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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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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74편 16-17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낮도 주의 것이요 밤도 주의 것이라 주께서 빛과 해를 예비하셨으며 땅의 경계를 정하시며 여름과 겨울을 이루셨나이다.” 사람에게는 낮도 필요하지만 밤도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밤을 어둡고, 무섭고, 고통스런 때로만 생각하지 말고 새로운 내일을 위한 휴식 시간으로 생각하십시오. 살다 보면 인생의 밤의 때가 오지만 생각을 달리 하면 그때가 인생의 휴식 때입니다.
어디서 혹시 왕따가 되면 그때 고통하지 말고 “예수님과 내가 메이저 그룹이다!”라고 생각하고 나머지 전체를 왕따시키고 편하게 묵상과 휴식을 즐기십시오. 직장에서 해고되면 그때를 고통의 밤이 아닌 오히려 인생의 휴식기간으로 생각하고 믿음으로 내일을 준비하십시오. 병도 고통으로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병 때문에 비로소 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부부간에 싸움이 생기면 서로 침묵하지만 때로는 그런 침묵기간도 필요합니다. 그때가 없으면 언제 자기반성을 하고 배우자의 소중함을 깨닫겠습니까?
생각을 달리 하십시오. 인생에는 밤도 필요하고 잠도 필요합니다. 여러 날 밤잠을 못 이루면 헛소리가 나옵니다. 사흘만 잠을 안 재우면 도둑질을 안 한 사람도 했다고 합니다. 그처럼 밤과 잠이 중요합니다. 밤은 일하지 않는 비생산적인 시간이 아니라 낮에 일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는 시간입니다. 인생의 밤도 새로운 인격체를 형성하는 새 창조의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그처럼 위대한 믿음의 선진들은 인생의 밤을 손해가 아닌 유익으로 만들어냈습니다.
< 하나님이 가시를 주신 이유 >
본문을 보면 인생의 밤에서 내는 사도 바울의 고백이 나옵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평생의 가시가 있었습니다. 그 가시는 간질로 추정됩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고통스런 가시였겠습니까? 설교하다 갑자기 푹 쓰러집니다. 그리고 입에 거품을 물고 눈은 초점을 잃고 손발은 사시나무 떨 듯이 떠는 장면을 상상해보십시오. 얼마나 자존감에 상처가 되었겠습니까? 왜 하나님은 그런 고통스런 가시를 주었을까요?
1. 자고하지 않도록
사도 바울은 신기한 체험을 많이 했습니다. 본문 앞 1-2절 말씀을 보면 그는 셋째 하늘에 올라간 놀라운 체험까지 했습니다. 그 상황에서 그에게 가시마저 없었다면 얼마나 교만하게 되겠습니까? 결국 그의 병은 그가 교만하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기둥이었고 동시에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통로였습니다.
사람이 무엇을 성취하고 높은 자리에서 교만해진다면 차라리 가시가 있는 상태에서 겸손한 것이 낫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결국 인생의 가시는 성도를 겸손하고 바르게 만들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매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지극히 사랑해도 필요한 때는 엄하게 매를 듭니다. 그러면 매를 맞을 때는 너무 싫지만 나중에 철이 들면 그 매가 사랑의 매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고통의 가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가시가 없었다면 얼마나 마음이 높아졌겠습니까? 인생에서 도전이 너무 강해도 쓰러지지만 도전이 너무 없어도 무기력해집니다. 적당한 고생은 보약이 되듯이 적당한 가시와 약점은 영혼을 지켜주는 보약입니다. 좋은 땅도 햇빛만 비치면 사막이 됩니다. 그처럼 인생에는 기쁨과 즐거움의 햇빛도 있고 슬픔과 고통의 눈물도 있어야 둘이 어우러져 옥토 밭 인생이 됩니다.
