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메라를 끄고 씁니다>
-양영희 지음/인예니譯/마음산책 2022년판/215page
억압으로부터 자유를 모색한 자전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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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희는 용감한 여자다. 아니, 이 책을 읽다보면 여자는, 한국 여자는 모두 용감하다고 써야 한다. 나 역시 용감한 어머니를 두고 있으니. 생활은 모두 여자의 몫이다. 결혼과 출산에 따른 양육의 책임을 어머니들은 나이가 들어서까지 내려놓지 못한다. 그리고 그녀들은 나이가 들수록 당당해진다. 남자보다 더. 남자는 모두 나그네인 탓이다.
그녀가 부모가 선택해준 결혼에 실패하고 오랜 세월 혼자 살다 오십이 넘어 만나 재혼하게 된 일본인 남편을 주목하게 된다. 그 일본인 남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 어쩌면 미래 사회는 양영희 같은 여성들에게 달려있다고 한 판 통 크게 인생을 걸기로 한 것이다.
오래 전부터 우리 사회는 남성 위주의 문화에서 이젠 여성이 이끌어 가는 사회로 변해야 한다는 생각을 자주 해 보았다. 물론 이건 내가 처음 생각한 것은 아니다. 자식을 낳아 기르는 여성은 거짓을 말하지 않고 자식을 건강하고 올바르게 성장시키려는 모성본능이 우리 사회를 좀더 건강하고 미래지향적인 사회로 바꿀 힘이 있다는 논지를 어느 잡지의 칼럼에서 본 이후로 과연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고, 그 후로도 간간히 접하는 다양한 책들에서 남성 위주의 역사가 이끌어 온 폐해를 접하고 나서 생각을 굳혀가게 된 것이다.
이 생각들은 양영희가 쓴 이 책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을 수도 있지만 작가가 북한계 정치조직인 일본 내 조총련계 간부인 부모님들과 떨어져 살기로 결심하고 어릴 때부터 받아온 사상교육을 탈피하여 사춘기 이후 다져왔던 자신의 뜻을 굳건한 의지대로 펼쳐나가는 삶을 보면서 하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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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남북한 상호간의 정치적 우월성을 비교하여 체제 선전을 하려고 펴낸 책이 아니다. 그렇지만 남한과 일본의 정치제제가 비슷하고 상대적으로 열악해진 북한 경제가 양영희 가족의 생활을 통해 드러나면서 읽다보면 남한이나 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드러낸다고 오해를 품을 소지도 다분하다. 그러나 아무리 그러하다 해도 작가는 그런 의도가 전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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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양 체제에 핏줄의 근원이 있는 작가가 일본에서 태어나서 여성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나가고 조총련계 산하 학교를 다니며 교육을 받지만 스스로 자유의 길을 모색하고 이데올로기를 떠나 한 인간으로서, 여성으로서 자신의 나아갈 바를 찾고 길을 열어나가는 모습에서 어떤 희망의 불꽃을 발견하게 된다.
억압으로부터의 자유. 아니 모든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모색하는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다. 자신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신념으로 자식 셋 뿐만 아니라 거류민단 산하 조직원들의 가족까지 북한으로의 귀국에 발 벗고 나섰던 아버지와의 사상적 대립, 자신의 의지와 무관했던 결혼에 대한 이혼, 사상의 체제를 벗어나 선택했던 미국 유학,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를 선택하는 두 번째 결혼, 사상과 체제의 부조리를 극복해나가는 동시에 진정한 가족과 인간의 사랑을 확인해나가는 다큐멘터리의 제작 등의 활약에서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정신을 펼치는 작가의 정신세계를 들여다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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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만난 조카와의 체제를 떠나 나누는 핏줄간의 공감,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와 사망 직전에 보이는 화해의 제스처, 알츠하이머 병의 진단을 받고나서야 과거에 북송되어 어렵게 살고 있는 자식들과 친척들에 대한 생활비 및 물품지원에 대한 책임감에서 비로소 자유로워지는 어머니에 대해 느끼는 애잔한 슬픔, 일본인 사위를 맞아들이는 자애로운 어머니의 말년의 모습들에서 세상의 보편적인 인간적 감정들을 확인하며 잔잔한 감동을 받는다.
이 모든 것에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느낄 수 있고 앞으로도 계속 전해져야 할 따뜻한 사랑이 바탕에 깔려 있다. 사랑이었던 것이다.
(2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