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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해우(海隅)의 백합국어사랑방(신문사설&칼럼) 원문보기 글쓴이: 해우(海隅)
2010년 11월 13일 토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
[한국일보 사설-20101113토] 포항 요양원 참사, 행정 미비점 살펴야
경북 포항의 노인요양시설에서 불이 나 요양환자 27명 전원이 숨지거나 다치는 대형 인명사고가 발생했다. 불과 5평 남짓한 공간이 타 들어간 20여분의 짧은 화재 시간과 규모에 비하면 어처구니없이 큰 인명피해다. 특히 희생자들이 모두 치매나 중풍 1~2등급을 받은 중증 여성장애인들로 사회와 가정이 세심하게 보살필 책임이 있다는 점에서 이번 사고에 접하는 심정은 더욱 무겁고 안타깝다.
지금까지의 조사로는 운영이나 설비 면에서 특별히 규정을 어긴 부분은 없는 것으로 나와 있다. 최근의 소방실태 점검에서도 별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다. 화재경보기나 스프링클러 등의 고정 소방시설이 갖추어져 있지 않다는 지적도 있으나, 이 요양원은 규모가 작아 소방법상 소화기만 비치하면 되는 시설로 분류돼 있다. 보호인력, 수용인원도 규정 수준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더욱이 이곳에서 생활하는 이들은 워낙 고령의 중증 장애노인들인 데다 새벽에 일어난 화재여서 작은 사고가 대형참사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현행 시설, 안전규정 자체다. 혼자 거동이 어려운 환자들의 요양시설이라는 점을 고려하지 않은 채 안전규정을 일반 건축물과 구분 없이 적용한 것은 잘못이다. 노약자 시설에 대해선 아무리 작은 규모라도 고정 소방안전시설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상식에 부합한다. 야간 보호인력기준도 높이고, 이들에 대한 안전 및 구조교육에도 빈 틈이 없어야 했다. 실제로 화재사실 인지 후 근무자가 제대로 소방서에 신속하게 신고하지 못해 대응시간이 지연된 것도 희생을 키운 요인으로 지적된다.
2008년 노인 장기요양보험 실시 이후 노인요양시설은 3배 가까이 폭증, 전국적으로 3,000곳이나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고 요양원이 중급 정도의 평가를 받았던 만큼 졸속으로 설립된 더 열악한 시설이 숱하게 방치돼 있으리라는 점은 불문가지다. 차제에 전면적인 점검으로 실태를 확인하고, 관련 안전 및 운영규정도 시설특성에 맞게 손질해야 한다. 국격을 높이려면 외양의 포장에 앞서 내부적으로 탄탄한 내실을 갖추는 게 먼저다.
[한겨레신문 사설-20101113토] 현대차, ‘사내하청 정규직 인정’ 빨리 수용해야
서울고등법원 민사2부가 어제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내하청 노동자 4명에 대해 현대차 정규직 지위를 인정했다. 파견직으로 2년 넘게 일하면 원청 업체가 직접 고용한 걸로 간주한다는 옛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른 판결이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 7월 울산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해서 같은 취지의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런 잇단 판결은 사내하청을 정규직 고용에 따른 부담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악용해온 기업들 행태의 부당성을 거듭 재확인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온갖 방법을 동원해 부당한 고용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현대차의 모습은 측은하기까지 하다. 얼마 전 ‘2년 초과 근무 파견노동자는 직접 고용한 것으로 본다’는 옛 파견법 조항이 기업 경영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재판부에 위헌법률 심판 제청을 신청한 게 대표적이다. 위헌 논란을 벌임으로써 사내하청 노동자 직접 고용을 피하거나 늦춰보려는 꼼수였다. 대법원 판결이 이미 나온 상태인데다 이번 재판의 판결이 임박한 시점에 제기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번 재판부가 위헌이 아니라며 현대차의 이 신청을 기각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정이다.
현대차는 법원의 판결을 존중해 하루빨리 해당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 또 비슷한 상황의 사내하청 노동자 문제도 성의를 갖고 해결해야 할 것이다. 비슷한 처지의 비정규직 노동자 1940명은 지난 4일 집단 소송을 제기해놓고 있다. 게다가 현대차 비정규직노조지회도 오는 15일 파업에 들어가겠다고 예고하고 있다. 회사가 성의있는 자세로 나오지 않으면 비정규직과의 충돌을 피하기 어려운 상태다.
