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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지역은 관광명소 탐방을 위해 몇년동안 다녀온 적 있지만 하회마을은 25년전 가족단위로 구경갔다
온 게 전부라서 그동안 하회마을도 많이 변했으리라 생각되어 이 참에 하회지구 역사유적 탐방을 겸해
친한 지인과 함께 두루 둘러보기로 하고 안동으로 Go Go!!
[하회지구 탐방코스]
체화정~ (7.8km) ~병산서원~ (4.3km) ~하회마을~ (6.8km) ~화천서원
~ (350m) ~부용대~ (150m) ~옥연정사
(하회지구에는 위 유적외에 한지전시체험관, 하회탈세계박물관도 있습니다)
1.체화정(棣華亭) : 경북 안동시 풍산읍 풍산태사로 1123-10(지방유형문화재 제200호)
조선후기때 학자인 이민적(李敏迪)이 1761년에 세운 정자로, 정자이름인 체화는 "상체지화
(常棣之華)"의 줄임말인데 형제지간의 우애와 화목을 의미하며 '시경"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이민적은 말년에 큰형 이민정과 함께 이곳에서 지내면서 형제간의 우애를 다졌다고 합니다.
온돏방을 중심으로 양옆에 마루방이 있고 앞쪽에는 툇마루를 내고 난간을 둘렀으며 온돌방과
양쪽 마루방사이에는 들문을 설치해서 공간을 넓힐수 있게 하였고 가운데 온돌방의 문을 들어
올리면 전체를 완전히 개방할수 있도록 설계하였으며 온돌방 문 가운데에는 "눈꼽째기창(창이나
문안에 다시 열수있게 만든 작은 창)"이라는 작은 창을 더 내서 문을 열지 않아도 밖을 내다 볼수
있게 하였습니다. 앞쪽에 걸린 현판은 사도세자의 스승이었던 안동출신의 학자 유정원이 썼고
정자안에는 "담락재(湛樂齋)"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는데 조선초고의 서화가중 한명인 김홍도가
썼는데, 형제간의 우애가 돈독해야 부모에게 참된 도리를 다할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체화정앞에는 네모난 연못을 팠으며 연못가운데에는 4개의 둥근 섬을 조성했는데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동아시아 전통 우주론을 나타내는 것으로 3개섬은 신선이 산다는 삼신산을 상징
(중국전설에 나오는 봉래산,방장산,영주산을 통틀어 이르는 말) 합니다.
체화정의 평면형식과 독특한 창호구성은 연못과 조화되어 전통조경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음.
2.병산서원(屛山書院 : 경북 안동시 풍천면 병산길 386) : 사적 제260호 지정(1978.3.31)
고려중기부터 안동 풍산에 있던 교육기관인 풍악서당에서 비롯되었고 지방유림의 자제들이 모여 공부
하던 곳으로, 고려말 공민왕때 홍건적의 난이 일어나 왕의 행차가 풍산을 지날 무렵 풍악서당의 유생들이
난리중에서도 학문에 열중하는 것을 보고 왕이 크게 감동하여 많은 서책과 사패지(賜牌地)를 주어 유생
들이 더욱 학문에 열중하도록 격려하였습니다.
200년이 지나 유림들이 서당 옮길 곳을 물색하던 중 서애 류성룡선생께 문의하니 병산이 가장 적당할 것
이라고 권하게 되어 조선 선조8년(1575) 서당을 병산으로 옮기고 병산서원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습니다.
광해군6년(1614) 문인들이 서애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존덕사를 창건하여 선생의 위판을
봉안했고 현종3년(1662) 선생의 3째아들인 수암 류진 공의 위패를 종향하였습니다.
병산서원은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고 많은 학자를 배출했으며 고종5년(1868)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이 내렸을때도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47개중 하나입니다(書院 27개, 祠 20개)
서애선생의 문집을 비롯하여 각종 문헌 1,000여종 3,000여책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세계유산 한국의 서원
병산서원은 조선시대 서원중에서 도산서원,도동서원,소수서원,옥산서원,남계서원,돈암서원,무성서원
필암서원과 함께 2019년7월 "한국의 서원"이란 이름으로 세계유산목록에 등재되었습니다.
1)복례문(復禮門) : 병산사원의 정문
2)만대루(晩對樓) : 보물 제2104호 지정(2020.12.28)
유식공간으로 휴식과 강학을 하던 곳으로 서원에서 향사를 지내거나 행사를 할때 개회와 폐회를
알리는 곳이기도 하고 주로 강학공간으로 활용하였는데, '만대'라는 이름은 당나라 시인 두보의 시
"백제성루"중 "푸른 절벽처럼 둘러쳐진 산수는 저녁무렵 마주하기 좋으니"라는 구절에서 따왔으며
실제로 저녁무렵 만대루에 오르면 병풍을 두른듯한 산과 낙동강의 훌륭한 경치를 즐길수 있습니다.