살면서 가시를 통해 심령이 가난해지는 체험은 은혜 받는 자의 필수코스입니다. 위대함으로 가는 첫 발자국은 ‘자신의 무력함에 대한 자각’입니다. 자신의 무력함을 자각할 때 비로소 자기 지성과 의지가 아닌 하나님의 뜻과 은혜를 찾습니다. 물론 지성과 의지도 필요하지만 하나님의 뜻과 은혜를 앞세워 살면 지성과 의지는 더 아름답게 됩니다. 그처럼 한 사람의 ‘변화의 역사’는 ‘역사의 변화’로 이어집니다. 한 움큼의 누룩이 가루 서 말을 부풀리듯이 하나님의 손에 들린 한 사람은 엄청난 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요새 믿는다면서도 여전히 자신의 지식과 경험과 연줄에 의지해 인생문제를 풀려는 사람이 많습니다. 왜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선뜻 그 뜻을 못 따릅니까? 살면서 자신 속에 형성된 거짓 자아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꿈인 줄 알면서도 못 깨어나는 악몽처럼 거짓 자아가 이끄는 대로 살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거짓 자아를 깨라고 하나님은 인생의 가시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도 스스로 높아지는 일은 최대한 없게 하십시오.
2. 간절히 기도하도록
사도 바울은 자신의 가시가 없어지도록 간절히 세 번 기도했습니다(8절). 그런 간절한 기도를 드리면서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가라고 하나님은 인생의 가시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려움이 생기면 항상 그 어려움을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새롭게 찾고 간절히 기도하는 기회로 활용하십시오.
미국 LA에서는 가끔 지진이 납니다. 그러면 주일출석 인원이 많아지고 기도소리도 간절해집니다. 그래서 한 목사님은 가끔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너무 심하게는 흔들지 마시되 가끔은 흔들어주세요.” 사람은 가끔 흔들려야 정신 차리고 기도합니다. 그처럼 인생의 문제를 통해서 무엇보다 먼저 찾아야 할 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가 없는 것은 하나님이 없다고 인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투명인간 취급하면 어떻게 복된 삶이 펼쳐지겠습니까? IMF로 전 국민이 금모으기 운동을 할 때 한편으로는 민족의 희망을 발견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떠난 민족의 불행에 대한 예고편을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잠언 26장 2절 말씀을 보면 “까닭 없는 저주는 없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그 결말은 불행뿐입니다.
<에덴의 동쪽>이란 영화가 있습니다. 한 가정의 불행을 통해 하나님을 떠난 인생의 불행을 그린 영화입니다. 창세기 3장 24절 말씀을 보면 ‘에덴의 동쪽’은 에덴에서 쫓겨한 후 하나님이 없이 사는 장소를 뜻합니다. 그 말은 결국 하나님이 있어야 그 인생과 가정에 행복이 주어진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에덴의 동쪽’에서 ‘에덴’으로 가라고 하나님은 가끔 인생의 가시와 문제를 주시는 것입니다
문제가 생기면 그때는 힘들지만 결국에는 그 문제 때문에 영혼이 살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로 적절한 짐을 지워주시며 예배와 기도의 자리로 이끄십니다. 물론 기도해도 인생의 짐이 다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기도 응답은 짐이 덜어지는 것으로도 주어지지만 짐을 질 수 있는 충분한 힘이 주어지는 것으로도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짐이 무거워도 너무 낙심하지 말고 계속 기도하십시오.
어느 날, 한 선교사님이 아프리카의 정글로 들어갈 때 비가 엄청나게 왔습니다. 그러자 건너려는 시내에 물이 한참 불고 물살이 세서 몸의 중심을 잡기가 힘들었습니다. 결국 건너는 것을 포기하고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저기서 몇몇 원주민들이 시냇가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모두가 이상한 행동을 했습니다. 머리통만한 큰 돌을 주워서 어깨에 걸친 후에 한명씩 차례로 시냇가로 들어선 것입니다.
