諸侯年表
옛사람이 유다와 이스라엘의 왕들을 적을 때, 한 왕의 몇 해에 다른 왕이 섰다고 나란히 적었다. 그리하여 두 나라가 서로 다른 길을 갔음에도 한 눈에 겹쳐 보이게 되었으니, 이는 사람의 일이 홀로 서는 법이 없는 까닭이다.
슈바벤의 주인이 누구였는가는 본기에 적었고, 에티코넨의 가주가 누구였는가도 본기에 적었다. 그러나 그 둘이 언제 갈라졌다가 언제 다시 하나가 되었는지, 그동안 제국의 옥좌에는 누가 앉아 있었는지는 한 줄로 늘어놓아서는 보이지 않는다. 하여 세 줄을 나란히 세운다.
● 표는 그 자리에 오른 해를 뜻한다. **〃**는 앞줄과 같은 사람이 그대로 앉아 있음을 뜻한다.
| 주후 | 신성로마제국 황제 | 슈바벤 군주 | 에티코넨 종가 가주 |
| 1066 | ● 하인리히 3세 잘리어 | ● 베르톨트 폰 라인펠덴 | ● 게르하르트 (一代) 노르트가우백 |
| 1079 | 〃 | ● 아델하이드 폰 라인펠덴 | 〃 |
| 1082 | 〃 | ● 베렌가르 1세 루도핑거 | 〃 |
| 1083 | 〃 | ● 아델하이드 2세 루도핑거 | 〃 |
| 1094 | 〃 | 〃 | ● 에리히 (二代) 노르트가우백 |
| 1105 | 〃 | ● 게르하르트 1세 에티코넨 | 〃 |
| 1115 | ● 하인리히 4세 잘리어 | 〃 | 〃 |
| 1116 | 〃 | 〃 | ● 지크프리트 (三代) 노르트가우백 |
| 1118 | ● 아르놀트 폰 안데흐스 | 〃 | 〃 |
| 1120 | ● 베렌가르 1세 폰 안데흐스 | 〃 | 〃 |
| 1121 | 〃 | ● 에리히 1세 에티코넨 | 〃 |
| 1122 | 〃 | ● 에크베르트 폰 호엔슈타우펜 | 〃 |
| 1126 | 〃 | 〃 | ● 루돌프 (四代) 노르트가우백 |
| 1128 | 〃 | ● 헤르만 5세 폰 호엔슈타우펜 | 〃 |
| 1141 | 〃 | ● 벨프 1세 폰 호엔슈타우펜 | 〃 |
| 1144 | 〃 | ● 루돌프 2세 에티코넨 | 〃 (겸) |
| 1160 | ● 볼프강 1세 폰 안데흐스 | 〃 | 〃 |
| 1167 | 〃 | ● 안드레아스 1세 | 五代 (겸) |
| 1175 | 〃 | ● 아달베르트 1세 | 六代 (겸) |
| 1182 | ● 베렌가르 2세 폰 안데흐스 | 〃 | 〃 |
| 1190 | 〃 | ● 안드레아스 2세 | 七代 (겸) |
| 1194 | ● 볼프강 2세 폰 안데흐스 | 〃 | 〃 |
| 1235 | 〃 | ● 아달베르트 2세 | 八代 (겸) |
| 1246 | 〃 | ● 안드레아스 3세 | 九代 (겸) |
| 1260 | ● 베렌가르 3세 폰 안데흐스 | 〃 | 〃 |
| 1269 | ● 디트리히 샤테누아 | 〃 | 〃 |
| 1275 | 〃 | ● 아달베르트 3세 | 十代 (겸) |
| 1280 | ● 알브레히트 샤테누아 | 〃 | 〃 |
| 1298 | 〃 | ● 페르디난트 1세 | 十一代 (겸) |
| 1303 | ● 에기놀프 1세 샤테누아 | 〃 | 〃 |
| 1320 | ● 베르톨트 샤테누아 | 〃 | 〃 |
| 1321 | 〃 | ● 아달베르트 4세 (공) | 十二代 (겸) |
| 1323 | 〃 | ● 아달베르트 1세 (왕) | 〃 |
| 1343 | 〃 | ● 카를만 1세 | 十三代 (겸) |
| 1361 | ● 안셀름 1세 에티코넨 | 〃 | 〃 |
| 1363 | 〃 | ● 헤리베르트 1세 | 十四代 (겸) |
| 1369 | ● 안셀름 2세 에티코넨 | 〃 | 〃 |
