일본이 패전한 이후로 최초로 일본인들의 자존심을 세워 준 1964 년
동경올림픽 때는 요요기 실내종합 경기장을 준공했으며 1973 년부터는 세계
각지에 현지법인을 설립하기 시작했고 현재는 일본 국내에만 38개의 각종
부동산과 건설 관련회사를 보유한 종합 건설^36,36^부동산 그룹으로 성장해
있다.
이 샘물회사가 지난 1980 년 나라지방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인 도다이지의
대불 대수리를 맡아서 한 것은 역사적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 대불은
동양 최대급 청동불상으로, 바로 한반도의 기술자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만들어준 대표적인 첨단 수출 건축물이 있기 때문이다.
'시미즈'라는 이름을 회사명으로 쓰고 있는 또 하나의 대표적인 기업은
시즈오카현의 시미즈 은행인데, 이 은행도 1881 년 설립되어 1백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유서 깊은 지방은행 중 하나이다. 이 은행에 시미즈라는 이름이
붙게 된 유래도 재미있는 것이지만, 더 재미있는 이야기는 뒤에 나올 장들을
위해 여기서는 아껴두기로 하자.
동경 아카사카 프린스 호텔 근처에 갈 일이 있으면 바로 옆에 붙어있는
유명한 요정 '시미즈' 간판도 눈여겨 보아둠직하다. 요정을 정치의 장으로
이용하는 일본의 정치인들에게 대단히 유명한 명소중의 하나로서, G7 등 많은
굵직한 회의들이 이곳을 2차 술자리로 이용했다.
넷째 이야기: 어깨동무와 스미토모 사이
일본 기업의 산 역사인 주우가 한국어(?)
이 정도 읽어 내려온 독자들이라면 웬만큼 일본사투리를 한국어로 풀 수
있는 나름대로의 안목을 가지게 되었으리라고 믿는다. 혹 일본어를 외국어로
배우겠다고 학원을 몇 달 다니다가 포기한 분이나 독학으로 일본어 정복에
도전했다가 책 위에 먼지만 수북히 쌓아 놓고 있는 분들은 지금 그 책들을
꺼내 놓기 바란다. 외국어로 보던 일본어와, 이미 여러분의 언어중추 속에
살아 숨쉬고 있는 한국어를 200% 활용하여 일본어를 한국어의 일본지방
사투리라고 보면서 공부하는 것 같은 일본어인데도 얼마나 차이가 많이 나는지
한 번 느껴 보기 바란다.
사실 지금까지 일본어 교재 중에는 이런 의미에서 한국어와 연관성을
논하면서 한국인 전용으로 만들어진 것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여러분이 그동안
접했던 일본어 교재들은 대부분 한자를 모르는 구미인 용으로 큰 대 작을 소
의 한자교본부터 시작된 것을 그대로 한글로 번역한 것이거나, "그냥
외국어이니 암기하는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만들어진 회화책들이었을 것이다.
중급 일본어 수준이 되면 같은 한자문화권에 속하는 두 언어간의 유사성
속에서 이 책과 비슷하게 자음규칙과 모음규칙을 정리한 한자읽기 교본 등이
있으나, 어디까지나 외국어로서의 일본어를, 그것도 단순히 한자 읽기의
규칙만을 정리한 것이어서 일반 독자들 역시 필자처럼 오히려 상당히 헷갈린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한일 비교언어론쪽에서 정설화된 것들을 모아 여기에 정리한
일정한 한일 사투리 교환법칙들은 비단 한자뿐 아니라 일본어를 처음 대하는
사람들이 가장 골치를 썩히는 고유어의 요미가타까지 그대로 한글로 풀어
낸다는 데 의미가 있다 하겠다.
이런 관점에서 이 책을 읽는 동안 여러분의 뇌리 속에서 서서히 자라났을
일본어를 한글의 동경사투리로 보는 의식을 십분 활용하여 지금까지 다뤘던
'아침해'나 '해돋이', '샘물'보다 한걸음 더 나간 단어가 없겠는지 추리해 보자.
이미 소제목에서 눈치를 챈 분들도 있겠지만 일본의 또다른 대표적 기업
스미토모의 이야기다. 히타치만큼이나 일본의 기업명칭 중에서 세계적으로
알려진 브랜드의 하나가 바로 스미토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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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깨동무 할까?
해돋이 회사나 아침해 회사와는 격이 다른 오래된 회사가 이
스미토모사이다. 이 중 세계 최대급의 고로를 가지고 있는 스미토모 금속은
스미토모 그룹 안에서도 가장 오래 된 주력기업중의 하나이다. 스미토모
가문에서는 1590 년, 그러니까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2 년 전에 교토의 절거리
5번지에 조그만 동 제련방을 하나 만들어서 사업을 시작했다. 이 스미토모
집안은 16세기 후반 당시로서는 신기술이던 남만식 불기 제련법을
외국으로부터 도입하여 일본 광공업의 기반을 닦았다. 지금은 철강사업을 비롯
건설, 플랜트, 엔지니어링, 전자, 바이오 메디컬 사업 등 각종 첨단분야에
진출하여 세계적인 기업을 지향하고 있다. 세계를 주름잡는 일본 자동차의
배후에는 자동차에 필요한 경량형 자동차용 보디 강판을 만들어 낸 스미토모
금속이 있다. 철강생산량은 일본 내에서 3위에 그치고 있지만, 그 오랜 역사와
무수한 다른 방계 기업들로 인해 일본인들은 한국인의 포항제철 정도로
자부심을 느낀다는 기업이기도 하다. 세계적인 축구스타들이 소속되어 있는
가지마 안트라스 축구팀의 소유주이기도 하다.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는 또 하나의 기업이 스미토모 은행이다. 스미토모
계열사로 1895 년(명치 28 년) 창업된 이래 탄탄한 일본 엔화를 상징하는
기업으로 성장하다가 86 년에는 유명한 골드만 삭스사에 투자한 것을 기회로
세계 금융 시장에도 활발히 진출하였고 88 년에는 파리증권거래소에, 그
이후에는 런던증권거래소에 각각 상장되기도 한 기업이다.
이처럼 일본의 대표적인 회사의 이름이자 언어상으로도 '스미(주)'와
'토모(우)'라는 전형적인 일본어가 결합된 이 회사의 이름이 한글의 일본
사투리라고 한다면, 이번에는 스미토모사 직원 몇 십만명 정도가 아니라
스미토모의 고향격인 시코쿠 섬 주민 전체가 뒤로 자빠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그동안 아침해에서 시작하여 하나씩 증명해 온 바와 같이 이것 또한
명백한 사실이다. 다만 앞에 나온 간단한 단어들과는 달리 그 변화의 단계가
조금 깊어졌을 뿐이다.
우선 토모부터 살펴 보자. 토모는 우리 나라의 현대말인 동무와 1 대 1로
대응하는 한국어의 일본 사투리다. 앞의 자음규칙에서 한글의 받침이
일본어에서는 그 다음 음절로 넘어가는 것('감사합니다'가 '가무사하무니다'의
식)은 알고 있을 것이므로 눈치 빠른 분들은 이미 이해를 했을 것이다.
'동무'의 영어표기는 'tong-mu'로서 맨 첫음절이 우리의 ㄷ(d)보다는 ㅌ(t)에
가깝다. 일어의 '토모'는 영어로는 'tomo'로서, 우리말 'tong-m'에서 받침인
이응(ng)이 탈락하고 뒷 모음인 'o'가 'u'로 변한 것일 따름이다. 동무(한)
^25,135^ 도무('ㅇ' 탈락) ^25,135^ 도모^236,56^모음 변이(일)^23,356^.
우리말 동무와 일본어 '토모(tomo)'간의 상관관계는 이미 여러 학자들의
논문에 의해 증명이 끝난 것이므로 재론의 여지가 없다.
'토모'라는 일본어는 '동무'라는 우리의 순 고유어로 풀렸으니 이제는
'스미'를 살펴보도록하자. 이 '스미'가 왜 우리말 살 주로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있다. 그러나 언어학을 전공할 사람이 아닌 바에는 이 '스미'역시
우리 현대어의 '삶' 혹은 '숨'에 해당하는 1 대 1 대응어라는 사실만 알면
된다. 한국에서도 '삶'에서 'ㄹ'을 표기는 하지만 실제로 소리는 나지 않는
것처럼 삶 ^25,135^ 삼, 숨 ^25,135^ 스무 ^25,135^ 스미 식으로 대응한다고
풀면 되겠다. 학자들에 따라서는 직접 '숨(한) ^25,135^ 스미(일)'로 풀기도
한다. 그러나 '숨'은 현대 한국어에서 '생명'을 표현하는 단어로 바뀌었으므로,
우리말로 의역을 할 때 일부러 가장 가까운 연관관계가 있는 '삶'과
대응시켰다. '삶의 동무이든 숨쉬기 동무이든, 너무나도 한국적인 한국말의
동경 사투리가 되는 것이다.
독자들 중에는 아스라한 추억 속의 어린시절 동네 골목길이 연상될지도
모른다. "어깨동무 새동무 미나리밭에 앉았다" 우리가 어깨동무 삶동무(혹은
숨동무) 미나리밭에 앉았다고 노래하면, 이를 들은 일본어를 조금은 아는
미국인들이 이렇게 얘기할지도 모른다. "그 숨동무(sum-tong-mu)의 자음
배열은 일본어의 sumi-tomo와 기가 막힐 정도로 똑같다."
"당연하지. 우리말의 동경사투리인데."
이를 우리말로 의역하면 영락없는 어깨동무다. 혹시라도 가까운 시일 내에
상담을 하게 되는 일본, 그것도 스미토모 그룹의 친구가 있다면 농담을
걸어보자. "당신네 스미토모 회사의 이름이 우리말로 어깨동무인데 우리도
사업의 파트너로서 어깨동무나 할까" 이 한마디로 그와 평생친구가 될지도
모른다. 혹시라도 그쪽이 마음에 드는 이성이라면 더욱 더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나중에 필자에게 국수 사줄 일이 생기게 될는지도.
다섯째 이야기: 어감으로 풀어 보는 일본섬 사투리
NHK에서 흘러나온 '광화문 연가'
이야기가 너무 복잡하고 딱딱한 쪽으로만 흘러버린 것 같으니 쉼터에서 조금
가벼운 주변의 이야기로 한숨 돌리고 가자. 필자가 일본어를 처음 배울 때의
일이다. 일본어가 외국어가 아니고 한국어의 일본섬 사투리, 혹은 동경
사투리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들이 몇 차례 있었다.
