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계시지 않는 어린 시절, 나는 얼마나 외롭고 쓸쓸하며, 보잘 것 없는 아이였던가.
가족들 모두가 나가고 없는 빈집에서, 초등학교 시절 방과후에 집으로 돌아와도 맞이해 주는 사람 하나 없는 텅 빈 방이 나는 그지없이 두려웠다.
모든 것이 새삼스럽게 애틋하고 그리워지던 사춘기 시절, 마당의 벽오동나무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보름달을 보면서 나의 눈물짓던 날은 얼마나 많았던가.
어머니를 향한 그 엄청난 그리움, 그 사무치는 정념을 나는 가눌 길이 없었다.
내가 오늘날 시를 쓰고, 문학을 하게 된 것도 하염없이 솟구치는 그리움을 내 스스로 풀기 위하여 저절로 그리된 것이라 나는 여긴다.
어머니와 내가 서로 이승의 인연은 비록 짧았으나 어머니께서는 부모은중경의 열 가지 은혜로움을 지금도 여전히 나에게 베풀고 계신다고 나는 확신한다.
몸 속에 나를 품으시고 열달동안 잘 보호해 주셨으니 회탐수호은(懷耽守護恩)이요,
6.25의 전란 중에서도 피난지에서 나를 낳는 고통을 겪으셨으니
그 임산수고은(臨産受苦恩)을 어찌 잊으리.
나를 낳고 산후조리를 제대로 못해서 병을 얻으셨고,
그 길로 바로 세상을 떠나게 되셨으니
이 생자망우은(生子忘憂恩)을 생각하면 몽매간에도 눈물이 흐른다.
나는 때로 나를 두고 먼저 떠나신 어머니가 참 야속하기도 했고 원망스럽다는 생각도 했으나,
포대기에 쌓인 어린 핏덩이를 남기고 떠나실 즈음 어머니의 속마음이 어떠하셨을까를 생각하면 내 가슴속의 원망은 눈 녹듯이 사라진다.
실제로 어머니께서는 임종하실 때에 어린 나를 가리키며 "저것은 곧 나를 따라 올 것이니……" 라고 차라리 안심하시고, 형과 누나들의 장래를 도리어 걱정하셨다고 한다.
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신 후 아버지는 어린 나를 품에 안고 비슷한 시기에 아기를 낳은 마을 아낙네들을 찾아다니며 동냥젖을 먹이셨다고 한다. 또 홍합과 쌀가루를 넣고 끓인 암죽을 떠 먹여서 내가 어머니를 뒤따라가지 않도록 겨우겨우 말리셨다.
두 누나들이 어머니대신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주고, 맛난 음식은 따로 두었다가 몰래 주었으니 회건취습은(回乾就濕恩)과 회고토감은(回苦吐甘恩)은 모두 그분들의 몫이다.
아버지께서는 주로 젖을 먹여서 길러주시는 유포양육은(乳哺養育恩)을 맡으셨고,
누나들은 나에게서 나오는 온갖 빨래를 모두 해주었으니 세탁부정은(洗濯不淨恩)을 전담하였다.
이렇게 죽을 목숨인 내가 다시 살아나자 세 살 되던 해에 우리 가족은 도회지로 이사하였다.
그로부터는 또다시 새로운 고통의 시작이자 반복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느낀 적도 있었고, 가서는 아니 될 곳도 더러 갔다.
멀고 가까운 곳을 두루 여행하기도 했었고, 때로는 생사의 위험한 고비를 겪기도 했었다.
무릇 사람 사는 일이 다 그런 경로와 과정이 아니던가.
이런 때에도 어느 한순간이건 내가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지 않은 때가 없었다.
어머니께서 귓전에 나직이 소근거리는 말씀은 대개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얘야, 너 그런 곳에 가서는 아니 된다."
"좀더 조심할 수 없겠니?"
"그만한 걸 고생이라고 힘들어하느냐?"
"해로운 것을 입에 대서는 못쓴단다."
"잘 살펴보고 다니거라."
"매사에 더욱 힘쓰고 노력해야지."
"너 언제까지 이렇게 늘어져 있을 것이냐?"