만대루는 목재를 다듬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고 장식과 기교도 없이 꼭 필요한 요소만을 갖추고 건축
했으며 휘어진 모습 그대로 서 있는 기둥들과 자연 그대로의 주춧돌, 커다란 통나무를 깎아 만든 계단
등은 건축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한국전통건축의 빼어난 멋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3)서재(西齋) : 정허재(靜虛齋) - 유생들의 기숙사
4)동재(東齋) : 동직재(動直齋) - 유생들의 기숙사
#서애 류성룡선생의 가르침
[학사위주(學思爲主)]
"배움은 생각을 위주로 해야 한다"라고 하였고 중용에서 학문의 단계를 '박학,심문,신사,명변,독행'이라
하면서신사를 가운데 둔 것과 "성현이 생각을 위주로 하여 학문을 하였듯이 단순히 입으로 외우는 공부
가 아니라 정성을 다해서 마음의 밭을 갈고 다스린다면 하늘의 이치가 절로 밝아질 것이다"라고 한 것은
모두 학문에는 생각을 신중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가조한 것입니다.
[추공교월(秋空皎月)]
서애선생은 유학의 참된 공부를 터득한 분으로 견문과 지식은 정밀하고 지조는 곧으며 마음가짐은 공평
하고 몸가짐은 청결하였고 문장은 땅과 바다같이 깊고 두터워 천고를 꿰뚫었으며 해같이 빛나고 옥같이
깨끗하였으니 서애선생을 두고 하늘이 낸 사람이라고 칭찬하였고 선조는 "정의상으로 나의 친구"라며
자랑스러워 했다고 합니다.
[격물치지(格物致知)]
병산서원의 복례문,만대루,광영지가 있는 이곳은 서원의 사색을 위한 공간으로, 복례문은 극기복례를
통해 인(仁)을 실현하고자 하는 서애선생의 학문의 뜻이며 만대루는 병풍처럼 둘러쳐진 병산의 산수를
만나기 위한 격물치지의 공간이고 광영지는 세상을 비추는거울로서의 연못을 맑게 하기위해 늘 신선한
물을 공급하듯이 생각(사유)의 근원인 책읽기를 게을리하지 말라는 서애선생의 가르침이 담겨있습니다.
맑은 날 거울같은 연못으로 하늘빛과 구름이 내려오고 저물 무렵 병풍처럼 둘러친 산수를 마주하며 흘러
가는 물처럼 한결같은 마음으로 학문하고 예를 배우고 실천하는 가운데 인의 세계로 세상의 바른 이치로
다가갈수 있음을 상징화하여 드러낸 것입니다.
5)입교당(入敎堂) - 서원의 중심강당
6)장판각(藏板閣)
책을 인쇄할때 쓰이는 목판과 유물을 보관하던 곳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의 도리가 없는 구조이며 습기를
피하기 위해 정면에 모두 판문을 달았고 화마를 막기 위해 다른 건물과 거리를 두어 독립공간을 마련함.
7)전사청(典祀廳)
사당에 올릴 제수를 준비하는 곳으로 사당과 한울타리안에 두는게 일반적인데 병산서원의 경우에는
전사청과 사당이 각각 독립된 영역으로 분리되어 있으며 이는 아래쪽에 있는 주소(廚所)건물과
중심축을 맞춰 전사청으로 올라오는 제수를 마련하는 주소의 작업을 충실히 지휘 감독하기 위함으로
존덕사의 오른편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8)신문(神門)
서원의 내삼문이며 향사때 제관들이 출입했던 정면 3칸의 솟을삼문으로 사당의 출입문답게 붉은 색칠
을 하여 부정한 것의 접근을 막고있으며 향사례에서 신문앞의 마당은 중요한 장소가 됩니다.
9)존덕사(尊德祠) : 사당(사당출입문인 신문이 잠겨있어서 사진촬영은 못함)
서애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높이 우러른다"는 뜻에서 존덕사라 칭하였습니다.
10)주사(廚舍)
서원의 관리인이 거주하던 곳으로 사당을 관리하는 고지기, 유사를 보좌하는 장무 등이 있고, 유생들의
식사를 준비하는 역할과 향사시 제수를 준비하는 역할을 하는데, 병산서원의 주사는 안동지방 특유의
뜰 집으로 안마당을 중심으로 ㅁ형태의 구조를 가지며 헛간,고방,방앗간,부엌,장독대 등이 돌아가면서
배치된 보조공간입니다.
