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가 말씀드리면 금일은 저의 아들이 관례(冠禮:상투를 틀고 갓을 쓰는 성인식 행사)를 치르는 날입니다. 사리에 어두운 어린아이에게 충만함을 보태는 의관(衣冠)을 곧장 갖추게 하고자 한 통의 술 단지로써 노련한 분들에게 덕담과 가르침을 청하여 어린 아들이 성인(成人)들과 어깨를 나란히(得齒:대열에 합류함) 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덕을 베푸는 것을 일찌감치 직면함으로써 영예를 실천하고, 공경함에는 복종하게 할 것입니다. 올바른 예법에 기뻐하는 영손(令孫:타인의 손자)이 의관을 갖추어 영예를 보태고, 성인으로서 덕을 달성하여 지금 세상에 걸맞은 예법을 갖추고 있어, 총명함을 불러들이는 이러한 것은 재촉하지 아니 할 수 없기에 감히 말씀드려봅니다.
만약에 금일, 영랑(令郞:윗사람의 아들)에 대해 새점을 쳐서 좋게 나왔다면(鳳占協吉) 수많은 행복이 즐겁게 관계를 맺을 것이며, 작고 하찮은 미물이라 할지라도 공경하면서 받들게 될 것입니다. 비루함을 거부하고, 행운을 지나치게 갖추고 있는 존경하는 사람에게는 복종해야 하기 때문에 일찍이 혼인한 아이는 예의에 어긋남이 있다면 스스로 부끄러워할 것입니다. 어리석음에 저항하는 것은 축하해 주고, 부끄러움을 보태는 행동에 대하여는 이를 겸손하게 받아들인다면 행복이란 장차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을 찾아오게끔(光顧) 하여 사물의 이치를 깨닫게 되는(得領) 큰 가르침인지라, 이것이 지극해진다면 즐거움 중에서도 즐거움이 될 것입니다.
시험에 통과하지 못한 사람(居不)은 예법이 구부정(數弓)하여 수많은 날짜가 지나도 깨닫지 못할 것이며, 지척에 있어도 항상 하늘 끝에 머무르는 것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지금 당장 깨달아야(今聞) 하는 것은 경사가 있는 집안은 오랜 세월에 걸쳐 선(善)과 영예(榮)를 쌓음으로써 벼슬하는 손자(麟孫)가 태어나 3대가 같은 방실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며, 두 번째로 깨달아야(重聞) 하는 것은 기쁨이 넘쳐나는 경조사(菲儀)에는 떡국과 술잔으로써 사례를 하나 문서를 청구함(법적인 분쟁)에는 선행과 편안함을 선사하지 않기에 올바른 당신이라면 우러르는 상대방의 편지는 그 홀가분함이 백 사람의 벗을 얻는 것과 같은지라, 마음으로 기린다면 살아있는 뽕나무(뛰어난 선비)가 저물어 가는 경치(노련한 학문)에 대하여 어찌 빈정거릴 수 있겠는가.
그대의 자제(子舍:아들)가 성인(成人)이 된다면 노인의 마음은 작은 위안이 되어 떡국으로써 사람들을 대접할 것이며, 한결같은 숙원에 대하여 판목(板木)이 그것을 조각하여 줄 것입니다. 영예를 위하여 수레를 타고 가는 군자가 도리에 순응하고 이를 기린다면 비록 평온함을 갖추지 못할지라도 잠깐 사이에 봄은 지나가고 이미 계절은 여름인지라, 풍광을 읊지도 못하고 내일이면 걸맞게 맞이하는 것은 의미 없는 하루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세월을 헛되이 보내다 보면, 젊은 시절(韶華:화창한 봄날의 경치)의 수명에 관한 견해에 어찌 만족할 수 있겠으며,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얼굴을 붉힐 뿐이라면 곧장 푸성귀와 술잔을 가까이 하면서 여러 사람들과 담화를 나누는 일에 참여함으로 인하여 인생의 덧없음에 대하여 한나절을 허비할 것입니다.
향락을 거부하며 아름다운 덕을 소중히 했던 지난 세월의 흔적에 대하여 거대한 빛이 발하도록 도모해야 할 것이며, 머물러 있어 만나지는 못할지라도 창작을 방해하는 것은 극심한 한탄인지라, 총명한 임금과 나의 조부님(군사부일체를 염두하고 묘사)의 노련한 풍류는 환갑(初度)을 기쁘게 하고, 부모님의 뜻을 정성으로 받들며 효도를 다 하는 것은 부끄럽지 않기에 기뻐할 수 있으나 지나친 부담을 가지고 손자를 바라본다면,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법도가 아랫사람에게 영향을 미쳐 극진한 감동과 고상한 인정은 다음날 정오가(장차 다가오는 아랫사람의 전성기 시절) 되면, 제수(祭需)와 술잔을 감히 물리치는(제사를 받드는 것을 거부함) 것을 삼가 아뢸 것입니다(아랫사람에 대한 지나친 사랑은 오히려 예법을 망치게 하는 원인이 된다는 뜻임).
