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이에 2월 7일은 물밑에 꼭 7층짜리 건물을 지으라는 꿈도 꾸었고,
2월말경에 연구회 사이트를 발견하고 이상하게 이끌린 나는 정상적인 보통 사람들이라면 믿을수 없는 얘기들로 가득한 연구회의 글들을 잠도 자지 않고 밤사이 모조리 읽었고,
나는 전혀 의심없이 순수하게 믿어졌다.
내가 그토록 찾고 헤매였던 궁금증들에 대한 해답이 그속에 다 있었다!
너무도 개운한 설레이는 기분으로,
2003년3월1일 00시54분 연구회 사이트 회원가입을 했다.
연구회 글을 읽고보니 수정제품이나 히란야는,
만든 사람의 기운이 들어간다는데 기운을 모르는 사람이 만든,
황**의 히란야와 수정 피라밋이 내 나이에 부담스러운 가격이고 원래 보석엔 관심없고,
좋은 기운을 부르는 히란야도형이라하여 큰 맘 먹고 첨으로 구입한 금 펜던트 제품이라
더욱 걱정이되어 3월 5일에 환불 문의하니 교환만 된다 하였고, 9일에 수정 피라밋이
깨져서 11일에 백수정 피라밋 교환 받았다.
연구회에 전화를 해서 유사범님과 통화해 원장님께 상담받을 약속일을 잡는데,
이름을 말씀드리고, 2003년 3월 14일에 상담예약 날짜를 잡았다.
생애 첨 혼자힘으로 서울을 가는거라 여동생을 데리고 가고 내 능력에 차비도 부담스러웠다. 그런터라 같은 날 개명을 하기위해 ‘운*’이란책으로 만난 저자의 서울의 재벌들이 본다는? 유명한 철학관도 같이 예약해뒀었던 듯 싶다.
나는 성적이 나쁘던 터에 대입시험날 생리가 시작되어 극심한 생리통에 식은땀과
정신 혼미로 내가 젤 잘 했던 언어영역이 30점이나 떨어졌고,
진로 결정시 맘에 드는 과는 성적이 턱도 없고,대학자료를 빠짐없이 읽던 중,
어릴적 미스코리아 진과 내 태몽이 흡사했고 미스코리아를 나가란 소리도 많이 듣고,
다들 예쁘다 많이 해주셔서 그런류의 연예인이 되고 싶었는데 외모에 대한 자기애가 크던 내가 커가면서 철이 들어가던중에 연예인 메이컵을 해주는 메이컵아티스트가 되고 싶어서 피부관리,헤어,메이컵,패션등 미용의 전반적인 부분을 가르치는 뷰티케어과를 너무 관심가지게 되었고,당시 전국에 별로 없었고 마산에 마침있는데,그것도 3회째의 원서를 받는 신설과였다.
그당시 4년제는 없었고 내가 입학후에 1년뒤 광주에 4년제가 신설되었다.
나의 판단에 어려운 집안 형편에 밑에 동생둘이나 있는데 부모님 말씀처럼 재수해서는
안되고,빨리 졸업하는게 낫고 잠과 싸우며 더 이상 책상에 앉아 있기도 싫었다.
부모님은 연예인 계통은 딴따라라 생각하시는 세대라 신생과인 미용학과를 정말 반대하셨다.나는 판단하길 4년제 졸업한 백수도 많은 시점이고,이건 이제 시작하는 단계고 여자가 있는한 수요도 많고,절대로 직업난은 없을 전문직이라고 생각해 우겨서 결정했고,
내 판단은 적중하여 전문성 있어 지금도 친구들은 나이들어도 할일이 많아? 부러워하기도 하나 나는 그만큼 고통스런 많은 댓가를 치러야했고,익숙하기까지 체력적으로 너무 힘든일이었다.
막상 학교 수업을 받고 6개월이 지나니 난 특히 스킨케어에 재능이 있었다.
교수님이 데모를 보이시면 스킨케어는 동작이 길고 많은데,난 한번 보면 바로 외워서 했고 그 부분에서 뛰어났다.
피부관리실 원장이 되고 싶다는 꿈으로,사람들의 피부고민을 깨끗이 덜어주고프다는 생각으로 박봉에 젤 중노동인 피부관리실에 첨 취업을 했고,들어가고보니 직원나가기로 소문난 곳이었다.
내가 가고 일주일만에 선배언니가 인수인계하고 나가버렸다.
일을 빨리 배우니 더 일이 많았고,사람은 안구해지는데,그 큰 관리실에 직원은 일주일만에 나혼자 청소하고 밥하고,설거지하고,나보다 3배 덩치되는 손님들 비만.경락관리 쉴틈없이하고,전문서비스직이라 밥 시간 따로 없어서 저녁에 점심 먹기도하면서 위장병도 나고 집에가다 쓰러질뻔 코피도 나고,막상 일해보니 이일은 예사가 아니었다.
너무 박봉에 3D직종 같았고 너무 힘들었다.
