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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주님이 곧 오십니다.여호와를 경외하라. 원문보기 글쓴이: Jesus사랑
작년 3월 어느날
잘 아는 분으로 부터 전화가 왔다.
자신의 오래된 고객이 말기암 환자로 병원에 입원중인데
믿고 맡길 수 있는 간병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환자분에게는 현재 미국에 살고 있는 일가 친척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나에게 도와 줄 수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어릴때부터 호스피스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망설이지 않고 흔쾌히 도와주겠다고 대답했다.
미국 병원은 처음이라 어색하고 낯이 설었다.
내가 오전에 병원을 찾았을 때 환자는 혼자 누워 있었다.
한국이름 박 은비
영어이름 브렌다
나이는 50세
키 170에 날씬한 몸매였다.
환자 옆 작은 간이 식탁위에는 환자를 위해 사이다, 콜라, 쥬스,
진저, 물, 얼음으로 채워진 물통... 등 액체 음료들이 즐비하게 놓여져 있었다.
그 옆에는 메마른 과일조각들이 일회용 접시바닥에 붙어있었다.
그리고 환자의 아침식사로 나온 빵이 넓은 접시위에 식어서 굳은채로
누워있고 빵 위로 창문을 통해 들어온 오전 햇살이 슬프게 비춰지고 있었다.
환자는 나를 보자 힘없이 눈인사를 한다.
움푹패인 눈언저리, 튀어나온 광대뼈, 몇 개 남지 않은 머리카락.....
처음 뵙는 분이지만 가슴이 찡하게 아파오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두 볼을 타고 흘러 내린다.
환자의 두 손을 잡고 잠시 기도를 한다.
‘하나님, 이 환자분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내가 도착하기 전까지 환자를 돌본 어떤 분이 메모를 남겨 놓았다.
대소변을 본 횟수를 적어 놓으라는 말과 함께 환자를 위한
상세한 주의사항이 적혀 있었다.
처음에 그녀는 나를 보자 최대한 품위 있고 예의바른 자세를 취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대 소변의 도움을 받아야 할 때마다
그녀는 당황해 했고 미안하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통증이 시작되면 가슴을 붙들고 고통스러워 했다.
간헐적인 기침과 통증이 있을 때 마다 얼음을 넣은 쥬스나 사이다를
주면 잠시 그 고통이 물러가는지 잠잠해졌다.
환자가 마음으로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은 여자로서 볼일을 볼 때마다
나의 도움을 받을 때였다.
나는 이 때마다 부끄럽지 않도록 따뜻한 말로 칭찬을 해 드렸다.
그리고 따뜻한 물에 적신 타월로 몸을 닦아 드렸다.
환자는 고마워했다.
12시가 가까워오자 환자분이 다닌 K교회 성도들이
야쿠르트나 죽을 들고 찾아오기 시작했다.
어느날 내가 환자에게 성경말씀을 읽어주고 있을때 환자분을 찾아온
성도들이 내가 어느 교회를 다니는지 물어 보기 시작했다.
사랑과 진리교회?
처음 듣는데 그런 교회가 있어요?
어디에 있어요?....
그리고 다음날 그 성도들은 나에게 이렇게 말을 하곤 했다.
“사랑과 진리 교회를 알아봤더니 뜨거운 교회라고 하던데요.”
“네, 저도 알아봤는데 뜨겁다네요...”
“...............”
병원을 찾아오는 많은 성도들을 접하면서 환자분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환자분은 한국의 명문 여대를 졸업하고 영어교사를 하다가
22년전에 미국으로 오게 되었다고 한다.
환자가 평상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았는지 내방하는 성도들을
보면서 느낄 수 있었다.
환자분에 대한 지인들의 공통적인 생각들은
첫째 고상하고 우아한 멋쟁이라는 것이다.
환자분이 단 한번도 바지를 입은 적이 없다고 한다.
늘 미니 스커트를 즐겨 입었다고 한다. 그만큼 각선미가 빼어났다는 것이다.
둘째 완벽주의라는 것이다. 단 한번도 남에게 자신의 약점이나 허점을 비춘적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 영어실력과 능력이 탁월해서 미국에 와서 성공을 했다고 한다.
교회에서는 주일학교 선생님으로 20년동안 봉사를 했다고 칭찬과 자랑을 늘어놓는다.
세째 자녀들도 똑똑해서 딸은 미국의 명문대를 다니는 중이고
아들은 대학 졸업후 남편의 사업을 돕기 위해 현재 한국에 가 있다는 것이다.
네째 대단한 미인이라고 한다.
그러나 내 눈앞에 누워서 환자복을 입고 죽음 앞에 서있는 그녀는 예쁘지도 않았고 깔끔하지도 않은 그저 불쌍한 여인에 불과했다.
어느날 환자분과 가장 친하다는 친구 분이 찾아왔다.
환자를 껴안고 한없이 운다. 20년 넘게 가장 절친하게 지내왔는데
2년전에 암 선고를 받고 자기에게 왜 말하지 않았느냐고 울먹인다.