현대차 정규직 노조도 사내하청 등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힘을 보태야 한다. 사내하청 문제는 정규직과 무관하지 않으며, 나아가 정규직이 적극 나서야 원만하게 해결될 수 있다. 사내하청의 상황 개선은 정규직의 고용 안정에도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절실히 요구된다. 정규직 노조의 각성과 연대를 촉구한다.
[조선일보 사설-20101113토] 외규장각 도서의 144년 만의 귀향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강화도 외규장각에서 빼앗아 간 조선왕실의궤(儀軌) 297책이 돌아오게 됐다. 이명박 대통령과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은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보관하고 있는 외규장각 도서들을 한국에 대여(貸與)하고 이를 5년마다 자동 연장할 수 있도록 한다는 데 합의했다. 우리가 희망한 완전 반환은 아니지만 실질적으로 영구히 소유하게 됐으니 의의가 크다.
때마침 서울에서 G20 정상들이 모여 세계 경제의 앞날을 의논하는 행사가 끝나는 날 들려온 외규장각 도서의 귀향 소식이라 감회가 더 깊다. 144년 전 세계사의 흐름에 눈 감고 귀 막은 나라였던 옛일이 새삼 가슴에 맺힌다.
돌아온 의궤들은 국왕이 직접 열람하기 위해 만든 정본(正本)이다. 종이의 질이나 장정, 그림 등이 국내에 남아 있는 참고용 부본(副本)들과 비교할 수 없이 격조 높고 우수하다. 정부 당국은 돌아온 문화재의 보관에 정성을 다하고 연구에 널리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외규장각 도서 귀환 소식을 접하며 재불 서지학자 박병선 선생의 공(功)을 잊을 수 없다. 그는 1975년 프랑스 국립도서관 서고에서 먼지 쌓인 외규장각 도서를 맨 처음 발견했고, 이들 자료의 연구와 반환을 위해 일생을 바쳤다. 문화재는 나라에 힘이 있어야 지킬 수 있고, 그 가치를 알아보는 눈이 있어야 우리 것으로 누릴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깨닫는 계기다.
[서울신문 사설-20101113토] ‘서울선언’ 다함께 성장하는 디딤돌 삼자
‘위기를 넘어 다함께 성장’이라는 주제로 열린 서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핵심 쟁점을 둘러싼 막판 진통을 거친 끝에 ‘서울선언’을 탄생시키며 어제 폐막됐다. 서울 정상회의 선언문은 시장결정적 환율제도를 이행하되 경제펀더멘털이 반영되도록 환율의 유연성을 높이고, 경상수지 조기경보체제를 마련하되 가이드라인은 내년 프랑스 정상회의 때까지 합의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 밖에 국제금융기구 및 금융규제 개혁, 개발의제, 글로벌 금융안전망 구축, 무역·에너지·반부패 척결선언 등이 포함됐다. 핵심 사안별로 각국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한 만큼 문제들을 풀기가 쉽지 않았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해 상호 이해와 합의의 정신으로 최적의 타협점을 찾아낸 각국 정상들의 노력을 우리는 높이 평가한다.
이번 서울 정상회의를 통해 G20은 세계 경제질서를 관리하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최상위 협의체로서 위상을 확고히 했다고 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워싱턴에서 첫 회동한 지 2년 만이다. 서울 정상회의를 통해 금융위기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고강도의 새로운 룰과 환율갈등 및 글로벌 불균형 해소를 위한 기본 장치가 마련됐다. 위기극복을 넘어서 세계 경제의 균형성장이라는 새 패러다임도 제시됐다. 중요한 것은 각국의 실천의지다. 이명박 대통령이 강조했듯이 전세계의 지속성장을 위해서는 국제공조가 매우 중요하다. 각국은 눈앞의 이익에 매달릴 게 아니라 대승적 차원에서 동반성장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서울선언문을 디딤돌 삼아 G20 국가들은 국제공조를 강화하는 가운데 세계 경제의 지속가능한 동반성장을 이룩해 나갈 것을 당부한다. 함께 갈 때에 더 멀리, 더 오래 갈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국의 괄목할 만한 위상변화는 이번 회의가 거둔 중요한 수확이다. 의장국으로서 한국은 선진국과 신흥경제국 간 무역불균형 문제 및 환율문제, 세계 금융규제 개혁 등 주요 의제를 둘러싼 이견들을 조정하고 합의를 도출해 내는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다. 특히 개발이슈와 금융위기 재발 방지를 위한 글로벌 금융안전망 강화 등 우리가 주도한 의제, 즉 코리아 이니셔티브에서 적극적인 노력으로 가시적인 성과를 일궈낸 점은 의미심장하다. 새로운 세계 경제질서 창출을 주도하는 중심국가로 자리잡은 한국의 역할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01113토] 주가지수옵션 만기 결제제도 전면 손질해야
코스피지수 옵션 만기일이었던 지난 11일 마감 동시호가에 무려 1조6200억원의 매물이 쏟아지며 순식간에 코스피지수가 50포인트 이상 급락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오후 2시50분까지 약보합을 유지하던 코스피지수가 동시호가가 끝난 오후 3시 전일 대비 53포인트나 빠진 1914.73으로 마감된 것이다.
