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난 여행9 - 제남 박물관에서 하를 멸한 상나라와 상을 멸한 주나라를 구경하다!
어제 2025년 9월 8일 칭다오에서 지난(제남) 에 도착해 표돌천 공원 (趵突泉 公園) 과
부용가 옛거리에 곡수정가를 구경하면서 옛날 중국 문화를 느끼고는 조르지오
모란디 호텔 乔治莫兰迪酒店 로 돌아와 하룻밤을 자고 9월 9일 뷔페식 아침을 먹습니다.
텔레비전에서는 미국 이민세관단속국 (ICE) 은 현대자동차와 LG 에너지 솔루션 합작 공장
을 대상으로 대규모 급습을 벌였으니.... 400여명이 체포되어 쇠사슬에 수갑을
찬채 끌려가는 모습을 보는데 미국은 자국민의 일자리를 위해 외국인은 추방하는가 봅니다?
도로변에서 택시를 타고는 제남의 산동 박물관 山東 博物館 Shandong Museum
에 도착하니 60세 이상이면 신분증을 확인하고 무료 입장을
시키는데..... 현대적으로 지은 멋진 박물관의 규모가 커서 대륙 스케일을 실감합니다.
산둥성[山東省] 지역에서 출토되었거나 후세에 전해져 오는 진귀한 물품들에다가 상대
(商代) 의 갑골문자는 무려 5,000여 점으로 중국 내에서 가장 많으며
자연 표본 중 산둥냐오[山东鸟], 대형 산둥룽[山东龙] 등의 화석이 가장 유명하답니다.
에스컬레이트를 타고 맨 윗층으로 올라가서는 고대사가 전시되어 있는방을 찾아
들어 가는데 방의 수가 많으니..... 제대로 볼려면 하루종일 보아도
다 볼수 없는 어마어마한 규모인데 중국에는 이런 박물관이 50개는 있지 싶습니다.
하(夏) 나라는 세습 왕조로 기록된 나라니 전통적으로 중국 한족을 화하(華夏)족 이라고 부르는데,
하나라 국명과 위치(화산)에서 유래된 것이나..... 문헌적・고고학적 근거가
미약해 인정받지는 못하지민 중국 역사학계에서는 얼리터우 청동기 문화를 '하 문화' 로 부릅니다.
얼리터우(二里頭) 유적에서 궁전 터를 포함해 고대 도시의 유적이 발굴되어 초기 왕조국가 (王朝國家)
의 성립을 보여주니.... 하 (夏) 왕조나 상 (商) 왕조 초기의 것으로 보는데 기록으로만 전해지던
하(夏) 나라의 존재와 문화를 밝히는데, 허난성 옌스의 얼리터우 (二里頭) 유적은 네 시기로 구분됩니다.
서양에서는 하 (夏 ) 는 물론이고 상( 商) 나라 존재도 의문을 가지고 있었는데 1899년에
갑골문의 발견으로 1928년 부터 1937년까지 15회 은허 (殷墟 기원전 1600년 ~
1046년) 유적을 발굴했으며 가장 아래층 유적은 하나라의 유적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우리나라 고조선은 오래된 나라인 것은 맞지만 그 유적은 "단 한점" 도 발굴되지
않았으니, 고조선의 유물이 어떠했는지는 전혀 모르는지라
아쉬운데.... 문자를 만들지 못했으니 당시 사람들의 기록이 전무한 것도 유감입니다.
상(商, 은) 나라 마지막 왕 걸왕은 교만하고 노는데 탐닉했으니 여러 부족 사람들에게 외면당했
는데.... 막돼 먹은 걸의 행동을 참지못한 동쪽 상(商)의 우두머리 탕(湯)이 기원전
1600년에 군사를 일으켜서 도읍까지 침범허자 비로소 정신을 차린 걸은 명조 땅으로 도망칩니다.