2년전에 병원에서 암진단을 받고 1차 수술을 받을 때
자기에게는 하와이로 2달 동안 여행 간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늘 화장하고 가발을 쓰고 다녀서 자신도 몰랐다는 것이다.
그 때만 해도 환자분은 자신이 완치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알리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환자 곁에는 남편도 자녀도 친척도 없다.
교회 성도중 친하다는 분에게 한국에 있는 남편에게 연락을 했느냐고
물었더니 모른다고 한다.
교회 성도들과 친구들이 떠난 병실은 또 다시 환자가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힘겨운 시간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정성껏 만들어 온 죽을 두 스푼도 들지 못하고 고통으로
얼굴은 땀범벅이 된다.
환자의 고통이 나의 고통으로 느껴지기 시작하고
아픔이 나의 온 몸을 휘감기 시작하면 나는 울면서 환자를 위해
기도에 몰입하기 시작한다.
방언으로 기도하다 보면 어느새 환자의 거친 신음소리가 멈추고
조용해진다. 얼굴이 천사처럼 평온해진다. (다음에 계속) 글:해찬솔
제 2부
환자분의 얼굴이 갑자기 밝아 보인다.
“방언기도 할 줄 아세요?”
힘없이 고개를 젓는다.
“금식기도는 해 보신 적 있으세요?”
한 번도 해 본적이 없다고 말한다.
환자분은 차분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을 하기 시작한다.
“어떻게 하면 방언기도를 할 수 있나요?...”
“방언기도 하고 싶으세요?”
내가 물었을 때 그녀는 고개를 끄덕인다.
환자분은 오래전에 방언을 받으려고 하다가 방언이 신비주의라는
말을 듣고 마음으로 거부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몹시 후.회.가 된.다.고. 한다.
나는 환자분의 손을 꼭 잡고 지난날 성령님께서 방언을 주시려고 했을 때
거절한 것을 용서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방언기도를 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환자분의 눈빛을 보니 삶에 대한 강한 애착으로 빛나고 있었다.
환자 박은비씨는 말한다.
자신의 몸이 건강하게 되어 이 병원을 걸어서 나가게 되면
남은 인생은 주님의 이름으로 남을 위해 살겠다고 한다.
지난날 자신만을 위해 살아온 것이 부끄럽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이 그동안 너무 교만했었다고 눈물을 글썽인다.
환자분과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지만 남편에 대한 이야기는 끝내
하지 않았다.
3주가 지났다.
병원에서는 암이 뇌에서부터 온 몸에 퍼져서 더 이상 살 가망이 없으니
퇴원 날짜를 잡으라고 한다.
여전히 K교회 성도들은 병문안을 와서 환자의 쾌유를 빌며
위로의 말을 잊지 않는다.
참 고마운 사람들이다.
오늘은 멀리서 공부하고 있는 딸이 비행기로 온다고 한다.
딸이 온다는 말에 환자분은 다소 흥분된 표정으로 기운을 내려고
애를 쓰는 것이 보인다.
두 스푼도 못 먹던 전복죽을 4스푼이나 들었다.
시계를 계속 본다.
하나밖에 없는 딸이 몹시 기다려 지나보다.
고통이 멈추면 시선을 문 쪽으로 돌리며 딸이 오는지 확인한다.
“문 좀 열어 보세요.. 우리 지나가 왔을 거예요...”
환자분을 위해 문을 열어 보인다.
아무도 없다.
“아직 안 왔네... ”
그녀는 실망하는 표정을 보인다.
미세한 발자국 소리에도 그녀는 딸인 줄 알고 금방 얼굴이 밝아졌다가
이내 실망스런 얼굴로 되돌아오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딸을 기다리며 계속 몇 시냐고 묻는다.
“빨리 오지 않고 뭐하냐...”
기다리다 지쳤는지 한숨 섞인 푸념을 늘어놓는다.
기운이 없는 가느다란 목소리로
“왜 이렇게 시간이 안가죠?...”
6시쯤 드디어 기다리던 딸이 들어선다.
훤칠한 키에 아직 어린티를 벗지 못한 귀여운 얼굴이다.
딸은 들어서자마자 엄마를 안고 조용히 흐느끼며 운다.
자신의 뺨을 엄마의 뺨에 대고 비벼댄다.
떨리는 손으로 엄마의 얼굴을 어루만지다가
끝내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한다.
“엄마, 죽지마...엄마는 안죽어.....”
환자분은 말을 잇지 못하고 그저 눈물만 흘린다.
“엄마는 안 죽을거야!...”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낸다.
딸은 눈물을 빗물처럼 흘리며 엄마를 꼭 껴안는다.
마치 딸이 남편의 커다란 빈자리를 채워주는 순간 같았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 딸은 남편보다 더 든든한 의지할 대상인지도 모른다.
딸은 죽 그릇을 들고 스푼으로 죽을 떠서 엄마 입에 넣어준다.
환자는 나에게 늘 거절하던 그 숟가락을 다 받아먹는다.
핏줄이 무섭다. 딸이 먹여주니 죽 한 그릇을 금방 비운다.
