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를 보며 마음을 챙기다
참 똑똑한 만화 -5억년 버튼
글 /스텔라 박

세상에는 참 여러 종류의 컨텐츠들이 있다. 책, 영화, 음악, 드라마…. 모두 인간이 시간이라는 형벌을 견뎌내기 위해 창조한 산물들이다.
이 가운데 만화란 장르는 최첨단에 서서 놀라울 정도의 상상력을 발휘한 작품이 많다. 그리고 만화라는 무림의 세계에서 일본은 단연 고수이다.
철학적이고 심오한 영화 <매트릭스>가 일본 만화인 <공각기동대>를 원작으로 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최근 할리웃은 스칼렛 요한슨을 주연으로 실사 영화 <공각기동대>를 만들기도 했다. 박찬욱 감독의 출세작, <올드보이> 역시 원작은 만화였다.
이현세, 박봉성, 허영만 등 우리나라 만화작가들의 작품도 만만치 않다. 특히 이현세의 <천국의 신화>나 박봉성의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 등은 마니아층을 양산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심오한 만화, <아르바이트(Button)>
최근 머리에 쥐가날 정도로 뇌에 강한 자극을 주는 만화를 봤다. 스가하라 소우타(필명은 SOTA)의 3D CG 만화 《모두의 토니오쨩》의 에피소드인 <아르바이트(Button)>이다. 한국어 제목은 <5억년 버튼>으로 번역되었다. 먼저 스토리를 살펴본다.
스네로와 토니오와 자이타, 일거리도 없고 사는 게 짜증뿐인 그들은 돈도 없고, 할 일도 없는 것이 장판만 뜯고 앉아 있는 헬(Hell) 조선의 청년들과 다를 게 없다. 용돈이 궁한 이 세 친구들은 머리를 맞대고 뭐 뾰족한 알바가 없나 아이디어를 모은다.
토니오가 머뭇거리며 말을 한다.
“한 개 있기는 해. 좋을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한 순간에 100만 엔을 벌 수 있는 알바야. “
당연 친구들은 혹 한다.
“정말?”
“응. 진짜야. 일도 엄청 간단해. 누구라도 할 수 있어. 그저 한 순간 버튼을 누르는 것뿐이야. 버튼을 누르는 순간, 느끼지 못할 정도의 미약한 전류가 흘러서 워프(Warp- 공간을 왜곡시켜 짧은 시간 안에 먼 거리를 이동하는 기술. 순간 이동)하는 거야. 워프해서 ‘5억년간 계속 혼자 아무 것도 없는 공간에서 그저 살아라.’라는 알바야. 거기는 정말로 아무 것도 없는 공간이야. 거기에 의식은 뚜렷하고 잠자거나 죽을 수도 없어. 하지만 끝나는 순간, 처음의 ‘알바 할래.’라고 말했던 장소에 돌아와. 시간도 몸도 원래대로, 하지만 기억도 지워진 채. 그러니 실제로는‘에게, 뭐야. 벌써 끝났어? 순식간에 100만엔이 생겼잖아.’라고 말하게 되지. 한 순간에 백만 엔을 번 것 같은 기분이 들 거야. 하지만 하는 도중의 5억년은 정말 길어. 할 만한 건 아무 것도 없고. 뚜렷한 의식으로 5억 년의 시간을 체험해야만 하니까. 5억년 간 계속 혼자서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며 멍하니 있는 거지. 하지만 끝나는 순간, 기억은 사라지고 처음의 상태로 돌아와. 그걸로 백만엔을 버는 거야. 하지만 실제로는 잠깐 만에 백만 엔을 버는 상황이야. 이런 알바가 있는데 할래?”
쟈이타가 먼저 하겠다고 나선다. 기억은 컷 되고 옆에 있는 친구들이 볼 때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기계에서 100만엔이 공짜로 생기는 것처럼 보인다.
친구들이 묻자 그는“어, 그냥 버튼을 눌렀을 뿐인데 돈을 주네.”라고 말한다.
친구에게 순간적으로 100만엔이 생긴 것을 본 스네로는 그 버튼을 누른다.
하지만 누르는 순간 그는 후회한다. 그는 진짜로 아무 것도 없는 공간에서 5억 년을 지내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주변을 서성거리거나 출구를 찾으러 뛰어다니기도 했지만 가도 가도 같은 풍경이 이어질 뿐이다. 스네로는 계속 달렸다. 지치면 쉬었다가 다시 달렸다. 결국 3일 내내 달리고 나서야 “출구 따윈 없다.”는 사실을 겨우 깨닫는다. 다음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스네로의 심경에 생긴 변화이다.
일주일 째: 가족과 친구들을 생각한다.
개월 째: 이곳에서 엄청난 시간을 지내야 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며 앞으로의 생활을 애석해한다.
반년 째: 여러가지 혼자놀기 게임을 개발한다. 싫증나면 다른 것을 개발한다. 어쨌든 시간을 보내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만 같지만, 미치지는 않는다.