선교사님이 생각했습니다. “왜 저렇게 큰 돌을 어깨에 지고 위험한 행동을 할까?” 그런데 조금 후에 보니까 원주민들이 모두 무사히 시내를 건넜습니다. 선교사님은 이상하게 생각하고 자기도 따라서 큰 돌을 어깨에 지고 물속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그러자 센 물살 속에서도 몸의 중심이 딱 잡혀서 자신도 무사히 시내를 건널 수 있었습니다. 결국 어깨에 진 무거운 그 돌이 생명을 지켜주는 돌이 된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지게 하십니까? 세파에 떠내려가지 않고 하나님의 길에 우뚝 서게 하고 결국 더욱 큰 영혼의 축복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얹힌 짐을 내려놓으려고만 하지 말고 그 무거운 짐 때문에 자신의 영혼이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기도의 줄을 놓지 마십시오.
성도의 진정한 능력이 어디에서 나옵니까? 간절히 기도할 때 나옵니다. 기도할 때 약함이 강함이 됩니다. 어머니는 약해도 기도하는 어머니는 강합니다. 진실한 기도만 있으면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성도를 해치지 못합니다. 이제 항상 기도를 앞세워 사십시오. 그러면 어떤 어려운 문제도 극복할 수 있는 놀라운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3. 은혜가 온전하도록
왜 사도 바울은 자신의 치유를 위해 간절히 세 번 기도했습니까? 남의 병을 잘 고치는 그가 병에 시달리는 것 자체가 덕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의 간절한 기도에 하나님은 이런 응답을 주셨습니다. “바울아!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은 약한데서 온전해진단다(9절” 하나님은 약한 것이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온전하게 만드는 요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처럼 믿음 안에서는 악조건이 호조건이 됩니다.
찬송가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큰 물결이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그 물결 인하여/ 더 빨리 갑니다.” 큰 약점이 있으면 고민도 하지만 결국 그 약점 때문에 더 빨리 목적지로 가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께 드려진 약점은 오히려 하나님의 은총의 통로입니다. 그래서 약한 때가 강한 때입니다. 지금 어떤 가시에 시달립니까? 이제 그 가시를 제거하는 데만 몰두하지 말고 그 가시를 극복하고 더 큰 은혜의 세계를 준비하십시오. 중요한 것은 ‘더 좋은 환경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믿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사람의 존재가치는 자기가 주도적으로 일해야 커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소중한 존재에게 쓰임 받으면 그 존재가치가 더욱 커집니다. 그 사실을 깨닫고 사도 바울은 자신의 약한 것을 인해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하고 찬송했습니다(10절). 결국 문제 극복의 최대 비결은 문제가 있는 그 자리에서 감사하고 찬송하는 것입니다. 찬송하면 어느새 하나님이 그 찬송 중에 거하고 하나님의 은총이 신비하게 그 영혼을 휘감습니다(시 22:3).
이제 문제해결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면서 동시에 현재 상황에서 먼저 찬송하십시오. 사람은 현재 가진 것에 대해 감사하지 못하고 항상 그 이상의 것을 바라는 고질병이 있습니다. 그래서 없는 것과 잃은 것에 집착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면 현재 받은 것과 있는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처럼 자신에게 없는 것에 집중하지 말고 자신에게 있는 것에 집중하십시오. 그러면 얼마든지 감사하고 찬송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경제공황 때 한 은행장이 파산했습니다. 그가 낙심해서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존! 나는 철저히 망했네, 이제 아무 것도 남지 않았네.” 그때 그의 친구가 물었습니다. “감옥에 가게 됐나?” “아니!” “죽을병에 걸렸나?” “아니!” “아내가 도망갔나?” “아니!” “애들은 괜찮나?” “애들은 오히려 담담하네!” 그때 존이 낙심한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짐! 무엇이 철저히 망한 것인가? 자네는 오직 돈만 잃었네.”
지금 무엇인가 잃어버려서 속이 상합니까? 그래도 아직 가진 것이 더 많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어떤 경우에도 “이제 끝났다!”고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없는 것과 잃어버린 것만 생각하지 말고 가만히 멈추고 서서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를 찾아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얼마나 많은 것을 주셨고 아직도 남은 것이 얼마나 많은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 남은 것들을 생각하며 찬송과 감사를 잃지 마십시오.
