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에서 가장 멋진 산길! 밀포드(Milford)의 마법에 빠지다 월간산 583호, 2018-05-14 10:05 남섬 피오르드랜드립공원 밀포드트랙(53.5㎞) 3박4일 트레킹 1908년 영국 시사주간지 <런던 스펙태이터London Spectator>에 ‘세계에서 가장 멋진 산길’이 소개되었다. 뉴질랜드 남섬 피오르드랜드국립공원Fiordland National Park에 있는 밀포드Milford 트랙이다. 뉴질랜드의 시인 밸런치 보한Blanche Baughan은 원래 밀포드 트랙을 ‘주목할 만한 산길a notable walk’로 소개했는데, 편집자에 의해 ‘세계에서 가장 멋진 산길 Finest Walk in the World’로 바뀌어 실렸다고 한다. 내가 만난 밀포드는 태곳적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트랙으로 명성 그대로였다.
밀포드 트랙의 역사는 뉴질랜드 역사만큼이나 오래됐다. 원래 이 길은 뉴질랜드 마오리 원주민들이 청옥을 수집하고 운반하는 길로 사용했다. 도널드 서덜랜드Donald Sutherland와 존 맥케이John Mackay는 밀포드 사운드Milford Sound의 유럽 최초 거주자로 현재 트레킹 루트 상의 ‘맥케이 폭포’와 ‘서덜랜드 폭포’를 1880년 최초로 발견한 탐험가였다. 서덜랜드는 이 지역을 찾는 방문객들이 폭포를 볼 수 있도록 아서 밸리Arther Valley 트랙을 만들었으나 피오르드랜드의 거친 해안으로 인해 접근이 제한적이었다.
퀸틴 매키넌Quintin McKinnon은 밀포드 트랙을 일반에게 알린 최초의 등반가이자 기업가다. 그는 산업 시설이나 농업의 미래가 없는 밀포드 사운드 지역에 관광 산업이 주류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1888년 테 아나우호수Lake Te Anau의 북쪽 끝에 있는 클린턴계곡에 트랙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밀포드 사운드로 가는 고개를 넘었는데, 이 패스는 그의 이름을 따서 매키넌 패스Mackinnon Pass라 이름 붙여졌다.
매키넌은 ‘매키넌 패스’처럼 트랙의 많은 곳에 이름을 붙였는데, 그는 즐겨하는 요리 중 하나인 스콘scone의 일종인 폼폴로나pompolona의 이름을 따서 자신이 운영하는 가이드 투어의 산장을 ‘폼폴로나’라고 이름 붙였다.
총길이 53.5km인 밀포드 트랙은 10월에서 4월 말에 이르는 그레이트 워크 시즌(성수기)에는 하루 100명(가이드 투어 60명, 독립 트레커 40명)만 입산이 허가되어, 연간 입산 가능한 인원이 1만5,000명밖에 되지 않는 특별한 트레킹 코스이다.
의 하이라이트인 매키넌 패스가 있다.
밀포드 트랙은 테 아나우호수의 글레이드 와프Glade Wharf에서 시작되어 샌드플라이 포인트Sandfly Point에서 끝난다. 글레이드 와프에 가기 위해서는 테 아나우 다운스Te Anau Downs에서 보트(예약 필수)나 수상 택시를 타야 한다. 그리고 트레킹이 끝나는 지점인 샌드플라이 포인트에서도 수상 택시를 타야지만 밀포드 사운드로 나갈 수 있다. 이렇듯 밀포드 트랙은 지형적 특성상 배를 통해서만 드나들 수 있기 때문에 철저한 인원 통제가 가능한데, 사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트레킹을 할 수 없다.
밀포드 트랙은 뉴질랜드가 가장 자랑하는 트레킹 코스인 만큼 곳곳에서 환경을 보전하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트레킹에 앞서 모든 트레커는 트랙이 시작되는 글레이드 와프 입구에 비치되어 있는 스프레이로 신발과 스틱을 소독해야 한다. 트랙은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을 만큼만 개발되어 있고 보전이 필요한 습지에는 나무 데크를 깔아 놓았다. 산장에서는 자연분해가 가능한 친환경 세제를 이용해 설거지해야 하며 가져간 쓰레기는 모두 되가져와야 한다. 또한 트랙 내에서의 캠핑은 허용되지 않는다.
