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며칠 전에 모 장관한테서 편지 한 통을 기쁜 마음으로 받았다. 그런데
이 기쁨은 봉투를 찬찬히 읽어 보는 가운데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기쁘기는 커녕 도리어 불쾌하기 짝이 없었고, 벌레를 씹은 기분이었다.
그 동안 이 나라 죄없는 백성들이 박정희 군사 독재 정권에서 전 두환 군사
독재 정권에 이르기까지 숨도 크게 제대로 못쉬고 살아왔다. 두
군사 독재 정권 치하에서 권력에 빌붙어 있던 공무원들은 더러운 관료 근성에
사로 잡혀, 수많은 백성들을 괴롭혀 온 것도 사실이다. 민주주의하는
나라에는 국민이 주인이고, 공무원들은 국민의 심부름꾼이라는 것은 이미
국민학교 때 다 가르쳐 준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간판은 버젓이 민주주의를
내걸고 있는데, 언제 제대로 국민이 주인 대접 받은 적이 있었는지, 내 기억으로는
없다. 통금 위반도 한번 해본 적 없는 나도, 파출소 앞을 지날 때는 공연히
신경이 쓰이고, 동 사무소에 필요한 서류를 떼러 갈래도 엄두가 나지
않는다. 파출소 앞을 지날 때 신경 쓴 적 없고, 동 사무소에 가서
못생기고 불친절하고 쌀쌀맞은 기집애한테 봉변 한번도 안 당한 사람있으면 어디
손들고 나와봐라!
나는 "울면 순사가 잡아간다!"라는 말을 듣는 환경에서 유아기를 보냈다.
그래선지, 어른이 된 지금도 순사만 보면 공연히 무서운 생각이 든다. 그리고
동사무소 창구에 불친절하고 쌀쌀맞은 기집애도 매 한가지이다.
나는 사실 공무원이나 관공서에 대하여 좋은 기억보다, 좋지 않은 기억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이런 사람이 어디 나 뿐일까? 내가 공무원이나 관공서에 대해서
좋지 않은 인상을 받은 제일 큰 이유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더러운 관료 근성 때문이다.
한강엔 유람선이 떠다니고, 하늘엔 조각 구름이 떠 있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루어진다는 정 수라의 노래말이 사실이라면, 이제 관료근성이
없어졌을 때도 됐다.
그런데, 나는 장관의 편지를 받는 순간,여전히 더러운 관료 근성이 조금도
없어지지 않았구나 싶어 뒷맛이 씁쓸했다. 내가 관료 근성에 부딪쳐 싸운 것
중에 인상에 남는 것은 무엇보다 청와대 사건이다.
2.청와대에 대한 나의 첫인상
순진한 내가, 1977년에 박 대통령에게 한글 기계화에 대해서 건의서를
보낸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고, 대통령은 단지 국민의
심부름꾼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내딴에는 당당하게 건의서를 보냈던
것이다. 난생처음으로 대통령에게 건의서를 보내놓고, 나는 눈이 빠지게
답장을 기다렸다. 하루 가고, 이틀 가고, 사흘 가고, 어느 듯 열흘이 갔다.
나는 대통령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나에게 답장이 늦게 해주시나
보다고 생각했다. 또 열흘이 갔다. 그러구러 한달이 갔다. 그러자 나는
생각이 조금씩 달라졌다.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나라의 주인이
심부름꾼인 대통령에게 건의서를 내면, 즉각 답장은 못하더라도 한달 안에는
해줘야 할 게 아닌가! 나는 별의별 생각을 다 하면서 또 한달을 기다렸다.
그러나 감감 무소식이었다. 이 경우는 무소식이 희소식이 아니라, 사람 영
자존심 상하게 하는 것이었다.
두달을 기다렸지만, 아무 소식이 없어서 나는 그제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할 수 없이, 나는 박 대통령에게 항의 편지를 보냈다. 내가 대통령에게 항의
편지를 굳이 보내겠다고 결심한 것은, 그들의 관료 근성과 싸워야 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때 보낸 항의 편지의 요지는 대충 이렇다.
"박 대통령께
저는 송 아무갠데, 두달 전에 별첨하는 내용의 건의서를 대통령께 보낸
적이 있습니다.그런데 두달이 지나도 아무 소식이 없는데, 이럴 수가
있습니까. 우리나라는 민주주의하는 나라인줄 알고 있고, 그렇다면 나라의
주인은 대통령이 아니고 제가 아닙니까. 주인이 심부름꾼에게 뭘 물어보거나
부탁을 했으면 들어주거나 들어주지 못하거나 무슨 답변을 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두 달이 지나도 아무 소식이 없으니 이거 어찌된
일입니까? 해도 너무 하지 않습니까?......"
