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람과 아브라함 (창17:1~8)
어느 가문이나 마찬가지입니다만 그 가문을 일으키고 대표할 만한 사람을 하나씩 두게 되는데 사람 욕심을 앞세워 가문에 먹칠하고 후손이 큰 고난을 당하게 되는 집안이 있고 별 볼 일 없는 집안이지만 하늘에 별이 되고 민족의 태양이 되어 가문과 후손을 빛나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가 사도신경을 외울 때 빌라도 라는 사람이 꼭 등장하는데 그는 예수님을 심판하는 재판관으로 권세와 세도가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무죄로 선언할 아주 중요한 기회가 주어졌지만 사람들을 좋게 하려고 십자가 형벌을 언도한 사람입니다.
그의 판결로 죽임을 당한 예수님은 이 세상 끝날까지 모든 사람들의 구세주가 되는 영광의 이름이 되었지만, 빌라도는 세상 끝날까지 예수님을 죽인 큰 죄인으로 그 이름이 불려지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의 이름으로 불려지는데 빌라도의 이름은 지옥의 대명사로 불려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름이 우리 후손들에게 어떻게 기억되느냐 하는 것은 아주 중대한 문제입니다.
아담으로부터 노아까지 십 대가 되고 노아로부터 아브람까지 십대가 됩니다.
노아의 십 대 후손으로 아브람이 태어납니다.
노아나 기생 라합, 그리고 시어머니 나오미를 목숨을 다해 섬겼던 룻의 이름이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오른 것이 우리의 귀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오늘 말씀을 통하여 아브람과 아브라함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함께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아브람입니다.
[창12:4]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라고 말씀하고 있고
창17: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라고 말씀하신 때가 구십구 세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람이라는 이름은 구십구 세가 될 때까지 불려진 이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아브람의 조상들을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흙으로 만드시면서 인간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하지만 아담은 하나님보다는 아내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이 되어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하게 됩니다.
창3:12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그렇습니다.
세상에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는 말이 여기서 나온 것 같습니다.
하나님 앞에 핑계와 구실을 아무리 붙여도 지은 죄가 무죄가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죄의 결과는 무덤이요 사망입니다.
아담의 후손 십 대를 내려가서 하나님이 진노가 결발 되어 홍수로 세상이 멸망 당하지만 노아라는 사람만이 극적으로 구원을 얻게 되고 후손이 십 대까지 내려 가지만 그들은 결국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패역한 사람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갈대아 우르는 우상을 만드는 동네로 하나님을 배격하고 우상을 섬기는 동네로 이스라엘 백성을 포로로 잡아간 바벨론이 이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갈 때 그가 살던 고향 본토 아비 집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집안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갔지만 그의 습관과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25년이란 세월을 허송한 것이 아브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이 믿음이 있음을 확인하는 기간이 이십사 년이 걸렸다는 말이 됩니다.
두 번째로 아브라함입니다.
이십사 년이란 세월 동안 아브람은 나름대로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려고 했지만 시시때때로 자신의 옛날 습관이 불쑥불쑥 솟아나 믿음을 믿음을 방해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다는 것은 순종을 전제로 합니다.
순종이 없는 믿음은 헛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브람은 먹고사는 문제로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가나안 땅을 버리고 애굽으로 내려가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창12:8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창12:9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창12:10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자기 나름대로 신앙을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는 아브람이었기에 그는 결국 하나님을 버리고 애굽으로 내려가는 실수를 한 것입니다.
또 아이를 낳지 못하자 첩을 얻는 실수를 했습니다.
창16:3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그 여종 애굽 사람 하갈을 데려다가 그 남편 아브람에게 첩으로 준 때는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거주한지 십 년 후였더라 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애굽으로 내려간 일로 가정이 깨지고 첩을 얻어 자식을 낳으므로 두 번째 집안이 풍파가 일어납니다.
중요한 것은 실패한 후에 죄를 범하고 난 후에 그것이 깨닫을 때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는 처음 하나님을 처음 믿을 때 받은 은혜를 잊지 않았습니다.
창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언제든지 하나님의 뜻보다 사람의 뜻을 앞세우면 당장은 좋을지 몰라도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이 하나님 방법입니다.
그는 비록 실수는 여러 번 있었으나 말씀을 기억하므로 우뚝 서는 오뚜기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된 것입니다.
믿음의 중심에 언약의 말씀이 있기에 이리저리 흔들리다가도 하나님의 말씀이 그 바탕에 있어 중심을 잃지 않고 믿음을 지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세 번째로 그는 언약의 사람이 됩니다.
아브람이 큰아버지란 뜻이라면 아브라함은 민족의 아버지라는 뜻이 있습니다.
갈대아 우르 고향에 있었다면 큰아버지가 될 수 있었지만 말씀을 좇아가므로 고향도 잃고 친척도 잃고 큰아버지의 자리도 잃었습니다.
그런데 그 대가로 여러 민족의 아버지라는 엄청난 이름을 받게 된 것입니다.
창17:5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지금 나이가 구십구 세가 되어 다 늙고 소망이 끊긴 사람이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는 말씀의 언약을 하시고 아브라함은 또 이를 믿었습니다.
하나님과 아브람의 마음이 통한 것입니다.
우리도 나의 믿음과 하나님의 말씀이 통하는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창17:2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라고 말씀하셨고
창17:4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라고 하셨으며
창17:6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 부터 나오리라 라며 후손에 대한 약속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실로 엄청난 약속입니다.
지금 당장 형편과 사정을 넘어 오직 하나님을 바라는 믿음을 지키면 이를 의로 여기시고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갈3: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고
[막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라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의 대가는 실로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것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창17:7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아멘입니다.
우리 모두 내 언약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고 내 가족과 가문의 하나님이 되는 축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