갑자기 폭락한 증시에 일반 주식 투자자들도 당황했지만 옵션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극단적으로 희비가 엇갈렸다. 풋옵션 매수자들은 10분 만에 수십배에서 수백배의 대박을 터뜨린 반면 풋옵션을 매도했거나 콜옵션을 매수한 쪽은 한순간에 엄청난 손실을 입었다. 특히 풋옵션을 매도한 일부 기관투자가는 투자금의 수십배 내지는 수백배까지 물어내야 할 판이라고 한다. 이번 일로 중소형 자산운용사나 증권사 중 문 닫을 곳이 생길 것이라는 등 흉흉한 소문도 나돌고 있는 모양이다.
문제는 이런 대형 사고가 이미 예견돼 있었고 이번이 처음도 아니라는 점이다. 옵션의 결제 기준이 되는 코스피지수를 옵션 만기일 동시호가를 통해 결정하는 불합리한 제도가 존속하는 한 언제 터져도 터질 일이었다. 현행 제도상 옵션 투자자들은 만기일 오후 2시50분부터 10분간 모든 것을 '운'에 맡길 수밖에 없다. 프로그램 매매를 비롯 3시까지 동시호가 시간대에 쏟아지는 현물주식 주문 동향에 따라 옵션의 결제 여부와 결제 가격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눈 감고 내기를 하는 것과 다름없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고의 책임은 전적으로 이런 '도박'이 가능하도록 만기결제 제도를 만들고 운영해 온 금융당국에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그동안 제도개선 목소리를 외면하던 당국과 한국거래소가 불공정 거래 운운하며 관련 증권사를 조사하겠다고 밝힌 것은 실소를 금치 못할 일이다.
당국은 이번 일을 계기로 동시호가 제도를 포함, 외국에서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불합리한 옵션 만기 결제지수 결정방식을 반드시 고쳐야 한다. 주식워런트증권(ELW)처럼 만기일 포함 5일 평균 종가로 정산하는 방식 등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시장의 문을 10분간 닫아 놓고 주가를 급등락시키는 '장난'을 더이상 허용해서는 안된다. 이번에는 기관투자가들이 주로 피해를 입었지만 보통 개인투자자들이 일방적으로 손해를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01113토] 한미FTA 합의 약속 반드시 지켜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추가 협의가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좀 더 논의를 계속하기로 했다. 양국 정상이 약속한 대로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전까지 최종 타결을 목표로 지난 4일부터 실무자 및 통상장관회의를 통해 입장을 조율했으나 미국 측이 제기한 쇠고기 문제에 발목이 잡혀 결국 합의에 실패했다. 한국 측이 자동차 환경 및 안전기준, 연비 등을 완화해달라는 미국 측 요구를 상당 부분 수용함으로써 타결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미국 측이 막판에 무리하게 쇠고기 수입 확대를 요구한 것이 걸림돌이 됐다.