내가 삶에 의욕을 잃고 있거나, 방심하고 있을 때 어머니께서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런 말씀만 주로 들려주시는 것이었다.
옛적에 어떤 홀어머니와 함께 살던 패륜아가 집을 뛰쳐나가 도적의 굴에 들었는데, 드디어 두령이 되기 위한 시험으로 제 어머니의 목을 베어오는 과정이 있었다.
도적은 천리 길을 달려서 옛 고향집으로 왔건만 그날 밤에도 늙으신 어머니는 아들이 돌아왔을 때 입힐 옷을 손질하고 계셨다.
도적은 한순간 움찔했건만 욕심이 그의 양심을 가렸다. 드디어 방을 박차고 들어가 어머니의 목을 베었다. 그리곤 곧바로 피가 뚝뚝 흐르는 어머니의 머리를 허리에 차고 정신없이 달려갔다. 어느 낭떠러지에서 아들은 실족하여 굴러 떨어졌다.
정신이 혼미한 아들의 귀에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렸다.
"얘야. 어디 다친 데는 없느냐? 조심해서 다녀야지."
정신을 차리고 본즉 허리에 찬 어머니의 목에서 들려오는 말씀이었다.
어머니는 아들의 손에 의해 죽었지만, 죽은 뒤에도 못난 자식의 앞길을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어려서 누구에게선가 들었던 이 고담을 잊지 못한다.
어머니께서 시시때때로 바람결에 들려주시는 귓속말도 이야기 속에 나오는 어머니 말씀과 꼭 같을 것이라고 나는 여긴다.
먼길을 떠난 자식이 이제나 돌아올까 저제나 돌아올까 하고 기다리는 원행억념은(遠行憶念恩),
나쁜 일에 가담하지 말라고 항상 타이르시는 위조악업은(爲造惡業恩),
그리고 언제까지나 자식의 모든 것을 걱정하시는 구경연민은(究竟憐愍恩)까지 어머니의 정성과 사랑은 이승과 저승을 초월하여 그 따뜻한 손길로 쓰다듬어 주신다고 나는 믿는다.
사진도 한장 없고
어찌 생기셨는지 얼굴조차 모르지만
그 어머니께서
늘 내 속에 와 계시고
또 자식 옆을 잠시도 떠나지 않으시며
살아 계실 때처럼 이것저것
보살펴 주신다는 것을
나는 안다
(필자의 시 [어머니] 중에서)
일본의 시인 이시카와 타쿠보쿠가 어느 날 모처럼 고향집에 돌아가서 장난 삼아 어머니를 등에 업었는데, 등에 업힌 어머니의 체중이 너무도 가벼워서 세 걸음을 채 못 걷고 발등에 눈물을 떨구고 말았다는 감동적인 시가 있었다.
나도 소원이 있다면 이시카와처럼 내 어머니를 등에 한번 업어보는 것이다.
아, 어머니는 내 삶과 문학의 영원한 갈망이요, 목표 그 자체이다.
내가 지금 나의 삶에서 추구하는 모든 지향과 노력이란 모두 어머니를 내 속에 넘실거리도록 하기 위해서, 아니 내가 어머니에게 가 닿기 위해서 애쓰는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어머니를 주제로 한 시작품을 더러 썼지만 아직도 흡족한 작품을 제대로 써내지 못했다.
오늘 아침에도 자리에서 일어나 눈을 감고 어머니에게 "어머니, 오늘 하루도 저를 잘 보살펴 주시어요." 라고 마치 어린아이가 응석을 부리듯 나는 은근히 부탁한다.
첫댓글 부모은중경을 풀어쓰신 이동순쌤의 사모곡입니다 매년오월이면 다시금 올려보지요 ...월간조선에서 발췌한 내용이랍니다
.....곁에 계시든 계시지 않든 느끼는 만큼, 감사히 여기는 만큼 내 마음속에 존재하는 것이겠지요. 힘이 되어 주시겠지요....
부모님 생각하면 골치아픕니다.저 때문에 저 다리에서 주워왓걸랑ㅇ요 ㅎㅎㅎㅎㅎㅎㅎ
눈물흘리고 갑니다
잘 읽었습니다 부모가 되고나니 효가 뭔지 어렴풋이나마 알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