밀포드 트랙은 1888년 퀸틴 매키넌이 개척한 이후 원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것은 위와 같은 입장객 제한, 외부 동식물 반입 금지 등 환경을 보전하기 위한 뉴질랜드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밀포드 트랙은 뉴질랜드 남섬의 피오르드랜드국립공원의 심장부를 가로지른다. 뉴질랜드 남섬 남서부에 자리 잡고 있는 피오르드랜드국립공원은 14개의 사운드(구불구불한 좁은 만)와 호수, 산, 숲 등이 있는 자연의 보고로, 뉴질랜드에서는 가장 크며 세계에서는 다섯 번째로 큰 국립공원이다.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어로 ‘소용돌이치는 물의 동굴’이라는 뜻을 가진 테 아나우호수는 마치 바다 위를 항해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할 만큼 광대했다. 호수 빛은 어떤 물감으로도 흉내 낼 수 없을 듯 깊고 영롱했다. 쪽빛 호수 물은 한 사발 떠 마시면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갈 것 같다.
물보라를 일으키며 테 아나우호수를 가로지르는 배 옆으로는 사람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무성한 숲과 함께 하늘의 구름과 맞닿아 그 경계가 어딘지 모를 설산이 내내 펼쳐졌다. 티끌 하나 없이 맑고 깨끗한 뉴질랜드의 대자연에 흠뻑 취해 있다 보니 어느새 글레이드 와프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 테 아나우호수를 벗어나 북쪽의 내륙으로 들어갔다. 너도밤나무 아래로 평탄하게 이어진 길은 마치 미지의 세계로 안내하는 것 같았다. 밀포드 트랙에서는 심심찮게 토착 야생 조류를 볼 수 있다. 암탉 종류의 웨카weka는 뉴질랜드의 고유 조류로 퇴화한 날개 대신 튼튼한 다리를 가지고 있는데, 움직임이 상당히 재빠르다. 부시 로빈bush Robin은 호기심이 많은 데다 천적이 없어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가까이 다가가 손을 내밀자 고개를 갸우뚱 거릴 뿐 도망을 가지 않는다. 매우 희귀한 로빈은 웨카와 함께 멸종 위기종으로 국제보호조류 목록에 속해 있다
산악 지역에 서식하는 케아 앵무새kea parrot 역시 호기심과 장난기로 유명하다. 산장에는 등산화나 스틱을 처마 밑에 매달아 놓으라는 문구가 있는데, 이를 간과했다가는 등산화를 잃어버리는 불상사가 발생하기도 한다.
밀포드 지역은 연평균 강수량이 7,000㎜로 온난하고 습한 환경에서 자라는 양치류와 이끼류가 많다. 특히 고사리와 같은 양치류의 경우 200여 종이 서식하고 있는데, 고도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며 그중 40%는 세계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 종이다. 때문에 다양한 동식물과 고산식물을 관찰하는 것은 원시의 생명력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밀포드 트레킹에서 빼놓으면 섭섭한 ‘샌드플라이Sandfly’는 날파리처럼 생겼는데 모기처럼 피를 빤다. 비가 많이 오는 지역, 특히 피오르드랜드 지역에서 기승을 부리는 샌드플라이는 사람이 모여 있는 곳, 혹은 길을 걷다 잠시 멈추기라도 하면 어디선가 금세 날아와 사람 몸에 들러붙는다. 물리면 엄청나게 간지러운 데다 벌에 쏘인 것처럼 피부가 부어오른다. 샌드플라이에 물리지 않기 위해서는 미리 샌드플라이 퇴치제를 바르거나 망이 있는 모자를 쓰면 도움이 된다.
