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1995년 8월 - 3년 묵은 관절염 환자 치료

[천혜]

1995년 8월

불교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과 사는게 불편하셨는지 선하 스님은 보름만에 나를 쫓아내셨다. 그럼에도 나는 부산으로 돌아갈 수 없다. 한 달을 작정하고 나온 도피가 아닌가? 결론을 얻기 전까지는 돌아가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손은 과연 내가 속세를 떠나기를 원하는가? 언제부터인가 나는 줄곧 이 화두를 가지고 고민했다. 세상에서의 삶을 이렇게 고달프게 몰아넣는 데에는 어떤 의도가 있을 터였다. 그분은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 출가를 해 스님이 되라면 되리라. 그것이 나의 길이라면 가리라. 능엄경을 처음 펴던 날 책에서 뿜어 나오던 전기 같은 기운을 기억한다. 불경에서 손바닥으로 10분도 넘게 흐르던 기는 나를 전율시켰었다. 그 후로는 아무리 만져도 기를 다시 느끼지 못했다.

난 그 정체를 알고 싶었다. 남들은 전혀 경험하지 못하는 일련의 사건들이 내 인생에서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내가 가르치는 3학년 학생 하나가 내 옆에 앉았을 때 나는 까닭 없이 그 애의 허리가 아프다는 것을 알았었다. 누가 나에게 이런 정보를 알려주는가? 그리고 그 목적은 무엇인가? 도장의 사범이 바뀌어 오던 날, 수련 중에 나타나는 이상한 현상들에 대해 설명하자 새 사범은 웃으면서 전생에 관해 이야기했었다.

“아마도 안 선생님은 전생에 국선도 수련을 하셨던 모양이지요. 본원에서도 가끔 그런 사람을 봅니다. 그나저나 수련은 어느 단계까지 오를 자신이 있습니까?”

국선도는 중기, 건곤, 원기, 진기, 삼합, 조리, 삼청, 무진, 진공의 아홉 단법으로 구성되어 있고, 세상에는 진기를 넘어선 사람이 없다. 누구나 열심히 하면 원기를 넘어 진기까지는 도달하지만 속세에서 그를 넘어선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의 대답은 당연히 진기 단법이다.

“진공 단법이요.”

우리는 놀라 서로를 바라보았다. 사범은 너무도 교만한 답변에 놀랐을 것이요. 나는 내 의지를 밀어내는 어떤 힘에 놀랐다. 진공은 신의 경지이다. 불에 들어가 타지 않았다던 청산선사도 진공을 완성하지는 못했다고 들었다. 하물며 질병조차 극복하지 못해 빌빌거리는 내가 감히 진공단법이라니... 알 수 없는 이상한 기운이 뿜어져 나온 곳은 미간의 한 중앙이었다. 두 눈썹사이 한 가운데의 존재는 나의 입을 막고 대답을 진기에서 진공으로 바꾸었다. 이전에 가르치던 박사범이 나의 진동을 멈추기 위해 어깨의 혈을 누르자 내 몸은 그 손을 퉁겨 냈다. 그때도 그 기운은 사범을 향해 뻗쳐 나갔었다. ‘너는 나보다 한 수 아래다.‘하며 뿜어 나오던 나와 같은 몸에 사는 또 다른 인격체, 나는 나의 주인이 아니다.

