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살아 있다
홍단이(김은숙)
병실 침대에 누운지 몇일이 지났으나
그 어느 누구와도 제대로 인사를 나누지 못햇다
나는 말조차 할수 없을 만큼 목의 통증이 심각하였다
맞은편 침대에 85세 할머니 어깨 수술을 하시고
그 통증이 고통스러워 쉰살 딸앞에서 소리없는 눈물을 흘리신다
나 또한 나보다 키가 훨씬 더 큰 딸앞에서 통증을 이기지 못하고
눈물바람이다
마주보는 할머니와 나는 한마디 말도 없이
서로가 측은해 또 울고 울었다
일주일의 병원생활을 마치고 퇴원하는 날
15일간의 악몽이 이젠 없겠지?
이젠 다시 숨쉴수 있겠지?
그러나 그것이 시작이었다
편도염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것도 아니다
이비인후과, 신경외과, 이젠 통증 클리닉이다
목에 신경을 죽이는 주사를 맞으며 버텨왔으나 통증앞에 이길재간이 없었다
마약 진통제에 마약 패치를 붙이고
나의 생활은 그야 말로 지옥이었다
물을 삼킬수도 없었고 밥을 먹는건 꿈같은 일이었다
날이 갈수록 이젠 마약진통제도 패치도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내성이 생겨 이젠 나를 이길수 있는건 그 무엇도 없었다
인터넷을 뒤지고 이병원 저 병원을 전전 하여도 나는 병명 조차 몰랐고
견딜수 없는 통증에 스스로 삶을 포기하려 마음을 정리 하기 시작하였다
남은 사람은 어떻게 하지...
무어라도 남겨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목을 멜 자신도 없었고 달리는 차에 쫓아들 용기는 더욱 없었다
나는 살고 싶었던 것이다
다시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하였고
어느날 나와 비슷한 증상을 앓고 있는 이들의 작은 카페를 발견하였다
나의 병명은"설인신경통"이었다
듣기도 낯설은 희귀병이라 한다
전국에 몇십명도 안되는 희귀병을
내가 내가 ....
나의 병명이 그것이라고 한다
읽고 또 읽고 수시로 오는 통증이 이젠 5분에 한번씩 찾아와 30분이 넘게 나를
괴롭히고 지나간다
우리나라에서 이 병에 대한 수술을 하신 분은 단 한분밖에 없다고 하신다
뇌수술이라 선뜻 결정을 못하는 사람이 많았고
비용이 부담스러워 병원조차 못찾는 이들도 있었다
유일하게 나를 간호하던 나의 남편은 내가 병든 만큼 시들어 가고 있었다
자꾸만 나에게 눈물을 보이고 짜증도 늘어갔다
우울증 증세마저 보이고 있었다
미안함을 느낄 겨를도 없이 나는 또 다시 통증과 싸워야 했다
목을 전기로 지지는듯한 이 죽을듯한 통증으로 일그러져 가는 나의 흉한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았고 입원을 결심하였다
혼자 버텨보리라 .... 한번 버텨 보자
병원을 가서 상담을 받았고 이미 MRI 사진도 찍어 놓은 상태였다
"수술합시다"
"99% 회복할수 있습니다" 꿈같은 말을 교수님이 하고 계신다
나는 숨돌릴 겨를도 없었다
뒤를 생각할 겨를도 없었고
"수술해주세요"....간절하게 애절하게 말하였다
뇌수술에 따르는 모든 위험성과 부작용
청각을 잃을수도 있고 수술도중 작은 혈관을 잘못 건드려도
심장이 멎을수 있다고 길게 말씀을 하신다
나에겐 들리지 않았다
수술하다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그래야만 살수 있었고
그것이 아니라면 차라리 차라리...
최악의 몸상태였다
물 반컵을 먹기위해 열두번도 더 오는 통증을 이기면서
한시간의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그래도 물 한모금 마실수 있다면 살수 있으니깐 울면서 나는 먹고 있었다
살기 위해서 였다
수술날... 2012년 3월 21일 07시 30분에 나는 긴장한 남편과 딸램과는 달리
아주 담담한 표정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신고온 슬리퍼를 벗어주고
수술실로 들어갔다
수술대에 누워 1분이 지난후 난 기억이 없다
오후 3시 40분쯤으로 기억한다
잘 떠지지 않는 눈을 떴을때에는 밀려오는 목통증에
미친듯이 간호사를 불렀다
망할 간호사...기도마취를 해서 목이 아플거란다
"내가 지금 수술한건가요?"