< 감사를 체질화시키십시오 >
이제 감사를 체질화시키는 훈련을 의도적으로 하십시오. 먼저 날씨부터 감사하십시오. 날씨에 대한 전천후 감사는 감사 훈련의 가장 기초 코스입니다. 자녀 문제에서도 감사하십시오. 자녀를 키우다 보면 감사하기 힘들 때도 생기지만 그때도 감사하며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저의 자녀가 지금은 연약해도 저를 통해 큰 영광 받으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배우자에 대해서도 감사하십시오. 배우자의 변화를 위해 잠깐의 갈등구조로 들어가는 일은 있을 수 있어도 그 와중에서도 감사할 것을 찾아 감사하십시오.
살다 보면 배우자에 대해 실망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도 그를 불쌍히 여기고 앞으로 변화될 그의 모습을 기대하며 먼저 감사하십시오. 그처럼 어둔 현실에서도 믿음으로 감사하고 찬송하면 하나님이 그 믿음과 감사를 받으시고 반드시 기적적인 일을 이뤄주실 것입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끊임없이 죽음의 위협을 당하고 쫓겨 다니면서도 “여호와는 선하시고 그 인자하심이 끝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는 잠자리에 들면서 하루의 삶을 감사했고 아침에 일어나면 지난밤에 단잠을 주신 것도 감사했습니다. 그는 동굴 속에 숨어서도 찬송했고 이방 나라로 피신해서도 찬송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의 줄기찬 믿음과 감사와 찬송을 보시고 은혜의 문을 활짝 열어주셨습니다.
지금 무엇인가 잃어버려서 속이 상합니까? 그래도 아직 가진 것이 더 많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어떤 경우에도 “이제 끝났다!”고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없는 것과 잃어버린 것만 생각하지 말고 가만히 멈추고 서서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를 찾아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얼마나 많은 것을 주셨고 아직도 남은 것이 얼마나 많은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 남은 것들을 생각하며 찬송과 감사를 잃지 마십시오.
지금 형편에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먼저 감사하고 찬양하십시오. 모든 염려와 근심을 내려놓고 믿음으로 찬송하는 감사와 찬송의 제물이 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신기한 역사가 반드시 임하게 될 것입니다. 그처럼 자신의 가시와 약점과 문제에 대한 생각을 달리 하십시오. 인생의 가시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의 삶을 보면 가시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음을 배우게 됩니다.
한문으로 ‘위기(危機)’는 ‘위험(危險)’과 ‘기회(幾回)’의 합성어입니다. 살다 보면 여러 위기를 만납니다. 그때 그 위기를 ‘위험’으로 만들 수도 있고 ‘기회’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제 위기를 당했을 때 지금 자신이 가진 것을 최선을 다해 활용해 위기를 기회로 만드십시오. 위기를 허락하신 하나님은 항상 밑천으로 사용할 그루터기는 남겨 두십니다. 그 남은 그루터기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축복된 역사를 새롭게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필리핀의 정윤교 선교사님은 원주민 촌에서 어렵게 사역하며 어른과 어른 총 800명이 예배하는 큰 원주민 교회를 이뤘습니다. 그런데 금년 6월에 태풍으로 천막 예배당이 다 날아가 버렸습니다. 처음 며칠간은 다 포기하고 싶었지만 곧 믿음으로 일어서서 예배당 건축의 꿈을 품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이 몇 천 만원을 주셔서 지금 건축 중입니다. 그 동안 공사가 중단될 뻔한 위기도 있었지만 신기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 위기를 넘겼고 이제 앞으로 1600만원만 더 마련되면 꿈같은 예배당 봉헌이 이뤄질 수 있습니다. 그런 신기한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그래서 예배당 봉헌이 예정대로 이뤄지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처럼 풍랑을 통해 더 빨리 목적지로 가는 역전 인생이 누구에게나 가능합니다. 그런 역전 인생을 꿈꾸며 사십시오.
< 믿음 안에서 약점은 강점입니다 >
인생은 보는데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한 종류의 사람은 인생을 우연히 생긴 로또로 여깁니다. 그래서 원망과 불평이 많고 남 탓도 잘합니다. 그러면 삶이 힘들어지고 대인관계도 나빠지고 결국 실패합니다. 반면에 다른 종류의 사람은 인생을 하나님의 선물로 봅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조건과 환경을 다 은혜로 생각하면서 감사하고 기뻐합니다. 그러면 삶이 즐거워지고 대인관계도 좋아지고 결국 성공합니다.