그래도 크게 두렵지 않다. 무당들에게나 일어나는 이상한 일을 많이 겪기는 하지만 계속 좋아지는 건강은 나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별로 개의치 않는다. 남들이 가지지 못한 능력은 오히려 장점이 되기도 하니 문제될 것이 없다. 그렇지만 이 세상에서의 삶은 너무 아프다. 마음을 지켜볼 거라고 발버둥 치다 누군가의 노리개로 그치기는 싫고, 그들과 함께 서로 속이며 살기는 더욱 싫다. 자꾸만 상처받는 일이 생긴다. 누군가가 나를 세상에서 밀어내고 있다. 멀쩡했던 사람들이 나만 만나면 아프거나 나쁘게 변하니.. 나의 삶을 이끌어온 보이지 않는 손! 나는 과연 속세를 버려야 하는가?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투병을 이유로 도시를 떴다. 다행이 기훈이가 아는 곳에 절묘한 피난처가 있었다. 전라도 신남에 위치한 오지의 암자에 10년을 넘게 장좌불와(가부좌를 틀고 앉아 지내며 잠도 앉아서 잠)하신 스님이 사신다. 산이 연꽃처럼 휘몰아치는 곳의 가운데라 하여 연불사라 이름지어진 절에 선하 스님이 인적을 피해 홀로 부처님을 모신다. 신화산 정각사에서 진만 교도소 쪽으로 삼분 정도 차를 달리다 군의 경계에서 오른 편으로 난 비포장도로로 접어들면 순식간에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천연림이 펼쳐진다. 가끔 멧돼지나 곰 같은 야생동물이 출현하기도 하는 곳, 그 길을 삼십분 가량 걸어가면 우리는 연불사를 만난다. 전라도는 역사 속에서 소외의 길을 걸어온 대신 깨끗한 물과 오염되지 않은 공기, 망가지지 않은 산과 강을 얻었다. 언제까지 이들의 축복은 이어질 것인가? 인간이 아무리 약삭빠르게 이익을 찾아 헤매더라도 하늘이 자연스럽게 내려 주는 축복을 따를 수는 없다.

박경리의 토지 열 여섯권과 이슬람교 경전인 코오란이 함께 했다. 밥 먹고 산보하고 좌선하고, 다시 밥 먹고 산보하고 좌선하고, 밥 먹고 책 읽다 자는 것이 보름동안 있었던 일과의 전부이다. 산보라기 보다는 경보와도 같았던 도보도중 멀리 보이는 지리산 영봉을 보며 터져 나오던 고함, 내 속의 또 다른 나는 호랑이처럼 포효했다. 삶의 울분을 일시에 토해 내려는 듯 미친 듯이 질러대는 소리와 함께 온 몸의 찌꺼기가 빠져나가는 통쾌함을 느낀다. 그리고 폭포처럼 쏟아져 나오는 소변은 30분이 멀다 하고 화장실로 몰아댄다. 내 몸의 어느 곳에 이렇게 많은 수분이 숨어 있었던가?

“안 처사님은 나보다도 더 스님 같소. 갑갑하지 않으시오?”

“세상이 싫어서 도망 나온 사람 아닙니까?”

“그러면 아예 내 밑에서 머리 깎으시오. 그러면 이 신선 낙원이 모두 안 처사의 것이오.”

“글쎄요. 하늘의 뜻이라면 그렇게 해야 하겠지요.”

부처님은 6년만에 성불하셨다. 그러나 선하 스님은 10년이 넘는 고행을 거치고도 아직 인간이다. 하늘의 뜻이란 이렇게도 불공평한 것인가? 이제 이곳을 떠나야 한다. 어디에서 보름의 시간을 더 보내야 하는가? 뒤 산 공터에 텐트라도 치자. 이대로 돌아가면 떠나온 의미가 없다. 하늘의 뜻을 알아내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한 달 동안 속세를 끊고 살아 보리라던 맹세는 지켜야 할 것이 아닌가?

“어디로 안 선생님을 보낸단 말이요?”

부산에서 가끔 찾아오던 김 보살님은 펄쩍 뛰신다. 이분에게 선하 스님은 생불이다. 불국사에서 눈 맞고 비 맞으며 수행하시는 스님을 뵙고 5년이 넘는 세월을 설득하여 이곳에 둥지를 틀게 만들었다. 스님이 이곳에 정착한 가장 큰 이유는 체력의 저하였다. 노천의 악조건을 버티기에 너무 나이 드신 스님은 정관계의 거물들이 보장하는 큰절의 주지자리도 마다하고 조그마한 암자의 주인이 되었단다. 과거 박정희 대통령의 암살시에는 그 사건을 미리보고 막기 위해 청와대로 상경하였다 경비원들에 의해 쫓겨나고 담을 넘다 경찰서에서 구류신세를 진적도 있으셨단다. 권력과 재물의 유혹을 물리치고 자유를 선택하신 스님은 정녕 현명하신 분이다.