클린턴강의 현수교를 건너는 트레커들. 밀포트 트레킹 개념도
밀포드 트랙 3박4일간의 여정 1day 글레이드 와프 → 클린턴산장 5km
밀포드 트랙의 첫날은 클린턴산장까지 5km로 이동거리가 길지 않다. 클린턴강Clinton River을 건너는 현수교를 지나자 울창한 원시림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햇볕이 숲을 아름답게 물들이고 있다.
클린턴산장 근처에는 습지 산책로가 있다. 우리는 숲 속 한편에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았다. 행여 누군가 배낭을 가져가면 어쩌나 잠시 고민했지만 이곳은 배를 타야만 드나들 수 있는 곳인 데다 오늘 이곳에 들어온 사람은 모두 같은 산장에서 머물러야 하니 배낭을 분실할 위험은 없다.
습지로 이어지는 길에는 습지 보존을 위해 나무 데크가 정성스레 깔려 있어 내딛는 발걸음이 더욱 조심스럽다. 습지 안으로 들어가니 주변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왔다. 높디높은 하늘 아래 저마다 하얀 눈을 조금씩 얹은 채 솟아 있는 봉우리들과 그 아래 형형색색의 나무와 풀, 계곡을 가득 메우는 아름다운 새소리까지, 때 묻지 않은 순수 자연 속에서 마음이 한없이 편안해진다.
4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아담한 규모의 클린턴산장에는 산꾼 냄새가 배어 있었다. 내부는 나무로 만든 2층 침대와 매트리스가 놓여 있고, 주방 건물에는 가스레인지와 싱크대, 테이블만 있을 뿐 시설은 간단하다. 밀포드 트랙 내에는 총 여섯 개의 산장이 있다. 이 중 클린턴, 민타로, 덤플링 산장은 우리 같은 독립 트레커를 위한 산장이고 나머지는 가이드 투어 트레커가 이용한다.
가이드 투어의 경우 산장에서 샤워가 가능하고, 안락한 침대와 함께 질 좋은 음식이 제공되며, 동반한 가이드가 트랙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반면 독립 트레커의 경우 3박4일 동안 먹을 음식을 스스로 준비해야 하고, 상대적으로 시설이 빈약한 산장을 이용해야 한다. 하지만 산장에서 국립공원 직원으로부터 트랙에 대한 정보와 날씨에 대해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이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참고로 성수기 이외 기간에는 산장 시설을 이용할 수 없는 데다 눈사태 다발 지역이 많아 경험이 많은 트레커가 아닌 이상 방문하지 않는 것이 좋다.
2day 클린턴산장 → 민타로산장 16.5㎞
클린턴강을 따라 밀포드계곡을 거슬러 올라간다. 울창한 원시림 사이로 아침 햇살이 스며들자 숲이 깨어나기 시작한다. 여기저기 지저귀는 새소리, 가지를 한껏 젖혀 따스한 햇살을 맞이하고 있는 나무,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길섶의 풀과 이끼들, 웅덩이에 고인 물조차 맑고 깨끗한 밀포드의 숲은 그야말로 완벽한 자연이다.
풍요로운 원시림을 빠져나오자 탁 트인 계곡의 풍경이 펼쳐진다. 1만4,000년 전 빙하가 파놓은 협곡의 크고 작은 폭포와 계곡을 지나며, 이전과는 또 다른 풍경을 만끽한다. 설산 아래 짙푸른 계곡으로 흘러내리는 히레레 폭포Hirere Falls와 세인트 퀸틴 폭포Saint Quintin Falls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한낮에 달궈진 열기를 식히기에 충분하다.
메인 트랙에서 벗어나 있는 히든 레이크Hidden Lake는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폭포가 만든 호수로 절벽을 푸르게 덮고 있는 이끼와 여러 갈래로 흘러내리는 하얀 폭포는 잠시 말을 잊게 만든다.
밀포드 지역은 서안 해양성 기후로 많은 비가 내리는데, 햇볕이 내리쬐다가도 금세 비를 뿌릴 만큼 아주 변덕스럽다고 한다. 때문에 4일간의 일정 중 2일은 맑고 2일은 흐리거나 비가 내린다. 하지만 비가 내리면 ‘밀포드의 마법’이 일어난다.