그래도 손님들 관리 이쁘게 해주는 것 다른 사람 경락으로 아픈 것 풀어 주는 건 좋았고
보람 있었고 재미있었다.
난 말라도 다들 놀랄만한 손아귀 힘이 있어서 아무리 아파도 정말 열심히 최선으로 했던 것 같다.그러다보니 배마사지시 변 못본지 몇시간인지도 맞출 정도였다.
정말 힘들고 이기적인 원장님이 싫어서? 그만두었지만,
그분은 일단 고객 티켓팅만 계산 대충해도 월 천만원은 버는 듯했고,관리사들은 좀 잘하면 반 한의사 소리도 들을 만큼 사람들을 치료한다는 것도 관리하다 경험으로 알게되었고,
기운을 많이 받고 뺐겨서 힘들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어디가 아픈지 내가 만지자마자 똑같이 아픈곳을 몸으로 느낀다는 것도 알았다.
손님들이 어떻게 그렇게 아픈 곳을 콕 집냐고 하셨고,갈수록 기감이 더욱 발달했던 듯하다.그래서 연구회 글들이 낯설지만은 않았다........
첫번째 직장원장님과 너무 힘들때 잠깐 관리실서 잠이 들었지 싶다.
이직 고민을 했었는데...
[꿈에 하얀 깨끗한 좀 다른 유리벽이 있는 관리실에서 내가 오른편에 앉아보고 있고,
왼편 베드에 관리사분과 손님이 관리하며 대화하는걸 들었다.]
그땐 지금 왜 이런 걸 꾸나 하고 잊었는데,6개월뒤?두번째 관리실에 취업했고,
무심코 일하다 같은 상황이...데자뷔현상이? 있었고,그 순간 난 소름이 돋았다.
그 관리실은 내가 꿈꿀땐 생기지도 않았었고,새로 인테리어해서 특이한 구조였는데,
꿈속의 그대로였고, 손님과 대화내용까지 똑같아서 2번째 원장님께 말씀드리자 원장님도
소름끼친다시면서 너는 하느님이 보낸 사람이라셨다.
그분은 독실한 기독교인이셨고,하루종일 찬송가를 틀어 놓으셔서 내가 괴로웠다.ㅋㅋㅋ
그래도 내가 대학때 실습 나간 비주얼이되시고,화술이 유능한 젊은 원장님,
그리고 첫 번째 직장의 이모뻘에 남성적인 외모?의 투박하지만 제품 다양히 쓰시고
최신식 기계에 엄청 투자하던분,
그리고 세 번째의 이모뻘이시고,외모는 피부를 보면 손님이 첨엔 원장님 피부가 왜그러냐실 정도인 피부에 젤 작은 관리실이고,기계도 쓰지 않고 손으로 다 관리하고,좁아서 세탁기도 없어 안그래도 힘든데 손빨래에 손이 거칠어지고 바닥이 방바닥인데 겨울엔 추워 발과 다리가 트고 갈라질 정도로 추위를 많이 타는 내겐 너무 힘들었을 정도로 우풍세고,
원장님 깔끔성격에 매일 아침 벽까지 닦아야했던,바닥은 집바닥 손 걸레질에 유별난 분이었지만,손님도 공무원,교수님,의사부인등으로 골라서 스타일에 안맞으면 받지 않는 예약제의 관리실 원장님이었지만,난 그분을......가장 존경했다.
물론 내가 겪은 3분을 장점만 섞으면 최상이지만 사람은 배워가는 존재이니 모두 완벽할순 없었고,코스메틱 본토독일에서 배우고 오셨고,어느곳과도 비교안될 관리사가 벅찰 마사지량에 가장 저렴히 받으시고,테크닉 방식이 달랐던 그분이 좋았다.
그분 마사지 첨 보던날 한번에 인상적으로 외웠었다.누가 하나하나 동작 가르쳐 주는 분야가 아니라 자기 재간이었다.나는 습득은 정말 누구보다 빠른 듯 했고,원장님께서 손님께 애들한테도 배울게 있다는 말씀하시는 걸 듣게 될 정도로(이분을 더욱 존경한 이유다)
내 스스로 일하다 여러 체형의 여자들을 만지며 테크닉을 개발도 자꾸만 되었던 것 같다.
정말 열심히 최선으로 관리했다.
나는 직업상 해주기만하고 학교때 서로 배운다고 엉망 실습대상 말고는 받아보지 못해 몰랐는데 오래된 원장님 손님들이 내게 아무나 안받고 원장님이 아니면 안받는데 내가 첨이고,원장님 손이랑 똑같다고 하셨고,
나갈때는 내가 너무 피곤해 조금씩 지각을 했었고 나 나름으로는 너무 기가 다 빠지고 아파서 그만두는 이유가 젤 컸는데,내게 차리고 나가냐고 물으셨었다.