11)광영지(光影池)
선비들이 마음을 닦고 학문에 정진할수 있도록 배려한 '서원속의 정원'으로 '광영'은 주자의 "관서유감"
이란 시의 '천광운영공배회'(天光雲影共徘徊)에서 인용한 것으로 '하늘빛과 구름이 함께 노닌다'는 뜻
이며 네모난 연못가운데 둥근 섬이 있는데 이러한 한국전통연못의 모습을 천원지방(天圓地方)이라고
하는데, '하늘은 둥글고 당은 네모나다'는 뜻으로 동아시아 사회의 전통적 우주관이자 세계관입니다.
12)달팽이모양 뒷간(1977년 사적 제260호 지정)
유생들을 돕는 일꾼들이 사용하던 화장실로 문도 없고 지붕도 없이 돌담으로 둥글게 감아서 만들어
그 모양이 달팽이와 거의 같을 정도로 비슷하며 담장의 한쪽끝이 다른쪽 끝에 가리기 때문에 문이
없어도 바깥에서 안이 보이지 않는 독특한 구조로 서원이 처음 세워진 17세기초에 지어졌고 2003년
보수하였으며 병산서원의 부속건물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3.안동하회(安東河回)마을(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1176-1)
*풍산류씨가 600여년간 대대로 살아온 한국의 대표적인 동성마을로 와가(기와집)와 초가가 오랜 역사
속에서도 잘 보존된 곳이며 특히 조선시대 대유학자인 겸암 류운룡선생과 임진왜란때 영의정을 지낸
서애 류성룡선생 형제가 태어난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마을이름을 하회라 한 것은 낙동강이 S자 모양으로 마을을 감싸안고 흐르는데서 유래했으며 풍수지리
적으로 태극형,연화부수형,행주형으로 일컬어지며 이미 조선시대부터 사람이 살기에 가장 좋은 곳으로
유명하였고 마을 동쪽에 태백산에서 뻗어나온 화산(해발328m)이 있고 이 화산의 줄기가 낮은 구릉지를
형성하면서 마을의 서쪽끝까지 뻗어 있으며 수령 600여년 된 느티나무가 있는 곳이 마을에서 가장 높은
중심부에 해당합니다.
*하회마을의 집들은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강을 향해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좌향이 일정하지 않은데,
한국의 다른 마을집들이 정남향 또는 동남향을 하고 있는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이며 큰 와가를
중심으로 주변의 초가들이 원형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는 것도 특징이라 할수 있습니다.
*안동하회마을 : 유네스코 세계유산(2010.7.31) 및 국가민속문화유산(1984.1.14) 지정
*하회별신굿탈놀이 :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2022.11.30) 및 국가무형유산(1980.11) 지정
1)하회장터
하회마을지구로 진입하면 제일 먼저 나타나는 곳이 먹거리촌인 하회장터로 주메뉴는 안동찜닭과
안동간고등어정식이며 잔치국수종류도 있고 커피와 음료를 판매하는 카페들도 많이 보이더군요.
*입구풍경
*종합안내도
하회장터 인근에 하회탈박물관이 있고 여기서 좀 더 걸어가면 매표소가 나오고 매표소를 지나서
걸어가면 셔틀버스 정류장(10분간격으로 하회마을입구까지 운행)이 있어서 여기서 셔틀버스를
타고 2분정도 가면 하회마을입구에 도착합니다.
2)하회마을 캐리터 하비 & 휴이
자연과 어우러진 하회마을에서는 행운을 가져다주는 제비 하비와 휴이가 매년 찾아옵니다
3)하회마을 안내도
4)화경당(和敬堂)고택 : 국가민속문화유산
조선 정조21년(1797) 류사춘이 사랑채,날개채,대문채를 짓고 철종13년(1862) 증손자 석호 류도성이
안채,큰사랑채,사당을 지었는데 집의 규모가 웅장하고 대갓집의 격식을 완벽하게 갖추어 전형적인
사대부 가옥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으며 하회마을에서 가장 규모가 큰 가옥입니다.
큰사랑채의 마루에 앉으면 아름다운 풍광을 한눈에 감상할수 있고 300여년의 세월을 품고 서 있는
큰사랑채 뒤편의 소나무는 하회마을을 굽어 돌고있는 강물의 형상을 하고있어 또다른 볼거리이며
화경당은 "화"로 어버이를 섬기고 "경"으로 임금을 섬긴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전면(안대문)에 보이는 그림은 새해벽두 나쁜 기운을 막기위해 대문에 붙이던 세화(또는 문배도)
라고 하며 초계문신,예조,호조참판을 지낸 학서 류이좌公이 정조로부터 하사받은 그림입니다.
