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교육-사회는 지적인 엘리트를 원한다
현대 교육의 목표는 한 인간을 성숙한 인격체로 만드는 전인 교육에 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의 학교 교육은 반드시 대학에 들어가야 한다는 입시 위주의 경쟁 교육과 남성과 여성에게 교육의 목표가 달리 적용되는 성 차별적인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교육 과정을 통해서 여성은 자신의 인격을 성숙시켜 바람직한 사회의 성원이 되기보다 현모 양처가 되기를 주입받고, 여자는 남성보다 처진다는 지적 열등감을 갖게 마련이다. 반면에 남성은 반드시 공부를 잘해서 엘리트가 되어야 하고, 사회의 주역으로 원대한 포부를 실현하려면 학식과 학력으로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고 배운다.
남성은 이처럼 성 차별적인 교육 속에서 남성 우월주의를 바탕으로 한 지적 우월감과 경쟁심을 기른다.
이를 부추기는 기제는 교육 현장 곳곳에 숨어 있다. 먼저 교과서를 보면 거기에는 이 세상에 남성만 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많은 남성이 등장한다. 이는 학생에게 학교 교육을 받을수록 남자는 지성적이고 사회적이며 여자는 감정적이며 가정적이라는 관념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교과서에 등장하는 인물을 살펴보면 문장 속에서 남성을 언급하는 부분이 국민학교는 60.8%이지만 중학교 교과서에는 68.1%, 고등학교는 무려 90.6%로 상급 학교일수록 더 많아진다. 교과서 속의 문학 작품에 등장하는 남성 인물의 비율은 국민학교는 72.1%, 중학교 88.3%, 고등학교 91.3%로 더욱 높다.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사람들이나 위인들이 거의가 남자여서 아이들은 남자는 우월하고 여자는 열등하다는 전통적인 성 차별 관념이나 편견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의식 속에 키워 간다.
예를 들어 국민학교 6학년 도덕 교과서에는 우리나라의 훌륭한 분들을 말할 때 '한글을 만드신 세종 대왕', '교육에 헌신하신 남강 이승훈 선생', '민족의 역사 의식을 일깨운 단재 신채호 선생' 등 남성만이 등장하여 위인들의 삶에 동화되기 어려운 여자 아이들에 비해 남자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위인의 삶을 자신의 꿈으로 삼는다.
국민학교 6학년 체육 교과서에는 남녀의 신체 변화에 따른 정신적 변화에 대해서,
"남성은 믿음직스럽고 용감한 남성으로 성장하고 여성은 아름답고 부드러운 여성으로 성장"
한다고 기술하여, 인위적으로 정한 남녀 기질을 내면화하게 만든다. 사회 과목에서도 '남성이 곧 집안의 가장'임을 강조하는 가부장적인 관념을 그대로 보여 준다. 예를 들어 1990년 현재 46.8%에 이르는 취업 주부나 일하는 여성, 모자 가정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이 여성의 역할은 어머니나 아내로만 규정하고 있다. 이는 교과 집필진이 대부분 남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특히 국어 교과서의 저자는 중학교 93.3%, 고등학교 93.5%로 대부분이 남성이다. 따라서 교과서는 집필자의 주관에 따라 남성 중심적인 시각과 세계관을 담을 수 밖에 없다.
그뿐 아니라 남학생과 여학생은 배우는 과목이나 내용이 다르다. 여학생이 가정 관리나 의식주 등 소비와 관련된 과목을 배우고, '직업과 진로'에서도 남학생은 지적이고 현대적인 분야와 관련된 직업 세계에서 생산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배운다. 이 과정에서 남자는 사회에서 훌륭한 일을 하고 성공해야 한다는 가치관이 자연스럽게 주입된다.
교과서 밖의 학교 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얼마전 국민학교의 여교사가 72.5%를 넘어 학생의 여성화가 걱정된다며, 교육부에서는 군필자에게 임용 가산점을 준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학교에서 교장이나 교감 등 고위직은 대부분 남성이 차지하고 있다. 유치원과 국민학교는 여자 선생님이 많다 해도 대학에는 남자 교수가 훨씬 많다. 이러한 현실은 학생들이 접하는 역할 모델에서 높은 교육적 위신과 권위가 따르는 지위는 남성이 가져야 한다는 관념을 심어 주며 남성은 학교 교육을 통해 자연스럽게 지도자, 주인, 리더가 곧 자신임을 배운다.