대학을 졸업한 지도 10 년이 가까운 시점에서 업무를 위해서 3개월 내에
일본어를 마스터하라는 회사의 지시로 모든 것을 전폐하고 마치 절집에
고시공부하러 들어간 심정으로 동경대 근처의 센다기라는 하숙촌에서 3개월간
틀어박혔다. 그런데 도대체 단어는 외우고 외워도 왜 며칠만 지나도 그리도
하얗게 까먹게 되는지. 에어컨도 없는 방에서 겪는 일본의 무더위는 왜 그리도
북쪽 본토에서 건너온 학승을 쪄대는지.
책 속의 일본어들은 한자로는 대강 뜻은 알겠는데, 도대체 이 한자가 이런
골치아픈 훈독이 되는지 의문이 끝을 모르고 있었다.
그 하숙방에 유일한 가구다운 가구이자 유일한 가전제품이 하나 있었다면
하루종일 반송을 하는 텔레비젼이었다. 일본의 텔레비전 방송은 뉴스에서 일반
프로그램까지 한국과는 차원이 다른 다양한 방송을 하는데 학업의 무료함을
달래고 일본어 듣기를 하루라도 빨리 마스터하기 위해 공부를 하거나 책을 볼
때도 작은 소리로나마 텔레비전을 틀어놓곤 했다.
그러던 어느 여름밤의 일이었다. TV에서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
대중가요가 흘러나오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시선이 그쪽으로 옮겨졌다. 그것이
나중에는 '미소라 히바리'라는 유명한 가수의 '강물이 흘러 가듯이'이라는
제목의 노래라는 것을 알았으나, 겨우 일본어 공부 2개월째로 접어 든 초보
중의 초보로서는 그것이 어떤 노래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 노래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찡하는 감동을 느꼈다는 것이다.
"아아 가와노 나가레노 요우니(아 강물이 흘러가듯)." 흘러가는 그
가사들이 일본어에 아직 초보였던 필자의 의식으로는 뜻을 모르는 단어의
나열에 불과했음에도, 조각조각 어슴프레 들어오는 단어 하나하나가 필자의
가슴속을 파고들어 그 노래의 말뜻을 그대로 인식하며 뭉클한 감동을 느끼게
된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논리보다 무의식이 한국어와 일본어라는,
인위적으로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벽을 먼저 뛰어넘은 결과였겠지만, 당시에는
그냥 "일본인들의 감정은 우리와 비슷한 점이 많은가 보다"하는 정도로만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일본어 공부가 3개월 되었을 때 이상한 일이 또 일어났다. 업무상의
필요 때문에 국제면허를 가지고 동경 시내 지리를 익히기 위해 자동차를
운전하면서도 뉴스라도 들으려고 NHK를 틀었는데 이상하게 한국에서
좋아했던 이문세의 노래가 방송에서 나오는 것 아닌가. 그러나 착각은 불과 몇
초뿐. 자세히 들어 보니 이문세와 너무도 음색이 비슷한 일본가수가 분명히
일본어로 부르는 노래였는데, 운전 중에 얼핏 듣기에는 영락없는 광화문
연가였다. 이때도 "한여름에 공부를 너무 하다 보니 약간 맛이 간 모양"이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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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뉘앙스의 일본인 아나운서
그런데 바로 그 주부터 본격적인 NHK 뉴스 듣기 연습에 착수했는데, 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한 여자 아나운서의 뉴스 내레이션을 몇 번이고 듣고
이를 독해한 후 따라하는 연습이었는데, 원고 없이 처음 들은 NHK 여자
아나운서의 억양이 어디서 많이 들어본 억양이었다. 어디서 들었을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무릎을 쳤다. 정치부에서 중앙청, 외무부와 통일원을 출입할 때,
남북대화 사무국에서 당시로는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던 비밀사항이던 북한
평양방송을 원문대로 듣고 기사를 작성하곤 했는데, 전혀 다른 일본의
아나운서 억양이 이전에 들었던 북쪽 아나운서와 너무도 유사하게 들렸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이상한 일들의 시작에 불과했다. 동경생활 1 년쯤
지났을 때, 완전히 머릿속에 한국어와 일본어가 언어학적으로
바이랭귀지(bi-language)로 자리잡아 직독직해를 하는 정도까지 됐는데,
이번에는 가끔 급할 때 머릿속에서 서로 외국어 사이어야 할 한국어와
일본어의 구분이 때때로 애매해지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서울서 오신
분들과 일본손님들간의 동시통역을 진행하다 보면 논의가 매우 진지하고
속도가 빨라지는 경우 그 자리에서 메모없이 한국손님의 한국어를 일본어로
번역해 일본손님의 얼굴을 보면서 이야기하고, 일본손님의 일본어를 한국어로
번역해 한국손님의 얼굴을 보면서 이야기하는 핑퐁 게임 같은 장면이 종종
벌어지곤 한다. 이때 처음에는 이같은 순서를 틀릴 이유가 없고 통역도 잘
진행되는데, 논의가 한참 진행되다 보면 급하다 보니 한국손님에게 일본어로,
일본손님에게 한국어로 순서가 뒤바뀌는 일이 가끔 일어나곤 한다. 물론
시간이 급하고 템포를 잃다가 한두 번 발생한 일이라 손님들이 의식할 정도의
것은 아니었지만 본인은 무척이나 당황했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은 이 책에서 정리하고 있는 주제를 위해 자료를 수집해
가는 동안 너무도 쉽사리 풀렸다.
일본어 '아이으에오' 한글식으로는 '가갸거겨'를 배우면서도, 미소라 히바리의
노래를 듣고 감동한 것은 '가와노 나가레노 요우니'라는 노래가사 속의
일본어들이 우리 옛말의 동경 사투리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가와(kawa)'는 우리말 (karam)에서 ㄹ(r), ㅁ(m)이 탈락하고
모음이 ^4,5,3456,5,5,3456,26^(한) ^25,135^ 가라무 ^25,135^ 가라 ^25,135^
가와(일)가 변해 된 것이다. '^^36,36^의'라는 뜻을 가진 '노(no)'도 우리의
'의'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조사이고 '나가레'는 우리말 '흐름', '요우니'는
'양태로'라는 한글과 그대로 대응하는 것이니, 그대로 우리말의 동경사투리로
들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NHK 여자 아나운서의 목소리와 억양이 북한 아나운서의 억양과 비슷하게
들린 것은 옛 고구려유민들이 넘어 온 곳은 일본이라는 점에서 새삼스레 놀랄
것도 없고, 향가를 만들었고 일본어의 히라가나와 가타카나의 원형인 이두조차
원효대사의 자제분(설총)이 정리한 작품이니 이런 모든 것들이 현재
일본젊은이들이 즐겨 부르는 호리우치 다카오의 노래를 이문세의 음색과
착각하게 만든 것이다.
한국어와 일본어가 동시에 호환성을 갖게 된 것도 마찬가지다. 일본에서
자라나거나, 혹은 일본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동시통역사분들과 비슷한
이야기를 화제로 삼은 적이 있는데, 그들 중에도 상당수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다른 에피소드들도 많지만 지면상 생략한다.
이 수많은 에피소드들의 발생원인은 단 하나다. 컴퓨터식으로 이야기하자면
버전(판)만 다르지 두 언어가 실은 같은 MS-DOS(고대^36,36^중세 한국어)
상의 호환파일이므로 다를 수가 없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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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는 서울 표준어의 동경 사투리
방언 혹은 사투리도 마찬가지다. 언어학적으로는 사투리를 한 나라의 언어
중에서 지역에 따라 발음, 의미, 어휘, 음운, 어법 등이 표준말과 다른
말이라고 규정하는데 이 정의 가운데 '한 나라의 언어 중에서'라는 대목은
국경이 지금처럼 존재하지 않았던 고대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즉
어느 언어나 어느 지방, 계급층에서만 국한되어 쓰이는 말에 불과했던 것이다.
유럽통합의 예에서 보듯 나라의 개념이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없어지고
글로벌화할 다가오는 21세기에도 또 다시 '한 나라의 언어 중에서'라는 표현은
의미가 없어진다. 서울 표준말과 제주도 방언이 다른 정도보다 서울말과
동경말이 더 비슷하다면 서울말을 표준어로 쓰는 필자의 관점에서 볼 때
동경말은 딱 떨어지는 서울말의 동경 사투리이다.
길게 남북으로 늘어서 있는 섬나라인 일본 열도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남쪽의
오키나와 고유어와 북쪽 홋카이도에 사는 아이누족의 고유어는 아^36^예
어족자체가 틀릴 정도로 서로 다른 말이다. 단지 같은 나라 혹은 같은
일본이라는 인위적인 국적경계 속에 들어 있기 때문에 오키나와 말과 홋카이도
말은 방언관계에 있고, 훨씬 비슷한 한국말과 일본말은 서로 외국어 관계라는
것은 엄청난 논리의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는 우리도 이같은 인간이
만든 의식의 감옥 속에서 살아왔지만 이것은 앞으로는 있을 수 없는 얘기다.
일본어와 한국어의 이러한 유사성을 일본어는 한국어의 일본 사투리라고 이
책에서처럼 딱부러지게 정의한 논문은 아직 없었다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문제는 이 글을 읽는 이 순간부터 더 이상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관심이 말보다는 다른 쪽에 있거나, 참지 못해 이 책의 뒷부분을 미리 읽어 본
독자들은 이 말 뜻이 무엇인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제 3 년이면 우리의 일기장 첫줄마다 올라 붙게 될 2000 년, 21세기는
이른바 글로벌 시대이다. 인간이라는 지구의 붙어사는 고등생물들이, 그것도
현대에 들어와 자기들의 정치적 혹은 역사적인 편의에 의해 규정지은 개념일
뿐인 국경이나 나라의 개념은 더 이상 현재와 같은 개념으로는 존재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오히려 아무런 국경도 없이 배를 타고 가다가 바람이 강하게 불어
동해상에서 표류하게 되면 며칠 후에는 현재의 큐슈지방 후쿠오카 언저리에
닿곤 했던 1--2천년 전의 그 원래의 상태로 다시 돌아가게 되는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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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살아있는 박물관
이쯤되면 독자들 중에는 일본을 거꾸로 본다면서 왜 자꾸 복잡해 보이는 말
이야기나 기업 이야기만 하는지 모르겠다는 분이 있을지 모른다. 역을 그런
궁금증을 갖고 계신 독자들을 위해 일단 말에 대해 조금 설을 풀어 보자.