한미 양국 정상 간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은 매우 실망스럽다. 그러나 이른 시일 안에 이견조율을 통해 조속히 타결하기로 합의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정상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세부사항을 논의하는 데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입장을 표명했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양국 협상팀이 앞으로 며칠 또는 몇 주 동안 노력해 타결하도록 지시했다"고 말해 한미 FTA 조기타결 의사를 거듭 확인했다. 성급한 합의보다는 시간을 갖고 신중을 기하는 것이 길게 보면 더 바람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한미 FTA에 대한 추가 협의를 조속히 마무리 짓기 위해서는 협정의 당초 취지를 존중하고 큰 틀을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번 협의가 무산된 것은 미국 측이 무리하게 쇠고기 수입 연령제한 철폐 및 검역완화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한국 측은 '굴욕적 협상'이라는 야당의 비판을 받으면서도 자동차 분야에 대한 미국 측의 요구를 수용했다. 그런데도 미국 측이 쇠고기 문제까지 요구하고 나서 합의를 지연시킨 것은 FTA의 큰 틀을 훼손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일방적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한미 FTA를 놓고 더 이상 시간을 끄는 것은 양국 모두에 손해다. 한국의 쇠고기 수입이 계속 늘어나는 상황에서 미국이 수입확대를 요구한 것은 지나치다. '촛불사태'에서 봤듯이 쇠고기 문제는 국민정서와 직결돼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쇠고기 문제에 끌려 다닐 경우 FTA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중요한 것은 한미 FTA를 조속히 발효하는 것이다. 쇠고기 문제와 관련해 양국은 이른 시일 안에 적정하고 합리적인 선에서 합의에 이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기 바란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동아일보 칼럼-오늘과 내일/정성희(논설위원)-20101113토] 그리스發 우편폭탄의 난센스
우리나라에서는 별 재미를 못 보았지만 영화 ‘나의 그리스식 웨딩’은 2002년 미국 개봉 당시 ‘진주만’ ‘아마겟돈’ 같은 블록버스터를 누르고 공전의 히트를 쳤다. 시카고에서 그리스식당을 운영하는 그리스계 노처녀가 미국 청년과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양국간 문화충돌을 코믹 터치로 그렸다. 여주인공 툴라의 아버지는 시집 못가는 딸을 못마땅해 하다가 막상 미국 청년을 데려오자 그리스 남자가 아니라며 결혼 훼방작전에 나선다. 가족과 친지들이 서로의 삶에 깊이 관여하는 왁자지껄한 가족문화가 우리와 비슷해 공감이 갔다.
* 무책임한 과잉 복지가 부른 국가재앙
이 영화의 제작자는 명배우 톰 행크스다. 아내 덕에 그리스 문화에 이해가 깊어진 그는 이 작품 외에도 ‘맘마미아’ ‘나의 로맨틱 가이드’ 등 그리스 3부작을 만들었다. 툴라의 아버지는 그리스가 민주주의, 철학, 천문학의 발상지라며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있다. 영화는 미국적 개인주의 가치에 대한 가족 중심 가치의 우월성을 강조하며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하지만 그리스가 2010년 현재 맞고 있는 재정위기를 극복해 해피엔딩을 보여주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올해 세계경제를 불안으로 몰아넣은 남유럽 재정위기의 근본원인은 방만한 복지제도에 있다. 그중에서도 그리스는 진원지가 될만한 조건을 고루 갖추고 있다. 최근 방문한 아테네에서는 일몰 후 열린 상점을 찾기 어려웠다. 제우스 청동상으로 유명한 국립고고학박물관에 가서 책자를 사려했더니 박물관 숍이 닫혀 있었다. 지방선거(11월 7일)를 앞둔 아테네 중심가는 개혁조치에 반대하는 시위로 조용한 날이 없었다.
그리스에는 직종에 따라 다양한 연금기금이 있다. 155개에 이르는 연금기금이 2008년 13개로 통폐합됐지만 기금이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다. 연금이 고갈되면 정부가 국고로 메워주고 국고가 비면 이웃나라에서 빌려다 미봉하는 무책임의 극치를 보인다. 연금과 건강보험이 하나로 통합돼 있어 한쪽이 부실해지면 다른 쪽도 바로 영향을 받는다. 그리스 최대의 민간연금기관인 IKA 관계자는 “우리 연금제도를 절대 따라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더 큰 문제는 부실규모가 정확하지 않다는데 있다. 그리스 정부는 지난해 1월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3.7%라고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에 보고했다. 그러나 재정적자 규모가 GDP의 6.0%(6월), 12.5%(10월)라는 보도가 나오자 그리스 정부는 마지못해 시인했다. 금년 4월 EU통계청은 14.6%라고 발표했고 결국 EU가 밝혀낸 최종 적자액은 GDP의 15.4%였다. 그리스 정부는 달러 및 엔화 표시 채권을 발행하면서 채무를 부채로 처리하지 않는 회계조작을 통해 부실규모를 숨기다 EU에 발각됐다. 회계의 불투명성이 대외 신인도를 크게 떨어뜨렸다.
