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050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210505 수요
1.지난 시간에는 마태복음 5:1-4 “복이 있나니”①
첫째, 영적으로 육적으로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
심령이 가난한 자(마태), 가난한 자(누가) 모두 동일한 의미로 초점은 가난한 자이고, 가난한 자가 복이 있는 것은 가난한 자들은 하나님을 의존하기 때문이다.
가난의 히브리적 의미는 ‘의존’
둘째, 우리의 죄와 연약함에 대한 애통하는 마음을 갖자
세상의 소유나 기쁨으로 위로를 받지 못하고 애통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손길이 임한다.
-그리고 그 애통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갈라놓은 죄에 대해 깊이 슬퍼하고 철저히 회개하는 애통이다(시61:3)
-세상에서 위로 받지 못하고, 위로받을 수 없는 애통은 하나님께서만 위로 하실수 있다.
2.오늘은 8복 말씀의 두 번째 시간으로 ‘온 유한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
'온유한'이란 말은 시편 37:11의 70인역(LXX)에서 나온 것이다.
시편37:11
11.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온유한 자는 역경에 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하신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자를 끝까지 보살피실 것이라고 굳게 믿는 신앙으로 인하여 기업을 차지하게 된다.
즉 '온유'란 외형적인 폭력이나 잔인함의 반대어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사랑으로 인하여 고통받고, 그 고통을 오래 참음으로 인내하는 온화하고 부드러운 마음의 자세인 것이다(11:29; 약 3:13).
이에 대해 칼빈(Calvin)은 '온유란 부드러운 마음으로 살며 노하기를 더디하며 절제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으며,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자연적 격노에 대하여 관용을 취하는 덕성'이라고 정의하였다.
실로 세상의 정복자들은 강한 힘과 권력으로 땅을 정복하였지만 예수께서는 온유하심으로 세상만물과 천국의 주인이 되셨다.
한편으로 '온유한 자'는 '겸손한 자'와 비슷한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겸손이 단순히 자기를 낮추는 것임에 비해, 온유는 어떤 구체적인 대상에 대해 온화하고 부드러우며, 허세를 부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자기에게 악을 행하는 자에 대해서도 길이 참는 것을 가리킨다.
이처럼 온유는 본질적으로 대인 관계를 나타낸다.
따라서 성경적인 의미의 '온유'란 대인 관계를 포함한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태도'까지 내포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볼 때 본절의 '온유한 자'는 다른 사람에 대해 선의를 갖는 것은 물론, 자신의 피조물 됨과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의 관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뜻에 절대 순종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예수는 이 표현을 시 37:11에서 인용하였는데 그곳에서도 역시 은유를 같은 맥락에서 설명하고 있다.
▶온유한 자들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본문이 인용되었던 시 37 : 11의 '땅'은 '약속의 땅' 가나안을 묘사한 말이다.
따라서 예수님 당시의 청중들은 본문의 말씀을 듣고 '아브라함 이후에 제시된 이스라엘에게 주시겠다던 약속의 땅'을 기억했을 것이며(창 15 : 18), 당시의 이스라엘 상황이 로마의 식민지 상태였기 때문에 그 땅에 대한 '약속의 회복'을 연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신 '땅'은 본질적으로는 영적인 의미를 지니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한 자가 차지하게 될 '하늘 나라'를 의미한다(Calvin. Carson.Williams).
하지만 이것을 현세적 약속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없지 않은데(매튜헨리) 그들은 이 약속을 기독교적인 영향력이 문화의 주도권을 획득할 것이라는 의미로 이해한다.
실상 온유를 내세우는 기독교가 전 세계에 전파되었다는 사실은 이러한 주장도 타당함을 보여 준다.
따라서 본절에서 땅은 근본적으로는 영적인 의미를 지니지만 이 세상에서의 영향력이란 의미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한다는 주님의 말씀은 놀라운 역설이라 아니할 수 없다.
가시적으로는 난폭하고 공격적인 자가 땅을 차지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폭력으로 차지한 땅은 폭력으로 잃어버릴 수밖에 없으며 온유로써 얻은 땅만이 그 생명이 길다.
뿐만 아니라 영원한 나라의 기업은 타인에 대해 선을 행하고 그리스도께 속한 자만이 차지할 수 있는 것이다.
온유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ex)아브라함의 온유함을 보라
아브라함은 한마디 불평도 불만도 없이 어린 롯으로 하여금 자기의 마음대로 먼저 선택하도록 한다. 놀라운 온유이다.
모세는 땅 위의 모든 사람보다 가장 온유한 사람으로 서술되어 있다.
자기를 비천하게 생각하고 자기를 주장하지 않는 온유를 본다.
모세는 애굽 궁정과 바로의 딸의 아들로서의 모든 가능성을 참되게 평가했으며,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낮추었다.
ex)모세의 온유함을 보라
민수기 12장의 모세는 미리암과 아론의 비방 속에 ‘모세는 온유함이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3절)
-맞붙어 싸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미리암의 나병을 낫게 해 주시도록 중보기도
ex) 스데반의 온유를 보라.
돌로 맞는 참혹한 죽음을 당하면서도 진리를 포기하지 않았고, 도리어 용서를 구했다.
ex)예수님의 온유
놀라운 온유의 최고의 실례를 보라. 주를 바라보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라고 하셨다.