많은 언어학자와 인류학자들이 연구를 통해 지적하듯, 이상하게도 말이라는
것은 인간의 생활에 있어서 유전적인 요소가 가장 강한 것 중의 하나이다.
의,식,주 등 인간생활의 다른 모든 기본적인 요소는 다시 만들 수 있고
고쳐지기도 하지만, 어릴 적에 한 번 붙어버린 말투와 억양은 평생토록 변하지
않는다. 황룡사 9층석탑은 세월이 지나면 없어 질 수 있어도 신라의 향가 속에
살아있는 옛 신라말들은 지금 우리의 현대 한글 속에서도 면면히 이어져
숨쉬고 있다. 세계인들이 부지런히 찾아오는 서울은 신라어의 서라벌의 변형이
아닌가 서라벌에서 '라'와 'ㅂ'이 떨어져 나가고 모음 '어'가 '우'가 되었을
뿐이다. 신라어를 아르헨티나 말이라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며, 의당 고대
한국어로 분류할 것이다. 그래서 다른 이름들은 다 한자화하고 외래어화해도,
'서울'이라는 우리의 가장 중요한 단어 만큼은 몇 천년 동안 비슷한 발음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다른 모든 문화유산들, 특히 유형적인 건물이나 무덤이나
유물들은 일정한 세월이 지나면 결국 소멸되어 없어지지만, 유독 언어 만큼은
마치 DNA속에서 선천적으로 유전된 형질인 것처럼 조금씩 변형은 되지만,
원래의 의미와 그 형태를 지니면서 전승되고 있다. 마치 시대와 유행의 변화에
따라 옷만 갈아입은 것일 뿐 그 속의 몸은 하나인 것과 같으니 식이다.
이 법칙은 일본열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만 일본의
지명과 역사를 다룬 다음장에서 증명하는 바와 같이, 한반도 도래인이 건설한
옛 식민지인 6--7세기의 일본열도에는 당시에 어떤 언어가 있었겠는가.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왕인 박사를 통해
한자만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간 것이 아니고, 일본인들이 한자를 읽는
방법, 즉 요미가타라고 하는 것까지도 실은 그대로 옮겨진 것이라는 점이다.
그것을 확실히 알 수 있는 사례가 바로 '반야바라밀다심경'이다. 이 경전은
불교의 주기도문 격으로 불자라면 어느 집회에서나 외우는 경전에 만큼 경전인
만큼 그 읽는 방법(요미가타)은 정밀하게 전수되어 왔다. 다른 생활어나
전래된 고유어도 아니고, 존엄하신 부처님의 말씀을 옮겨 적어 놓은 경전이니
함부로 읽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엄격하고 정교한 발음 주석이
붙어 있어서 지금도 스님들은 그 옛 경전 그대로를 읽는데, 그 당시에 비해
격식이 조금 달라지고 발음이 조금 현대화된 것을 제외하고는 일단 발음
주석대로 경전을 읽는다는 점은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 가운데 현대화된 일본의 한자발음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고어식의 발음이 많다는 것이다. 요컨데 이 경전의 한자발음이 한국식의
한자발음과 너무도 유사하다는 것이다. 우리의 반야바라밀다심경은 '관자재
보살 행심 반야바라밀다시.'로 시작하는데 일본의 경전 읽기도 비슷해서
'칸지자이보사츠 코신 바느야바타미츠타시' 정도의 발음으로 소리가 난다.
흥미를 느끼는 분은 일본 절에 들러 일본 스님들이 이 경전을 읽을 때나,
읽는 방법이 적힌 경전을 구하거나 혹은 녹음테이프 등을 구해서 읽어 보시기
바란다. 금새 우리 발음과의 대단한 유사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현대 일본어의 원형(prototype)이 당시 점령군이자 통치계급이며,
개발형 식민주민이었던 고대 한반도인들의 언어, 즉 고대 한국어이다 보니
현대 일본어에서도 그 원형이 그대로 남게 된 것을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여섯째 이야기: 동경 표준어는 제주도 사투리의 사투리?
혜은이의 '감수광'과 '이키마스까' 사이
이야기가 소프트해진 김에, 보다 우리에게 친숙할 만한 이야기를 하나 더
하자. 혜은이라는 가수의 '감수광'이라는 노래를 아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신세대들을 위해 첨언하면 '감수광 감수광 날 어이헐렌 감수광(가십니까
가십니까 나는 어떻게 하라고 가십니까)'라는 제주도 사투리를 가사에 넣어
히트했던 70 년대 애창가요 중 하나다. 앞으로의 논의를 위해 이 말의 제주도
사투리를 더 정확한 표기로 하면 감수강은 '감수가' 혹은 '감수까' 영어로
'kam-su-ka'로 표기할 수 있다.
여기서 풀어볼 문제는 일본어의 '이키마스까'다. 초급 일본어를 이수한
정도의 일본어를 알고 있는 독자들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문장이다. 한국말로
"가십니까?" "갑니까?"에 해당하는 일본어다. 문법책에는 '이크(가다)'라는
동사원형의 조동사 마스의 의문문인 '마스까'를 만나 'i'형으로 변해
'이키마스까'가 되었고 한국어로 "갑니까"라는 뜻으로 간단하게 설명되어 있다.
대체 왜 '행(갈 행)'자를 '이'라고 읽는지, 왜 '마스까'가 '^36,36^입니까'인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선생님에게 이유를 물으면 "외국어니까 그냥 외워라"는
답을 들어야 했다.
우리는 여기서 다른 해석과 접근을 하려 한다. 우선 이키마스까를 영어로
풀어보자. 'iki-ma-su-ka'. 그리고 이것을 머릿속에서 오려서 위칸의
'kam-su-ka'와 겹쳐 보자.
한국의 제주도 방언: ka-m-su-ka 가^36^ㅁ^36^수-까
일본어 표준말: iki-ma-su-ka 이키^36^마^36^스-까
뭔가 핑 하고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을 것이다.
바로 당신의 직감 그대로다. 맥도날드 햄버거를 아무리 반복해 들어도
일본사람들에게는 '마그도나르도'다. '감수까'라는 제주도 사투리를
일본사람들이 들었을 때 어떤 음절로 인식하고 어떻게 발음할까.
카무스까(ka-mu-su-ka)다. 즉 '가다'라는 한국어 표준어, 보다 엄밀히 말해
서울 중부지방 방언의 어간 '가'는 변하지 않고 그냥 제주도 방언 속에도 남아
있고, 이에 해당하는 일본어 '이키(iki)'만 다를 뿐 어미는 양쪽이 놀랄 만큼
똑같다. 이 '이키'라는 말에도 고대 한국어가 숨어 있지만 그것은 다음 기회에
풀어보자.
일본쪽에서야 다른 말을 할 수 있겠고, 식민지 시절 한때는 순진한
조선민중에 대해 마치 자신들이 한반도를 지배한 민족이었다는 식민사관을
주입시키곤 했다. 이것은 마치 일본 일왕들이 자신들의 조상신인 한신을
모시고 궁중에서 해마다 제사를 지내는 근본을 밝혔던 동경대학의 역사학자
구메 구니다케 교수가 1891 년 자신의 논문 때문에 황국주의자들의 비판을
받고 동경대학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겪었던 것과 차원이 같다 하겠다. 그러나
진실은 밝혀지는 법. 다만 시간이 좀 걸릴 뿐이다.
위에서 증명됐듯, 우리 한국인에게 일본어의 '^36,36^입니다'라는 뜻의 어미
'마스'는 제주도말의 일본식 방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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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수십 번씩 제주도 사투리를 쓰는 일본인들
일본인들은 참으로 예의 바른 사람들임에는 틀림이 없다. 말끝마다
'부탁합니다'는 뜻의 '오네가이시마스'를 빠뜨리지 않는다. '미안합니다'는
'스미마셍'은 '마스'의 부정형 '마셍'을 쓰고 있다. '않습니다'는 우리말처럼
'ㄴ'음절을 추가해, 부정의 뜻을 나타내고 있다. N(n)발음으로 부정을 나타내는
것은 영어의 NO처럼 다른 구미어에서도 마찬가지이니, 참으로 인간의 언어는
오묘한 부분이 있다.
이런 말뿐 아니라 우리도 '^36,36^입니다'라는 말을 하루에도 수십 번은 쓰게
된다. 이렇게 일본말을 하는 일본인이라면 하루에도 수십 번 이상 쓰게 되는
'마스'가 한국 제주도의 사투리라는 것이 증명되었으니, '일본어는 한국어의
동경 사투리'라는 말이다.
'마스'뿐 아니라, 일본어가 우리 제주도 사투리라는 것을 증명하는 또 다른
대표적인 예가 '어서 오십시오'라는 뜻의 '이랏샤이마세'다. 일본을 방문하거나,
순 일본식으로 경영하는 일식집에 들어갔을 때, 수십 번은 듣게 되는 소리가
'이럇사이마세'다. 자주 그 가게를 이용하는 단골손님이 되면 줄임말로
'이랏샤이'라고 친근하게 인사를 받게 된다.
이 '이럇사이마세'도 완벽하게 제주도 사투리로 분해^5,23^해석되는
제주도말의 일본 사투리다.
한국의 제주도 방언: irusi-masi 이르시^6,3^마시
일본어 표준말: irashai-mase 이랏샤이^6,3^^마세
우선 '이랏샤이+마세'로 끊어 보자. '마세'는 사전에도 공손의 조동사 마스의
명령형으로 경어 동사에 붙어 '^36,36^하십시오' '하세요'의 뜻으로 쓰인다.
마스가 제주도 사투리이니 이것도 당연히 제주도 사투리의 원형(prototype)이
그대로 남아 있다. 제주도에서는 '하세요'의 뜻, 혹은 '하십니까'라는 경어
의문문의 뜻으로 윗분에게 '마시' 혹은 '마슴'이라는 말을 쓴다.
'경헌가마슴?'하면 '그런가요?' '그러십니까'라는 뜻이 되고, '어떵 허렌
마시?'하면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라는 뜻이 된다. 일어의
'마세(mase)','마센(masen)'과 제주도 사투리의 '마시(masi)','마슴(masum)'은
모음 하나만 다르고 몇 백년이 넘도록 그 원형에 가깝게 서로 발음되어 왔다는
것은 실로 신기에 가깝다.