상나라의 주왕과 더불어 “하걸은주” 라고 불리는 고대의 2대 폭군에 들어가는 인간 말종이었으니, 말희라는 미녀
에게 현혹되어 나라를 망치고 상나라의 성탕에 의해 멸망되니 하나라는 471년간 13대 16왕이 재위했는데,
상나라는 달기와 엮여서, 주나라는 포사와 엮여서 멸망했으니 3대 왕조가 미녀에 의해 국가를 망치게 된 셈입니다?
상(商) 나라는 중국 고대 국가로 현조(玄鳥) 를 토템으로 하며 에게해 (크레타)
문명이 시작되던 무렵인 기원전 17세기에서 기원전 11세기까지 존재
하였으니..... 한자는 상 (商). 국성은 자 (子). 수도는 호 (허난성 푸양시) 입니다.
상나라 수도는 기원전 14세기 말에는 은허로 옮겼으니 은(殷) 나라 라고도 부르는
데..... 한때 하(夏) 나라 처럼 전설상의 국가로 인식되었으나 은허
유적과 갑골 문자 기록의 발견으로 실존했던 중국 최초의 국가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은허는 상(商) 나라의 주요 도시이자 수도였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은' (殷) 이라고도 불리니 합쳐서
'은상 ' (殷商) 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으니, 은은 반경(盤庚) ~ 제신(帝辛) 시기에 도읍했던
상나라 최후의 수도였는데..... 당대에는 '의' (衣) 혹은 '대읍 상' (大邑 商) 이라는 별칭이 있었습니다.
상인 (商人), 상업 (商業) 등의 商(상) 자가 이 나라의 이름에서 나온 것이니 상나라가
주(周) 나라에 망한후 상나라 유민들이 이곳저곳 장사하며 떠돌아 다니던
것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하며.... 현재 상추시 역시 같은 유래를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상나라는 망했지만 주나라는 상의 유민들을 안정시키기 위해 무왕 희발은 제신(주왕)의 아들 무경(武庚)
을 은(殷) 지역에 분봉해 봉국으로 삼았으니 송나라인데, 무왕이 죽은후 그의 동생인 관숙 (管叔),
채숙(蔡叔), 곽숙(霍叔)은 주공 희단의 섭정에 반기를 들고 무경과 연합해 반란을 일으켰으나 주나라
에게 진압당하면서.... 송나라를 봉지로 받은 미자계의 후손만 제후 신분으로 남고 나머지는 몰락 합니다.
탕왕 이후 상나라는 정신이 어지러울 정도로 여러번 천도를 하는데, 현재 발굴되어 확인된
상나라의 도읍은 중기의 수도인 박(亳) 으로 추정되는 허난성 옌스 유적, 그리고 최후의
수도인 허난성 안양시 샤오툰촌의 은허 유적지가 있으니, 우리가 아는 갑골문은
주로 안양 은허 유적지에서 발굴된 것으로..... 다른 유적지에서는 갑골문 출토가 드뭅니다.
주(周) 나라는 고대에 상(商) 나라 다음 왕조이며 기원전 1046년~ 기원전 256년간 존재 했는데
상(商, 은) 나라를 이었으니, 그 이전의 하(夏)· 상(商) 과 더불어 삼대 (三代) 라고 하는데...
공자의 말 처럼 요(堯)· 순(舜) 의 시대를 이어 받은 이상(理想) 의 치세(治世) 라고 일컬어집니다.
주(周) 나라는 왕실 일족과 공신을 요지에 두어 다스리도록 하는 봉건제도로 유명한데
봉건이란 말의 원래 뜻은 주나라의 국가체제를 지칭하는 것이었으며, BC 11세기
주나라 무왕(武王) 이 상(商) 나라를 멸망시키고 수도를 호경(鎬京: 西安 부근) 에
정하여 주왕조를 건설하였을 때..... 나라의 기초를 굳히기 위하여 실시한 제도 였습니다.
문왕은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인 태공 계력도 현인을 목마르게 찾았기에 “태공이 당신을 기다린지
오래도다!” 라고 말했다니, 여기서 유래해 강상은 “태공망(太公望) 또는 강태공(姜太公)”
으로 불리었다는데.... 희창은 스스로 “문왕” 이라 칭해 상나라를 타도할 생각을 비쳤지만 이미
노령이었으니 그가 죽은 뒤 아들인 발(發)이 주나라의 왕위에 오르게 되는데 그가 무왕(武王) 입니다.