“정각사에 한 번 알아보세요. 남는 방이 있을 겁니다. 이대로 쫓아내듯이 보낼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 길로 선하 스님은 나를 오토바이에 태우고 정각사로 왔다. 깊은 골짜기가 시끄러운 모터 소리와 함께 오분이 넘게 펼쳐진 후 나타난 대웅전은 여느 절 못지 않게 웅장한 자태를 뽐낸다. 계곡은 피서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서 나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 다행스럽게도 계곡의 최상류에 위치한 절은 피서객의 발길이 드문 곳이라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 목적한 바를 이룰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주지 스님을 따라 사무실로 들어갔던 스님이 10여분이 채 지나지 않아 상기된 얼굴로 밖으로 나오신다.

“역시 절에서도 돈이요. 처음에는 곤란하다던 주지 스님에게 안 처사님이 준 돈을 몽땅 들이미니 얼굴이 환해지며 승낙합디다. 도! 잘 닦으시오.”

그안은 아직도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다리를 쳐다보고 있다. 삼 년 넘게 끌어온 관절염이 지압 한 번으로 나은 것이다. 나 자신도 받아들이기 힘들다. 과연 나는 예수인가?

“정말 괜찮아요?”

“거짓말 같이 하나도 안 아파요.”

“나가서 한 번 걸어보세요. 뛰어도 보시구요.”

밖으로 나간 그안은 껑충 껑충 뛰어도 보고, 빙글빙글 돌아도 보며 난리 법석을 피운다. 얼굴은 웃음을 떨치지 못한다. 내가 아프기 시작한지도 벌써 삼 년, 그 마음을 이해한다. 춤이라도 추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남의 기운으로 뚫린 혈맥이 얼마나 오래 지탱해 줄 것인가?

“다 나았어요. 형님의 손은 신의 손이예요.”

수련한지 팔 개월쯤 되었을까. 유치원이나 국민학교 다닐 때도 선천적으로 뻣뻣한 체질을 타고난 덕택으로 허리를 구부려 손가락이 땅에 닿지 않던 내가 손바닥이 자연스럽게 땅바닥에 닿게 되었다. 건강하고 젊을 때도 고작 30개의 팔굽혀펴기에 그치던 내가 손바닥도 아닌 손가락으로 60개의 팔굽혀펴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꿈도 꾸어보지 못했던 물구나무서기도 마찬가지였다. 벽에 기대어 섰던 내 몸이 저절로 허공에서 똑바로 서지는 것이 아닌가?

호흡에 취한 채로 미친 듯이 달렸던 그 감격의 순간이 있은 지 한 달이 채 지났을까. 나는 또 신비한 체험을 했다. 아침에 잠에서 깬 자형이 목에 디스크 증세를 느끼며 고통을 호소하기에 그저 안마나 해 주려고 했는데 놀랍게도 나의 손은 의지와 관계없이 자형의 혈맥을 찾아 지압을 한다. 그 지압을 받은 후 자형은 금방 통증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너무도 신기했다. 나의 몸 어느 구석에 이런 능력이 숨어 있었단 말인가? 선량한 사람들을 사로잡아 종교를 만드는 교주들이 이런 능력을 이용하는구나. 대학교수 같은 지식인들조차 세뇌해서 노예를 만드는 비결은 이러한 것이구나. 절름발이를 치료해 주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명하니 일어나라.’하면 누가 그를 믿지 않겠는가?

그 후로 나는 많은 사람을 치료해 주었다. 발목을 심하게 삐었던 제자가 지압 한 번으로 낫고, 턱 관절염에 걸렸던 동료 교사가 한번의 치료로 낫고, 몇 년을 끌어온 어머니의 허리디스크가 몇 개월의 연속된 치료로 정상을 되찾게 되었다. 그러나 치료에 언제나 성공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 치료가 영구적인 것은 더욱 아니었다. 어떤 사람은 다소의 개운함만을 느끼고는 끝이었고, 내가 치료해서 완치되었던 사람들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그 부위가 아파 오곤 했다. 게다가 더욱 심각한 문제는 치료 후 손상된 나의 기를 보충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는 사실이다.