마치 금방이라도 자리에서 일어나 병원 문을 걸어 나갈 것만 같다.
딸은 물수건으로 엄마의 얼굴을 닦아 주고 발톱을 깎아준다.
엄마는 시집도 못 보내고 이 세상을 떠나야하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딸을 그린 듯이 바라본다.
그냥 보기만 해도 사랑스럽고 아까운 딸이다.
건강할 때는 딸을 돌보다가 이제는 딸에게서 보살핌을 받는다.
그래도 잠시 행복하게 보인다.
딸에게 아프다고 어리광을 부린다.
딸과 엄마의 역할이 바뀌었다.
딸이 엄마를 아기 다루듯이 부드럽게 위로한다.
“엄마, 조금만 참아, 곧 괜찮아 질 거야..우리 엄마 착하지...”
엄마는 마치 말 잘 듣는 아기처럼 고개를 끄떡인다.
서투른 한국말이 더 정감 있게 들린다.
딸의 때 묻지 않은 고운 얼굴을 보니 그동안 엄마의 사랑을 얼마나 듬뿍 받고 자랐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다음에 계속)
제 3부
나는 한국에 있을 때 많은 암환자들이 주님을 만나면서 완벽하게
치유되어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을 보아왔다.
이 분들의 특징은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회개하고 깨어지는 것이었고
목숨 걸고 매달리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분들의 뒤에는 중보기도 자들이 있었다.
처음에 나는 환자분이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리면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구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께 기적을 베풀어 건강을 회복시켜 달라고 계속적으로 기도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 분이 하나님 앞에서 간절한 기도를 해 본적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지금은 고통이 심해서 더욱 기도하기가 힘든 것 같았다.
병원을 방문하는 K 교회 성도에게 교회 안에 중보기도 모임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없다고 한다.
몇 년 전에 나는 개인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문제를 만나면 혼자서 열심히 금식하고 기도해서
응답을 받았기 때문에 중보기도가 뭔지 몰랐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었다.
그러다가 골리앗을 만났다.
혼자서 도저히 싸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마침 조이 도우슨의 ‘중보기도’라는 책을 읽고 있을 때였다.
중보기도를 요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인터넷으로 우리나라 대형교회 20개를 찾아서 전화번호를 뽑았다.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너무나도 실망스러웠던 것은 20개의 대형교회중 중보기도 모임이
있는 곳은 3군데 밖에 없었다. 그 중 한 교회가 주안장로교회였다.
그 땐 그랬다. 지금은 많이 생겼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이름 없는 시골 교회에 중보기도 모임이 있었다.
그 시골교회 사모님이 얼마나 눈물 흘리며 나를 위해 기도해 주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도 고맙다.
대 재벌 회장을 만나는것 보다 중보기도자 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중보기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는다.
그러나 중보기도를 요청하기가 쉬운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발가벗은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하고 자존심이라는
위선의 가면을 벗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는 그때 원수가 나에게 안겨준 집채 만한 문제의 항아리를
중보기도로 속 시원하게 산산조각 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곳에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승리의 깃발을 꽂았다.
LTC에 중보기도 모임이 있다는 것은 뉴저지와 뉴욕에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LTC 성도 뿐 아니라 다른 교회 성도들을 위해서도 중보기도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딸 지나가 병원 퇴원 수속을 밟았다.
집에서 엄마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나더러 엄마를 모시고 오라고 한다.
나는 미국 남자 간호사와 함께 앰블런스를 탔다.
한국에서 TV로만 보던 앰블런스를 난생 처음으로 낯선 미국 땅에서 타 본다.
3개월만에
박 여인은 집으로 돌아왔다.
거실에는 병원에 있는 그대로 의료기구가 준비 되어 있었다.
간호사들이 그녀를 들어서 침대위에 조심스럽게 눕힌다.
여인은 잠이 들었고 딸 지나는 간호사의 지시 사항을 열심히 듣고 있다.
나는 한시름 놓으며 거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거실 한 모퉁이에 책꽂이가 놓여있다.
책꽂이에는 환자분이 그동안 성경 공부한 흔적들이 파일로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파일 겉표지에는 사복음서를 비롯해서 로마서 강해, 사도행전, 고린도전 후서, 갈라디아서,.......라고 곱게 씌어져 있다.
그동안 환자분이 얼마나 성경공부를 많이 했는지 그리고 열심히 했는지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얼마 후 외국 간호사들이 돌아갔고 지나는 컴퓨터로 뭔가를 열심히 찾고 있다.
거실 벽에는 커다란 액자가 걸려 있었다.
나는 그 그림을 보고 깜짝 놀랐다.
뱀으로 칭칭 감긴 큰 항아리 속에 어떤 여인이 나체로 서 있는 그림이었다.
하나님을 믿는 집사 가정에 영적으로 좋지 않은 이런 그림이 벽에 걸려
있다니....글
나는 기겁을 하며 지나에게 저 그림을 당장 갖다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지나는 저 그림은 일본에서 사온 아주 비싼 그림이고 엄마가 제일 아끼는 물건이라고 했다.
(다음에 계속) 글:해찬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