주나라 군대는 제신을 쫓아 조가 (朝歌) 까지 쳐들어 가자 제신은 왕궁에 불을 지르고
녹대에 올라 불속에 뛰어들어 죽었으며, 무왕은 제신의 시신에 세개의 화살을
쏘고 도끼로 목을 쳐서 잘라 벌했다고 하며.... 이로서 상(商) 나라는 멸망
하고 이후 혁명군의 맹주였던 주나라가 천자국이 되어 제후들을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기원전 779년에 궁열이 즉위하니 유왕으로 아첨꾼 괵석부로 경사를 삼으니 백성을 분노에 빠트리고,
포사(褒姒) 를 총애하여 신후와 태자 의구를 폐하고 포사를 황후에 책봉한후 아들 백복을 태자로
세웠는데... 포사는 웃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니 유왕이 웃기려고 적이 침입하지 않은데도 봉화를
올리니 허겁지겁 달려온 제후들이 허탕을 쳤다는 사실에 망연자실하니 그 모습에 포사가 웃었습니다.
제후들은 분노했으니 이후로는 봉화가 올려져도 도우러 달려오지 않았다는데 유왕 9년에 신나라 왕은 서융
및 주나라 제후인 회나라 왕과 연합해 반란을 준비해 기원전 771년 주나라 수도 호경(장안 인근) 을
침범하니 봉화를 올려도 제후들이 오지 않는지라 크게 패하고 유왕은 도망쳤다가 리산산에서 잡혀 죽습니다.
기원전 770년 진 (秦) 나라 장공의 아들 양공 (襄公) 은 주나라 평왕 (平) 이
동쪽 낙읍으로 천도할 때 호위한 공을 세워 제후로 봉해졌는데.....
평왕은 그 고마움에 보답하기 위해 기산(산시성 치산현) 서쪽 땅을 진에 하사합니다.
진(秦)나라는 고대 영(瀛)씨 부족의 한갈래로 소호(少皞) 를 숭배했으니 장공이 서융을 쳐부수고
서견구를 수복했으며.... 아들 양공은 오양(吳陽) 에 상치(上畤) 를 설치해 황제
(黃帝) 에게 제사 지내고, 하치 (下畤) 를 설치해 염제 (炎帝 신농씨) 에게 제를 지냈다고 합니다.
춘추전국시대는 서주시대(西周時代) 의 봉건제도(封建制度) 가 해체되고, 진(秦)· 한(漢) 황제
아래에서 중앙집권 체제가 형성되어 가는 과도적인 시대로, 춘추시대에 이미 독립적
성향을 지니고 있었던 200여 개의 제후국들은 서로 공방전을 거듭했으니 춘추시대
초기만 해도 제후국들은 동주 (東周) 왕실의 권위를 인정했지만.... 이는 잠시 뿐이었습니다.
200여개에 이르렀던 제후국들이 점차 몇 개의 국가로 통합되어 가는데.... 춘추시대
중기 부터 넓은 영토와 강력한 군대를 지닌 강국이 등장했으니 이들을 패자
(覇者)라고 했는데, 제(齊)의 환공(桓公), 진(晉)의 문공(文公), 초(楚)의 장왕(莊王),
그리고 오(吳)의 합려(闔閭), 월(越)의 구천(勾踐) 등을 춘추오패 (春秋五覇) 라고 부릅니다.
춘추 (春秋) 시대는 공자의 책명 “춘추 (春秋)” 에서 따온 이름이고 전국 (戰國) 시대는
전한시대의 저술인 “전국책(戰國策)” 에서 따온 이름인데, 춘추시대는 주왕조가
도읍을 옮긴 BC 770년으로 부터 BC 403년에 진(晉)나라의 대부(大夫) 인 한(韓)·
위 (魏)· 조 (趙) 삼씨가 진나라를 분할하여 제후로 독립할 때 까지의 시대를 말합니다.