영원한 건강의 유지는 충분한 수면, 건전한 식생활, 편안한 마음, 적당한 운동 그 외에 가장 적극적인 건강의 유지법은 바로 수련이다. 남들에게 의지하는 치료는 일시적이거나 기만에 지나지 않아 목숨이 위태로운 경우가 아니면 피해야 한다. 그래서 그 후로는 비상사태가 아니라면 가능한 지압은 피하고 그저 수련을 권하기만 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보통 사람들에게는 이 수련을 꾸준히 해낼 정신적, 물질적 여유가 없다. 그들은 너무나 빠르고 쉽게 병이 낫기를 원한다. 하지만 우리들 인생의 그 어느 곳에도 그런 것은 없다. 일반적인 병원, 한의학, 민간요법에도 완치는 없다. 그런 것들은 그저 잠시 병을 억누르거나 숨기고 회복에 다소 도움을 줄 뿐 생활습관을 개선하지 못한 사람에게 병은 다시 찾아든다.

근본적인 건강에의 접근 없이 쉽고 빠른 일반적인 치료나 약의 투여에 의존하는 사람은 결국 헤어날 수 없는 몸의 파괴로 빠져든다. 그것은 마치 사회에 범죄자가 있다고 지나치게 많은 수의 경찰을 양성하거나, 너무 막강한 권력을 검찰에게 부여하는 것과 같은 결과를 가져온다. 범죄를 막으려는 목적을 지닌 경찰이나 검찰이 제 기능을 벗어나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행동함으로써 사회에 끼치는 해악은 막대하다. 그것은 자칫 국가의 붕괴로 이어질 수도 있다. 건강도 마찬가지이다. 회복을 위해 투여된 약물은 체내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혀 인간의 생명을 오히려 위협할 수도 있다.

“우리 그안이 불쌍한 아이예요. 처사님이 관절염을 치료해 주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아침상을 앞에 놓고 절의 식사를 담당하는 공양 보살이 치하한다. 그 날 저녁, 생각하지도 않았던 과일이 방에 놓여있다. 절 식구들의 태도도 의례적인 손님대접에서 벗어나 친근하게 바뀌었다. 대신에 나는 가끔 기치료를 원하는 손님들의 방문을 받아야 했다. 주로 늙으신 분들이었고 젊은 청년 그안이에게 일어났던 즉시치유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약간의 효험으로 그쳤을 뿐이다.

대웅전 건너편의 마루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좌선을 한다. 거대한 부처님이 나를 내려다본다. 오고가는 관광객들이 힐긋힐긋 나를 쳐다본다. 한시간이 넘도록 가부좌를 틀다가 일어나면 다리가 오그라드는 것처럼 경련이 인다. 하안거를 위해 절로 들어온 스님들이 용맹정진을 거듭하다 제대로 걷지 못해 지팡이를 짚고 절뚝거리며 앞을 지난다. 저들에 비하면 나의 수련은 비할 바가 아니다. 식사시간을 제외하면 언제나 앉아서 지내는 스님들, 그들의 고행은 과연 결실이 있을 것인가? 아니면 그저 이렇게 오랜 세월 고행을 했다는 자기 만족으로 끝이 날 것인가?