처마가 높은 수레에 앉아 공손하게 경청하며 덕을 베푸는 말씀을 포기하지 않고 빼어남에 부합한다면, 행운을 베푸는 은혜로움은 지극해지고 그것은 기쁨 중의 기쁨이 되어 줄 것입니다. 도리에 순응함을 소망한다면 노년은 편안할 것이며, 가르침에 어긋남이 없는 것이 얼마나 많은 날들이 되어 주겠는가. 애절하게 한탄만 했던 긴 세월(三秋)에도 다음날의 아침이 밝아오고 아버님을 위하여 생신을 무한히 축하해드린다면, 마음을 부족하게 했던 부끄러움은 기쁨으로 승계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을 추종하면서 술잔을 나누노라면 현판의 서문은 한층 더 영예를 높여 줄 것이며, 어둠 속을 배회하다가 자애로움이 드리워지면 도움을 받아서 명산 대첩을 유람하게(登臨) 되는데, 망망한 곳에서 이치의 순리를 칭송하노라면 침묵하는 편안함이라고는 없었던 잡다한 세속적인 일에 몸을 묶인 것과 유사했던 지난날들은 심히 소란스러웠던가.
만약에 어떠한 독촉을 한탄하면서 이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총명한 임금(明天)과 존당(尊堂:어머니)의 상서로운 용서는 화려한 대자리와 행복을 안겨주지는 않을 것이며, 절친한 친구 사이건만 친척처럼 지내온 따뜻한 인정(誼添通家)의 예법은 마땅히 벗의 부모님에게도 헌수(稱觴:장수를 기원하는 술잔을 올림)를 하고, 무지몽매한 벗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면서 맞이할 것이며, 감히 내던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름다운 가르침을 공손하게 칭송하고, 도리에 순응하기를 바란다면 경사스러운 일과 편안함을 갖추지는 못할지언정, 조정을 모욕하는 천정이 높은 수레가 적당한 시기에 지나가게 된다면, 나막신을 거꾸로 신고 상대방을 맞이(倒屐相迎)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봉황(임금)을 화두로 다스린다면, 어찌 지금의 인색한 연분이 원인이 되겠는가.
지난날의 등용문(登龍門)은 정식으로 준비하여 옷깃(인연)을 잡았건만 깃털로 된 장식(벼슬길에 오름)에 머물러 있어도 심히 사례(베풂)를 다하지 않는다면, 아름다운 가르침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세밀하게 분배하였더니 인연이 트이기에 어찌 한결같은 뜻을 펼치지 아니하겠으랴 마는 스스로 암연(黯然:슬프고 침울함)하여 넋이 빠져나갔으니, 이것을 새롭게 구비하지 않는다면, 반평생을 신(神:미신)과 소통을 하여야 하기 때문에 어찌 이러한 정(情)으로 인하여 상황이 바뀌겠는가. 인색한 인연, 그것이 지극하다면 어찌 지금의 어떠한 일이 존재하리오. 감히 부탁하건대 각각의 자리를 유지하는 당혹감은 베풀 수 있는 사랑을 청함으로써 하나의 글자에 대하여 해석은 배척할지라도 하나의 글자에 대한 값어치는 천금으로 무거울 것이며, 지극함이 간절하고 간절하면 그것으로 인하여 상(賞)을 받지는 못하더라도 타고난 품성은 어리석음을 트이게 하기에 달아나는 사례를 기필코 끝까지 저지하여 줄 것입니다.
경모하는 마음은 이따금 답답하고 무더울 것이나 거짓과 모욕으로 일삼는 사랑과 칭송, 이것의 힘은 목화와 같아서 강조함에 집착할지라도 감히 완성코자 하는 부탁을 들어주지는 못할 것입니다. 예법을 갖추지는 못할지라도 공경하면서 답장을 반복한다면 그것은 오래도록 가슴에 품고 앙모했던 시절을 생각하게 할 것이며, 타고난 본성으로 인하여 옹졸한 게으름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음을 한결같이 깨닫고 있어, 그 목마른 그리움으로 인하여 마음에 먼지가 이미 생겼다면, 모종의 일에 대하여 어찌 마땅한 원인이 존재하지 아니하겠는가. 감히는 아니지만 잊는다는 것은 덧없는 것이며, 다만 추념하는 뽕나무와 가래나무(桑梓:학문이 절정에 도달한 선비)의 무게가 있는 말씀을 빌려서 완곡해진다면 마침내 그것은 간절하게 두 임금을 섬기는 것(행복이 2배로 증가 됨)이 될 것입니다.
