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디자인으로 서울의 현주소를 읽다 2004년 8월 한국 호텔업계에 이변이 일어났다. 세계 유명 레스토랑 같은 곳에서 느끼는 트렌디함을 반영한 혁신적인 디자인의 호텔이 ‘W 서울 워커힐’이란 이름으로 이 땅에 상륙한 것이다. 세계적인 호텔 리조트 그룹 스타우드 사의 스타일 호텔 브랜드인 ‘W 호텔’은 전통적인 호텔 개념에서 벗어나 뉴욕, 샌프란시스코, 시드니, 멕시코 시티, 몬트리올 등 전 세계 20여 개 도시에 세워졌다. ‘고객이 원하는 무엇이든(Wahtever), 고객이 원할 때 언제든지(Whenever)’ 만족시키기 위해 다양하고 개별화된 서비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이런 서비스 정신이 호텔의 이름에도 반영되었다.
안락함과 동시에 엔터테인먼트를 경험할 수 있는 이곳에서 고객들은 오감 만족을 위한 다양한 경험을 누릴 수 있다. 그 하나의 예가 예술 작품을 통한 감각적인 즐거움이다. W 호텔이 근본적으로 추구하는 엔터테인먼트적 가치는 ‘호텔 공간 곳곳에서 예술을 즐기게 하라’는 의도를 내포한다. 이에 W 서울에 들어서면서부터 마주하게 되는 하나하나의 요소들이 눈길을 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다니엘 로진의 ‘나무 거울’이다. 가운데 자동인식센서가 부착되어 거울을 이루는 나뭇조각들이 작품 앞에 서 있는 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간다. W 서울을 이루는 각 요소들은 그 기능에 초점을 맞춰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되었다.
이곳을 찾는 손님들을 맞이하고, 서로 인사도 나누고 이야기도 나누고 하는 공간이라는 의미에서 로비를 리빙룸이라고 부른다. 또 호텔을 무대로 손님들에게 각자 주어진 역할로 서비스하고 있다 하여 직원들을 탤런트라 부른다. 입구부터 객실의 집기 하나까지 철저히 디자인된 W 서울은 그 어떤 W 호텔보다도 강한 특징을 갖는다고 한다. 서울이란 도시의 역동적인 모습, 무언가 꿈틀대는 모습이 W 호텔과 닮은 모습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들은 애써 우리의 전통적인 모습을, 서울이 지닌 그 무언가를 담아내려고 노력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디자인과 유머, 경관이 더해진 공간 W 서울 워커힐 프로젝트에 참여한 디자이너들은 세계적으로 이름난 사람들이다. 호텔 인테리어 디자인을 한 스튜디오 가이아GAIA의 일란 와이스브로드Ilan Waisbrod와 그의 파트너 아누락 네마Anurag Nema는 레스토랑, 나이트클럽, 호텔과 고급 주거 디자인 등으로 유명하다.
이들은 로비와 객실에 놓인 가구들을 직접 디자인하기도 했다. 건축 디자인을 담당한 RAD의 설립자 애론 탠Aaron Tan은 동아시아의 새로운 건축과 신도시 계획에서 선두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호텔 디자인 중에서도 가장 트렌드에 민감한 식음업장은 토니 치Tony Chi와 같은 세계적인 리테일 디자이너가 참여해 아시아의 명소로 주목받을 수 있게 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홍콩 인터컨티넨탈호텔 내 레스토랑 ‘스푼’의 디자인으로 호텔.스파 업계에서 올해 최고의 디자인에 수여되는 ‘골드 키 어워드Gold Key Award’의 레스토랑-캐주얼 다이닝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W 서울에서 관심 있게 살펴보아야 할 것은 리빙룸(로비)과 욕실 혹은 화장실이다. 리빙룸엔 일단 계단이 많다. 이것은 의자도 되고 무대도 극장도 된다. 또 디자이너가 만든 좋은 배경에서 연기를 하듯 로비를 즐길 수 있도록 물리적인 영역 구분 없이 자유로운 동선을 구사했다. 이 공간에서 조명은 ‘세트’의 분위기를 변화시키는 요소이고 가구는 배역에 맞는 배우를 캐스팅하듯이 그 역할에 맞는 것을 선정할 수 있다. 리빙룸의 화장실은 비스듬한 원형의 빨간 문 뒤에 감춰져 있다. 객실 안의 욕실들은 모두 오픈되었다. 똑같이 사적인 공간으로 휴식을 취하고 즐기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굳이 감출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W 서울은 세계 어떤 W 호텔보다도 주변 경관의 매력이 짙다. 도심에서 약간 벗어나 인접성은 조금 떨어지지만 도심 속 리조트와 같은 느낌을 갖기에는 탁월한 환경을 지녔다. 산 중턱에 자리해 한강을 굽어보며 뒤로는 산이 있는 모습이 큰 매력이라는 것에 인테리어 디자인을 맡은 스튜디오 가이아도 공감한다. 실제로 W 서울에서 가장 예약률이 높은 객실도 한강이 내려다 보이고 옆으로는 산이 보이는 코너에 위치한 미디어 스위트라고 한다. 때문에 W 호텔의 기본적인 매뉴얼을 따르면서도 주변 환경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등 W 서울만의 독특한 아이디어를 구상했다. 그래서 W 서울 워커힐에는 처음 예상과 달리 직종과 연령을 뛰어넘어 다양한 고객들이 찾아오고 있다.