좌선을 마치면 세시간 가까운 신화산 일주 산행을 한다. 거미들의 천국, 가는 곳마다 거미줄이 늘어져 걸음을 방해한다. 우리나라에 사는 거미들의 무게를 모두 합치면 4000만 인간 무게의 몇 배는 된다던 어떤 생물학자의 주장이 헛되지는 않은 것 같다. 단전에 의식을 집중하고 걸음을 걸으면 피곤의 정도는 반감된다. 생활 속에서 단전호흡을 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먹을 때와 말할 때를 제외하면 항상 호흡이 붙어 다닌다. 나에게는 버리는 시간이 없다. 하루 24시간은 모두 생명을 향해 나아가는 수련의 과정이다. 내려오는 길에 위치한 비구니 전용 암자에서 낭랑한 여승의 독경소리가 들려온다. 새벽 네시에 시작되던 연불사 선하 스님의 경소리에는 장엄한 기운이 깃들어 있었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사방으로 퍼져나가던 그 소리, 아무런 마음의 준비가 없어도 도에 입문하게 이끌 것만 같은 그 경소리. 스님의 독경이 주는 감동은 그분의 도의 깊이에 비례한다.

나도 모르게 암자로 걸어 들어간다. 조그마한 약수터를 지나쳐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니 대나무로 엮은 발이 펼쳐있다. 그 밑으로는 가지런히 놓여진 고무신 두 켤레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마치 강간을 목적으로 담을 넘는 도둑놈의 기분으로 안을 들여다본다. 스님이든 평범한 아낙이든, 여자라는 것은 항상 가슴속에 이상한 파동을 남긴다.

“형님이 여기 웬일입니까?”

놀라서 돌아다보니 그안이가 거기에 서 있다.

“응! 구경을 조금 하려고.”

처음 지압의 효과는 일주일이 못되어 끝이 났다. 5일 동안 아무런 이상을 못 느끼던 그안이는 예전처럼 심하지는 않지만 다시 아픔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삼일 간격으로 기치료를 해주지만 내가 영원히 이 아이의 옆에 붙어 살 수는 없는 일이다. 게다가 나의 몸도 아직 완벽하지 않다.

“주지 스님께서요.”

“주지 스님이 왜?”

“기분 나빠하시지 말고 들어주세요.”

“해 봐!”

“대웅전 앞에서 아침, 저녁으로 좌선하시는 것 말예요.”

“응! 그게 왜?”

“눈에 거슬리신대요.”

“참선처럼 수양에 좋은 것은 오히려 자기들이 일반인들에게 권해야 하는 것 아닌가? 권하지 않아도 알아서 하는데 거슬릴 이유가 어디에 있지? 참선은 꼭 숨어서 해야만 하나? 사람들 앞에서 모범을 보이면 더욱 좋지.”

“저도 그게 안타까워요. 하지만 절이라는 곳에서는 생각보다 스님들의 권위가 강하거든요. 그분들이 말하면 저희는 거부할 수 없어요.”

처음 여기에 오던 날, 나는 주지에게 절을 했었다. 마치 아랫사람처럼 큰절을 하건만 자기는 당연한 듯이 앉아서 고개만 끄덕였다. 그가 나보다 나이가 많으니 나의 경우엔 그래도 괜찮다. 할머니 신도 한 분이 찾아와 스님에게 인사하던 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세상의 최고가 되기 위하여 도를 닦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도가 아니라 허영이다. 도라는 것은 수천억 중생의 삶에 가장 낮은 밑거름이 되기 위하여 가야하는 길이다. 스님들로 하여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수도에 전념하게 해주는 자는 바로 무지렁이 백성들이다. 세상에서 피땀 흘려 모은 재산을 쪼개어 그들을 부양하건만 그 고마움을 모르고 상전이 되어 중생 위에 군림하는가?

남이 베푸는 것은 잊어버리고 자기가 베푸는 것만을 생각하여 스스로 높이는 사람은 천하의 졸장부이다. 스님들도 세상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구나. 자기들이 세상에 도를 베푸니 당연하게 봉양을 받고 존경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지독하게도 어이없는 편견이 이들을 지배하고 있다. 도의 깊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 할머니의 도가 그들보다 높으면 어찌할 것인가? 중의 복장을 하면 앉아서 절을 받고, 평민의 복장을 하면 엎드려 절을 하는 것이 어째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져야 하는가? 스님이 길거리에서 참선을 하면 고승이 되고, 민간인이 길바닥에서 수련을 하면 미친놈이 되는 것이 절간의 이치이던가? 이곳은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구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출세를 지향하는 자, 자신을 둘러싼 물질과 권력으로 위세를 떠는 사람들은 모두 열등감에 사로잡힌 족속들이다. 자기에게 자신이 없으니 다른 것으로 치장하려 한다. 자기의 신분을 내세워 타인 위에 군림하는 자 역시 열등감을 벗어나지 못한 존재이다. 공부란 하면 할수록 모르는 것이며, 도란 닦으면 닦을수록 낮아지는 것이다.