공경하는 마음으로 답장에 응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단초가 되는 그것은 부끄러움이 존재하는 느릅나무(枌楡:고향 또는 인간의 본성을 뜻함)가 되기에 항상성(恒常性)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간절하게 우러르며 깎아지른 듯이 서 있는 그것이야말로 화려하게 전송하는 것을 승낙하기 때문입니다. 중대한 부탁으로 맺은 정다움을 어떻게 감당하며 물리칠 수 있으랴마는 다만, 타고난 천성으로 인하여 어리석고 못난 사람이나 아직 배우지 못한 사람에게는 두려운 모기(恐蚊:위엄있는 선비를 뜻함. 속독하는 선비의 육성이 웅웅거리는 모깃소리와 유사하기 때문임)를 제압하기에는 전적으로 부담이 되는지라, 뱉은 말, 그것이 씨앗이 되어 행복을 거부함으로 인하여 명령을 거역한 책임을 지게 될 것입니다. 계축년(1913년) 시월(小春)에 몽인(夢人) 정 학교(丁隺喬)가 병(病)에 걸려서 찬양할 가치가 없는 투박한 붓끝을 휘갈겨 봅니다.
●정학교(丁學敎, 1832~1914)
조선 말기의 서화가로서 본관은 나주이다. 일명 학교(隺喬) 라고도 했으며, 자는 화경(化景), 호는 향수(香壽) 또는 몽인(夢人)이다. 사군자와 서예에 능한 정학수의 형이며, 벼슬은 군수를 지낸 것으로 추정된다. 민영익, 이하응(흥선 대원군), 윤영구 등과 서화로써 교유하였고, 전서, 예서, 행서, 초서 모두에 능했으며, 광화문의 편액을 썼다고 한다. 괴석도(怪石圖)에도 능했는데, 위 서적의 원본은 선생께서 세상을 떠나신 직전 연도에 시작하여 당해 연도에 종료한 것으로 보여진다.
*하단에 간찰체 원문 24매 중에 첫장을 첨부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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敬啓者今日家兒冠禮也竪子無知漫加元服爰具一樽以求長者德言敎之俾得齒於成人幸賜早臨爲榮敬服者恭喜令孫元服榮加成人成德從玆備禮又承寵召敢不趨承敬啓者今日令郞鳳占協吉締好百福恭爲微物引忱弗鄙幸甚甚敬服者兒曹幼婚自慚踰禮適蒙賜賀拜領增愧幸卽光顧得領大敎至幸幸居不數弓浹旬未晤恒有咫尺天涯之盛今聞慶門積善榮誕麟孫三世同室重聞喜溢菲儀引賀湯餠侑觴籍請慶安不備正厼懷仰朶雲忽墜如得百朋感頌何旣生桑揄晩景子舍添丁老懷少慰玆有湯餠奉板一叙夙駕爲榮順頌大安不備轉眄春已夏矣能不景誦明日適値賤辰虛度韶華奚足言壽祗增愧赧耳玆有蔬酌請與知已數人譚叙又得浮生半日閒也幸勿吝玉趾光賁爲企留在幸晤不備作阻悵甚明天家祖老景初度欣臨慚無養志之歡深負抱孫愛芳儀下及極感高情翊午敬具豆觴敢屈高軒恭聽德言倘蒙不棄幸賜惠臨至幸幸順請晩安不備違敎何多日也悵切三秋明日爲家大人幾旬壽届愧乏承懽隨分具酌板叙增光倘蒙垂愛借重登臨是望望順頌唫安不備近以俗務絆身多日擾擾未克一趍爲悵承拜明天尊堂瑞蕩華筵呈祥誼添通家禮當稱觴友蒙寵愛台邀敢不摳趍恭頌嘉誨順請慶安不備朝辱高軒過適未獲倒屐相迎致令題鳳奚此慳緣緣甚留在羽謝不戩昨登龍門正擬握領嘉誨詎意分淺緣踈曾未得一攄只自黯然消魂此復不備神交半生奈此情以事遷慳緣此至何今有某事敢託座座維持倘蒙垂愛請以一字排觧一字値爲千金之重至懇懇爲此不備償素性踈愚竟阻於趍謝然景仰之心時有鬱熱謬辱寵頌雖是力綿敢不勉强調停以成所託乎此復不備敬覆長抱仰葉之想素以拙懶無緣一晤其渴想之心已有生塵何適因某事非敢忘干但追念桑梓借鼎言爲之婉轉則此戴切二天矣耑此不備敬覆者辱在枌楡之未恒切仰斗此承華輸重託誼何堪却但素以愚拙未學於人只恐蚊負難勝耑此辭謝幸勿以方命責之癸丑小春夢人丁隺喬病毫草草無足粲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