학교에서 남학생은 창의적이고 진취적이며 능동적인 남성다움을 갖기를 바라고 여학생에게는 순결하고 참을성 있고 봉사적이며 겸손하기를 요구한다. 예를 들어 체육 시간에 남학생은 격렬한 운동이나 남성적인 자질로 여기는 공격심과 경쟁심을 기를 수 있는 단체 경기를 자주 한다.
이 외에도 급훈이나 교훈, 교사의 학생을 대하는 태도는 다분히 성 차별적인데 남학생에게는
"진짜 사내 대장부라면..."
이나
"너도 사내냐?"
는 식의 말로써 남자다운 것이 뭐라는 고정 관념을 갖게 만든다. 교사들의 이러한 태도는 교사의 모습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어느 고등학교에서는 여학생들의 성적이 더 좋다는 이유로 남녀를 분리해서 내신 성적을 내서 화제가 되었다. 이는 사회에서 큰 일을 해야 할 남학생의 대학 진학이 중요하다는 이유 때문에 남학생을 배려한 것이었다.
이처럼 공정성이 결여된 교육 과정은 남성의 지적 우월성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남성이 자신의 지적 우월성을 당연스레 여기는 과정은 진리 탐구의 산실이라는 대학에서 두드러진다. 클럽의 회장을 맡을 남학생이 없자 남학생이 입회할 때까지 회장 선거를 미룬다든가 여학생이 많은 어느 학과에서는 남학생 조교를 뽑기 위해 다른 학과 남학생을 빌려 오는 사례도 있다. 흔히 대학의 교수는 열 명의 여자 제자보다 한 명의 남자 제자가 낫다는 말을 공공연히 한다. 이는 여자는 결혼을 하면 그만이지만 남자는 사회 생활이나 연구를 계속하는 비율이 높아 자주 찾아오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나오는 말이다.
자신의 능력이나 포부를 맘껏 펴도록 교육받은 남학생은 자신감과 우월감을 가진다. 학업 성취도를 보면 국민학교와 중학교 초기에는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성취도가 높으나, 그 이후로는 여학생들의 학업 성취도가 떨어진다고 한다. 그 이유는 남학생의 50.6%, 여학생의 37.0%가
"남자는 커서 직업을 가져야 하므로 남자가 공부에 대한 필요성을 더 느낀다"
고 답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대학에서도 어렵다고 하는 과학, 공학, 의학은 주로 남학생이 주도하고 있으며, 통념상 남자가 해야 더 어울린다고 본다.
이처럼 성 역할 고정 관념이 강한 학교 교육을 받는 남성은 자신을 능력 있는 사람으로 여기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나 전문적인 기술을 익힐 기회를 더 많이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게 된다. 그래서 성공을 위해 정부나 기업체 또는 전문 직종에 투신하여 권력과 일정한 지위를 얻기 위한 길을 걷는다. 남성은 교육을 통해서 일찍부터 지식이 곧 부와 명예와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학교 교육이 남학생에게 베풀어 준 시혜로 그들은 성 차별적이고 비현실적인 엘리트가 된다. 학력이 높고 학벌이 좋아야 인정받고 능력이 남보다 뛰어나야 성공하고 높은 지위와 권력을 가져야만 남자다운 남자가 된다는 통념은 남성을 끝없는 상승의 노예로 만든다. 무조건적인 상향 의식은 개인의 진실한 능력이나 적성보다 학력과 같은 외적인 요소를 중시하게 만든다. 어느 고교,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로 사람을 평가하기도 하고 자신이 그 기준에 못 미칠 때는 심한 좌절감과 열등감을 갖는다. 또 여성은 현모 양처여야 하고 지적인 능력이나 지위는 여성답지 않다는 성 차별 교육을 받아 온 남성은 눈에 보이는 여성의 지적인 능력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