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名銜) 이야기
임병식 rbs1144@hanmail.net
명함名銜)은 자기를 알리는 알림장이면서 자기를 대변한다. 주로 첫 대면 자리에서 건네는데 중요한 구실을 한다. 받은 사람은 첫 인상과 함께 거기에 적힌 이력을 보고서 그 사람을 파악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됨됨이나 그 밖의 것을 알아내기는 어렵지만 우선은 그걸 받아 이력을 보고는 대강을 파악한다. 하지만 그것은 특징적인 것을 알려줄 뿐, 그 사람의 인격까지를 알려주지는 못한다.
나는 근자에 새 명함을 만들었다. 도로명과 우편번호, 그밖에 핸드폰 번호가 바뀌어서 더는 구 명함을 쓸 수가 없어서다. 그래도 한동안은 구명함을 계속 고집하며 사용해 왔다. 아직 잔존 량이 상당량 남아 있어서 버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더는 사용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어느 분에게 명함을 건네면서 전화번호를 고쳤더니 그게 새로운 번호냐고 물어왔던 것이다. 그 말을 듣으니 마치 대놓고 '새로 것으로 좀 바꾸시지'라는 말로 들렸다. 아차 싶었다.
알다시피 명함은 대개 모르는 사람과 초면에 인사를 나눌 때 자기를 알리는 수단으로 건네게 된다. 그런 만큼 아무에게나 건네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어디서 손쉽게 습득할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명함을 건네는 것은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 대면하는 단 몇 초사이가 인상을 결정하게 된다. 명함에 적힌 이력은 무게의 경중을 가름해 놓는다. 그럼으로 명함은 무작위로 뿌려댈 성질의 것은 아니다. 더러 보면 매장을 개업하거나 선거철을 맞아 얼굴을 알리기 위해 홍보용으로 남발하는 것도 보게 되는데, 그것은 예외적인 것으로 치더라도 절대로 아무데나 뿌릴 성질의 것은 아니다.
대개 초면에 인사를 하고 건네받은 명함은 함부로 버리지 않는다. 상대방을 존경해서가 아니라 명함을 취급하는 인식이 그러하다.
그런데 그렇게 소중하게 취급하는 명함을 나는 한동안 내용이 바뀐것이 있음에도 사용해온 것이다. 그러다가 앞에서 언급한 대로 '바뀐 번호가 맞느냐'는 말에 뜨끔하여 바꾸게 된 것이다. 묻는 말에 확 부끄러움이 끼쳐왔던 것이다.
나는 새로 찍어 잉크냄새가 사는 명함을 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겨본다. 이것이 나에게는 마지막이 아닐까. 더 이상은 찍을 일이 없겠지. 그 생각을 하니 이것 만큼은 꼭 건네야 할 자리에서 보관이 필요한 이에게만 건네야 하지 않을까 싶어진다.
새로 만든 명함은 간결하다. 처음에는 이도 저도 말고 이름과 주소, 핸드폰 번호만 넣으려했더니 소속 단체의 이름이 들어가야 할 것 같다고 해서 그것만 하나 추가 했다.
예전에는 명함 따위가 거의 없었다. 그냥 통성명을 하며 지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필수품이 되었다. 명함의 역사는 꽤 오래 되었다고 한다.
나의 명함은 간단하다. 겨우 연락처정도만을 밝히는 정도이다. 그렇게 보면 차라리 별명을 알리는 것이 나를 좀 더 확실하게 알리는 수단일지 모른다. 남들은 나를 보고 '원칙'이라고 한다. 원리원칙을 따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혹자는 '모과'라고도 한다. 적당주의가 통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명함의 역사는 기원전 2세기까지 거슬러 오른다고 한다. 처음에는 고대 중국에서 상대방 앞에 주먹 크기의 돌을 두고 안 보이는 곳에 숨어서 동태를 살피는 것에서부터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때 상대방이 돌을 자기 앞으로 돌려놓으면 받아들이는 것으로 생각하고 인사를 나누었다는 것이다.