"네 수술끝나셨습니다"
그런데 ...
그런데 난 왜 이렇게 죽을듯이 또 아픈가
절망이었다 이건 잘못된거야
수술자 15명 모두는 마취에서 깨는 순간부터 통증이 사라졌다고 했다
나의 9번째 뇌신경 설인신경에는 기름 종양이 끼여 있었다고 한다
너무 난해한 수술이라 미쳐 하지 못하였고
내일 다시 재수술하자고 하신다
한번 했는데 두번을 못할까...그래 하자 ...해보자
그런데 또 아프면 어쩌지...
남편은 도저히 이상태로 다시 그 험한 수술을 시킬수 없다고 결정하였고
다음날 해외학회를 떠나시는 교수님께 그리 통보하였다
수술후 새생활을 찾아올거란 나의 기대는 물거품처럼 날아가버렸다
하루 하루가 지옥이었다
울렁증에 먹을수가 없었고 아니 못먹어도 아프지 않으면 살수 있을것 같았지만
나는 매일이 아팠고 수없이 찔러대는 혈관주사와 채혈에 나는 미쳐버릴것 같았다
속도 모르는 남편은 입맛이 없어도 먹으라 한다
미웠다
입맛이 없는게 아니라 눈을 뜰수 없을만큼 울렁증에 앉지도 서지도 눕지도 못할 지경인데...
혈압이 높아 누워만 있으라는데 죽을힘을 다해
나는 병실 통로 복도를 벽을 짚으며 기어가듯 걸어다녔다
걷기라도 해야만 숨을 쉴수 있을것 같았다
그래야만 울렁증이 조금 덜한듯 했다
내 얼굴은 달덩이였다
이틀만에 10킬러그램의 체중이 늘었다
복수가 차고 내 살들은 팅팅 부어있었다
내 손은 고릴라의 손처럼 컸고 내 발은 코끼리 발처럼 컸다
모든 링거를 중단하고 시도때도 없이 채혈을 해갔다
이젠 그마저도 미칠듯이 두려웠다
혈관을 못찾아 수없이 찔러대고 미안하댄다
아픈건 참지만 이리 찔러 놓으면 담에 놓을자리가 또 한곳이 줄어든다
통증이라도 없으면 백번을 찔러도 참을수 있다
내 뒤통수를 열고 뇌혈관을 분리 시키고 다신 통증이 없을거라 햇는데
나는 여전히 아프고 진통제를 더 달라고 간호사님께 떼를 쓰고 있었다
안된다는걸 울면서 애원하며 애원했더니 전화를 여기저기 하더니
큰 인심쓰고 진통제 한 알 더 주신다
나의 뒤통수에는 철심이 박혀있다고 나의 수발을 들고 있는 22살의 딸램이가 조심스럽게 말하여준다
"엄마 보여주까?"
"아니 안볼래 머리도 잘랐지?"
"응 근데 안 흉해"
"됏어...."
70드신 할아버지도 삶을 포기하시려다 아들이 수소문끝에 이곳에서 나와같은 수술을 하고
일주일만에 퇴원하여 지금은 꿈같은 새삶을 사신다고 후기를 남겼는데
나는 열흘이 넘어가는데 앞자리 할머니처럼 옆자리 아주머니 처럼 나는 귤 한쪽도
먹을수가 없다
빵순이가 빵도 먹고 싶었는데 우리딸래미는 내 앞에서
그 맛있는 빵을 혼자서 잘도 쳐먹는다
내 엄마가 오신날이다
내가 좋아하는 찰밥에 미역국을 맛나게 끓여오셨다
나는 그걸 먹지 못했다
그날부터 나는 더 아프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서러웠다
밤마다 죽은듯 잠을 자면서 일어나면
내가 잠을 잤는지 죽음에서 깨어났는지 모를 정도로
머리속이 텅 비어 아무런 기억이 없었다
담당 교수님의 지극한 보살핌이었을까
나의 운명이었을까
조금씩 차도가 보인다
약도 조금 줄어간다
어느덧 극심한 통증은 없어졌다
13알의 약을 나는 하루에 네번을 털어넣어야 한다
21일만에 일단 퇴원을 하였다
사무실일은 남편이 전혀 손대지 못했기 때문에 그 이유를 대고 집으로 가고 싶었다
착한 내남편
아팠던 시간의 기억을 없애주려고 분위기 전환한다고 혼자서 방배치를
바꾸어 놓았다
주방은 우렁각시가 다녀가도 이리도 깔끔할까
고맙고 감사하였다...