* 국가 경쟁력 갉아먹는 친족연고주의
그리스는 공공부문의 비효율과 부패가 극심하다. 공무원과 공공기관 종사자의 임금이 민간부문보다 높고 근로조건도 훨씬 좋다. 그런데 공공부문의 채용방식은 공채가 아닌 특채다. 어느 공직이 비게 되면 연줄이 닿는 공무원이 자신의 가족이나 친지를 채용하는 식이다. 자기들끼리 일자리를 나눠 갖고 연금까지 독식하는 시스템에 중독 돼 있다. 영화 ‘나의 그리스식 웨딩’에서는 가족주의적 가치가 자랑이었지만 그리스 공공부문의 네포티즘(친족연고주의)은 국가 경쟁력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그리스 젊은이들이 세금인상 임금동결 등 개혁조치에 강하게 저항하면서 유럽 몇 나라 최고지도자와 아테네 주재 외국 대사관에는 그리스가 발신인으로 적힌 우편폭탄이 배달되고 있다. 지금의 위기를 반성의 계기로 삼기는커녕 복지개혁을 요구하는 외국을 공격부터 하는 그리스에 희망이 있을까.―아테네에서
[중앙일보 칼럼-분수대/박종권(논설위원)-20101113토] 별점과 체벌
자습 안 하면 1점, 수업시간에 떠들면 2점, 옷매무새가 단정하지 않아도 2점, 선생님 지시를 어기면 3점, 컴퓨터 게임을 하다 적발되면 5점…. 학생 법정을 운영하고 있는 민족사관고교의 벌점 항목이다. 벌점이 쌓여 한 학기에 15점이 넘으면 추천서와 장학생 대상에서 제외된다. 40점을 넘기면 교내봉사, 60점은 생활기록부에 기재되고, 80점이면 권고 퇴학이다. 그래서 학교생활에 ‘벌점 관리’가 필수항목이란다. 다행히 벌점을 상쇄할 수 있는 ‘상점(賞點)’이 있지만, 이는 따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당연히 체벌은 없다.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실 전시품에 ‘교편(敎鞭)’이 있다. 옛날 서당에서 학동을 다스리던 훈장의 회초리다. 교사가 되는 것을 ‘교편을 잡는다’고 하는 연유다. 한자 풀이로 보면 원래 채찍이었던 것이 가르치고 가리키기에 용이하게 나뭇가지로 바뀐 듯하다. 회초리의 재질은 교육용과 징벌용이 다르다. 교육용 회초리는 뽕나무로 만든다. 뽕나무는 상처가 덧나지 않고 빨리 아물기 때문이다. 잘못한 자녀에게 다른 나무도 아니고 “뽕나무 가지를 꺾어 오라”고 하는 것도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반면 징벌용은 물푸레나무다. 단단하면서 탄력이 좋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에서 태형(笞刑)을 집행할 때 쓰는 회초리가 바로 물푸레나무 재질이다. 한번 맞으면 평생 흉터가 남는다고 한다.
학교 체벌이 금지되고 벌점이 도입되면서 곳곳에서 볼멘소리다. “교편을 던지라는 것”이라며 반발하는 교사, “차라리 한 대 맞는 게 낫겠다”는 학생들로 아우성이다. 반면 “체벌은 폭력이고, 학교에서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것을 가르치는 격 아니었나” 하며 반기는 목소리도 크다.
문제는 감정이다. 회초리에 사사로운 감정이 담기면 ‘사적 제재’다. 공공의 감정이 담기면 태형이다. 회초리가 법적 징벌 수단으로 남아 있는 나라는 극소수다. 동남아의 싱가포르·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아프리카의 탄자니아·나이지리아·짐바브웨 정도다. 국제사면위원회는 회초리 형벌을 “잔인하고 비인간적이며 인간의 품위를 떨어뜨린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사랑의 매’는 과연 가능할까. 구별하는 방법이 있다. 때린 사람이 맞은 사람보다 더 아프면 사랑의 매다. 아니라면 폭력일 뿐이다. 태형은 볼기에 상처를 남기지만, 체벌은 마음에 상처를 남긴다. 탤런트 김혜자씨의 아프리카 기행 수필집 제목을 빌어 표현하자면, 더 아플 자신이 없이는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경향신문 칼럼-여적/김택근(논설위원)-20101113토] 가을과 겨울 사이
길손이 되어 잎 떨군 나무와 함께 걷고 싶다. 걷다가 곤해지면 키 큰 미루나무가 있는 마을에 들러 누군가의 꿈속으로 흘러들어가고 싶다.
