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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감무쌍한 터키군에 충격을 받은 중공군은 "터키군과의 정면 승부를 자제하라"는 특명을 내렸다. 사진은 1951년 봄 중공군을 한강 쪽으로 몰아붙이고 있는 터키 여단 병사들. |
터키는 전쟁 기간 중 총 1만4936명의 병력을 투입하여 그 중 765명이 전사(戰死)했고, 부상자는 2147명, 행방불명 175명, 포로 346명, 비전투 요원 손실 346명의 인명 피해를 입었다. 부산 유엔묘지에는 한국전 당시 전사한 터키군 462구가 모셔져 있다.
한국전에 참전했던 터키군들은 고향으로 돌아가 터키의 이름을 세계에 빛낸 영웅 대접을 받았고, 터키와 한국은 1957년 3월 8일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1973년 두 나라가 상대방 명칭을 딴 기념공원을 조성키로 합의했다. 우리 정부는 1974년 9월 6일 터키군의 격전지였던 용인시 기흥구 마성IC 근처(영동고속도로 강릉 방면 마성터널 지난 지점)에 터키군 참전비를 건립했다.
터키도 수도인 앙카라 시내의 앙카라 역 길 건너편에 터키군의 한국전 참전을 기념하고 전사한 터키군을 기리기 위해 한국공원을 조성했다.
터키군은 1960년에 1개 중대를 제외한 본진이 철수했고, 완전 철군 직전까지 주한 터키군은 파주시 적성면에 주둔했다.
한국전에 참전했거나, 이후 주한 터키군에서 근무했던 인사들 중 터키 군부나 정·관계에서 요직에 오른 사람들이 많다.
1957년에 취임한 제7여단장 겸 주한 터키군 사령관 케난 에브렌 대령은 1978년 터키군 참모총장에 취임했다.
그는 1980년 군사 쿠데타로 데미렐 수상과 정의당 정부를 전복하고 정권을 장악한 다음 1982년 개헌을 하여 7년 단임 대통령에 올랐다. 1982년 12월 전두환 대통령의 초청으로 한국을 국빈 방문했다.
터키 제1보병여단을 지휘하여 한국전에서 용맹을 떨쳤던 타하신 야지즈 장군은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과 앤잭군(호주-뉴질랜드 연합군)을 물리친 갈리폴리 전투에 참전했고, 터키 독립전쟁 등에 참전한 역전의 명장(名將)이었다.
그는 한국전 참전을 위해 장군 계급을 스스로 강등시켜 준장으로 참전했다. 이것은 프랑스 대대 지휘관인 랄프 몽클레어 중령과 비슷한 사례다.
몽클레어의 본래 계급은 중장(군단장)이었는데, 한국전 참전을 위해 중령으로 계급을 강등하여 참전했다.
1952년 전역한 타하신 야지즈 장군은 정치가로 활동했고, 민주화 운동을 하다 1960년 체포되어 7년간 감옥 생활 후 석방되어 1971년 사망했다.
그의 손자인 알리 야지즈 중령이 2009년 우리나라 육군대학에 유학을 와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터키에는 ‘피를 흘리지 않은 땅은 조국이 될 수 없다’는 속담이 있다. 터키인들이 국교도 없던 낯선 지구 반대편 나라의 전쟁에 참전하여 3000여 명의 고귀한 인명을 희생 한 한국을 ‘형제의 나라’라고 부르는 것은 그저 듣기 좋은 언사가 아닌, 그들의 진심이 담긴 말이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