1년 째: 망상에 빠진다. 꽤 오래 했지만 허무할 뿐이었다고. 여기까지 1년밖에 되지 않았다.
4년 째 : 몇번이고 버튼을 누른 자신의 행동을 후회한다.
10년 째: 앞으로 몇 년 정도...이렇게 있으면 되는걸까...그리고 499999900년 남았다고 힘내라고 한다...
1206년 째 : 이미 생각을 그만 둔지 오래이다. 하지만 죽을 수도, 의식을 잃을 수도 없어 12066년간 1초1초를 인식하면서 살아간다.
504만 9272년 째: 철학적인 의문을 떠올린다. 여기가 현실이 아닌 것이 아닐까? 여기는 우주의 어디쯤인가? 우주는 무엇인가? 나는 무엇인가? 등등... 그리고 주인공에게는 생각할 시간이 아주 많았다. 10년, 100년, 1만년...자기나름의 학문을 이끌어내간다.
2000000년 째: 그는 이미 인류의 지혜를 아득히 초월한 발상과 이론의 틀에서 진리를 추구하고 있다.
1억 2316만 9649년 째: 그는 우주를 이해하고 무언가를 깨달은 듯 하다.
그리고 남은 3억 7683만 351년 간 그는 공간과 조화했다.
그리고 5억 년 째, 그는 세계로 돌아간다.
돌아온 순간, 이 모든 기억들이 지워졌다. 버튼을 누른 주인공은 아무것도 모른 채 100만 엔을 벌었다고 좋아하고, 돈을 더 벌기 위해 버튼을 연속으로 16번이나 더 누른다. 그리고 16번의 5억 년 왕복을 시작하며 끝이 난다.
우리들 삶의 메타포
만화는 짧은 시간 동안 읽었지만 읽고난 후의 여운은 5억년이라도 계속될 것 같았다. 어쩜 이렇게 우리들의 삶을 잘 그려냈을까.
5억년이 아니라, 생각하기 쉽게 인간 수명인 80년이라도 해보자. 만약 우리가 다른 차원의 세계에서 돈이 생기는 아르바이트라서가 아니라, 새로운 세계에 대한 궁금증으로 버튼을 눌러 이 지구상에서의 여정을 시작하게 된 것이라면…..
그렇게 누군가를 부모로 정하고 태어나서 몸을 키우고, 다시 언어를 배우고, 인간 사회에서 필요한 기본 지식들을 습득한 후, 일하고 결혼해서 아이들 낳고 세상을 떠나는 것이라면….
세상을 떠난 후, 앗! 이런 것이었구나… 하고 깨닫고도 다시 그 사실을 완전히 망각한 채 다시 누군가를 부모로 선택해 몸을 입고 태어나는 것이라면…..
그 여러 삶을 윤회하는 동안, 선행과 공덕을 쌓으면서 차츰 쳇바퀴를 벗어나기 시작하는 것이라면….
그렇던 어느날 ‘나는 왜 지금 이 순간 이곳에 존재하는 거지?’ 하는 의문을 갖기 시작한 것이라면….
그래서 그 해답을 찾아보기 위해 히피에 빠져보기도 하고, 책을 읽어보기도 하다가 수행이란 것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라면….
그 수행이란 것이 결국은 우리가 본래 있었던 5억 년도 넘는 세월 동안의 침묵처럼 가만히 숨쉬는 것에 집중하며 그냥 존재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냥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존재인 것이다. 이런 시간의 형벌을 벗어나겠다고 몸부림칠수록 우리는 그 손아귀를 벗어날 수 없다.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음을 깨닫고 매순간 바로 지금, 바로 여기에 존재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게 진정으로 존재할 때, 나는 이 작은 몸도 아니고,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의 기억도 아니며, 나의 과거도, 나의 미래도, 나의 은행잔고도 아님을 깨닫게 된다.
너가 없는 나는 없고, 나 없는 너는 없음을, 그들 없는 나는 없고, 나 없는 그들도 없음을 깨닫게 된다. 나라 할 것도, 너라 할 것도, 그들이라 할 것도 없음을 깨닫게 된다.
우리의 지혜로는, 우리의 과학기술로는, 아직 알 수 없다. 죽음 너머 세계에 무엇이 있는지, 무엇이 정답인지….
그저 용맹정진할 뿐이다. 사람의 몸을 타고 태어나 윤회의 사슬을 벗고 붓다가 되어 열반에 든 고타마 싯타르타가 보여준 대로, 설한 대로, 가르친 대로, 그저 수행할 뿐이다. 그렇다 보면 어느날 해가 진 후 밤하늘 별자리가 드러나듯, 안개 걷히고 산과 마을이 보이듯, 그렇게 뭐가 중한지, 뭐가 진실인지 알게 될 것이다.
올 한 해도 열심히 수행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