전국(戰國) 시대는 BC 403년 이후부터 진(秦) 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BC 221년
까지 인데 춘추(春秋) 는 공자가 엮은 노(魯) 나라의 역사서인 “춘추(春秋)”
에서 유래되었고, 전국(戰國) 은 한(漢)나라 유향(劉向) 이 쓴 “전국책(戰國策)”
에서 유래되었으니........ 모두 그 시대에 저술된 책의 이름을 딴게 공통점 입니다.
춘추 시대에 시작된 우경(牛耕) 의 보급과 전국시대에 보급된 철제 농구의 사용으로 농업생산력이
비약적으로 느는 바람에 인구도 증가하게 되는데.... 철제 농구 이전의 농구는 거의가
석제나 목제였으며, 그것은 토질이 부드러운 황토지대에서의 경작에는 그런대로 쓸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숲의 수목을 베어내고 새로 경지(耕地) 를 일굴 때는 석제나 목제 종기구는 비능률적
이었으니, 이 곤란을 타개하며 개간을 용이하게 하고 심경 (深耕) 에 의한 토지의
생산력을 증대시켜 준 것이 철제 농구이며, 그 사용을 계기로 농업은 비약적으로 발전합니다.
중국에서 철기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춘추시대인 기원전 6, 7세기경이라고 생각되고
있으며, 이때 제나라 동종 (銅鐘) 의 명문(銘文) 에 ‘제철 노예 4천명’
이라고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관영 제철 사업은 꽤 대규모였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괭이, 삽, 가래 같은 농구의 주조는 전국시대에 들어와서 발달되는데.... 우경과 철기가 보급되어 생산이
부국강병의 근본이 되자 이제까지 돌보지 않던 황무지까지 개척되며, 그로 인하여 관개용 수로나
제방을 쌓는 토목공사가 일어났는데, 이것 또한 철기에 의지하니 농업생산은 한층 더 발달을 촉진시킵니다.
철기(鐵器)의 보급에 따라 늘게된 농업 생산력에 자극을 받아 상공업의 발달을
재촉하면서 사회 경제에 커다란 변혁을 초래한 시기였으니
국경을 초월한 대상인의 활발한 교류로 사치품을 판매하여 큰돈을 벌었습니다.
서민의 필수품 철기나 소금을 제조· 판매하는 대상업 수공업자들의 재산은 때로는 왕후(王侯) 와도
필적한다고 일컬어졌으니 그들에게는 통관세를 내야 하는 국경이라는 것은 불합리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으니, 국경이 없는 중원의 통일을 이면에서 추구하는 촉진제 역할을 했습니다.
이는 대상인들이 전국을 유세하면서 돌아다닐수 있었던 것에서 분립한 강국들이 대립· 항쟁하는 와중에서도
문화,경제의 면에 있어서는 중원이 하나의 세계로 성립되어 있었다는 점을 보여주며 청동기의 명문
(銘文) 등 장식성이 강한 문자에는 지방색이 엿보이지만, 죽간(竹簡) 에 씌어진 문자에는 통일성이 보입니다.
춘추 시대에는 나라의 제사를 끊으면 조상으로부터 저주받는다고 생각했으니 다른 나라를 점령해도
완전하게 멸해 버리는 일은 많지 않고, 또 멸망해도 부흥하는 것이 흔한
일이었지만 전국 시대에 들어가면 용서가 없어져 한번 전쟁에 지면 그 나라는 멸망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한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전쟁에서 패배한 수많은 나라들이 망하고 점차 7개의
대국들이 강자로 부상되어 갔으니..... 흔히 사기의 육국연표에 있는 8개
나라중 천자국 주나라를 뺀 7개의 나라를 기준으로 전국 칠웅(戰國七雄) 이라고 부릅니다.
그 일곱 나라는 대륙의 서북쪽 싼시성(섬서성) 함양(장안 일대) 에 자리한 진(秦) 나라와 동쪽에 옛날 진(晉)
나라에서 분리된 조(趙) 나라와 위(魏) 나라에 한(韓) 나라 그리고 여기 산동성에 자리했던 제(齊)
나라, 북쪽 하북성(베이징) 의 연(燕) 나라 및 양자강 이남에 오나라와 월나라를 흡수한 초(楚) 나라입니다.