하루 하루가 적응하는 시간이었다
횡단보도를 건널수 없었다
초록불이 끝나기전에 저 넓은 도로를 건널 자신이 없었고
차들이 나를 향해 돌진할것 같았다
에스컬레이트를 타고 내려오질 못했다
발을 디디면 저 밑으로 굴러 떨어질듯한 공포감이 생겼다
수술 후유증으로 당연히 그럴수 있다고 교수님이 안심시켜주신다
운전은 방향감각이 없다고 3개월 후에나 하라고 하셨다
우리는 8년전부터 제조업을 해 왔다
나는 현장에서의 궂은 일도 사무실 업무도 또 집에서 살림도 해야하는
슈퍼우먼 이었다
깔끔떨던 성격이었는데 기름낀 기계도 잘 만지고
남자 세사람 몫은 거뜬히 한다고 보는 사람마다 칭찬에 입이 말랐던 나였다
요즘은 경기가 그때만 못하다
아침부터 저녁내내 공장일을 하면서 나의 남편은 아침저녁으로 밥을 하고
청소를 하고 쭈그리고 앉아 나의 속옷마저 손빨래해가면서
날카로운 나의 비위를 잘도 맞추어 주었다
퇴원후에도 밥한술 먹고 체하고 어지럼증에 또 생각지 않은 고생이 이어졌지만
하루 하루가 다르게 나는 마약진통 패치를 스스로 떼어내고
마약진통제도 스스로 끊어가면서 잘 적응해 나갔다
오른쪽 귀뒷쪽에 머리가 짧아져 흉하다고 가발도 주문하였다
약이 점점 줄어갔고 13~14알의 약에서 지금은 5~6알의 약으로
나는 통증없이 살고 있다
지난달 컨디션이 너무 좋아 병원에서 진통제를 모두 끊고
뇌기능 개선제만 딸랑 3~4알만 주셧다
야호~~~~..........
그러나 다음날 부터 목이 편치가 않았다
섣부른 선택이었나보다 ...그래 약을 조금더 먹으면 어때!
통증없음이 이 얼마나 새 세상인가
다른 이들은 3~6개월에 모두 약도 끊고 아주 편하게 생활한다고 하지만
그들 중 나만 예외였다
그래도 나는 괜찮다
나는 아픈지 석달만에 수술을 하였고
그들은 10년을 그 악몽으로 살아온 이들도 있다
어찌 내가 그들과 같기를 바랄까
우여곡절 끝에 어쨋든 나는 이렇게 살아 있고
내가 사는 삶은 덤으로 사는 삶이다
가끔은 다른이들 틈에 섞여 달달한 소주를 5잔만 마셨으면 하고
침을 흘리곤 하지만
교수님은 "술을 마신다는것 아직은 배부른 소린거 아시죠?"하시면서 웃으셨다
"조금만 참으세요"하시며 또 다시 웃으셨다
오늘이라는 시간은 내게 가장 큰 선물이며
아직도 간간히 목이 옅은 통증이 있지만
내 평생 약을 달고 산다 하여도 나는 투정하거나 불만 하지 않고
지금 이시간에 이 모습으로 당당히 서 있음에 감사한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내 어찌 이런 글을 이 시간에 써 내려갈수 있었을까...
삶은...누구나 갖는 행복은 아니었다
나는 이 행복을 아낌없이 누리면서
가끔은 힘겹더라도 그 아팠던 날의 암울함을 생각하면서
나의 채찍이구나 생각하며 최선을 아끼지 않으려 한다
어느 병원 신경외과 선생님도 모르는 병을 나 스스로 찾아서
내 발로 찾아가 수술을 결정하고 이 악물고 이 날까지 버티어 온
나 자신이 대견스럽다
매일이 화려하지 않아도
매일이 특별하지 않아도
평범한 소박함에서 얻는 한결같음이 있다면
이 또한 행복한 삶이 아닐까...