*화경당(和敬堂) : 중간사랑방
*북촌유거(北村幽居) : 큰사랑방으로 객실로 사용
*화경당에서 소장하고 있는 유물
5)삼신당(三神堂)
하회마을에서 가장 중앙에 위치해 있는 삼신당은 류종혜가 입향할때 심은 것으로 전해지고 수령이
600년이 넘는 나무로 마을사람들이 성스럽게 여기고 있었던 하당이며 화산중턱의 상당,중당과 함께
마을주민들의 소망을 비는 삼당을 이루는데 정월대보름 밤에 마을의 안녕을 비는 동제를 상당과 중당
에서 지내고 다음날 아침에 여기서 제를 올리고 하회별신굿 탈놀이가 시작됩니다.
6)양진당(養眞堂) : 보물
풍산류씨의 큰 종갓집으로 조선중기 문신이자 학자인 류운룡 가문이 사는 집으로, 류운룡의 선조
류종혜가 14세기말 하회마을에 처음 들어 왔을때 터를 잡은 곳이며 건물은 류운룡의 아버지
류중영이 지었다고 하며 임진왜란때 불에 타서 다시 고쳐 지었고 그후 여러 대에 걸쳐 다시 지은
흔적이 있고 사랑 대청 북쪽벽에 걸려있는 양진당이란 현판이름은 최초로 풍산류씨 족보를 완성한
류영의 호에서 따 왔고 사랑채앞에는 류중영의 호 입암을 따서 지은 입암고택 현판이 걸려있음.
7)구상나무
1999년4월21일 영국여왕 엘리자베스2세의 안동하회마을 방문을 기념하기 위해 심은 것으로,
구상나무는 한국고유의 나무로 소나무과에 속하는 상록수이며 한라산,지리산 등 높은 산에서 자생하고
원통형 열매는 하늘을 향해 열리고 좋은 향기가 나며 떨어질 때는 조각조각 흩어져 자취를 남기지 않고
추위를 견디는 굳건한 힘을 지니고 있어 우리 민족의 힘찬 기상을 나타내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또한 하늘의 선녀가 땅에 내려와 목욕할때 구상나무에 옷을 걸어 놓는다는 전설이 있는 등 이러한 구상
나무의 굳건하고 우아한 모습은 여왕의 품격과도 잘 어울린다고 볼수 있습니다.
8)충효당(忠孝堂) : 보물 제414호
조선중기 재상이자 학자였던 류성룡 가문의 종택으로 손자 류원지가 류성룡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유림과 제자들의 뜻을 모아 지었다고 하며 류성룡이 벼슬을 마치고 귀향한 후 말년에 풍산현 서미동에
있던 3칸 작은 초가집(농환재)에서 돌아가신 것으로 전해집니다.
서쪽을 앞면으로 하여 긴 행랑채를 두고 안쪽으로 ㅁ자모양의 안채와 ㅡ자형의 사랑채가 연이어 있는데
12칸의 긴 행랑채는 류성룡의 8세손인 류상조가 병조판서에 임명된 후 부하군사들을 수용하기 위해
지었다고 하며 충효당이란 이름은 류성룡이 평소에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라'고 강조한데서
유래하였고 당호 현판의 글씨는 이름난 서예가인 이수 허목선생이 썼습니다.
*충효당
*영모각(永慕閣) : 류성룡선생 유물전시관(1966.6 개관)
서애 류성룡선생의 유물을 보존 전시하고 있으며 충효당 사랑채의 오른편에 위치하고 있는데 1977년6월
한옥으로 신축하였고 징비록(국보132호),류성룡 종손가문적 11종22점(보물160호),류성룡 종손가유물중
일부(보물460호)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영모각 정문
*영모각 내부풍경
9)작천(鵲泉)고택 : 국가민속문화유산
조선중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하는 양반가의 살림집으로 작천이라는 이름은 류도관이 이곳으로
옮겨오기 전에 살았던 문경 작천리의 마을이름에서 따 왔으며 원래 건물은 2채였으나 1934년
대홍수로 문간채가 쓸려나가고 지금은 ㅡ자형의 안채만 남아있고 부엌,안방,대청,건넌방을 나란히
배치하고 이어 사랑방을 두었으며, 한 건물이지만 사랑방과 안방사이에 낮은 담장을 세워 사랑손님과
안채 여성들이 서로 마주치지 않도록 했는데 이는 남녀 공간을 구별했던 조선시대 사회상을 보여줌.
