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티와 가깝게 지냈던 드뷔시는 피아노곡 <짐노페디>를 관현악으로 편곡하였는데, 원래의 1-2-3번 순서를 3-2-1번 순서로 바꾸어 연주하도록 하였습니다. 이 관현악 편곡은 <짐노페디> 본래의 성격을 왜곡했다 하여 종종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드뷔시는 친구 사티에게 경의를 표한 것이었고, 사티는 드뷔시의 편곡 악보를 사보하면서도 전혀 수정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짐노페디 2번 관현악 편곡은 알렉시스 롤랑-마누엘(Alexis Roland-Manuel)이 하였습니다. 여기서는 드뷔시의 의도대로 3-2-1번순이 아니라 본래의 1-2-3번순으로 연주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 낮고 낮은 땅에 왜 왔을까? 즐겁게 지내려고? 형벌로?
무언가 알 수 없는 임무로? 휴식 삼아? 아니면 그냥 우연히?
나는 태어나 얼마 안 된 아이일 때부터 내가 작곡한 음들을 흥얼거리고 노래 불렀지.
그래, 내 모든 불행은 거기서 시작된 거야. ―에릭 사티 일기 중에서
20세기 음악계의 이단적 존재 에릭 사티. 사티는 기존 음악계가 쌓아놓은 신조나 미학을 무시하고 자신의 고집대로 살아간 ‘세기말의 반항아’였습니다. 그는 낭만주의나 인상주의에 반대하여 감정의 표출을 절제 단순하면서도 기발한 음악들을 써냈습니다. 괴팍한 아이디어와 신랄한 유머, 그리고 신비주의와 순수에 대한 지향이 그의 독창적인 음악세계를 만들어냈죠. 시대를 초월한 대담한 수법과 혁신적인 사상은 미래파의 출현을 예고해주었고, 초현실주의의 선구적 역할을 하였습니다.
3곡의 모음곡 <짐노페디>(1888)는 에릭 사티의 작품 중 <그노시엔>(1890)과 함께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며, 평이한 구성과 단순한 형식에 실려 전개되는 선율이 매우 순수하고 투명한 음악입니다. 초기작 <짐노페디>에는 당대의 비난에는 아랑곳없이 한평생 자신만의 세계를 고집스럽게 살아간 사티의 면모가 오롯이 드러나 있습니다. 선율은 단순하지만 형언할 수 없는 영감으로 가득 차 있는 이 작품은 처음엔 일정한 리듬이 반복되어 단조롭게 들리나 절제된 선율이 고대의 신비감에 젖어들게 합니다. 몽환적이고 고적한 분위기로 이끌면서 삶의 아픔과 고단함을 다독이는 <짐노페디>는 하나의 곡상에 의한 3개의 변주곡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짐노페디’란 고대 스파르타에서 연중행사로 벌이던 제전으로 나체의 젊은이들이 합창과 군무로 신을 찬양하던 의식을 가리킵니다.
왼손이 낮은 G음, D음을 시이소식으로 반복하는 4마디로 도입한 후, 단순한 선율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전30마디로 구성되는 악절이 함축적인 언어로 되풀이되는 모두 78마디의 소품이지만, 이들을 형성하는 짧은 프레이즈의 길이가 통일되지 않았다는 점과 비기능적인 화성이 이렇다 할 이유도 없이 불안감을 자아내어 진부함을 피하고 있다. 1888년에 작곡된 이 곡은 플로베르의 소설 < 살랑보 > 의 일부에서 착상된 것입니다. 3개의 짐노페디 중, 반복되는 리듬이지만 이국적인 선율을 지니고 있습니다.
연주-Cubus(피아노)
짐노페디 제2번
느리고 슬픈 (Lent et Triste)
연주-Cubus(피아노)
짐노페디 제3번
느리고 무거운 (Lent et Grave)
연주-Cubus(피아노)
<참고>
뉴에이지의 시초가 어떤 누구 하나에 의해서 나타난 것은 아니지만 명상적 특성, 간결미, 맑고 깨끗한 화성, 절제된 멜로디, 신비스러움 등의 모습이 바로 1866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에릭사티(Eric Satie)의 음악에서 잘 나타납니다. 당시의 음악매니아 및 작곡가들에게 이해할 수 없는 음악으로 치부되었던 작품들이 지금의 뉴에이지를 예견하고 있었습니다. 약 150여년 전에 말입니다.
뉴에이지 음악은 1990년대의 중/후반의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다원론적 경향에 묘하게 일치된 점이 많았습니다. 사실 그 음악은 요한 파헬벳의 '카논'이나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 등에서도 일찌기 그 조짐이 보였었지만 대중들에게 쉽게 이해되지 못했다가 최근에서야 몇몇 아티스트들에 의해 확산되기 시작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