나는 지금도 가끔 남편이 미울때 마다 그때의 지극한 모습을 떠올리며
나의 자세를 굽히고 그를 받아준다
가장 힘든 시간에 함께 해준 나의 남편과 나의 딸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나는 지금 지난 석달간의 극심한 통증을 기억하지 못한다
나의 뇌는 감사하게도 그 기억을 잊게 해 주었다
이 시간은 내게 축북받은 시간임에 틀림없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
나는 지금 살아 있다...
첫댓글 이 글이 이곳에 올리기에 적합한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옮길곳이 있으면 이사를 가겠고
적합하지 않으면 삭제를 하겠습니다
그저 지난 어느날의 기억들이 떠올라
써보았습니다...~
어려운 시기가 있었군요. 아무리 설명해도 아파보지 않은 사람은 그 통증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겠지요.
완치 단계에 있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근데 금주하라고 했으면 이번 모임에 술은 어떡하죠? ㅎㅎ
게시판을 잘 찾으셨어요. 이 게시판에 딱 어울리는 글입니다.
술은 향만 마시기로 하지요^^
요몇일 다시 찾은 미미한 진통으로
울적한날이엤습니다
은둔?3 일을 마치고 오늘은 움직입니다
한파가 갔다는데 오늘은 바람이 심술입니다
좋은날되십시요^^
홍단이님!
저런...
눈물을 동이동이 쏟아내야만 했던 극심한 투병생활이 있었었군요?
환자가 되면 참고 견뎌내야만 하는 통증은 물론이고 투정과 짜증이 있기 마련이지요... 왜 아니 그렇겠습니까?
하지만 그 온갖 투정과 짜증을 말없이 받아주며 병간을 해내신 부군과 딸래미의 지극정성이 돋보이는군요.
두 분께 잘 하셔야겠습니다. ㅎㅎㅎㅎ
1년이 지난 이제는 완쾌가 되셨겠지요?
올려주신 투병기, 환자의 입장이 되어 감사히 배독하였습니다... 늘, 건강하시길, ^^*
완쾌라고 말하기는 아직 좀 이른것같습니다
차차 나을거라 믿고 있어요
지난 일을 써내려니 빠진것도 있고 그렇지만
머릿속에도 입속에도 이또한 지나가리라 를
되뇌이며 악몽의 날이 지나가기를
바래왔습니다
지금은 그래도 사람모냥하고 다닙니다
격려와응원 감사합니다^^
먼저 힘찬 응원을 보냅니다
이제 웃을 일만 남은것 같애요
그날 아파서 얼마전에 수술 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이렇게 고통속에서 힘겨웠던 시간을 보냈었다고 하니 맘이 아프네요
앞으로 지난날보다 더 즐겁게 밝은 마음으로 살았으면 해요
건강기 팍팍 ~ 보냅니다
유성자작가님의 건강기운 팍팍!~~느끼면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립니다
지난 일이기에 더듬어서 말할수 있는것 같습니다
이젠 날아야죠~~
좋은날만 있을거라 믿고 싶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나그네님께서도 비슷한 아픔이 있으셨나봅니다
겪어보지 않고는 그 고통을 가늠하기는
힘들겠지요
지금 이런 시간에 와 있음이 저는 꿈같다고
되뇌이는 날이 많습니다
걸어다닐수 있고 밥을 먹을수 있고
말을 할수 있음이 행복합니다~
아픔이 있었군요. 그 때 봤을 때는 너무 밝아서 전혀 몰랐는데.... 아무쪼록 건강 회복하시길 기원합니다.
학창시절엔 더 밝고 활발했답니다~
긍정의 힘을 저는 믿습니다
웃음도 많고 저 나름 웃기는 사람이예요
노작가님이 주신 시집 돌아오는 전철안에서
푹!~~빠져서 잘 읽고 왔답니다^^
아...작가님! 그렇게 아픈 일이 있으셨군요.
저도 저희 아버지 간호하면서 병실에 있어보니 건강한 것 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지 알았습니다.
모임 때 너무 밝게 웃으시고 활기차셔서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정말...정말 글 쓰시길 잘하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항상 그렇게 웃어주세요. 긍정 또한 큰 면역치료제잖아요.
약, 치료 절대 거르지 마시구요.
은정작가님!~~아버님께서는 많이 쾌차하셨겠지요~
살면서 소중한건 참 많겠지만 건강을 잃으면
그 무엇도 소용이 없다는걸 몸소 깨닳았답니다
격려 감사해요~~
은정작가님 아버님의 완쾌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