'이랏샤이'는 우리말 '이르심'정도로 대응시키면 되겠다. 모음은 조금씩
사투리가 섞여 있어도 자음이 똑같고 어미 '마세', '마시'가 같은데 사투리
관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앞으로는 일본식당에 들어가서 '이랏샤이마세'를
들으면, 그 말뜻을 그대로 제주도 사투리로 인식해도 좋고 시간이 남으면 그
집주인에게 그것이 제주도 사투리임을 알려주자.
일본인들의 입버릇인 '마스'와 '마세'가 제주도 사투리라는 말을 듣고
이번에는 일본 열도 1억 2천만 인구가 모두 뒤로 넘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인데 어쩌랴. 이불 수출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앞으로 일본은
좋은 시장이 될 것이다. 적어도 뒤로 넘어져 머리 깨지는 사람이 없도록
해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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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쟈나이'와 '좋잖아'
말 이야기만 너무 길어진 것 같고, 다른 장들도 뒤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으니, 말 많은 말 이야기는 이 정도로 매듭지을까 한다. 학문적으로, 그리고
보다 전문적으로 들어가면 몇 권의 책으로도 모자랄 것이고, 이같은 말
하나에만 초점을 맞추자는 것이 본고의 원래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앞으로의 여행을 통해 일본과 접하면서 발휘하게 될 여러분의 상상력을 위해서
몇 가지는 짚고 넘어가겠다.
그 하나는 주지하다시피 우리말과 일본어의 습관이 너무도 비슷하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토대로 여러분의 상상력을 동원해서, 한국어와
비슷하거나 혹은 비슷하게 추리될 만한 일본어들을 찾아보면 매우 흥미롭다.
예를 들어 '캡이다'라는 요즘 학생들의 은어를 예로 들어보자. '아주 좋다,
최고다'는 뜻인데, '캡틴(대장)'이라는 영어 '^36,36^이다'를 붙여 형용사화
했다. 일본학생들과 젊은이들이 쓰는 말 중에는 '마그루'라는 말이 있다.
'마그'는 '맥도널드 햄버거'의 준말로, 직역하면 '맥도널드에 가다'이다. 반대로
'모스 버거집에 가다'는 '모스루'이다 "배고픈데 뭘로 할까"는 "좋아. 그런데
마그할까, 모스할까"는 이런식이다. 가장 일상생활에 밀접한 외래어는 놀랄
만큼 빨리 수입해 그대로 쓴다. 그러나 그 조동사나 어미 등은 부모로부터
유전된 그 언어를 그대로 쓴다.
이 습성을 한일간에 국경이 없던 그 시기에 대입하면 어떤 결론이 될까.
적어도 앞에 붙는 외래어나 유행어는 당시에도 비슷하게 변하고 없어지고 했을
것이다. 한국의 향가나 일본의 만엽집도 당시에만 유행하던 은밀한 유행어가
너무 많이 들어 있는 일종의 대중가요이기에 1천년 이상 지난 후세의
감각으로는 해석되지 않은 부분이 있음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요즘의 H.O.T
등등의 가수 이름을 1천년 후 자손들이 다른 아무런 자료없이 들으면 어떤
해석을 내릴까. 기상천외한 해석들이 쏟아질 것이다. 결국 위로부터 유전된
언어의 핵심만 남아 유전되고 원형이 보존됐다. 마스(masu)같은 조동사나
어미, 아침해나 스미토모처럼 나중에 회사이름으로 유전된 가문의 성씨,
반야바라밀다심경에서 보듯 경전 읽는 법 등 시대가 바뀌어도 후대가 감히
바꿀 수 없는 부분에 한글의 일본 사투리는 그대로 유전되어 내려온 것이다.
그 중 하나의 예로 '이이쟈나이'라는 일본어를 들고 싶다. 이것도 감수광
비슷하게 '좋다'라는 일본 고유어 '이이'와 '쟈나이'의 결합인데, '쟈나이'는
'데와나이(^36,36^이 아니다)'의 준말이다. 여기서도 '이이'라는 형용사와 '좋다,
좋은' 간의 촌수는 조금 멀어 보인다. 그러나 '쟈나이'는 똑떨어지는 우리말
'^36,36^잖아'다. '^36,36^잖아' 자체가 '^36,36^이(하)지 않다'는 말의 준말인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이다, 아니다'는 말의 기본이며 영어로 말하면 be 동사
격인 너무도 중요한 말이다. 앞의 형용사 '좋다', '나쁘다'는 루트가 다른
지방어가 붙을 수 있어도, 말의 기본이 되는 골격은 같은 셈이다.
일곱째 이야기: 과학적으로 풀어 보는 일본섬 사투리
280 년 동안 연구된 한국어와 일본어 사이
일본어가 한국어의 일본 사투리라고 단도직입적으로 결론지은 본고의 논지와
그 풀이방식에 대해 조금은 생소하게 느낄 분들도 있을 것이다. 도대체 듣도
보도 못하던 이야기들을 하면서 일본어가 한국어의 일본 사투리라고 주장하니
우선은 그같은 주장의 과학적 근거를 먼저 대라고 할 분들도 있을 것이다.
사실 그동안의 서술 중에서도 이같은 과학적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서
안한 것이 아니다. 이 책을 여는 말에서도 분명히 밝혔지만, 이 책은 결코
복잡하고 고리타분한 역사학적인 혹은 언어학적인 논리를 일반인들이 잘
이해할 수 없게 정리한 학술 논문집을 만들려는 것이 아니다.
일반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마치 신문기사와 같이 이미 독자들의
머릿속에 들어 있을 한글의 언어중추에 호소해 결론을 미리 내린 다음 하나씩
이야기를 풀어가는 귀납법적인 방법을 선택했을 뿐이다.
자 그럼 한국어와 일본어의 관계에 대해 조금은 과학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이야기는 왜 '1+1=2'냐에 대한 것을 과학적으로 논의하는 것과 같으므로, 이미
머릿속에 직감적으로 '1+1=2'라고 결론을 내린 분이나 과학적인 검증에
관심이 없는 분들은 이 절을 건너 뛰어도 좋다. 그러나 우리가 모르는 새 바다
건너에서 연구되어 온 한국어와 일본어간의 연관관계에 대해 상식을 조금
넓히는 차원에서 일독을 해도 좋을성 싶다.
우선 한국어와 일본어를 비교한 일본학자들의 역사는 일본문헌에서 확인된
것만도 무려 280 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이미 에도 시대인 1717 년
아라이라는 학자가 '동아'라는 저서에서 양국 언어를 비교했고, 한국어와
일본어가 같은 뿌리를 갖고 있다는 소위 '동계설'은 그로부터 74 년 뒤인 1781
년 후지하라의 '충구발'이라는 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논지는
말 그대로 비과학적인 것으로 그저 비슷한 발음이 나는 언어들을 조합해 놓은
것에 불과했다. 마치 사투리 성님은 형님이다 식의 간단한 대응만이
언급되었다.
서양인으로 한국어와 일본어의 유사에 대해 언급한 것도 역사가 깊다.
19세기 들어와 C. Gutslaff(1833), L. de Rosny(1864). J. Edkins(1871)
등이 각각 이같은 한국어와 일본어의 유사성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했고 이를
학문적으로 처음 정리한 것이 애스톤(W. G. Aston)의 '한국어와 일본어의
비교 연구(A Comparative Study of the Janpanese and Korean
Language, 1879)'였다. 그의 한일 언어 동계설은 후일이 연구에 종사하는
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되며, 1910 년에는 가나자와 쇼자부로의 '한일
양국어 동계론'이라는 논문이 나온다. 이 논문은 그동안의 논문들과는 달리
영어로 병기된 점과 당시의 일한 동조론을 주장한 일본 식민통치자들의 선전
등에 의해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논문이 되었다.
그러나 이 논문도 단지 어휘간의 유사성만을 비교하고 음운변화 등
음운법칙을 추출하는 데는 미흡했으며 정치적으로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이용되어 학문적인 의미를 거의 상실하기에 이르렀다.
역시 이런 점에서 한국어와 일본어의 관계가 과학적으로 증명된 대표적인
논문은 일본의 패전 후인 지난 52 년과 73 년 각각 두차례에 걸쳐 오노
스즈므 학습원대 교수가 발표한 '한국어와 일본어와의 어휘 비교에 대한
소견'이라는 논문을 들 수 있다. 이 시점에서는 약 1천개에 이르는 한국어와
일본어의 공통어휘들이 과학적으로 그 친족관계가 증명된 상태였지만 이들
논문 중에서도 가장 간단 명료하게 한국어와 일본어의 상관관계를 과학적으로
집대성한 것이 이 논문이었다. 이 오노 스즈무 교수의 한국어와 일본어와의
어휘 비교론을 중심으로, 양국 언어의 유사성을 한 번 피부로 느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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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시대 일본어 모음이 8개였다.
한국어와 일본어의 유사관계에 대한 연구는 역사도 깊고, 연구의 폭도
상당히 넓다. 물론 양국어휘가 유사하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뿌리가 같다든지,
어느쪽의 언어가 어느쪽으로 전파되었다든지 쉽게 결론 지을 수 있는 것을
아니다. 예를 들어 한국이나 일본의 경우 언어 체계의 골간을 이루고 있는
한자어들을 중국으로부터 차용하고 있으나, 이같은 한자의 차용이 곧 중국과의
같은 뿌리를 의미하는 것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통된 어휘의 발굴이라는 기본이 없이는 한국어와 일본어의 비교
또한 성립의 기반을 잃는다. 이런 차원에서 이 한국어와 일본어의 관계에 관해
양국 언어의 역사와 다른 지방의 방언들을 연구하던 일본의 학자들은 한국어와
일본어의 유사 어휘 중에 일정하고도 규칙적인 음운법칙을 발견하기에 이른다.
마침 이때 일본 고대 문헌의 연구로부터 우리의 논의와 관련이 깊은 중대한
발견이 하나 학계에 보고됐다. 하시모토 박사의 연구에 의해 당시 궁궐 내에서
학자들 사이에서만 특수하게 쓰여진 고대의 특수한 가나를 해독하게 됨으로써,
우리의 초점 중 하나인 나라시대의 일본어가 지금의 일본어와는 다른 모음
조직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앞에서 예로 들은
반야바라밀다심경이 비슷하게 소리나는 이유도 결국은 여기에 기원했다.