“좋은 곳이 있어요.”

갑자기 생각이 난 듯 그안이는 손뼉을 친다.

“뭐가?”

“형님이 수련하시기에 적당한 장소 말이예요. 따라 오세요.”

숙소를 지나, 참선 방을 지나, 대나무가 우거진 숲 속으로 나를 끌고 앞서가는 그안이, 저렇게 선량한 아이에게 내려진 몹쓸 관절염, 그러나 그것을 스스로 극복하고 나면 더욱 성숙한 사람이 되리라.

“여기가 바로 선녀탕이예요. 선녀가 목욕을 하는 곳이라는 이야기이지요.”

안개에 쌓여 신비한 분위기를 뿜어내는 계곡에 건장한 사내 둘이 들어가면 꽉 찰만한 조그마한 소가 있고, 한 편으로는 장정 서너명이 둘러앉아 술판을 벌이기에 적당한 평상이 하나 놓여있다.

“여기까지는 아무도 올라오지 않거든요. 방해받지 않고 혼자 수련하시기에 안성맞춤이예요.”

그안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물새 한 마리가 선녀탕으로 자맥질해 들어간다. 몇 초를 머물렀을까? 다시 공중으로 솟아오른 새는 멀지 않은 바위에 앉아 입에 문 피라미를 몸 속으로 밀어 넣는다. 훌륭한 사냥 기술을 가진 산새가 멋지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약탈자의 모습으로 혐오스럽지도 않았다. 그저 피라미의 슬픔이 가슴속으로 스며올 뿐이었다.

“마침, 좋은 구경거리가 생겼네요. 저런 일은 여기에서는 드문 일이 아닙니다.”

“고맙다. 그안아!”

“고맙기는요. 형님이 저에게 해주신 일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요. 저 갈께요.”

주지 스님의 방해로 나는 더욱 좋은 수련장소를 얻었다. 하늘은 언제나 나를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하신다. 속세를 등지더라도 스님이 되지는 않겠다. 사람의 욕심이 싫어 버리는 세상, 또 다른 욕망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내 인생에서 미리의 역할은 이 깨달음을 주는 것이었다. 나를 이곳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보이지 않는 손은 미리를 이용하셨다. 한달 간의 도피를 결정하자마자 연불사를 소개하러 찾아온 기훈이, 하늘은 나를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하셨다. 32년을 살아오는 동안 악역을 맡았던 사람들도 미워해서는 안 된다. 그 사람들 역시 하늘이 나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해 등장시킨 일시적 악인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나의 삶을 풍요롭게 해준 그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그러나 살면서 내가 지은 죄업만은 영원히 남아 나를 괴롭히리라.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범죄는 살인, 강간, 폭행이 아니라 바로 내가 지은 죄이다.

[산내들]

평범한사람 凡人 ...
어릴적 경제적 곤란을 겪었던 나는 사회에 대한 불공평에 주먹을 불끈 쥐고 밤의 황제를 꿈을 키우기도 했었지요
다행히 그 길로 가지 않았고 작은 꿈을 꾸게 되었지요. 凡人 으로 살면서 가끔 아니 많이 흔들리기도 했었지요

[천혜]

님의 책에서 그런 마음을 읽고 제가 여기까지 찾아왔습니다.
마음 속의 분노만 잘 조절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면 모두가 동등한 자격을 갖습니다.
다만 평범한 사람이 자격에 비해 적은 보수를 받으니 높은 사람보다 더 위대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