예전에 나는 산길 통학을 하면서 친구들끼리 먼저 고개를 넘은 사람이 돌을 놓아놓도록 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그런 의식이 없었지만 돌로서 소통을 한 점에서 유사점이 있지 않았는가 한다.
알려지기로 본격적인 명함문화가 정착된 것은 1854년이라고 한다. 일본 에도막부의 사절단이 미국을 방문하면서 종이에 자기의 지위와 이름을 적어 건네던 것이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명함을 주고 받을 때는 예법이 있다. 아랫사람이 먼저 거네고, 서서 주고 받는다. 받을 때는 양손으로 받고 상대방의 이름을 확인하고 상대방을 바라보며 '감사합니다'라고 해야 한다.이러한 소통의 수단이기에 사람들은 저마다 명함을 품격이 있어보이도록 만들려고 한다.
한데 받아 든 명함을 보면 거부감이 들게, 무슨 이러저러한 이력을 잔뜩 적어 놓은 것을 보는 때가 있다. 현 직책도 과하면 거슬리는 판에, 지낸 이력까지 앞 뒤 면에 가득 적힌 것을 보면 거부감이 든다. ‘이 사람은 무슨 허명에 목숨을 걸고 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는 때가 있다.
그야말로 ‘지나침은 못 미친 것만 못하다’는 것을 여실히 느끼게 한다. 하나, 격식에 맞고 안 맞고를 떠나 어찌 명함만이 중요할 것인가. 그 사람이 반듯하게 살아온 삶이 칠갑을 해놓은 과한 이력보다도 훨씨 나를 터이다.
이번 새로 만든 명함은 모두 100매이다. 나는 이것을 여생을 사는 동안 꼭 필요한 자리에서 필요한 사람에게만 건넬 참이다. 뭐 남다르게 산 인생도 아니고 이름을 알일 계제도 아닌데 아무데나 헤프게 뿌릴 것인가.
그 생각을 하면서 외출할 양복 안주머니에 우선 딱 두 장의 명함만을 갖추어 담아 둔다. (2017)
첫댓글 새로 명함을 만드셨으니 축하드립니다.
임선생님 위치라면 젠즉 번듯한 명함을 지니는 것이 의당할 것입니다.
그런데 불과 100장을 만드셨다니 조금은 서운한 감이 듭니다.
꼭 필요한 분에게만 받고 주는 명함이라면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잘하셨습니다.~^^
생애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명함을 만들었습니다. 잔존 물량이 좀 있는데 우편번호와 도로명주소,
엔드폰 번호가 바뀌어서 하는 수 없이 서울에 거주하는 아들에게 연락하여 명함을 만들었습니다.
좀 부족할듯 싶은데 아껴서 사용하려고 합니다.
옛날에는 양반끼리 길에서 만난 초대면에 통성명하는 데도 꽤나 긴 시간이 걸렸던가 봅니다.
지금은 그것을 간단히 명함으로 해결하니 통성명도 문자요, 대화도 문자를 사용하는 이상한 시대가 되었네요.
오래도록 사용해오시던 명함을 새로 바꾸셨다니 기분마저 상쾌하시겠어요.
서로 약속이 된 건 아니지만 명함의 격식이나 인상은 직업과 연령, 명예 등에 따라 일정한 틀이 있는 듯합니다.
명함은 메모지로 활용하는 경우도 있고 상대방에게 약속사항이나 일정 등을 적어 건네기도 하므로 조금 넉넉히 준비해두는 게 낫지 싶습니다. 저는 작년에 수백장의 명함을 만들었는데 너무 많아 곤란지경입니다.
조금 부족한듯 하지만 아껴쓰러고 합니다
이전에는 수백장을 만든 바람에 구명함이 많이 남아돌아 이번에는 조금만 만들었습니다
선생님! 앞으로 남은 여생도 작품활동 왕성하게 하실 터이니 명함 아끼지 마시고 많이 나눠 주시와요. 디자인도 트렌드에 맞게 세련되게 하시구요..
그래야 할것 같습니다. 자기를 소개하고 알리는 데는 명함만큼 필요한 것이 없을듯 홥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