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이야기 지줄대는 '향수 30리' 꿈엔들 잊힐리야
 |
▲ 정지용의 대표작 '향수'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실개천. 시인은 옛이야기 지줄대는 곳이라고 노래했다. |
얼룩빼기 황소가 해설피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정지용의 고향 충북 옥천은 '시인의 마을'이었다. 옥천역에 내리면 정지용의 대표작 '향수'가 대합실 벽에 걸려 있다. '향수 100리' '시가 있는 상회' 등등. 길 이름에서 가게 간판에 이르기까지 시인 정지용을 떠올리게 하는 분위기가 남아 있다.
어저께도 홍시 하나/ 오늘에도 홍시 하나/ 까마귀야 까마귀야/ 우리 나무에 왜 앉았나
정지용 생가 찾아 떠나는 향수 여행
문학관엔 시인의 자취 고스란히
실개천 흐르는 정겨운 고향 풍경
詩 향기 가득한 고갯길 넘으면
'옥천의 젖줄' 금강이 한눈에
육영수 생가·안터선사공원도 볼거리
정지용 생가로 향하는 차 안에서 택시 기사가 들려준 정지용의 시 '홍시'의 첫 구절이다. 옥천 사람이면 누구나 정지용의 시 한 소절 정도는 읊을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천재 시인을 낳은 고장 사람의 자부심이라고나 할까.
■소담스러운 정지용 생가
옥천역에서 자동차로 불과 5분 거리에 있는 정지용 생가. '옛이야기 지줄 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는 곳'에 있는 '시인의 집'은 소담스러웠다. 마당에 들어서면 '엷은 졸음에 겨운 아버지가 짚 베개를 돋아 고이시던' 사랑채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가 어머니와 함께 거주했던 안채가 나란히 서 있다.
그 옆에는 젊은 시절 정지용의 사진과 작품이 걸린 방이 있다. 열두 살에 결혼한 시인이 아내와 신방을 차렸던 곳이다. 하지만 정지용은 열일곱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났다. '사철 발 벗은 채로 이삭을 줍던 아내'를 남겨 두고서. 그리고는 끝내 고향 옥천 땅을 밟지 못했다. 도쿄 유학을 다녀온 후 서울에서 생활하던 중 터진 한국전쟁 이후 행방이 묘연해진 것이다.
 |
정지용 생가 전경. |
생가 옆에 세워진 정지용문학관에는 시인이 남긴 육필 원고와 함께 좌우 이념 대립 속에서 희생된 그의 일대기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참신한 이미지와 절제된 언어로 한국 모더니즘 문학의 선구자로 추앙을 받았으나 그의 행적과 관련해 월북설이 제기되면서 한동안 잊힌 시인으로 전락했다가 1988년에야 복권된 사연과 함께. 정지용문학관에는 불행한 시대를 살다간 시인의 발자취를 찾아보려는 방문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정지용문학관을 나와 오른쪽으로 발길을 돌리면 '향수 30리' 라고 새겨진 팻말이 눈에 들어온다. 그 길을 따라 10분가량 걸으면 육영수 여사의 생가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외갓집'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 전국 5대 갑부 중 한 사람이던 육종관(박근혜 대통령의 외할아버지)이 살던 99칸짜리 고택답게 단아하게 가꾸어진 안채, 행랑채, 뒤뜰, 연못 등에서 명문가의 위세가 느껴진다.
집이 너무 넓은 탓인지 아니면 대통령 외갓집이라는 위세에 눌렸기 때문인지, 육 여사의 생가를 둘러보는 내내 썰렁한 느낌을 떨쳐내기가 힘들었다. 집 앞 100m 지점에 마련된 대형 주차장 역시 텅 빈 상태로 놓여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고향 집과 같은 푸근함을 갈구하는 보통 사람과 감성을 교류하기에는 '대통령'이라는 세 글자를 떠올리게 하는 집이 주는 무게감이 너무 컸던 때문이 아닐까.
 |
얼룩빼기 황소가 그려진 담벽. |
육 여사 생가를 나와 '향수 30리' 길을 20분가량 걸으면 고갯길이 나온다. 고갯마루에는 꿀벌을 키우는 80대 노부부가 살고 있다. 자식은 서울로 가고 소일 삼아 꿀벌을 키우고 화분(花粉)을 만들어 판다면서 굳이 쉬어갈 것을 권한다.
■느리게 흐르는 금강 고갯길을 넘어서면 옥천의 젖줄인 금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비단처럼 부드러운 품성으로 세상을 포용하듯 느리게 흐른다는 금강. 충청도 말씨처럼 느긋하고 잔잔해 마치 큰 호수를 연상케 한다.
강변에는 '안터선사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옥천지석묘와 석탄리 입석이 있는 곳이다. 지석묘는 선사시대 사람들이 영생을 기원했던 관(棺)이다. 또 석탄리 입석은 출산을 기원하는 상징물이라고 한다.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자연의 일부처럼 살다 갔을 선사시대 시대 사람들에게도 갈등의 세월이 있었을까. 강나루 선착장을 오가는 물새도 강촌 마을 사람들의 애환을 알고나 있는지….
 |
옥천의 젖줄인 금강. |
상념 속에 다리를 건너 도착한 안터마을. 목을 축일 겸 음료수를 마시면서 돌아가는 차편을 물으니 "강 건너 선착장에 옥천 시내로 가는 마을버스가 10분 후에 도착한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제대로 쉴 틈도 없이 발걸음을 재촉해 마을버스에 올라 여행 가이드 북을 펼치니 옥천 시내 가볼 만한 곳으로 '옥천 천주교회'를 추천한다. 대한민국 근대문화재 7호로 등록된 건축물이 볼거리다.
흙에서 자란 마음을 노래한 시인 정지용을 낳은 옥천 시내에 푸른 빛 첨탑을 자랑하는 천주교회 건물. 토속적인 마을에 우뚝 선 서양식 건축물이 보여주는 조화로움 속에 시간 여행의 방점을 찍었다. 글· 사진=정순형 선임기자 junsh@busan.com
여행 팁
■맛집
옥천을 대표하는 먹거리라면 단연 생선국수다. 생선국수에 들어가는 붕어와 메기 등 민물고기는 뚜껑을 열고 센 불에 두 시간 정도 센 끓여야 비린내가 사라진다.
그 물을 생선 가시가 흐물흐물 부서질 정도로 4~5시간가량 끓인 다음 고추장을 풀어 간을 한다. 그렇게 만든 육수에 파, 애호박, 미나리, 풋고추 등을 썰어 넣고 국수를 삶으면 생선 국수가 완성된다. 구읍식당(043-733-4848)에서 1인분 5천 원.
 |
옥천이 자랑하는 별미 생선국수. |
■교통편 열차를 이용하려면 부산역에서 옥천까지 가는 무궁화호를 타면 된다. 오전 5시 5분부터 저녁 10시 25분까지 10차례 운행한다. 3시간 10분 소요. 요금 1만6천800 원.
옥천역에서 내려서 정지용 생가로 가려면 마을버스가 수시로 있다. 택시를 타면 5천 원가량 나온다.
자가운전을 할 경우엔 부산·대구 고속도를 타고가다 경부고속도로로 갈아타는 것이 가장 빠르다. 3시간 소요.
 |
정지용문학관에 전시된 사진과 동상. |
■잠잘 곳 큰 엄마네 민박:043-733-3736
장자마을민박:043-733-7472
엘도라도민박:043-731-6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