이 편지를 보낸 한 주일 쯤 뒤엔가, 청와대로 부터 나에게 사과한다는
전화가 왔다.
내가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긴 좀 뭣하지만, 우리나라가 진짜 민주주의나라가
될려면, 이런 편지는 청와대에 가서 원문을 찾아, 조금 다듬어 국민학교
국어책이나 사회책에 싣고, 또 반상회보에 실어서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홍보해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민주주의가 제대로 될려면 어릴 때부터
시민의식을 길러주어야 하고,나이 든 사람에게도 시민의식을 깨우쳐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학교 일학년 책 첫머리에 "파란 하늘에 우리 태극기" 어쩌고
하면서 되먹지 못한 시대착오적인 국가주의를 먼저 가르칠 것이 아니라, 내가
쓴 위의 편지 같은 내용의 글들을 실어서, 어릴 때부터 시민의식을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어릴 때부터 울면 순사온다"라는 풍토에서 자란 아이와 뭐가 달라도 다를
것 아닌가.
참 가관인 것은 민주주의란 말이 좋긴 좋은가 보다. 그 동안 또나 개나,
게나 고동이나, 어중이나 떠중이나 할 것 없이 민주주의란 말을 썼고, 심지어 저
김 일성도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면서 나라 간판에도
쓰지 않은가! 그리고 이 나라 정치 협잡꾼들 중에 어느 한 놈도 이 말 쓰지 않는
놈이 없지 않은가. 그 동안 여러 잡놈들이 이 좋은 말을 쓸 데나 안 쓸 데나
너무 헤프게 써왔기 때문에 때가 너무 많이 묻어버렸다. 그래서 앞으로
민주주의란 말을 쓸려면, 참기름의 경우처럼 "순"이나, "진짜"나,
"순진짜"같은 접두어를 붙여야 할 판이다.
3.처음 청와대에 갔을 때, 나의 첫마디
나는, 1982년의 12월 말경에 "한글 기계화운동"이란 내책을 전 두환
대통령에게 보낸 적이있다. 책을 보내면서 편지 한 통을 같이 보냈는데, 그
요지는 대충 이렇다.
"저는 한글 기계화를 십몇년간 연구한 송 아무갭니다. 저의 연구에
의하면 한글 기계화 정책의 잘못으로 현재 한글 기계화가 영영돌이킬 수 없는
궁지에 빠져있습니다. 관계관에게 졸저를 검토하게 하셔서, 만약 저의 지적이
사실이라면, 하루 빨리 한글 기계화 정책을 바로 잡아주시기 바랍니다."
1983년 1월 하순쯤 청와대에서 전화가 왔다.나를 민정비서실로
들어오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 전화를 받고 한편으로는 잘못된 한글
기계화를 이제 바로 잡을 생각이 있나 보다 하는 기대때문에 설레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쾌했다. 왜냐면 나를 청와대로 들어오라는 대목때문이었다.
답답한 놈이 샘을 판다는 말이 있는데, 엄밀히 따지면 답답한 쪽은
청와대쪽이지 내가 아니다. 그렇다면 내가 샘을 팔 이유가 없는 것이다. 불쾌한
감정을 억누르고 청와대로 갔다. 삼청동 들어가는 입구쪽에서 부터 거만하기 짝이없는
점퍼에게 일차적으로 수색을 당하고(?) 입구에서 복잡한 수속을 받고
청와대 안으로 들어갔다. 민정비서실을 찾아가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하였다.
도대체, 민주주의 한다는 나라의 주인은 누구인가! 주인이 종놈의 집에
가는데, 왜 이렇게 절차가 복잡하고, 삼엄한 공포분위기 속에 짓눌려 겁을
잔뜩 먹어야 하는가! 가장 적게 다스리는 정부가 가장 이상적인
정부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참 명언이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일반 백성 중에는
대통령 이름도 잘 모르는 이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당시에는 "정확한 오리엔트
손목시계가 아홉시를 알리고"나면, 대통령이 일일연속극 주인공처럼
등장했으니, 온 국민이 대통령의 이름은 물론 그 마누라 이름까지 다 알았고,
심지어 뒷모습만 보아도 알 정도였으니, 그때 국민들이 얼마나 관료들에게
시달렸을까.
청와대 민정비서실로 갔다. 남자 직원이 서너명 있었고, 여자 직원이 한
명 있었다. 가운데 놓인 응접용 탁자를 마주하고, 민정 비서관과 마주
앉았다. 수인사를 끝내고, 내가 먼저 말했다.