| 1376 | ● 만프레트 1세 에티코넨 | 〃 | 〃 |
| 1381 | ● 고트샬크 1세 에티코넨 | 〃 | 〃 |
| 1383 | ● 레오폴트 1세 에티코넨 | 〃 | 〃 |
| 1398 | 〃 | ● 하르트만 1세 | 十五代 (겸) |
| 1416 | ● 아르놀트 2세 에티코넨 | 〃 | 〃 |
| 1417 | 〃 | ● 헤리베르트 2세 | 十六代 (겸) |
| 1422 | 〃 | ● 헤리베르트 3세 | 十七代 (겸) |
| 1428 | 〃 | 〃 (비잔티움 제위 겸함) | 〃 |
표에 붙이는 주(註)
하나. 주후 1122년부터 1144년까지 스물두 해 동안, 슈바벤 열과 에티코넨 열은 갈라져 있다. 이 스물두 해가 이 표에서 종가가 남의 신하로만 적히는 유일한 구간이다. 앞뒤로는 종가의 가주가 곧 슈바벤의 주인이었다.
둘. 주후 1141년 11월에 슈바벤공에 오른 벨프 1세 폰 호엔슈타우펜은 그 전해에 태어났다. 루돌프가 찬탈전쟁을 건 것이 그해 안이었으므로, 창끝이 향한 상대는 한 살이었고 공작관을 넘겨받았을 때 그 아이는 네 살이었다. 벨프는 슈바벤백으로 낮아진 채 조건 없이 옥에서 나왔다.
셋. 주후 1118년부터 1269년까지 백오십 해가 폰 안데흐스의 시대다. 이 표의 절반에 가깝다. 그 내력과 마지막은 폰 안데흐스 가문사에 갖추어 적었으므로 여기서는 적지 않는다.
넷. 주후 1321년 조의 아달베르트 4세를 이 표는 十二代로 적었다. 사료 가운데 그를 "八代"로 적은 대목이 있으나, 이 셈법에서 八代는 주후 1235년의 아달베르트 2세이므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하여 노르트가우백 게르하르트를 一代로 삼는 셈법을 따랐다.
논찬
수도원장이 평하기를,
이 표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으면 한 가문이 올라가는 이야기가 되고, 위에서 아래로 읽으면 그와 다른 것이 보인다.
첫머리에서 제국의 옥좌는 무겁고 슈바벤은 가볍다.
주후 1194년에 아홉 살로 앉은 볼프강 2세가 주후 1260년까지 예순여섯 해를 내려오지 않는 동안,
슈바벤에서는 안드레아스 2세와 아달베르트 2세와 안드레아스 3세가 차례로 났다가 죽었다.
제국은 움직이지 않고 제후가 흔들렸다.
끝머리에서는 그것이 뒤집힌다.
주후 1361년에 안셀름 1세가 오른 뒤로 쉰다섯 해 동안 제관은 여섯 사람의 머리를 거쳤다.
안셀름 1세, 안셀름 2세, 만프레트 1세, 고트샬크 1세, 레오폴트 1세, 아르놀트 2세.
같은 기간에 슈바벤의 옥좌에 앉은 자는 셋뿐이었다.
여섯이 모두 에티코넨이었고 셋도 모두 에티코넨이었으니, 한 성씨가 두 자리를 다 차지한 뒤에야 위쪽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폰 안데흐스는 백오십 해를 앉아 있었다. 그 이름은 주후 1269년에 옥좌에서 내려온 뒤 방계만 남았고, 마침내 끊겼다.
에티코넨은 그 백오십 해 동안 한 번도 제관을 쓰지 못한 채 슈바벤의 한 귀퉁이를 지켰고, 그중 스물두 해는 종가가 남의 신하로만 적혀 있다.
길게 앉은 자가 먼저 사라졌고, 자주 갈린 자가 남았다.
옥좌에 오래 앉는 일과 대를 오래 잇는 일이 같은 일이 아님을, 이 표의 세 줄이 말없이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