이같은 사실은 일본어의 역사상 아주 중요한 사실(오노 교수)로서, 나라시대
일본인의 모음 조직은 그 다음의 헤이안시대 이후와는 전혀 다른 8줄의
모음체계를 갖고 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하시모토 박사에 의하면 현대
일본어에는 아이으에오 등 5열의 모음이 있으나, 당시 나라 시대의 일본어는
'아 열'과 '으 열'은 그대로이나 지금의 이, 에, 오 등 3열은 각각 '이 열' 갑,
'이' 열 '을', '에' 열 갑, '에' 열 을, '오' 열 갑, '오' 열 을 등 6개의 열로 되
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토대로 동경대학 일어 연구실 등은 이 미스테리의
모음 3개를 포함하여 당시의 일본어 모음 8개를 다음과 같이 추정하고 있다.
즉 아이으에오 등 5열은 그대로 살아 남았으나 'i'는 위(ui) 외(i)에 가까운
모음이었으며 ' '는 주로 애(ai)로부터 전화된 모음으로 추정됐다.
이같은 모음의 발견은 두 가지 큰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하나는 이같은
모음의 발견으로 일본어가 한국어와 같은 우랄 알타이어계로서 소위
모음조화에 해당하는 일정한 법칙성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일본의 학자들은 이같은 일본어의 모음 체계와 그 법칙성이,
훈민정음이 제정된 15세기 당시의 한국어의 7개 모음체계 및 그 법칙성과
너무도 유사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5세기 한국어의 모음 체계는 다음과 같다.
양성모음: 아래 아(^5,3456^: 아) 아(^123456,126^: a) 오(^123456,136^:
o)
중성모음: 이(^123456,136^: I)
음성모음: 으(^123456,246: 으) 어(^123456,234^: 어) 우(123456,134^: u)
"따라서 한국어와 일본어 사이에 같은 전, 중, 후 설음에 의한 모음조화가
있다는 사실은 양국어의 형태적 특성이 원시 알타이어로부터 파생되었다는
추측을 가능케 하는 것으로 경시해서는 안될 사실이다." (멧오노 스즈므, 동
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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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와 일본어 모음간의 1:1 대응
필자의 뜻과는 달리, 너무 학술적(?)이 되어 조금은 지루함을 느끼는
독자들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재미 있는 본론은 여기서부터다. 즉
이전에는 그저 비슷한 한국어와 일본어의 나열만으로 양 언어는 비슷한 뿌리를
가졌으리라고 상당히 비과학적인 추정을 했으나, 2백년이 넘는 학문적인
성과들이 축적된 결과 한국어와 일본어간의 모음과 자음은 서로 일정하고도
과학적인 법칙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판명된 것이다. 이것은 마치 한 나라의
언어에서 표준말과 방언, 즉 사투리의 관계와 너무도 동일하다. 형님 ^25,135^
성님, ^36,36^라해도 ^25,135^ ^36,36^락캐도, 하는데 ^25,135^ ^36,36^하는디
등등 한국어 내의 방언의 경우에도 이같은 일정한 규칙성이 존재하며, 이것이
그 지방의 사투리로서 같은 의미를 전달하는 표준어와 유사하면서도 다만
발음만이 모음이나 자음만이 조금씩 다른 형태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언어들의 경우에 중앙지방의 표준어와 사투리 사이에서나 생길
수 있는 일정한 교환의 법칙성이 한국어와 일본어 사이에서도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우선 나라시대 8개의 모음과 관련해 한국어와 일본어의 모음간의
상관관계에 대해 학자들에 의해 증명된 모음 대응규칙 제1은 한국어의 아,
어가 일본어의 'a:아' 'o:오열' 사이에 서로 교환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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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한: 아) -a(일: 아)의 대응
우선 과학적인 검증들에 의하여 사투리와 동일한 수준에서, 한국어와
일본어의 모음 '아'가 동일하게 대응되는 대표적인 예들은 다음과 같다.
한국어 영문 한자 일본어 순
바늘 panul 침 hari
밭(훈몽: 밖의 고어) bat 외 fata, fadure
칼 kal 검 kari
갓 kas 립 kasa
날('탄생할'의 뜻) nal 생 naru
낫(농기구) nat 겸 nata
샅(화살의 옛말) sat 소 sati
잔(술잔 등) zan 배 sara(중략)
말(천자문) mal 두,병 masu
나(1인칭) na 오 na
즉 자음들은 다소 비슷한 자음으로 변화되었어도 한글의 '아'가 그대로
일본어의 '아'와 거의 동일하게 소리나는 경우들이다. 우선 바늘의 예를 보자.
직감적으로 느낀 혜안을 가진 독자들이 있겠지만, 모음 [아:a]를 남겨두고는
다른 자음들이 변한 경우이다. 그러나 바늘의 'ㅂ'이 일본어에서 같은
입술소리인 'ㅍ'로 바뀐 후 영어에서 보듯 p(ㅍ)과 f(ㅍ), h(ㅎ) 사이에 치환이
이루어졌다. '밖'의 '외'의 경우에는 받침 없는 일본어의 특성상 '밭'이
'파타'라는 고어에서 현대 일본어 '하타'로 바뀌었고, '칼'의 경우에는 그대로
'칼'이 받침이 없는 일본어의 특성상 '이'라는 가장 보편적인 모음을 갖고
'카리'라는 형태로 된 케이스다. 요즘 현대 한국어에도 남아있는 곡물을 세는
단위인 '말'이 '마스'가 된 것은 '마'는 그대로 남고 'ㄹ'라는 한국어의 받침과
츠가 우선 치환된 후(예로 한국어의 교실이 일본어 사투리로는 교시츠로
발음되는 한국어 'ㄹ'과 일본어 '츠'의 치환관계) '츠'와 인척관계인 '스'가
붙어, 말(한) ^25,135^ 마츠 ^25,135^ 마스(일)의 형태로 변한 케이스이다.
나머지도 같은 원칙으로 변환시키면, 바로 일본어의 지금 발음이 한국어의
어느 단어와 바로 일치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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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 어) -a(일: 아)의 대응
다음은 한국어의 '어' 발음이 일본어에서는 바로 대응하는 적당한 모음이
없기 때문에, '아'와 1 대 1로 대응하는 경우이다. 쉽게 한국어의 '어' 발음은
일본어에서 '아'로 소리나는 경우가 많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한국어 영어 한자 일본어 순
벌(황산벌 등의 벌) pel 원 f(h)ara
멀(먼의 형용사형) mel 요 f(h)aro
벌(곤충의 벌) pel 봉 f(h)ati
거북 keput 구 kamo
걸음(도보) kerum 도보 kati
'게(바닷게) kel 해 kani
여름 nyerum 하 natu
우선 '벌'의 경우는 한국어와 일본어의 상관관계를 극명하게 나타내 주는
일례라 하겠다. 모음간의 대응은 어느 정도 증명이 되었으니, 다음 절에
나오는 자음의 경우를 조금 먼저 설명하면 'ㅍ' 'ㅎ' 사이가 서로 비슷하게
바뀌고 '벌'의 한글 받침 'ㄹ(l)'이 받침이 없는 일본어에서는 모음 '아'를
동반한 '라(ra)'와 정확히 1 대 1로 대응하고 있다. 따라서 벌(한) ^25,135^ 헐
^25,135^ 허라 ^25,135^ 하라(일)의 대응관계가 성립하는 것이다.
'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천기누설을 하나 더 설명하면, 한글은
국어사전을 만들 때, '멀다', '크다'는 식의 '^36,36^다'형으로 사전을 만들었다.
그러나 일본어의 동사는 대부분 '(루)'이라는 원형으로 끝난다. '이르(이루)',
'아르(아루)' 등이 그것이다. 단지 우리의 경우는 '^36,36^다'형을 기본으로
했을 뿐이지 실은 일본어의 '^36,36^ㄹ'과 같다는 사실이다. 하나의 예로 뭘
바른다는 '바르다'의 예를 보자. 한국어의 표준어는 벽같은 데에 무엇인가는
붙인다는 의미의 '바르다(baruda)'이지만, 이에 대응하는 일본어를 찾으면
'하루(haru)'가 된다. 즉 서로 입술 소리로서 치환관계인 'ㅂ(b)'과 'ㅎ(h)만
바꾸면, '^36,36^다'는 표준어의 말미어, 즉 어미만 제외하고 말의 기본이 되는
한국어의 '바르'와 일본어의 '하르'는 정확한 1:1로 대응하는 것이다.
같은 원리로 '멀다'를 우리 한국어의 형용사의 적용하면 멀(한) ^25,135^ 헐
^25,135^ 하로(일)라는 과학적인 1:1 대응이 성립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곤충 '벌'도 마찬가지다. 같은 원리에서 벌(한) ^25,135^ 하르
^25,135^ 하츠 ^25,135^ 하치(일)가 되며, 거북의 경우에는 '거북'에서 받침
'ㄱ'이 탈락하고 북의 'ㅂ'과 같은 순음인 'ㅁ'과 대응하며 모음인 '북'의 'ㅜ'가
일본어에서 과학적으로 모음대응을 하는 'o(ㅗ)'가 되어, 거북(한) ^25,135^
가부 ^25,135^ 가무 ^25,135^ 가모(일)로 정확히 대응하는 관계가 성립하게
되는 것이다.
같은 원리로 걸음(한) ^25,135^ 거 ^25,135^ 거트 ^25,135^ 가티(일), 게(한)
^25,135^ 거이 ^25,135^ 가이 ^25,135^ 가니(일) (마지막 윤활음으로서의 ㄴ
추가), 여름(한) ^25,135^ 녀름 ^25,135^ 녀츰 ^25,135^ (ㄹ, ㅊ 교환) ^25,135^
녀츠(ㅁ 탈락) ^25,135^ 나츠(모음 변이) (일)라는 공식으로 풀리는 것이다.
앞에서도 강조한 것이지만, 이같은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언어는
기본적으로 표준어와 사투리 사이의 정도의 친근관계가 없으면 안되는 일이다.
일본어가 한국어의 동경사투리라는 근거는, 이같은 너무도 가까운 언어
사이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너무도 과학적인 법칙들이 한국어와 일본어
사이에서 존재한다는 사실에 근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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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a, 뭐(한: 아, 어) -o(일: 오의 옛발음)의 대응
(1), (2)에서 본 모음들은 서로 비슷한 발음들이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자음과 모음이 1 대 1로
대응하는 언어가 어떻게 외국어 관계일 수 있겠는가. 한국어에서는 다르게
표시되고 발음되는 (3)항의 1 대 1 대응관계를 보면, 한국어와 일본어가 왜
한국어의 동경사투리로 해석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지가 너무도 명쾌해진다.