가을에서 겨울로 바람이 불면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사이먼과 가펑클이 부른 ‘철새는 날아가고(El Condor Pasa)’이다. 페루 전통악기 삼포냐의 음은 가을 끝과 겨울 초입을 맴돌고 있다. 이 노래의 고향은 페루이다. 듣고 있으면 우수가 피어오른다. 햇살조차 서늘하다. 황금의 나라 잉카제국은 이름만으로도 아프고, 인디오들이 경배했던 콘도르가 슬픈 전설을 입에 물고 페루에서 우리 땅으로 날아들 것만 같다. 얼핏 어디선가 본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란 카페도 떠오른다. 그 카페에는 약간 나이든 여인이 담배를 태우며 로맹가리의 소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읽고 있을 것 같다. 가끔 밖을 쳐다보면 나뭇잎이 떨어지고 철새가 비켜 날고.
우리는 가을 끝에 모여 있다. 낙엽의 시제는 과거, 과거를 떨치지 못하고 우리는 낙엽더미에 더 많은 생각을 뿌린다. 바람 소리가 슬퍼지면 누군가 내 곁을 떠나갈 것이다. 우리가 살아 저 낙엽을 몇 번이나 밟을 것인가. 불현듯 ‘지상에서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는 것은 어쩌면 서로를 지우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잊혀짐은 얼마나 서러운가. 그래서 입동이 지났는데도 이렇듯 가을 속을 서성거리고 있다. 또 한 번의 비가 내리면 가을이 끝날지 모른다. 가을비는 땅보다 마음에 먼저 내린다. 마음속에도 낙엽이 쌓인다. 그래서 가을에는 사람들 모두 곱다. 가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고운 사람에게서 전화를 받는, 아니 전화를 거는 행복한 아침이었으면 좋겠다.
[매일경제신문 칼럼-매경춘추/이재원(서울동부지방검찰정 검사장)-20101113토] 야구 모자
단체로 하는 구기 종목 중 야구만이 유일하게 모자를 쓰고 경기를 한다. 야구의 근대적인 틀이 마련된 19세기 중엽부터 쭉 그래왔다. 실외경기의 특성상 얼굴에 쏟아지는 햇빛을 가릴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야구모자가 요즘엔 패션의 일부가 됐다. 세계 어디를 가나 캐주얼 복장에 야구모자로 한껏 멋을 낸 젊은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패션코드로서 야구모자의 특성은 현장감, 활동성, 자유로움에 있는 듯하다. 누구든 야구모자를 쓰면 젊고 역동적이며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인물로 비친다. 아마도 치고 달리는 필드에서의 원초적 격돌이 야구모자를 통하여 되살아나기 때문일 것이다. 이라크전쟁 중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야구모자를 쓰고 현장을 전격 방문한 것도 이와 무관치는 않아 보인다. `필드(야전)의 대통령`임을 이보다 더 잘 보여줄 수는 없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사회적 공분을 자아낸 엽기적인 살인, 성폭력 등 용의자들에게도 친숙한 모자가 되어버렸다. 신문이나 TV에 나오는 그들은 한결같이 야구모자를 깊게 눌러 쓴 모습이다. 스캔들에 얽힌 연예인들이 기자회견을 할 때도 사정은 비슷하다. 가끔은 비리 의혹을 받는 사회 저명인사들도 애용하기도 한다. 모두 세간의 이목으로부터 부끄러운 얼굴을 감추기 위한 일종의 가림막으로 쓰는 것인데 야구모자의 새로운 용도가 생겨난 셈이다.
그래도 자신의 얼굴을 가리기 위해 점퍼나 양복 상의를 뒤집어쓰는 모습보다는 덜 흉하다 싶지만, 그런다고 죄까지 가려지는 것은 아닌데도 말이다. 수치심을 느낄 일을 아예 안 하면 야구모자건 점퍼건 필요없을 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물론 아무리 흉악한 범죄자라 할지라도 무죄추정의 원칙과 인권보호 차원에서 신원 공개는 극히 신중을 기해야 한다. 때때로 9회 말 역전 드라마처럼 억울함이 밝혀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수사관이라고 하여 마음대로 야구모자를 벗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야구팬이라면 좋아하는 팀이 악전고투 끝에 승리한 후 선수들이 일제히 모자를 벗어 들고 인사하는 모습에 희열을 느낀다. 야구모자는 그 순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승리할 때까지 고통도 번뇌도 감추고 드러내지 않는 극기의 그릇이 야구모자다. 혹여 좋지 않은 일로 야구모자를 쓰지 않도록 매사 삼가고 또 삼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