10)목화농장 : 류복순 목화당(침구 솜틀집)에서 운영
*목화농장 소개판
*목화농장 전경
11)양오당(養吾堂)고택 : 국가민속문화유산
류성룡의 증손자 류만하가 충효당 종택에서 분가하면서 지은 집으로 후에 그의 아들 류후장이 다시
늘려 지었는데 사랑채,문간채,안채의 일각문이 마주하고 사당이 있는 전형적인 전통가옥입니다.
이 집은 대문채를 두지 않고 길을 따라 쌓은 담장가운데 트임문을 내었으며 안채 출입문 앞쪽에
짧은 담을 세웠는데 이것은 바깥사람의 시선으로부터 안채를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랑채에는 양오당과 주일재라는 3개의 현판이 걸려 있는데, 양오당이란 "맹자"에서 따온 말로
'나의 호연지기를 잘 기른다'는 뜻을 담고 있고 방문위에 걸린 현판 주일재는 류후장의 호를 사랑채
이름으로 삼은 것입니다(#일각문 : 대문간이 없이 양쪽에 기둥을 하나씩 세워 문짝을 단 대문)
4.화천서원(花川書院) : 경북 안동시 풍천면 광덕솔밭길 72(경상북도 기념물 제163호)
겸암 류운룡선생의 학덕을 흠모하던 지역유림들이 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정조10년(1786) 건립했으며 그 후 동리 김윤안과 졸재 류원지를 추가로 배향하고 100여년동안
봄 가을로 향사를 지냈으나 1871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강당과 주사만 남기고 훼철
되었는데 서원의 훼철을 아쉬워하던 후손들이 1966년부터 기금을 모아 유림들의 공론으로 1996년
복설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으니 화천서원의 문루인 지산루에 올라밖을 내다보면 넓게 펼쳐진
모래사장과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이 한눈에 들어 옵니다.
1)서원 전경
2)존현재(尊賢齋)
3)전학재(典學齋)
4)전사청(典祀廳)
5)지산루(地山樓) : 서원의 문루
6)경덕사(景德祠) : 사당
5.부용대(芙蓉臺) : 경북 안동시 풍천면 광덕솔밭길 72
화천서원 오른쪽으로 난 산책로를 따라 오르막길로 150m정도 올라가면 부용대가 나옵니다.
부용대는 '연꽃을 내려다 보는 언덕'이란 뜻으로 이곳에서 내려다 보면 하회마을이 물위에 떠 있는
한송이 연꽃처럼 보이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으며 부용대에서는 하회마을과 마을앞 만송정숲
그리고 마을전체를 휘감아도는 낙동강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경치를 즐길수 있습니다.
류운룡,류성룡 형제는 부용대 왼쪽과 오른쪽에 겸암정사와 옥연정사를 짓고 학문에 힘쓰며 제자들을
가르쳤습니다. 부용대 절벽의 허리부분에는 겸암정사와 옥연정사를 있는 좁은 벼랑길이 있는데
형제는 이 길을 서로 왕래하며 우애를 다졌다고 합니다.
하회마을의 옛 선비들은 매년 음력7월 부용대에서 선유줄불놀이를 즐기고 배를 띄워 시를 지었습니다.
1)부용대에서 바라본 하회마을 전경
2)부용대에서 바라본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 풍경
6.옥연정사(玉淵精舍) : 경북 안동시 풍천면 광덕솔밭길 86(국가민속문화유산)
화천서원에서 왼쪽에 난 길로 200m정도 걸어가면 나옵니다.
류성룡이 만년에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지었으며 관직에서 물러난 후 임진왜란
당시의 경험을 기록한 징비록(懲毖錄)을 쓴 장소이기도 한데, 류성룡은 조용히 거처할 곳을 마련하기
위해 하회마을에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너야 갈수 있는 부용대 기슭에 터를 잡아 1576년 집으 지으려고
했지만 가난하여 공사를 하지 못하다가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승려 탄홍의 도움으로 1586년 마침내
옥연정사를 완성하였는데, 옥연이란 이름은 부용대와 하회마을을 휘감아 흐르는 깨끗하고 맑은 물빛이
마치 옥과 같다는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옥연정사는 대문채,안채,사랑채,별당채로 이루어져 있는데 안채는 부엌이 가운데에 있고 양옆에 온돌방
을 둔 독특한 구조이며 별당채는 류성룡이 징비록을 집필한 서재이고 맨 안쪽의 사랑채는 서당으로 사용
하던 곳입니다.
1)징비록 안내판
2)류성룡선생이 지은 시비(詩碑)
3)옥연정사 정문(유도문)
4)옥연정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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