한국어 영어 한자 일본어 순
것(^36,36,36^하는 것) kat 사, 물 ko^36^to
닫(닫다의 닫) tat 폐 to^36^du
엄(엄마의 엄) am 모 o^36^mo
아래(밑을 뜻하는) arai 하, 강 o^36^ru
여러(여러개) ^2356,13456,1256,1235,2356^ 만, 중 yo^36^ro^36^,
o^36^iro(현대어)
어릴(어리다) ^2356,1256,1235,24,123,2356^ 우 o^36^r o^36^ka
뼈 ^2356,1234,13456,1256,2356^ 골 f(h)o^36^ne
떡 stuk 병 sito^36^ki
허리 ^2356,125,1256,1235,24^ 요 ko^36^si
즉, 한국어의 모음 '아, 어'는 일본어에서 '오'와 가까운(오의 일본어
옛발음)으로 소리나는 규칙성이 발견된 것이다. 이같은 '아' 모음과 '어' 모음
혹은 '오' 모음과의 교환은 다른 알타이어에서도 똑같이 발견되는 규칙이며,
심지어 같은 한국어 혹은 같은 일본어 사이에서도 이루어지는 엄연한 과학적인
규칙으로 증명된 것이다. 심지어는 현대어에서는 전혀 다른 소리로 인식되는
'아'와 '이' 사이 혹은 '우'와 '이'사이에서도 이같은 과학적이고 일정한
규칙성이 발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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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I(한: 이) -a(일: 아)의 대응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단어들에서는 한국어의 '이' 발음이 일본어의 '아'
발음과 규칙적으로 대응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심지어는 일본어
내에서도 '아' 발음과 '이' 발음이 교환되는 규칙성이 발견되고 있다.
한국어 영어 한자 일본어 순
고래 korai 경 kuz(d)ira
사슴 sasum 녹 sisi
아니(아니다) ani 불 ina
비둘기 pitulki 구 hato
찌를(찌르다) tsirul 자 sasu
같은 일본어 사이
kiru 절 karu(초)
hiraki 개 faraki(개의 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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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I(한: 이) -u(일: 우, 으)의 대응
한국어의 '이' 발음이, 다른 발음들은 거의 그대로 놓아두고 일본어에서는
그대로 '우'로 소리나는 경우도 있다.
한국어 영어 한자 일본어 순
실(시다의 부정형) sil 산 su
숯 suts 탄, 탄 susu
이슬 isul 로 tu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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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기타 모음들의 대응
이처럼 모음들끼리 서로 1:1의 대응을 하다보니, 다른 모음들의 경우에도
한국어와 일본어 사이에서 너무도 똑같은 1:1의 대응관계가 성립하고 있다.
한국어 영어 한자 일본어 순
물 mul 수 mizu
눈물 nunmul 누 namida
너(당신의 낯춤말) n^1256^ 녀 ono
날(나올의 준말) nal 출 id(z)u
소(가축의 이름) so 우 usi
삼(삼베의 삼) sam 마 asa
'물'의 경우에는, 모음 변이와 'ㄹ' 받침의 '스'계열 발음화로, 물(한)
^25,135^ 무즈 ^25,135^ 미즈(일) ^25,135^ 로 변한 경우이며, 눈물의 경우에는
눈물이라는 음절의 첫 자음들, 즉 n과 m을 그대로 남긴 다음 나머지 모음들과
받침 'ㄹ'이 스 ^25,135^ 즈 ^25,135^ 드 계열화로, 눈물(한) ^25,135^ 나마즈
^25,135^ 나미다(일)식으로 대응되는 경우이다.
'너'의 경우에는 '너'앞에 다른 모음이 붙어, 너(한) ^25,135^ 오너 ^25,135^
오노(일)로 풀리며, '날'의 경우도 '이'라는 모음이 앞에 붙고 ㄴ, ㄷ 사이의
자음교환이 이루어져 날(한) ^25,135^ 이달 ^25,135^ 이드 ^25,135^ 이즈(일)로
대응된다. '소', '삼'의 경우도 다른 모음들이 붙어 각각 '우시'와 '아사'로
대응되는 케이스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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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음간의 변환규칙들
이같은 한국어와 일본어간의 규칙적인 음운변화는 물론 자음에서도 발견되고
검증되고 있다. 앞의 모음 변화를 증명하는 과정에서도 조금씩 언급된
것이지만, 한국어와 일본어 자음간의 변화 또한 일정한 규칙 속에서 변하고
있다. 'ㅈ'한국어 내에서도 '형님'이 '성님'이 되는 'ㅎ'과 'ㅅ'사이의 변환이
있듯이 한국어와 한국어의 일본 사투리인 일본 사이에서도 이같은 자음간의
규칙성이 발견되고 검증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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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ㄹ(한: r, l) -d(일)의 대응(말 중간 혹은 어미에서)
물론 한국어와 일본어는 그동안 1천 5백년 동안의 세월을 거쳐 각기 발전해
왔으므로 양측의 언어가 많이 달라져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문제는 그 변화 사이에 일정한 규칙성이 발견된다는 점이다. 즉 지방에 따라
발음을 하는 버릇이 남아 유전될 수는 있을지언정 결국 그 원형으로서의
언어는 그 속에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을 밝혀낼 수 있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 중의 하나인 한국어의 'ㄹ'발음과 일본어의 'ㄷ'계열의
자음 대응규칙을 보면 이같은 관계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너무도 예는
많으므로 우선 알기쉽게 앞에서 모음의 대응에서 살펴본 예들을 다시 들어
보자.
한국어 영어 한자 일본어 순
고래 korai 경 kuz(d)ira
파랄, 푸를 paral, purul 록 midori
물 mul 수 mizu
눈물 nunmul 누 namidal
'고래'의 경우를 보자. 모음의 변화는 이미 증명을 했으므로, 자음만을
비교하면 '고래'의 'k'발음은 그대로 남은 채 한국어의 'ㄹ' 발음이 'ㄷ(d)'로
변했다가 현대어에서는 'z'로 변한 것을 알 수 있다. '물'의 경우에도 받침
'ㄹ'같은 원리로 'z'로 변했으며 눈물의 경우에는 현대의 일본어에서조차
'ㄷ(d)'의 형태로 남아 있다.
파랄, 푸를의 경우에는 조금 복잡한데, 결국은 므, 브, 프의 순음 사이에서
'파랄'의 'ㅍ'이 'ㅁ'으로 변한 뒤, 한국어의 '랄'의 첫 자음 'ㄹ'은 일본어에서
'ㄷ(d)으로 다음 자음'ㄹ'은 살아 남아 '리(ri)가 된 케이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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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ㄹ(한) -s(일)의 대응
같은 원리로 '즈'에서 한걸음 더 나간 발음은 같은 이빨소리(치음)인
'스'이기에, 한국어의 'ㄹ'은 일본어에서 그대로 '스(s)'와 1 대 1로 대응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받침에서 이같은 현상은 두드러진다. 한국어의 '교실'이라는
한자어가 일본어에서는 그대로 같은 한자 '교실'을 쓰면서 '교시츠'라고 읽는
버릇이 있다는 점을 상기하면 이같은 대응관계는 쉽게 풀린다.
한국어 영어 한자 일본어 순
별(하늘의 별) pyul 성 f(h)osi
허리 h^1256^ri 요 k^1256^si
발 b(p)al 족 (h)asi
말(천자문) mal 두, 병 masu
찌를(찌르다) tsirul 자 sa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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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t, s(한): s, t(일)의 대응(특히 첫 소리에서)
특히 현대 한국어에서는 '트'계열로 소리나는 것들이 트 ^25,135^ 츠
^25,135^ 스의 과정을 거쳐 일본에서는 '스' 발음으로 소리난다.
한국어 영어 한자 일본어 순
찌를(찌르다) tsirul 자 sasu
토끼 tokki 토 usagi
옅(얕)을 y^1256^(a)tul 천 asaa
반대로 한국어에서는 '스' 계열로 소리나는 것들이 일본어에서는 그대로 '트'
계열로 소리나는 것도 있다. 즉 한국어와 일본어의 '스', '트' 계열도 서로
환치되는 규칙성이 발견되는 것이다.
한국어 영어 한자 일본어 순
손 son 수 te
이슬 isul 로 tuyu
이같은 현상은 같은 일본어의 고어와 현대어 혹은 표준어와 사투리
사이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kesu 초 ketu
f(h)anasu 방 f(h)anatu
tatu 입 sasu
tane 종 s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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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m, p(한) - f, m(일) 사이의 대응
지금까지 논의한 모음 혹은 자음의 규칙적인 치환과 관련해, 너무도 당연한
결론이지만 순음(입술소리)인 므, 브, 프 사이에서도 이같은 변화의 대응규칙은
성립되고 있다.
한국어의 '^12456,26^' 계열이 일본어에서는 '^123456,145^' 계열로 소리나는
경우
한국어 영어 한자 일본어 순
멀(먼의 형용사형) m^1256^l 요 f(h)aro
못(연못) mot 연, 지 puchi
무릎 murup 슬 f(h)iza
한국어의 '^123456,145^' 계열이 일본어에서는 '^123456,26^' 계열로
소리나는 경우
한국어 영어 한자 일본어 순
파랄 paral, purul 녹 midori
납 nap 석 namari
늪 nup 소 numa
톱(손톱의 톱) top 조 tume
솔직히 여기까지 읽어 내려간 독자들의 과학에 대한 호기심에 경의를
표한다.
필자가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느라 팔이 아플 지경이니, 여러분들은 상당히
눈이 피로해 있으리라 생각한다. 우리가 한국어와 일본어 사이의 음운 연구학
논문을 쓰려는 것이 아닐 바에야 이쯤해서 마무리를 짓자. 더 과학적인 검증에
흥미를 느끼는 분들은 뒤에 소개한 일본어가 한국어로 보이는 책들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너무도 과학적인 우리들의 결론은 너무도 분명하다. 필자의 결론이 아니라,
일본의 학자들이 280 년 동안 연구해 내린 결론을 독자들이 비교적 알기 쉽게
요약 정리한 것 뿐이다.
그 결론은 자음에 있어서나 모음에 있어서나 한국어와 일본어 사이에는 마치
표준어와 지방 사투리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일정한 음운규칙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 모든 규칙들 중에서 어느 것이 주류인지, 즉 어느 말이
어느 곳으로 전파되었는지는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다. 우리가 지나간
2천년간을 완전히 비디오처럼 재생 리플레이하지 않는 한 이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사실상 별로 의미도 없다. 우리가 앞으로 증명해 나갈 것이지만
어차피 이처럼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는 같은 언어인 바에야 우리의 관점에서
이 모든 증거들은 일본어가 우리의 머릿속에 이미 입력되어 있는 한국어의
일본섬 사투리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왜 한국어의 제주도 방언인
'마쓰'가 일본어의 표준어로 쓰이고 있는지에 대한 해답도 여기에 있다.
