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제1독서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8,12-17. 루카13,10-17>
오늘 복음을 통해 우리는 등 굽은 여인을 보게 됩니다.
복음에서 그 여인의 나이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열여덞 해 동안 몸을 구부정하게 하고 걸었다는 것입니다.
그녀가 자세를 교정한다는 것은 고통스러울뿐 아니라 불가능했으므로
허리 펴는 것을 포기했고 앞을 못 보기 때문에 구부러진 허리로 발만 보고 걸었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 열여덞해나 지속되다 보니 몸은 하느님 말씀을 듣는 회당에있지만
더 이상 주님께서도 구해주시리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열 여덞해 동안이나 허리가 굽은 여인은 어쩌면 우리 인간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구부러지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구부러진 우리 각자의 모습을 잘 생각해봅니다.
같은 죄만을 반복하고 좋지 않은 습관을 가져서 구부러진 삶의 자세를 교정하는 것이
때로는 어렵고 불가능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청할 생각조차 못하고 체념할지도 모릅니다.
오늘 제 1독서가 말하는 '육에 빚을 진 상황'(12절)입니다.
복음은 그라스도께서 우리를 무거움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오셨음을 알려줍니다.
모든 주도권을 갖고 등 굽은 여인에게 먼저 다가가 손을 내미신 것처럼
오직 하느님만이 우리의 자유과 존엄성을 회복시킬 지속적인 능력을 가지고 계심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굽은 자세를 교정해주시고 우리를 자유롭게 해 주시는 성령의 능력을 가진 사람을
복음에 등장하는 여인은 이렇게 전합니다. 13절, ‘즉시 똑바로 일어서서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성령께서는 똑바로 서서 하느님을 찬양할 능력을 다시 회복시켜 줍니다.
구부러져서 하느님을 바라보지 못하는 우리 마음에 잠시 손을 얹으시고
하느님을 다시 바라보면서 그분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며 찬양하기 위해 다짐합시다.
성령의 힘으로 거행되는 성체성사는 우리의 굽은 허리를 펴주시고
우리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 오시는 그리스도를 맞이하는 특별한 순간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마련해 주신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복음의 마지막 구절의 기뻐하는 군중처럼 우리도 우리 손에 얹어진 주님을 보고 기뻐하며
성령의 은총이 충만한 하루를 살아갑시다. 그러면서 우리의 삶을 주님께 맡깁시다.
✚예수님, 저는 당신께 의탁합니다. 아멘.
<♧연중 제30주간 월요일. 강구종안드레아 신부님 새벽미사입니다.>
첫댓글 아멘^^
등이 굽은 채로 열여덞 해를 발만보고 걸은 여인.
불편한 외형적인 곱추모습은 떠올리면서도
여인의 나이를 한 번도 궁금해 본 적이 없었고
더구나 내적인 저의 마음 굽음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주님 뵙는 자리에서조차
자신의 병을 체념했던 여인처럼은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최근 얼마 전에 미사강론이 좋아서 종일 그 말씀이 떠올랐다는
자매님(성당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개종한 교우)으로부터
뜻밖의 말을 듣은 순간, 놀라면서 내심 기뻤던 적이 있었는데
신부님께서 강론 준비에 들이셨을 수고로움의 공이
오늘도 또 누군가에게 그렇게 전달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