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주님 탄생 예고 성당
나자렛에 자리한 ‘주님 탄생 예고 성당’은 마리아가 천사에게서 수태고지를 전달받은 집터 위에 세워졌습니다. 성당 외벽에는 라틴어로 삼종기도가 새겨져 이 기도가 유래한 성지임을 알려줍니다. ‘임마누엘 표징’을 전하는 이사 7,14도 새겨져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대림 제4주일에 봉독하는 제1독서와 관련된 대목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주님께서는 기원전 8세기 남왕국 임금이던 아하즈에게 한 가지 명을 내리셨습니다. 당신께서 다윗에게 하셨던 영원한 왕조의 약속(2사무 7,8-16)을 그가 확신할 수 있도록 표징을 청하라는 말씀이었죠. 그러면 그걸 이루어 당신의 약속이 참된 것임을 증명해 주시겠다는 거였습니다. 그러자 아하즈는 ‘주님을 시험하지 않겠습니다.’ 하는데, 이는 언뜻 ‘저는 율법대로 하겠습니다.’라는 말처럼 들립니다. 신명 6,16에 따르면, 주님을 시험하는 일은 금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율법 위에 존재하시는 분이지요. 그런 주님께서 믿음이 부족한 아하즈를 위해 표징을 주시겠다는데, 아하즈는 계속해서 거절합니다. 그 속내는, 아시리아와 이집트 같은 열강이 위협하고 있는 상황에서 하느님만 의지하는 일은 못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하느님의 말씀대로라면, 아하즈는 표징을 청하고 그것을 믿고 주님만 신뢰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아하즈는 하느님의 존재를 믿지 못했다기보다 하느님보다 더 셀지 모르는 이방 신들의 힘을 의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아하즈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임마누엘”이라는 아들의 출생이 표징으로 주어지리라고 예고합니다. 당시 아하즈에게는 아들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니 자신에게 아들도 주지 ‘못한’ 하느님이 다윗에게 하셨다는 영원한 왕조의 약속도 의심스러웠을 테지요. 이사야의 예고에 나오는 “젊은 여인”은 히브리어로 [알마]입니다. 그리스어 번역 성경인 칠십인역에서는 이를 [파르쎄노스] 곧 ‘처녀’로 번역하는데, 히브리어 [알마]는 단지 ‘나이 어린 여자’를 통칭합니다. 더구나 [알마] 앞에는 정관사가 붙어 있어 이사야와 아하즈 둘 다 아는 여인을 지칭합니다. 아마도 아하즈의 아내를 가리킨 듯합니다. 그렇다면 태어날 아기는 “히즈키야”를 의미하지요. 만약 그때까지 아하즈에게 아들이 없었다면, 히즈키야의 탄생은 다윗 왕실의 미래를 밝혀주는 표징이었을 것입니다.
이 대목은 이후 마태 1,22-23에 반영됩니다. 다만 여기에 ‘젊은 여인’이 아니라 “동정녀”로 나오는 건, 인용한 성경이 칠십인역(LXX)이었기 때문입니다. 마태오 복음서 저자는 임마누엘의 표징이 예수님에게서 완전히 실현되었다고 보았습니다. 말하자면, 하느님께서 다윗에게 하신 영원한 왕조의 약속이 일차로 히즈키야의 탄생에서 확인되고, 이후 다윗의 후손이신 예수님의 탄생으로 완전히 이루어졌다고 본 것입니다.
나자렛에 자리한 마리아의 집터 성당에서 ‘주님 탄생 예고 미사’를 봉헌하면, 아하즈 시대에 주어졌던 하느님의 약속이 마침내 완성된 수천 년의 세월을 하루처럼 묵상하게 됩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수도자 신학원 등에서 구약학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이 있다.
[2022년 12월 18일(가해) 대림 제4주일 의정부주보 6면, 김명숙 소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