단 절대로 이 장에 소개한 법칙들을 머릿속에 외우지 말기를 바란다. 몇
번이고 강조하는 것이지만 우리가 어느 지방 사투리를 접할 때, 이같은 음운
규칙을 외워서 그 지방 사투리가 이해하게 되는가. 절대로 그렇지 않은 이유는
바로 기본적인 부분, 즉 앞에서 예로 들은 많은 한일간의 유사 단어들이
보여주는 공통된 언어, 즉 말 그대로 글 속에 살아 숨쉬기 때문이다.
이같은 규칙들의 존재를 다만 염두에 두고 이제부터 가금 이 장에서 서술한
내용과 비슷한 일본어를 접할 때마다 해당항목을 살펴보면서 일본어를 다시
만나보기 바란다. 그동안 아무리 외워도 천장에서 가물가물하던 일본어가,
잠을 자다가 갑자기 한국어로 옷 갈아입는 일본어의 누드 장면을 여러분의
머릿속에 이미 자리잡은 사이버 공간 속에서 너무도 생생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맺음말)
일본어를 한국어로 바꾸는 법: 직독직해!
우리는 그동안 아침해가 돋아 오르는 해돋이 때부터 우리의 새로운
어깨동무들을 찾아다니면서, 한국어와 일본어 사이의 벽을 넘나들었다. 이런
여행도 한번쯤은 좋지 않은가(이이쟈나이). 지금까지 소개한 예는 그동안 한일
양국의 고명한 선생님들이 연구한 것을 토대로 극히 일부분을 소개하고,
필자가 수집한 자료들을 보태고 토를 단 것일 따름이다. 예를 들어 벌써
연구를 하고 계신 분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일본어 억양과 북한 방언 억양과의
상관관계 제주도 사투리와 일본어와의 상관관계, 제주도 사투리와 일본어와의
상관관계 등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이를 널리 알린다면 학술적으로도
대중적으로도 대단히 훌륭한 업적이 될 것이다.
일본어 교재도 마찬가지다. 일본어를 외국어가 아니라 한국말의
동경사투리로 보게 되면서, 정말로 놀라운 경험을 했다. 3개월 만에
NHK뉴스를 90% 이상 듣게 되고, 처음 듣는 일본어들이 그냥 머릿속에서
한국어의 단어들과 연결되는 체험을 했다. 일본어를 한국말의 동경 사투리로
보면서 한 2 년 정도 지나자 외국에서 온 기자라고 굳이 자기소개를 하지
않으면, 어느 지방 출신인데 그리도 동경사투리를 잘하냐는 인삿말(?)을 처음
만난 일본인들로부터 듣기도 했다.
이러한 양국언어의 상관관계를 추려, 이것을 토대로 한국인 전용 일본어
교재를 만든다면 한국인이야말로 일본어를 술술하는 그런 교재도 만들어 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일본어를 아^36^예 인문계 고등학교의 고문 정도에서
참고적으로 다루어도 좋지 않겠나 생각한다.
이 장을 마감하기에 앞서 마지막 한마디, 이 자리에서 이제 외국어로서의
일본어는 완전히 머릿속에서 지워버리자. 이제부터 남은 일은 한국어의 일본
사투리인 일본어를 직접 듣고 직독직해해 보는 작업이다. 우리말 사투리는
어느 지방 말이건 그냥 듣고 있기만 해도 금새 우리 것이 되지 않던가.
제2장 일본땅이 한국땅으로 보이는 장
(장을 여는말)
지명으로 풀어보는 한국어의 일본섬 사투리
일본땅은 우리땅
지금 우리는 한반도 위에서 진행되고 있는 역사의 한가운데 서있다. 그
역사는 마치 꼭 백년 전 이땅 둘러싸고 벌여졌던 것과 너무도 흡사하다.
당시는 쇄국정책에 의해 고립된 나라였고, 지금은 전후 50 년 동안 냉전의
질곡 때문에 본의 아니게 반도국이면서도 북쪽이 막혀 고립된 나라였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 한반도의 역사는 다시 중국과 러시아 등 북방을
향해 열리고 있고, 북한 주체사상의 리더격인 황장엽이 한국으로 귀순하는
시대를 맞고 있다. 실로 서울은 국제화된 마치 1백년 전 수많은 열강들이
벌였던 것과 비슷한 동북아 외교의 중요한 무대로 그 중요성을 더해가고
있으며, 우리는 북한체제의 붕괴와 약화를 전제로한 새로운 한반도의
건설이라는 사명을 완수할 것을 이 시대로부터 요구받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시대적 요청의 중대함에 비교할 때, 진실로 우리 한국이 그
시대적 요청에 부응할 만한 과정을 밟고 있는지 의문이다. 정치가 경제가
사회가 모두 그렇다.
더욱이 그 관계정립의 중심축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한일 문제는 해방 50
년이라는 '하나의 분기점'을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시간이 가면 갈수록
오히려 꼬여가는 부분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한편으로는 종군위안부
문제가 민간기금과 정부보상이라는 문제로 얽혀 있으면서, 일본의 정치권과
사회분위기는 종군위안부가 존재조차 하지 않았고 독도는 자기네 땅이니
돌려달라는 주장까지 공개적으로 하고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 중학교 교과서에
종군위안부에 대한 조그만 기술을 하나 추가하는 것에 대해서도, 반대운동을
벌이는 것이 지금 일본이다. 또 한편으로 일본과 2002 년 월드컵 공동개최는
물론이고, 도무지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해결되지 않는 만성적 무역역조 등
협조, 협력해야 할 수많은 과제를 안고 한반도는 흘러가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통탄스러운 것은 이런 한일의 딜레마 앞에서 정신적으로
그들에 대한 열등의식을 극복하기 위한 도피수단으로 무조건적인 배일이나
자기 부정의 테크닉만을 내세워서는 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음에도 우리는
쉽게 이런 함정에 빠진다는 사실이다. '일본은 없다'식의 자기 모순적인
부정론에 의존하기는 쉽지만 그것만으로는 해결책이나 대안은 찾을 수 없다.
이처럼 딜레마를 더욱 딜레마로 풀려는 모순적 해결법으로는 한일관계는
영원히 평행선을 그을 것이며, 결국 정리 불가능하다고 본다. 오히려 이
문제는 '정공법'으로 대응해 정면에서 "일본을 알고 보니 이것이더라"고
깨버리는 자세가 아니면 해결될 수 없다.
이 장에서는 이런 관점에서 앞장에서 우리가 머릿속에 입력한 일본어를
우리말로 푸는 열쇠를 이용해 한국어의 일본 사투리로 명명된 일본의 지명을
현대의 한국어로 풀어보려 한다. 학문적으로는 김달수, 이기문님을 비롯,
한일의 저명한 학자분들의 저술이 많으므로 이 장에서는 역사적인 지명들이나
너무 현대어와 떨어진 고어보다는 '현대 일본어'로 바로 풀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들을 몇 가지 소개할까 한다.
지명을 풀다 보면 우리와 일본간의 역사에 대해서도, 그리고 "일본인은 대체
누구인지"도 자연히 풀려 나갈 것이다.
첫째 이야기: 일본인의 조상은 김씨나 박씨(?)
일본왕궁의 문이 '고려'문인 까닭
"일본의 중심은 동경이고, 동경의 중심은 왕궁이다. 그러나 그 왕궁 속에는
아무 것도 없다." 현재는 일본 국왕이 실권이 없다는 말을 강조할 때 자주
인용되는 문구다. 그러나 일제가 우리에게 강요한 치욕스런 신사참배를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이 일본 왕궁 앞의 '니쥬바시'는 다른 의미를 지닌다.
전쟁 중에 물자가 부족한 시기에 일왕의 얼굴사진을 미처 구할 수 없을 때
왕궁 자체를 사진화하는 것은 불경스럽다하여, 그 앞의 다리 사진을 찍어 놓고
그 사진을 향해 절을 해야 했다. '천황폐하 만세'를 부르며.
이런 저런 이유에 의해 동경에 있는 일왕의 거처인 '코쿄'라고 불리는
왕궁은 한국관광객들이 꼭 들러서 사진을 찍거나 그 주변에서 조깅을 하는
명소인데, 많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그냥 스쳐가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왕궁의
문앞에 그 문의 이름과 함께 돌비석에 적혀있는 '고려'라는 문자다.
지금은 공원으로 개방되어 일주일 중 공개되는 요일에는 누구나 비표를
무료로 받아 들어갈 수 있는데 관심이 있으면 문 옆에 있는 이 검은 돌비석을
찾아가보자. 동경의 유명한 오피스가 오오데마치에서부터 정문을 거쳐
궁내성과 왕의 거처가 있는 안쪽 성을 제외하고는 어느 문으로도 나올 수
있는데, 예를 들어 북쪽에 해당하는 히라가와문의 비석에 '평천고려문' 이라고
적혀 있다.
왜 일왕의 궁성에 '고려'라는 우리의 '도장'이 찍혀있는 것일까. 필자가 아직
과문한 탓에 그리고 일본인들이 이같은 부분에 인색한 탓인지 그간 자료를
섭렵하였으나 일본에 있는 자료 중에서 이에 대해 구체적인 기술을 접한 적이
없다.
혹시라도 이에 대해 구체적인 기술을 소장하고 있는 분이 있으면 언제든지
필자에게 연락 주시기 바란다.
그러나 어쩌면 분명 일본인들의 구차한 변명으로 점철되어 있을 일본측
자료는 필요없을는지도 모른다. 이미 우리가 검증해 왔듯이, 그리고 많은 한일
양국의 학자들이 증명해 왔듯이, 일왕과 그 귀족들이 한반도로부터 건너간
도래인들이었다면, 그리고 그들이 나라 시대까지 몇 백년에 걸쳐 사용한
언어가 고대 한국어였고, 따라서 지금의 일본어조차 한국어의 일본사투리라는
것이 명확해 진다면 다른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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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왕은 김씨의 후손?
비단 일본의 왕궁뿐만이 아니다. 일본전역에 '고려'(높을 고, 나라이름 려:
일본 발음으로는 '고마'라고 읽힌다)라는 지명이 붙은 곳은 너무도 많다.
