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19일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에서 오후를 보냈다.
방학동에서 버스를 타고 간송미술관, 간송미술관에서 걸어서 길상사와 정법사(전통사찰)까지.
간송미술관
미술관은 언제나 문을 열지 않는다 인터넷 찾아보기를 하니 봄과 가을, 짧은 며칠만 문을 연다고 한다.
문을 열 때 이곳을 보려는 사람으로 넘쳐 몇 시간을 기다린다고 한다. 나는 엄두가 안 난다.
상시 개방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 간송 선생 자손과 지자체, 정부가 서로 대승적 자세로 문제를 해결하였으면 좋겠다.
미술관은 안은 볼 수 없었지만 야외는 제재하는 이가 없어 한 바퀴 둘러보았다.
석 비로자나불좌상 /서울시 유형문화재
통일신라 불상 형식을 계승한 고려초기 만든 것으로 여긴다. 이 불상이 최초 어디에 있었는지는 모르는 것 같다.
잘 만든 광배는 주인을 알 수 없다.
삼층석탑 /서울시 유형문화재
바닥에 놓은 받침돌은 근래 만든 것이며, 1층 몸돌에 비해 2층과 3층 몸돌은 매우 작다.
전체을 놓고 봤을 때 아담한 느낌, 고려시대 석탑으로 여긴다.
간송 전형필 선생 흉상
대단한 일을 하신 분이다. 간송 선생 덕에 일본에 밀반출되지 않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분 흉상 앞에서 이분에 대한 고마움을 표했다.
삼층석탑, 흉상 옆에 서 있다. 문화재겠지만 설명문이 없다.
불좌상, 많은 수난을 겪은 몽ㅇ이다. 많이 훼손되었다. 왜 이렇게 방치하여 놓았을까?
문인석
석조팔각승탑 /서울시 유형문화재
통일신라 말이나 고려 초에 유행하였던 팔각원당형 승탑(부도)이다.
어디서 가지고 왔느지엔 대한 설명은 없다. 이 승탑 주인도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나름 영향력이 있었던 승려가 아닐까?
괴산 외사리 승탑 /보물
충북 괴산군 칠성면 외사리 절터 산기슭에 있었다.
일제강점기 때 인천항에서 일본으로 밀반출되려는 것을 간송 선생이 수습하여 이곳에 놓았다.
통일신라 말, 고려 초 승탑 형식인 팔각원당형이다. 장판형 판석으로 짜여진 사각형 받침돌을 빼면 모두 팔각이다.
웅장하고 화려한 모습, 고려 중기 이전에 만든 것으로 여긴다.
문경 오층석탑 /보물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에 있던 오층석탑, 일본으로 반출되려는 것을 간송 선생이 수습, 이곳에 놓았다.
화려하고 웅장하지는 않지만 단아한 느낌이다. 고려 중기, 11세기에 만든 것으로 보인다.
간송미술관 야외, 제재는 없었다. 귀중한 문화재를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미술관도 상시 개방이 된다면 좋겠다.
여러 문화재가 방치된 느낌, 등록하지 않은 것도 깔끔하게 마당에 놓았으면 좋겠다.
간송미술관에서 길상사 가는 길에서 본 천주교 피정 건물
집이 없다면 작은 능선이겠다. 골목길을 걷는 재미, 길상사 가는 재미다.
기와집이 보인다. 저곳이 길상사 같다. 가진 자와 가난한 자가 공존하는 동네, 성북동 같다.
길상사 /전통사찰은 아님
이 건물과 토지를 시주한 여인, 법명이 길상화(吉祥華)이다. 그분 법명을 따서 절 이름을 지은 것 같다.
책 '무소유'로 유명해진 승려 법정, 법정(속명 박재철)스님이 입적한 절이다.
길상칠층보탑
조선중기(1600~1650)에 만든 것으로 여긴다. 네 마리 암수 사자가 기둥 역할을 한다.
입을 연 두 마리 사자는 교종, 입을 다문 두 마리 사자는 선종을 뜻한다.
영안모자 백성학 님이 길상사에 기증, 2012년 11월에 받침돌에 다라니, 금강저 등을 봉안하였다.
2013년 미얀마에서 가져온 진신사리, 목건련과 마하가섭, 라흘라존자 등 사리를 탑신에 봉안하였다.
공덕주 길상화 보살(김영한, 1916~1999) 사당
법정스님 유골은 그와 인연이 있던 곳에 조금씩 뿌려진 모양이다. 순천 송광사 불일암에도 있다.
삼각산 정법사三角山正法寺 /전통사찰
조선후기 선사인 호암 체정(虎巖體淨, 1687~1748)이 복천암(福泉庵)으로 처음 절을 지었다.
1959년 건봉사 만일염불회 회주 보광(葆光)과 석산이 서울 가회동에 있던 포교당 정법사를 이곳으로 옮기면서 절을 새로 지었다.
석산(石山), 이름이 낯설지 않다. 어산장(염불승)이다. 정법사는 염불수행처이다.
(인터넷 찾아보기를 하니 복전암(福田庵), 정법사 입구 안내문엔 복천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