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와우산에는 비밀스런 이야기가 숨어있다. 묻어두기에 너무나 아까운 알려지지않은 사연들을 함께 공부해 보자.
"보우지"란 저수지 옛터가 있다. 25mX45mX3~5m의 그렇게 큰 저수지는 아니지만, 일제 강점기 식량증대를 위해 부역된 恨의 역사적 흔적이기로 기억쉼터로서 와우산 어린이 놀이터에 연결시켰으면 해서다. 보도연맹 학살에 요행이도 살아 돌아왔던 박00의 억울한 슬픈 사연이 담긴 이야기도 남길 필요가 있어보인다. "흙속에 묻혔다가 기적적으로 살았던 70년의 가슴속에 묻었던 얘기 다하지 못하고 8년전에 돌아가셨다. 토석으로 메워진 저수지 위의 나무들 60년 노송은 지나간 무정한 세월을 원망하고 있다."
동부산권 매장문화재! 고증차원에서라도 주영택 선생님 찾아 확인하면 실타래 풀수 있겠지만 부질없는 일이라 여기서 맺는다.
9,10번째 사진은 이곳에서 직선거리500m 해발고130m에 폐허된 포진지로 어린이들 병영 놀이장으로 활용하면 얼마나 좋을지? 눈에 아른거린다. 참 좋은 역사자료로 와우산의 보물이다. 이제 곧 군사시설보호구역에서 해제될 것이므로 준비하자는 뜻이다.
그래서 자연은 이곳에 목련을 그렇게 많이 자라게 하였고, 저수지 근원이 되는 와우산의 산봉우리 하나를 신곡산으로 부르게 되지 않았나 싶다. 이곳으로 오는 길도 지금처럼 달맞이길이 있은 것이 아니므로 송정옛길에서 연결되었던 산길이였음 짐작된다.
당시 와우산 해변에는 일제강점기에 이미 해안초소가 있었다고 하니 아마 러일전쟁 전후로 일본해군이 이곳에 진주했었나 보다.
그때 해운대지역 토지조사를 시작, 도로와 저수지도 만들었다는 추측을 해본다. 우리산 지키려했던 누군가의 지혜 李山표석도!
와우산 들머리에 동해와 남해의 구분지점 미포가 있고, 그 남쪽에 운대산(동백섬) 그 남쪽에 간비오산 건너편에 경상좌수영이 있다. 1912년(명치45년) 묘적의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박영효의 별장은 그곳에 있었고 이후 송병준의 별장이 미포에 1917년(대정6년)소유자로 기록되어 있어 일제의 토지조사는 러일전쟁의 승리후 해안을 중심으로 시작되었음을 알수 있다.
운대산 朴山표석과 와우산 秋公墓 석표에 대한 재원을 확인해보면 이산표석 비밀 풀수 있는 단서를 찾게 될 것이다. 그리고 군사전략상 와우산과 봉대산(간비오산),해운포, 재송포쪽 바다를 접한 장산을 동변산으로 경상좌수영에서 관리하였음을 6년에 걸쳐 확인했다. 서변산은 동래부 동편 동상면관할의 회동수원지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의 장산, 윤산,아홉산 그리고 운봉산을 말한다.
금강산 일만이천봉에 견주어 진 대한팔경의 명승지 "해운대 저녁달은 볼수록 유정한데....." 그 달맞이고개 역사를 잊는데서야!
첫댓글 와우산에 슬픈 사연이 있었군요. 다시는 이땅에 전쟁이 없도록 평화를 지켜야겠습니다. 강한 대~한민국.
신곡초등학교의 교화가 목련이다. 왜 목련으로 하였을까? 사진의 석축은 주변 나무보다 오래되었다.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우리 역사를 바꾸고 문화를 새롭게 인식하도록 한 발견들을 유적여행과 시간여행을 통해 다시 한번 느껴보자.
고고학 유적과 유물에 담겨진 흥분과 아쉬움 그리고 새로운 깨달음을 함께 즐겨보는 계기 되었으면 한다.
많은 역사적 흔적들이 와우산과 그 주변 산들에 남아있는데 어서 관심을 받아 역사의 한 장으로 보존조치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