깎아지른 화강암 바위벽을 타고 여러 갈래의 폭포들이 생겨나 그야말로 폭포의 향연을 즐길 수 있으니 비가 온다고 섭섭해 하지 않아도 된다. 푸릇한 잔디가 깔린 호젓한 길을 지나니 저 멀리 매키넌 패스가 보인다. 초입부터 울창한 너도밤나무 아래로 평탄하게 이어지는 밀포드 트랙.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즐길 수 있 는 특별한 산길이다(사진 왼쪽). 서덜랜드폭포를 제대로 즐기려면 바위에 누워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다. 물보라를 일으키며 시원스레 떨어지는 거인의 문 폭포. 3day 민타로산장 → 매키넌 패스 → 덤플링산장 14㎞
밀포드 트랙 중 가장 높은 지점인 매키넌 패스(1,154m)는 밀포드 트랙을 개척한 퀸틴 매키넌의 이름을 딴 고개로, 밀포드 트랙의 하이라이트이다. 민타로산장을 출발해 지그재그로 난 길을 따라 오르니 어느새 원시림이 있던 자리에는 키 작은 관목들이 자리 잡고 있다.
매키넌 패스에 다다르자 자욱한 안개와 함께 비바람이 몰아친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해가 비추며 푸르른 계곡과 웅장한 산봉우리로 가득한 장엄한 경관이 눈앞에 펼쳐졌다. 빙하에 깎여 만들어진 거대한 계곡의 전망은 경이로웠다. 이곳에서 트랙은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따라 아서계곡Arther Valley으로 이어진다. 거침없이 떨어지는 수많은 폭포가 맑은 계곡의 정취를 더욱 고조시켰다.
특히 뉴질랜드에서 가장 높고,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높은 서덜랜드폭포는 높이 580m의 3단 폭포로 그 위용은 멀리서도 보는 이들을 압도했다. 경이로운 광경에 탄성을 내지르며 서덜랜드폭포 가까이 다가가자 엄청난 유량이 만들어내는 바람과 굉음에 두려움마저 느껴졌다. 히말라야 고산 같은 느낌을 주는 마운트 하트(1,769m). 너도밤나무 숲에 에워싸여 잔잔히 흐르는 옥빛 클린턴강은 발길을 저절로 멈추게 한다.
밀포드 트랙의 마지막 날은 수정처럼 맑은 아서강Abthur River과 잔잔한 아다호수Ada Lake를 따라 이어진다. 아서강을 건너 다시 숲 속으로 이어지는 길은 산행의 피로를 날려주는 맥케이폭포Mackay Falls와 침식 작용으로 만들어진 종 모양의 벨 록Bell Rock이 있는 사이드 트랙으로 연결된다.
맥케이와 도널드 서덜랜드는 이곳을 탐험할 당시 싱그러운 초록 숲에서 흰 물보라를 일으키며 떨어지는 폭포를 발견했다. 이에 도널드 서덜랜드가 자신보다 연장자인 맥케이에게 양보해 맥케이폭포라고 이름 붙여졌는데, 나중에 이보다 훨씬 더 큰 폭포가 발견돼 서덜랜드폭포라 이름 붙였다. 아마도 맥케이가 많이 후회하지 않았을까 싶다.
밀포드 트랙의 종착지는 샌드플라이 포인트이다. 말 그대로 이곳은 샌드플라이를 위한 천국이다. 호시탐탐 헌혈을 요구하며 달려드는 샌드플라이를 피해 대피소 안으로 들어가니 먼저 도착한 트레커들이 환한 웃음으로 박수를 치며 반겨준다.
트레킹 첫날만 해도 모두들 서먹했지만 3박4일 동안 세계 최고의 트랙을 걸으며 같은 산장에서 잠을 자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이곳에 모인 모두는 친구가 되어 있었다. 그것은 밀포드의 또 다른 마법이었다. 곧 우리를 태울 보트가 도착하고, 우리는 1만2,000년 전 빙하에 의해 형성된 피오르드 해안의 절경을 감상하며 밀포드 사운드로 향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