알란 와이스브로드 (W 서울 워커힐 인테리어 디자이너, 스튜디오 가이아 대표) "생기 있는 공간이 곧 서울의 모습이었다"
객실을 ‘원더풀, 스파, 센트, 미디어’의 4가지 타입으로 제안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이유는 고객을 위해 좀 더 매력적인 공간을 연출하려는 의도였다. 특히 이 호텔을 다시 찾는 고객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고 올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갖게 하려 했던 것이다. 디자인적인 면에서도 호텔이라는 공간을 몇 가지 테마로 연출한다는 것은 매우 새롭고 혁신적인 시도였다. 각 방에 대한 디자인 솔루션을 만들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일반 호텔 공간에서는 없었던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객실 디자인에서 사용자를 위해 가장 많이 배려한 요소는 무엇이었나? 사람들이 호텔 객실이라는 이미지를 대개 하나의 콤팩트한 이미지로 보지만, 개인적인 견해로는 화장실에서 침대나 조명에 이르기까지 객실 안의 필요한 요소들 하나하나가 모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우리는 화장실 구역을 개인 공간의 또 다른 중요한 부분으로 생각하고 신중하게 디자인했다.
W 호텔이 다른 고급스런 공간 디자인 프로젝트에 비해 매력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이 ‘제품(공간과 그 안의 소품 하나하나를 통칭)’은 전체적으로도 부분적으로도 매우 철저히 기획되고 다듬어졌다는 점에서 다른 어떤 프로젝트보다 매력적이다. 이를테면 로비는 일반 호텔에서 경험했던 것처럼 서로 멀뚱거리며 쳐다만 보는 공간이 아닌, 활기 넘치는 공간으로 고객이 자신의 시간을 편히 가질 수 있도록 했다. 하룻밤을 묵더라도 편안함은 물론이고 재밌는 기억을 안고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랐다.
W 서울 워커힐을 디자인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무엇인가? 가장 어려우면서도 가장 만족했던 점은 호텔의 위치가 좀 높은 곳에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생각지 못했던 환경과 조건이 바로 우리가 원했던 디자인, 원래 기획했던 의도에 가장 근접한 결과물이 나오도록 한 것 같다.
처음 디자인을 의뢰받았을 때 당신의 머리속에 어떤 이미지가 그려졌는가? 항상 디자인 과정에서 얻은 매우 많은 요소와 영감이 최종 과정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많은 관중 앞에서 선보이는 드라마적 요소가 강한 패션쇼를 염두에 두었다.
얼마 전 디자인한 W 멕시코 시티와 서울을 비교한다면 무엇이 다른가? 먼저 멕시코 시티에 있는 W 호텔은 되도록이면 멕시코의 재료를 쓰도록 했고, 지역의 특색을 살릴 수 있는 멕시코 고유의 민속적인 주제를 고려했다. 즉, 그 나라의 유행이나 현재의 인기 품목을 시장조사했다기보다는 ‘멕시코에 와 있다는 느낌’이 들도록 했다. 그러나 W 호텔 서울은 의도적으로 한국의 전통적 소재와는 거리를 두고 디자인했다. 대신에 이 호텔의 위치, 즉 복잡한 서울의 도심에서 다소 벗어난 곳에 위치한 점을 고려하여 참신하면서 새로운, 그러니까 더 가보고 싶은 호텔을 창조하는 점에 주력했다. 그리고 서울의 역동적인 모습을 담을 수 있게 했다.
당신이 생각하는 호텔이란 공간의 매력은 무엇인가? 호텔이라는 공간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바로 객실과 로비다. 객실에서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욕실이 가장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호텔 객실의 욕실은 호텔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지 고려해 조화롭지만 다르게 보일 수 있도록 디자인해야 한다는 것이 독특하다. 그리고 로비는 호텔의 가장 중심이 되는 공간으로 에너지가 넘치면서도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정열적 느낌으로 2004년 호텔계를 사로잡은 W 멕시코 시티 2003년 오픈한 W 멕시코 시티는 라틴 아메리카 지역의 첫 W 호텔이다. W 서울을 디자인한 스튜디오 가이아가 인테리어 디자인을 했다. 모던 디자인과 안락함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디자인으로 조용한 휴식과 정신적 재충전을 위한 공간도 제안해보았다. 총 237개의 객실을 보유한 이 호텔은 체리 레드와 W 호텔의 심벌과도 같은 화이트 컬러의 침대가 강한 대비를 이루는 것을 비롯해 정열적인 느낌과 자연적인 요소들이 곳곳에 드러난다.
로비와 객실에 배치된 가구들은 야자수 아래 걸어놓은 해먹처럼 천장에 매달린 기하학적인 형태의 의자들, 소파베드와 같이 여유롭고 안락한 형태의 소파들, 실제 해먹에 이르기까지 색감과 마감 소재에 기후적 특성을 반영하고, 멕시코 시티의 지역성이 강한 재료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W 멕시코 시티는 세계적인 권위의 호텔 디자인 어워드인 ‘골드 키 어워드Gold Key Award 2004’에서 최고의 호텔 디자인 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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