그의 전 생애에서 박해와 경멸과 야유와 조롱을 참으신 것을 보라. 그의 원수들에 대한 태도, 더욱이 아버지에 대한 철저한 복종은 그의 온유를 보여준다. 바울이 빌립보 2장에서 기록한 주의 모습을 보라.
그는 스스로 겸손하여 종과 같이 되셨고 십자가를 지셨다. 이것이 온유이다.
이것이 참된 겸손이다. 이것이 주께서 여기서 가르치시는 자질이다.
온유란 무엇인가?
온유는 생래적 기질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두 이와 같이 되도록 작정되어 있다.
온유는 하나님의 성령께서 만드신 것이다.
온유는 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온유는 무기력을 의미하지 않는다.
온유는 싹싹하다거나 사귀기 쉬운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온유는 연약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온유는 위대한 능력과 모순되지 않는다.
온유한 사람은 진리를 굳게 믿는 까닭에 필요하다면 진리를 위해 목숨을 버릴 사람들이다.
순교자들은 온유했다.
이 고상한 자질을 육체적 생래적인 것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온유란 외적 태도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내적 정신의 문제이다. 참 온유는 참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참는다거나 견딘다는 느낌도 갖지 않는 상태이다.
이것을 위해 우리가 소명을 받았고, 이런 사람이 되기로 작정함을 받았다. 이것이 기독교이다.
결국 온유는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에 대한 태도와 행동에서 표현되는 자기에 대한 올바른 견해이다.
그러므로 온유는 나 자신에 대한 자세인 동시에 다른 사람들에 대한 관계에 있어서의 나의 태도의 표현이다.
사람의 심령이 가난해지지 않고서는 결코 온유할 수 없다.
나의 죄성 때문에 가난한 심령과 애통을 통하여 자신에 대한 바른 견해를 갖게 될 때에만 교만은 없어질 수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온유한 사람은 자기를 자랑하지 않으며, 동시에 자기주장을 하지 않는다. ‘자기를 표현하라’라고 말하는 오늘의 인기 심리학을 부정하는 말이다. 온유한 사람은 또 자기를 위해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자기의 지위나 특권이나 소유물이나 신분을 요구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온유한 사람은 자신에 대하여 민감하지 않고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자신을 살피면서 삶을 거의 소비하고 있다.
자신을 더 이상 방어하지 않는 것은 방어할 만큼 가치 있는 것이 우리 속에 없기 때문이다.
참으로 온유한 사람은 자기 연민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것으로 얼마나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가!
우리는 그 아무도 우리를 해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이미 넘어져 있는 사람은 넘어질 것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존 번연)
참으로 온유한 사람은 하나님과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든 그에 대해서 고맙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것이 온유의 본질이라 생각한다.
온유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행동에서 나타나야 한다.
여기에는 우리에게 배후가 있고 그분이 그것을 갚아 줄 것을 알기 때문에 보복의 영을 완전히 버려야 할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부당한 취급을 받을 때 인내하고 오래 참아야 할 것을 의미한다.
베드로전서 2:16-21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그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하므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무엇보다도 성령의 가르침을 받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도를 받을 준비가 되어야 한다. 온유는 항상 배우려는 영을 의미한다. 배우고 귀를 기우릴 태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온유는 모든 것, 우리 자신, 권리, 대의, 우리 앞날, 모두를 하나님의 손에 맡겨야 한다. 그리고 부당하게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될 때 특히 그래야 한다. 하나님의 손에 맡기기만 하면 된다.
온유한 사람에게 어떤 일이 있게 되는가?
그들이 땅을 얻을 것이다. 온유한 사람은 이미 이생에서 땅을 얻는다.
참으로 온유한 사람은 항상 만족을 얻는 사람이다.
골드스미스(작가)는 이것을 표현하기를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으나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고후 6:10
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바울은 이것을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자 같으나 모든 것을 소유한 자로다“라고 말한다.
바울은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부요하게 살 줄도 안다. 내게 능력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이미 말하였다. 우리가 온유하고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는 이미 땅을 얻은 것이다.
동시에 이 말씀은 미래를 가리켜 하신 말씀이다.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자녀라면 상속자도 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할 사람이 된다’ 우리는 땅을 소유할 것이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면 낮아질 것이요 자기를 낮추면 높아질 것이다”(눅14:11)
이것이 온유이다.
성령이 아니시면 아무것도 우리를 겸손하게 할 수 없으며, 성령이 아니시면 아무 것도 우리의 심령을 가난하게, 우리의 죄성 때문에 우리를 애통하며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마음을 줄 수 없다.
그리스도인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은 동시에 이미 성령을 받았음을 반드시 주장해야 한다.
이것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주장이라면 온유하지 못할 때 우리는 핑계할 수 없다.
온유는 성령이 직접 만드신 열매이다.
우리가 할 일은 온유에 대한 말씀을 묵상하며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를 바라보아야 한다.
겸손해져서 우리 자신의 부족함과 불완전함을 철저하게 고백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모든 문제의 원인인 자아와 절교해야 한다.
그래야만 자기희생으로 우리를 값주고 사신 주께서 들어오셔서 우리를 소유하실 수 있다.
결론 정리
온유한 사람은
첫째, 거듭난 그리스도인으로서
둘째,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며
셋째, 범사에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