어디서 배운적도 없는데 기감이 발달했던 나의 체는 관리사가 된 후에 비오는 날이 공포일 정도로 손가락 마디마디가 다 아팠고 모든 관절이 아팠다.제사후에 다 죽어 갈 정도로 아파서 오신 손님이(희한하게 이럴때 병원 안가고 관리실을 오는 사람이 많았다~ㅋ)
내게 관리받고 나갈땐 살겠다고 생생하게 나가시고,나는 죽어나고 꼬꾸라질 만큼 힘이
빠졌다.내가 관리하면 치유효과는 눈에 보이게 빨랐으나 수백명을? 만져도 덜 힘들고,
숨을 못 쉬겠고의 차이일뿐,그 누구도 내게 힘을 주는 이는 없었다고 기억한다.
그것은 무겁고 덩치가 커서 힘든 것만이 아닌 다른 차원이다.
원장님께 너무 아파 진지하게 여쭸더니 내게 ‘치유의 기’가 있다셨다.
원장님을 순수하게 이모처럼 여기며 좋아하고 존경하는 부분이 많았었다.
그래서 원장님을 간간히 정성스럽게 관리도 해드렸었다.
두번째 관리실의 원장님께선 내게 아직 어려 기운을 주는 손님도 있는데 못 겪었고,
과도기라셨지만,난 너무 아파서 내귀엔 들리지도,믿기지도 않았다.
사실 첫 번째 관리실 3개월,2번째 관리실 2개월 지나 관리 경력이 6개월이 안된 초보였으나 첫 번째 직장의 2년? 경력이라고 잠시 들어왔던 언니보다 손님들이 훨 낫다했었고,
일손 딸려 구한 그 언니는 내 보조를 해주고 결국 내가 일을 다해야해서 사람 구한게 정말 나의 피로감을 덜진않고 증가시켰었다.그땐 월급이라도 더 줬음 싶었다...
내가 재능이 있긴 했던 듯도 하다.그래서 넘 재미났었고,테크닉은 그때가 최고조였다.
누가 특별히 가르친것도 없는데,나는 빠르게 홀로 습득하고 나아갔던 듯하다.
사람마다 손맛이 다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무튼 2번째 원장님께 만화에서나 보던 치유의 기란 단어를 배운 듯하다.
그분은 10년째 손님이 그대로시다.내가 아는 한 경락이나 맛사지는 손으로 하는게 최곤데 효과나 관리사 몸을 보호하기위해 도구나 기계를 쓴다.
기계가 고가기도 하지만,가장 손님께 손으로만 하시는 그분의 방식이 나는 존경스럽고
좋다. 회원분들중 관리하시면 담배 안피고 채식하는 관리사한테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다.내 관리효과가 빠른 이유를 생각하다가 그것도 알게 되었다.
그 후에 미용학원에 취업했고,나는 어린 나이에 미용학원의 피부와 차밍의 강사였는데,
가르치는 건 재미났으나 학생이 많은것도 아니나 하루 3시간씩 연강으로 3타임하면 밥시간빼고 9시간이고,학원 전화와 청소도 내 담당이었고,순진?하여 월급을 묻지 않던 내가 나중에 그만두고 보니 업계 평균 초봉의 3분의 2밖에 안되는...
몰라서 당했던,너무 심한 박봉에 시달렸고,무엇보다 나이가 어려 미용 특성상 아줌마들이 많이 배우는데 나이에서 치이는 느낌이었다.
이렇듯 가는 곳마다 힘들고 소문난 곳 취업이 되기도하고 힘겹고,
본명이 같은 이름이 없는 특이한 이름이고 사람들이 한번에 못알아 들었다.
자연스레 이름을(운명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학원에서 학생 없을때 갑자기 TV에서 기공사가 나와 기공을 만들던 장면이 생각나 무심코 해봤는데 배우지도 않은 내가 엄청 단단하고 양팔을 다 벌려서까지 만들어지는 큰 공이 만들어져서 나는 놀랐고,
어디 꼭 알아보아야겠다 싶던차에 연구회 사이트를 발견한 것이었다.
연구회 알고는 모으는 수련의 시대가 아니고 버리는 수련을 해야 하는 것을 알았다.
2003년 3월 7일엔 대학동창(난 여학교만 쭉 나왔다)인 Y가 우리집에 놀러와 자고 갔는데,내가 마사지 해주고 팩 붙여주고 30-60센티위에서 손바닥을 들고 안면에 기를 넣었는데 친구가 갑자기 깜짝 놀라 소리치며 눈을 뜨는거다.
뭐가 흰빛이 웅웅거리며 빛의 고리가 3차례 들어오는게 느껴지더란다.
또 내 관리 동작중에 툭툭툭툭하며 들어오더란다.
해주고 나니깐 난 뒷머리가 넘 아팠다.친구는 특히 뒷목이 넘 시원하다고 했었다.
이런저런 나의 경험으로 나는 조문덕원장님 만날 날을 손꼽아 고대했다.
그분은 모든 것을 아실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