오늘 말 4마리가 끄는 전차를 구경하다가 문득 책 칼럼니스트 박현주 씨가
국제신문에 말발굽 아래의 세계사 라는 책을 소개하면서 쓴
제국 팽창, 농경 혁신... 말의 질주가 바꾼 세계사 라는 글이 떠오릅니다.
- 구석기 벽화 속 최다 동물은 말 - 인류 야생마 가축화와 말 타기 - 유라시아 초원
문명 부흥 촉발 - 몽골 기마전쟁으로 제국 확장 - 19세기 농사·군사분야 핵심
역할, 위대한 군주 그림에 백마를 타고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그림이 대표적이다.
앞발을 치켜든 말을컨트롤하며 당당한 자세를 취하는 사람과 언제든 달려나갈 준비가 된
팽팽한 근육질의 말 말발굽은 유연하면서도 굳건한 인상을 준다. 윌리엄 T 테일러
가 쓴 ‘말발굽 아래의 세계사’ 는 말과 사람이 함께 빚어낸 역사를 인상 깊게 담은 책이다.
유라시아·북미·남미 대륙 유적지에서 말의 가축화를 연구하고, 말발굽 자국을 찾아 몽골
러시아 등지를 누비는 고고학자이자 탐험가인 윌리엄 T 테일러가 말이 세계로
퍼지면서 인류 문명을 만든 역동적인 역사를 들려준다. ‘말발굽 아래의 세계사’
에는 말의 종적 기원 탐구를 시작으로 말과 인간이 함께 만들어온 수천 년 역사가 흐른다.
구석기 시대 동굴벽화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동물은 말이니 그만큼 말과 인간은 긴밀한
관계였다. 플라이스토세(지질시대 구분에서 약 258만 년 전부터 1만1700년 전까지
약 257만 년 동안의 시기)의 빙기 동안 북아메리카에 살던 원시 말은 시베리아와
알래스카 사이를 잇는 베링육교를 건너서 유라시아와 아프리카 대륙 곳곳으로 확산했다.
초기 인류는 야생말을 사냥했다. 고기 마유 가죽 뼈를 활용해 식량 옷 도구를 만들었다.
가축 가운데 가장 뛰어난 속력과 힘을 지닌 말은 특유의 마력(馬力) 덕분에
3000년 전 인류 경제와 문화의 중심부에 자리했고 수천 년간 세계사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길들여진 말은 목축민의 운송에 이용되면서 유럽과 아시아, 북아프리카 지역의 고대 사회로 퍼져 나갔다. 속력이
빠른 말을 제어하기 위해 굴레와 재갈, 그리고 가벼운 바큇살이 발명됐다. 말과 새로운 수레
덕분에 목축민의 이동성은 더욱 좋아졌다. 말타기의 출현은 안장과 등자 같은 혁신적인 도구 발명으로 이어졌다.
세계의 운송 인프라도 말에서 출발했다. 비록 수 세기 전 부터 서서히 기계화
되었지만 말을 바탕으로 세운 기술, 도로 시스템, 전통을 여전히 이용
한다. 자동차 도로 기차는 말의 시대로부터 물려받은 특징을 바탕으로 설계됐다.
말 가축화와 말타기는 스텝 르네상스(유라시아 초원 문명권의 부흥)를 촉발했다. 스텝문화는 말을 전투에
활용하는 기마 전쟁을 치르면서, 강을 중심으로 형성된 농경문화의 지정학적 권력을 가져올 수 있었다.
13세기 몽골 제국에서 말은 스텝의 통치 조직이 세계적인 초강대국으로 자리매김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6세기에 식민지 사업과 해상 교역이 번성하면서 말은 널리 퍼져나갔다. 19세기에 이르러
서도 말은 운송 농사 군사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말은 세계를 가로지르며
역사를 만들었다. 지구 곳곳에 닿은 말발굽의 흔적은 곧 말을 탄 인간의 흔적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