삶은 하나님이 주신 큰 선물입니다. 삶의 모든 순간도 하나님이 주신 작은 선물들입니다. 문제도 하나님이 주신 반면선물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삶을 바라보고 항상 현재보다는 장차 받을 더욱 큰 은혜를 기대하십시오! 성도에게는 오늘보다는 내일, 내일보다는 다음 세대, 다음 세대보다는 내세에 더 큰 축복이 예약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그런 내일의 축복을 기대하며 살았기에 어떤 고난에서도 꿈과 비전을 잃지 않았습니다.
성도는 구원의 은혜를 받고 지금도 은혜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장차 받을 은혜는 지금의 은혜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큰 은혜입니다. 그런 큰 은혜에 대한 꿈과 비전을 가지고 현재 자신이 가진 약점 때문에 실망하지 말고 그 약점을 더욱 큰 은혜의 통로로 삼으십시오. 강점 때문에 자만하면 그 강점이 결국 영혼을 죽이는 약점이 되지만 약점 때문에 그것의 극복을 위해 기도하고 힘쓰면 그 약점이 결국 영혼을 살리는 강점이 됩니다.
어느 날, 사슴 한 마리가 연못에서 물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때 연못에 비친 자신의 멋진 뿔에 완전히 넋을 잃었습니다. “정말 멋지다!” 그러나 곧 자신의 피골이 상접한 가냘픈 다리를 보고 실망감이 들었습니다. “정말 초라하다!”
바로 그때 갑자기 사자가 나타나 그 사슴을 잡아먹으려고 달려왔습니다. 사슴은 자신의 날렵한 다리를 이용해 사자를 여유 있게 따돌렸습니다. 그런데 울창한 숲에 들어서자 큰 뿔이 나뭇가지에 걸려 꼼짝 못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사자의 밥이 되었습니다. 그때 사슴은 죽어가면서 생각했습니다. “내가 그토록 부끄러워한 다리는 내 목숨을 구해주었지만 내가 그토록 자랑했던 뿔은 나를 죽이는구나!”
살면서 자신의 강점을 너무 내세우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주신 강점은 자랑의 도구가 아니라 오직 사랑의 도구입니다. 강점이 있어도 겸손하면 그 강점은 축복의 도구가 되지만 강점 때문에 교만해지면 결국은 그 강점 때문에 망합니다. 반대로 자신에게 있는 약점 때문에 실망하지 마십시오. 약점 때문에 겸손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추구하면 그 약점이 오히려 영혼을 살려주고 가정과 교회를 살리는 축복의 통로가 될 것입니다.
자신에게 어떤 가시가 있다는 것은 그 가시가 없으면 크게 교만해질 수 있는 큰 달란트와 장점도 있다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의 삶이 그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사실 사도 바울처럼 은혜를 체험한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는 셋째 하늘에 올라가는 체험을 하면서 마치 영혼이 부유하는 것 같아서 자기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도 모를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엄청난 계시도 많이 받았고 많은 이적도 일으켰습니다. 사도행전 19장을 보면 그의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병자 위에 얹기만 해도 병자가 일어나고 귀신이 떠나갔습니다.
그런 은혜 체험이 너무 커서 하나님은 교만하지 않도록 가시를 주셨습니다. 그 가시가 있었기에 끝까지 자신의 본분을 잃지 않고 멋지게 쓰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처럼 가시와 실패가 있어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그 가시와 실패를 주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감사와 찬송으로 그 가시와 실패를 잘 요리하고 가시와 실패 이면에 있는 자신의 장점과 가능성을 최대한 잘 살려서 예수 믿고 인물이 되는 역사의 주인공이 되십시오. 그리고 인물이 된 후에도 겸손과 성실로 자기 본분을 잃지 않음으로 더욱 큰 축복을 예비하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