한반도와 가장 오래된 연관을 갖고 있는 규슈 지방에는, 고려정, 고려교,
고려통이라는 지명이 있고, 한국악이라는 산까지 있다. 아니 도대체
일본사람들이 36 년간 우리를 식민지 삼았더라도 일본산이라는 지명까지는
만들지 못했다. 지명이란, 다른 많은 토속적인 것이 그렇듯이 많은 이들에
의해 인식되어지는 것이지, 결코 한마디의 행정명령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토, 나라, 오사카 등 긴키지방에서도, 오랜 한반도
삼국과의 교류에 의해 고려정, 고려교, 백제왕신사, 백제사, 백제촌, 백제석,
백제교, 신라교, 신라사, 왕인박사공원 등등이 있다.
고구려의 유민들이 모여 살면서 일종의 '일본판 조선족 자치구'를 이뤘던
사이타마의 고마신사 유적 일대는 지금도 마치 고구려인들이 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대표적인 한반도인의 집단거주 지역이었다. 나중에
황국사관, 식민지 사관에 젖은 근대 일본학자들과 정치가들에 의해 한자가
'고(사람의 이름 고)'로 바뀌기는 했지만, 지금도 '고마에'로 읽히는 고려강이
있고, 마지막 고구려왕 약광왕을 모시고 있는 고려신사를 달리는 전철역의
이름은 '고려천역'이다.
규슈 가고시마현에 가면 아^36^예 지금의 일본천황이, 즉 '일왕'은 '김씨'의
후손임을 알 수 있다. 이곳은 가야 김수로왕의 7왕자 니니기노미고토, '일곱
임금님의 것'이라는 한국어에 해당)가 일본에 도래하여 다카치호미네에 강림한
후 궁궐을 지어 나라를 다스렸다는 전설과 고사기, 일본서기 등의 기록을
토대로 '일본 발상의 땅'이라고 해서 비석까지 세워 놓고 일본인들이
'모시는(?)' 곳이다.
물론 신화의 상태이기는 하지만, 이 '니니기노미고토'가 1 대이고, 그 2 대가
'히코호호데미노미고토'라는 7왕자의 자손, 제3 대가
'우가야후키아에즈노미고토'라는 이름의 7왕자의 손자이고 이 신대 3 대를
지나 4 대인 '신무천황'이 초대 인세 일왕의 시조가 된다. 일본 동경대학의
명예교수인 에가미 아미오 교수에 의하면, '이 니니기노미고토'의 증손인
신대가 규슈 히유가(일향, 해뜨는 곳)에서 군사를 일으켜 세토나이해를 거슬러
올라가 당시 혼슈(본주)의 수도였던 교토, 나라, 오사카지방인 긴키지방을
점령하고 일본 천황가의 제1 대왕인 신무천황이 되었다는 학설을 발표하기도
했다. 일왕이 김씨였다면 식민지 시절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열심히 절을
하도록 강요했던 신사참배 귀신도 우리 '김씨'의 조상신이 되는 셈이니
아이러니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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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도 일본인의 신
김씨만이 아니다. 규슈 지방에는 아직도 지방에 따라 단군신앙이 뿌리 깊게
존재하고 있으며 남규슈 구시키노시에 있는 환단신사와 북규슈 후쿠오카현의
히코산 신궁은 우리 한민족의 조상인 단군신화의 환웅과 단군을 모시기 위해
세워진 곳으로 추정되고 있다. 단군이 현재 어느 박씨였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한민족의 조상신들을 일본인들이 1천여 년 넘게 모셔왔다는 사실은
일본어가 왜 한국어의 일본섬 사투리인지 그 배경의 하나가 된다.
'구시키노'라는 지명조차 우리말에서 제사음식 산적 등을 구울 때 쓰는 '꽂이',
'꼬치'의 일본섬 사투리 '쿠시(kushi)'에서 시작한다. '쿠시' 다음의 '기'는
우리말 '나무'의 옛말 '남간'과 대응하는 '기(목)'이고, '노'는 우리말의 '들'에서
받침이 탈락하고 'ㄴ', 'ㄷ' 사이에 교환이 이뤄진 '노'로 풀린다. 즉
'구시노키'라는 이곳의 지명 자체가 제사음식에 쓰이는 '꼬치나무가 많이 나는
곳'이라는 '꼬치나무들'이 되며, 이것이 우리말 사투리로 '구시키노'가 된
것이다. '히코산'은 우리의 '해'와 '자식, 아들'을 뜻하는 '코', 즉 '해의 아들
산'이라는 이름으로 풀 수 있다.
한국관광객들이 잘 모르고 찾는 이즈반도의 유명한 온천지 하코네도
고구려인들의 밀집지역이자 훈련장이엇으며 탄자와산 등 인근 지명의 명명자가
한반도 도래인이며, '하코네'조차도 신선을 의미하는 '하코'와 '산동네'를
뜻하는 '네'가 결합어라는 견해도 있다.
'박'씨 조상을 모시는 곳도 많다. 니가타현 사도섬에 있는 시라기신사
가고시마현 다루미즈시 거세마을에 있는 거세신사, 시마네현 오다시
오우라항구에 있는 카라카미시라기 신사 등은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왕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신사들이다. 19세기 이전까지도 박혁거세왕을 제신으로
모시는 신사가 2천 7백여 곳이 있었으며 메이지(명치) 유신 이후 합쳐졌음에도
아직도 2천여 개가 산재해 있다고기록도고 있다. 박혁거세의 '혁거세'도 실은
한자 이두를 지금의 현대어적한자 읽기 발음으로 읽으니까 '혁거세'이지,
당시에는 다른 이두로 읽혔을 것이다. '혁'이 '빛날 혁'이니, '빛'으로 풀고
'이세'를 당시의 이두이자 현대 일본어에 그대로 남아 있는 '이세'로 풀면
'빛이세' 혹은 '비치세' 정도가 된다.
혁거세님이 어떻게 한국어로 풀리는지는 차치하고, 도대체 한반도 어느
구석에 일본신을 조상신으로 알고 섬기는 곳이 역사적으로, 혹은 현재 어느
곳에 존재한 적이 있었던가. 반대로 일본은 규슈, 긴키, 사이타마 등 한국인을
조상신으로 알고 섬기는 곳이 이렇게도 많다. 결론은 분명하다. 일본섬 전체가
한국인의 식민지였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들이 재미있다고 느끼는 분들은 김달수 님의 '일본 속의
조선문화'나 부록에 첨부한 여타 관련 서적의 일독을 권한다.
어쨌든 규슈지방에 남아 있는 지명과 설화, 학설 등을 종합하면, 소위 '일본
천황', 즉 일왕은 '김'씨 혹은 이와 유사한 한반도 귀족의 자손이 되는 것이다.
고대사는 불확실한 역사적인 기록들이고 상징적인 것들이 많으므로, 무엇이
정설인지를 밝히는 것은 학자들의 몫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이같은 증거들이 있고 이같은 문제들이 일본학계에서조차 논의되고 있다는
사실을 우선 '아는 것'이다 . 이미 일본의 학계에서조차 "일왕이 한반도
도래인의 자손"이라는 것은 이미 당연 명제로 통하고 있다.
일본 학자들이 이미 연구해 놓은 자료들에 의하면, 일본 고대의
천황가에서는 백제신인 한신과 신라신인 원신을 나란히 궁중 신전에 함께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 강가차제(1116 년 간행)라는 역사서에 분명하게 기록이
나오는 이야기다.
그 후손의 궁궐 문패에 '한반도'를 뜻하는 '고마'의 도장이 찍힌 것은 더더욱
당연한 일일 수밖에 없다.
둘째 이야기: 왕궁 앞 다리에 숨겨진 비밀
동경은 원래 물에 반쯤 잠겨 있던 도시
역사적인 이야기는 자칫 고리타분해질 수 있으니, 현존하는 일본의 지명으로
돌아가자. 한자로 '고마'가 들어갔다거나 '한국'이 혹은 '백제', '신라'가 들어간
것은 한자만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알 수 있는 것이니, 그리 놀라울 일도 못
된다. 오히려 일본인들이 가장 '일본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자신들의
고유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그리고 우리들도 그것은 '일본 것' 이라고
간과하고 착각하고 있는 것들이 실은 한국에서 건너간 '한반도인들의
유물'들이라는 사실이 더 놀랍고 더 중요한 것이다.
앞 절에서 왕궁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했으니, 왕국 이야기를 하나 더 하자.
일본의 왕궁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이야기가 많은 곳이다. 그 '족보'에 대한
비밀에 대해, 일왕이 한국 도래인의 자손이라는 한일 학자들의 무수한
연구업적과 논문이 발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왕궁은 침묵으로만 일관한다.
아직도 1월 1일과 일왕의 탄생일 등등에 많은 우익과 국수주의자들이 왕궁
앞에 몰려와 울면서 환호하는 곳이 일본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서울도 마찬가지이지만, 왕궁이 이처럼 '일본 민족'을 대표하는
상징성을 갖는 왕의 거처이다 보니, 교토, 나라 등 수도의 도시계획은 이
왕궁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지금부터 약 5백년 전까지도 지금의 동경왕궁 앞은
모두 바다였다. 동경 자체가, 에도라는 항구도시에서 발원한 것에서 보듯,
일왕의 거처인 지금의 왕궁도 이전에는 해변에 지어졌다. 현재 동경의
제국호텔, 히비야 공원을 중심으로 한 관청가 '카스미카세키'는 물이 '가슴'까지
차는 갯벌이었고, 동경의 명동인 긴자거리는 약 5백년 전부터 조금씩
매립공사를 통해 만들어 낸 인공의 '뚝섬'이다. 지금도 이 히가시긴자 끝에
가면 츠키지라는 동네가 있고, 일본이 개항한 직후 일반인들과의 교류를 막기
위해 외국인 전용의 주택가로 쓰기도 한 곳이다.
이러다 보니, 옛 지명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 많다. 동경을 여행해
본 이들이라면 왜 그 유명한 니혼바시 미츠코시 백화점 앞의 '일본교'가 도시
한가운데 덩그러니 있는지 의아했을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곳은 이전에
바다였고, 바다와 매립지 긴자를 뭍으로 연결하는 중요한 다리 중 하나에
일본교라는 이름을 붙였을 뿐이다. 이전에 에도 모습은 기록을 잘하고 잘 ----------------------------------------------------------------
얘들아 미안해 ㅠㅠ 끈켯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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