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삼주如意三珠
대우주와 소우주의 진리가 같아서 대우주에 삼도계가 있듯이 소우주인 인간에게는 삼주가 있다.
이 삼주가 인간의 정기신을 근본적으로 다스리는 여의주, 즉 조화주造化珠다.
여의주는 인간의 몸속, 내면 깊숙이 존재하는 원천적인 조화造化의 힘을 가지고 있는 구슬을 말한다.
인간이 빛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몸속에 세 개의 여의주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의주는 빛의 세계를 여행하기 위한 나침반이자 매개체의 역할을 한다.
예로부터 신인들은 이 여의주가 있는 곳을 가리켜 단전이라 불렀다.
모든 사물에 중심이 있듯이, 소우주인 인간에게도 본질적인 중심이 있는데 그 곳이 단전이다.
여의주를 품고 있는 삼단전은 하단전, 중단전, 상단전을 말한다.
경혈학적 측면에서 볼 때, 인간 몸의 중앙에 임맥任脈이라는 중요한 선이 있는데 이 선상에는 회음會陰부터 승장承漿에 이르기까지 24개의 경혈이 있고 그중에서 하단전은 석문石門, 중단전은 옥당玉堂에 자리잡고 있다.
상단전은 승장보다 훨씬 위의 얼굴 앞이마의 인당印堂에 위치하고 있는데, 인당은 임맥이 아닌 독맥督脈에 속한다.
우선 하단전은 삼단전 중 가장 아래에 위치하는데, 경혈로 볼 때는 관원關元과 기해氣海 사이의 석문이 그 자리다.
기해는 음이다. 따라서 기해를 단전으로 하면 수련이 지나치게 부드럽고 약하며 음적陰的이 된다.
반면 관원은 양陽이므로, 관원을 단전으로 하면 힘 위주의 수련이 되므로 강하고 양적陽的이다.
기해와 관원, 이 두 자리는 음과 양의 자리며 두 음양의 자리를 조화시키는 태극의 자리가 석문이다.
석문호흡은 음(기해)과 양(관원)의 조화를 추구하는 태극(석문)에 변화를 이루게 하여, 우리 몸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무궁한 힘을 일깨움으로써 우주의 기운과 교류를 도모하고 나[我]와 우주와의 합일을 이루게 한다.
그리하여 천지자연과 두루 통하게 되면 천지의 정기가 바로 나의 기氣가 되는 것이다.
현재 우주는 선천을 지나 후천으로 접어들었다.
후천시대에는 필연적으로 ‘후천 인간 개벽의 도문道門’을 열어야 하는데 그 문이 하단전 석문이다.
하단전은 삼단전의 뿌리에 해당되는데 정을 생성하고 변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삼단전에 있는 세 개의 구슬을 찾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단전에 있는 구슬, 즉 정주精珠를 찾아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상단전의 신주神珠, 중단전의 기주氣珠, 하단전의 정주를 찾는 문이 석문에 있다는 이야기다.
이 정주를 찾지 않고서는 기주와 신주를 찾을 수 없다.
왜냐하면 하단전의 정주를 찾아야 중단전의 기주를 찾을 수 있는 문이 열리고, 중단전의 기주를 찾아야 상단전의 신주를 찾을 수 있는 문이 열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단전의 정주를 찾지 못하면 중단전의문은 결코 열릴 수가 없다.
하단전의 정주는 참으로 중요한 구슬이다.
하단전의 수련에 집중적으로 정진하다 보면 어느덧 자연스럽게 하단전이 안정되면서 중단전이 열린다.
중단전은 기를 생성하고 변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중단전의 문이 열린 후 계속 수련에 정진하면 자연 중단전도 안정이 되는 데, 중단전이 안정되면 천지만물과 나의 마음이 합일된다.
이러한 차원으로 올라가게 되면 삼욕칠정三欲七情을 다스리고 자연과 더불어 초연하게 된다.
그리하여 중단전이 안정되면 상단전을 찾을 수 있는 문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열린다는 것은 안정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즉 새로운 열림은 전前 과정이 안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단전은 독맥의 인당혈에 위치한다.
인당혈은 양 눈썹 사이의 정중간이다.
상단전은 신이 자리하는 곳으로 상단전의 문은 중단전이 안정됨으로써 열린다.
상단전이 하는 일은 깨달음에 이르는 데 있다.
깨닫는다[覺]는 것은 자연과 우주의 이치를 안다는 것인데, 이것은 필연적으로 상단전이 닦여야만 가능하다.
이와 같이 하단전에서 중단전, 중단전에서 상단전으로 세 단전이 차례로 닦이고 안정되어 세 개의 여의주를 찾고 양신을 이루게 되면, 대우주와 소우주가 하나가 되는 우아일체宇我一體와 신인합일神人合一의 경지에 오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