"사실, 김 비서관님의 실수일 것이라 짐작됩니다만, 저를 청와대로
들어오라고 할 것이 아니라, 비서관님께서 제 사무실로 찾아오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이런 일은 김 비서관님 같은 분이 먼저 아시고 저에게
와서 "한글 기계화 정책이 대단히 잘못된 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바로 잡을
수 있습니까?"하로 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날 김 비서관은 그자리에서 나에게 사과를 하였고, 그 며칠 뒤엔가 신촌 무슨 좋은
음식점에 나를 초대해서 점심인가, 저녁 대접까지 잘 하였다.
4.우편번호를 쓰지 않은 체신부 장관의 편지
나는 1985년에 무슨 일로, 체신부 장관이 보낸 편지를 받은 적이 있다.
그때 장관이 보낸 편지를 찬찬히 보니 우편번호를 쓰지 않은게 아닌가!
나는 체신부 장관이 우편번호를 쓰지 않은 것을 보고, 매우 실망을 하였다.
거기다가 체신부장관이란 고무 도장만 하나 꽝 찍어 있어 더더욱 불쾌하였다.
그래서 그때도 내가 지금 처럼 매우 바쁜 사람이었는데, 내 아무리 바빠도
장관의 이 한심한 태도와 더러운 관료 근성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이
내용을 저 유명한 "샘이 깊은물"이란 잡지에 "장관의 사과문"이라는 제목의
글을 써 발표하여 많은 독자들로 부터 찬사와 격려를 받은 적이 있다.
(샘이 깊은 물 1986년 9월호 참조)
그때 이 글을 읽은 독자들이 나에게 그토록 열렬한 성원과 격려를 한 것은,
그들도 살면서 공무원들의 더러운 관료근성을 수없이 목격했을 것이며, 또
그로 인해 많은 시달림을 받았기 때문에, 내가 쓴 글을 통쾌하게 읽었을
것이라 짐작했다.
그뒤로 이날까지 나는 체신부 장관도 이제 우편번호를 잘 쓸 것이라고 굳게
믿고 조용히 살아왔다. 그런데.
5.장관 할애비라도 우편 번호를 써야 한다.
이 글 첫머리에 이미 말했듯이 모 장관의 편지를 받고, 불쾌한 것은 모
장관이 우편번호도 쓰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거기다가 자기쪽 주소도 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요즘이 때가 어느 땐데, 장관이 우편번호 쓰는
법도 지키지 않다니! 아니, 옛날에는 체신부장관이 우편번호 안 쓰고
마음대로 편지를 보내더니, 요새는 다른 장관도 우편번호 안쓰고 마음대로
편지를 보내다니! 그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장관은 우편번호 안쓰도 좋다는
새로운 법이 생겼나? 그 동안 체신부에서 수많은 국고금을 들여서 우편 번호 적힌
편지가 빨리 가고 바로 간다는 계몽을 해왔는데, 장관이 우편 번호를 쓰지 않다니!
내가 알기로는 장관 아니라, 장관 할애비라도 우편번호를 써야 한다!
그리고 이왕이면 규격봉투를 써야 한다. 장관에게 우편번호를 쓰지 않아도 되는
특권이 있는 나라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앞으로도 장관에게 우편번호 안쓰도
된다는 특권을 주어서는 안된다.
사실, 그 동안 우리나라의 못된 풍습의 하나가 계급이 높은 사람이
누리는 특권이다. 계급이 높은 사람은 지키지 않아도 되는 법이나 규칙을
일반인들에게만 지켜도록 강요한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어쩌면 장관이 나에게 보낸 편지는 장관이 보지도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래 직원들이 의례적으로 미리 인쇄된 양식에 내 이름만 적어서 보낸 것인지
모른다. 그렇다면 실제적인 잘못은 아래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있다고 할
수 있다. 내 추측이 옳다면, 아랫 것들의 의식 속에 도사리고 있는 더러운
관료 근성이 문제이다. 그렇지만 관료근성에 사로잡힌 것들을 직원으로 데리고 있는
장관도 그 책임을 면할 수가 없다.
나는 아직까지 장관 밑에서 일해 본 경험이 없어서, 장관 밑에서 일하면
기분이 얼마나 좋고, 어깨가 얼마나 우쭐거리고, 목에 힘이 어느 정도
들어가는지, 뭐가 얼마나 생기는지, 끝발이 얼마나 좋아서 눈에 뵈는 게
없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다만 이런 짐작은 간다. 아무리 높은 사람
밑에서 일해도 인간 못된 것은, 모신문사 수위처럼 시건방져서 눈에 뵈는 게
없을 것이고, 인간이 제대로 된 것이라면 과학기술처 장관실에서 친절하고
겸손하게 전화받는 김 모 아씨처럼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혹시, 이 글 읽는 독자 중에 박애주의자나 무골호인이나 도가 통한
도사가 있어서 날보고 "장관이 우편 번호 한 번 안 썼다고 너무 심하게 깐다!"고
한다면, 이런 분은 틀림없이 머리가 나쁘거나 독해력 수준이 낮을 것이다.
내 백보 양보해서, 장관이 우편번호 안쓴 것은 단순한 실수로 봐 줄 수도
있다. 그런데 절대로 실수가 아니다. 내가 이런 단정을 하는 것은,
우편번호만 안썼다면 순수한 실수일수 있지만, 자기쪽 주소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이는 고의가 분명하다!
혹시, 발신인의 우편번호는 안써도 수신인만 똑똑히 썼으면 갈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할 지 모른다. 그런데, 문제는 우편번호에만 있는 게
아니다. 우편번호를 쓰지 않는 행위 뒤에 깔려있는 그 더러운 관료근성이
문제이다. 우편번호 안 쓴 것도 묵과할 수 없는 잘못이지만, 자기쪽 주소를 아예
쓰지 않는 것은 더 큰 문제이다. 이대목에야 말로 더러운 관료근성이 더 깊게
도사리고 있는 대목이다. "장관실이니까 주소를 쓰지 않아도 당연히 알아서
보내주겠지!"하는 구역질나는 관료 근성이 더 큰 문제인 것이다.
혹시 날보고 이럴 지 모른다.
"여보, 그 편지를 어디 장관이 직접 보냈겠소? 다 장관 밑에서 일하는
치들이 보냈을 것 아니오. 그런데 장관을 그렇게 물고 늘어지는 것은
너무 심하지 않소!"
그래, 제법 일리가 있다. 장관 밑에 있는 치들이 그랬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문제는 문제다. 일반 백성들이 상대하는 것은 거의 대부분이 장관이 아니고 장관
밑에 있는 치들이다. 이치들이 더러운 관료 근성에 사로 잡혀 있는 한,
우리는 앞으로 계속 시달려야 한다. 급행료를 지불해야 할지도 모르고,
민원 서류를 하나 하는 데도 따로 돈봉투를 디밀어야 할 지도 모른다.
6.<보통 사람 시대>의 최대의 벽은 관료 근성이다.
노태우 대통령의 말씀마따나 지금이 보통사람 시대가 아닌가! 장관이
우편번호를 쓰지 않는 특권을 누린다는 것은 보통사람시대를 역행하는
반민주적인 처사임이 분명하다. 대통령은 보통사람 시대를 부르짖고, 장관은
우편번호도 쓰지 않고 제 주소도 적지 않을 만치 한심한 관료 근성에 사로
잡혀 있고, 참 가관이다! 왜 이리 손발이 맞지 않을까?
장관도 우편번호를 정확하게 쓰고, 자기 주소도 정확하게 쓰는 시대가
언제쯤이면 올까? 이 땅의 공무원들이 국민들을 우습게 알지 않고, 자기쪽
주소도 정확하게 쓰고 우편번호도 정확하게 쓰는 날은 언제쯤 올까?
사실, 이런 날이 오자면 장관은 물론, 공무원들의 머리 속에 남아
있는 더러운 관료 근성을 청산해야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러운
관료근성이 꽉찬 것들이 이 나라 공무원으로 득실대는 한, 이 나라 백성들이
관청출입하는데 얼마나 많은 고통을 당할 것인가를 생각하면, 나는 정말 세금
내고 싶은 생각이 없고, 지금까지 낸 세금도 할수만 있으면 도로 찾고 싶다.
순진한 독자를 위해서 한마디 덧붙여 둔다. 이 글에 등장하는 모 장관이
도대체 어느 장관일까 하는 의문은 갖지 말기 바란다. 내가 정말 가슴
깊은데서 부터 말하고 싶은 대목은 한심한 공무원들의 가슴 속에 살아있는 더러운
관료 근성이다.
순진한 독자여! 착각하지 말기 바란다. 날보고 시시콜콜한 것을 너무
따지고 나무랐다고 하지 말라. 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나라 어느
장관이나 장관 할애비라도 우편번호를 또박 또박 쓰고, 자기 주소도 정확하게
쓰는 풍토가 되기 전에는,우리는 항상 파출소 앞을 지나는데도 공연히 두려울
것이고, 동 사무소에 갈때마다 지지리도 못생긴 불친절하고 쌀쌀맞은
기집애게 언제 봉변 당할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진짜민주주의는 그냥
열리는 열매가 아니다. 수많은 민주시민의 땀과 눈물과 피와 한숨과 희생
위에 피는 눈시린 꽃이고, 열매이다. (1994년 시사문화에 발표한 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