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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6-12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 김태복 목사
인간은 꿈을 먹고 살아갑니다.
이 세상에 꿈과 소망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처럼 불쌍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꿈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줍니다. 꿈은 우리로 현실을 극복하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삶의 비타민과 같습니다. 벌써 2007년 새해가 밝은지가 한 달여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새해 첫달은 분명 꿈을 꾸는 때입니다.
여러분은 새해에 어떤 꿈을 꾸며 행복해 하셨습니까?
꿈은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주신 큰 선물입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소망의 날개를 펴고 높이 날아오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처한 현실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꿈을 꾸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현실은 우리에게 꿈을 주기보다는 우리의 꿈을 빼앗고 짓밟아 버립니다. TV를 보아도 신문을 보아도 올해도 여전히 우울한 소식들로 한해를 열고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삶의 자리는 희망이 넘치십니까?
작년 가을 저희교회에서 부흥회가 열렸습니다. 둘쨋날 저녁에 강사목사님이 어린아이들을 다 앞으로 불러서 아이들의 꿈을 물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아이들이 제각기 얼마나 자신의 꿈들을 다양하게 펼쳐 놓는지, “나는 무엇이 되겠습니다.” 당차게 이야기하는 소리에 참 은혜가 됐습니다. 그 때 그 자리에 저희집 애들도 있었는데, 둘째 녀석이 평소에도 늘 아빠처럼 되고 싶다고 했는데, 그 날 밤에도 ‘목사님이 되겠다’고 힘차게 외쳐서 저의 마음을 흐뭇하게 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좋은 데, 요즘 고녀석이 꿈이 금세 또 바꿨습니다. 장난감조립에 취미를 느꼈는지 요즘은 기술자가 되겠답니다. 글쎄!
아무튼 어떤 꿈이든 꿈과 소망을 갖고 살아간다는 것은 아름답습니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어려서는 그토록 큰 꿈과 비전을 가지다가도 세월이 가고 나이가 들면서 어느새 꿈은 초라해져갑니다. 저도 어려서는 대통령부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어릴 때는 참 꿈도 많고 희망도 많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현실에 부딪히고, 계산적으로 따져보면서 우리의 꿈은 날로 작어지고 급기야는 꿈과 비전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 참 이상하게도 나이 85세에 아직도 꿈을 잃지 않고 있는 한 신앙인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젊어서 품었던 꿈을 아직도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달려왔습니다. 무려 45년 품은 꿈입니다. 그리고 이제 믿음으로 그 품을 당당히 성취하고 있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의 주인공 갈렙입니다. 갈렙은 꿈의 사람, 비전의 사람입니다. 소망을 품고 살아온 사람입니다.
꿈은 결코 젊은이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꿈을 가진 사람은 늙어도 젊은이요 꿈을 갖지 못한 사람은 젊어도 늙은이입니다. 꿈과 희망이 없는 사람은 육신은 살았으나 정신은 죽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서 한날 한시에 태어난 아곱과 에서를 보면 꿈의 중요성을 분명히 깨닫게 됩니다. 야곱은 참 꿈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때로는 그 꿈을 자신의 힘으로 이루려하다가 많은 시행차고를 겪기도 하였지만, 결국 그는 하나님과 함께 그 꿈을 이루내고 말았습니다. 반면에 쌍둥이 형 에서는 어떻습니까? 그는 꿈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현실에 안주하면 살았습니다. 팥죽 한 그릇에 동생에게 장자의 명분을 판 것은 바로 꿈을 판 것입니다. 결국 꿈을 잃어버린 에서는 모든 것을 다 잃고 말았습니다.
잠29:18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한다” 라고 했습니다.
빌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꿈과 소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아브라함에게도, 요셉에게도, 모세와 여호수아에게도 하나님은 꿈을 주셨습니다.
(행2:17)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인간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누구나 아름다운 꿈과 소망을 품을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꿈과 소망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누구나 꿈을 가질 특권이 있습니다. 누구나 꿈을 꿀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한 중요한 것은 꿈은 성취되어야 합니다. 물론 이루지 못한 꿈도 귀합니다. 꿈을 갖는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인생은 훨씬 밝고 행복해 집니다. 그러나 이왕 꿈을 꾸었다면, 꿈과 소망을 이루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어떤 꿈이든 꾸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왕이면 그 꿈을 반드시 성취하시기 바랍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의 꿈과 비전, 우리의 소망을 어떻게 이루어 나갈 수 있습니까? 오늘 노년에 꿈을 이룬 사나이 갈렙의 모습을 살펴보며, 우리 모두가 꿈을 이루는 복된 자로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꿈을 이루는 사람은 승리를 생각하는 머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품고 살아가느냐는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존 템플턴은 “마음에 품은 생각은 밖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더구나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품은 생각은 숨겨지지가 않습니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생각하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사람 되게 하는 것이 생각입니다. 그래서 바른 생각을 하면 바른 사람이 되고, 행복한 생각을 하면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실패자의 뒤에는 실패의 생각이 먼저 있었고, 성공자의 뒤에는 성공의 생각이 있었습니다. 어제 우리의 생각은 오늘의 우리를 만들고 오늘 우리의 생각은 우리의 미래를 창조합니다.
오늘 갈렙은 실패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젊어서부터 지금까지 그는 반드시 저 가나안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언제나 갈렙의 생각은 승리였습니다. 항상 긍정적인 생각을 잃지 않았습니다.
본문12절 하반절에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성도 여러분, 미래를 성공적으로 바꾸길 원하십니까? 환경을 행복하게 바꾸시길 원하십니까? 인생을 긍정적으로 바꾸길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 먼저 생각을 바꾸어 보십시오. 승리의 생각, 행복하게,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꾸어 보십시오. 승리의 근원이 생각이기에 마귀의 제1차 공격목표도 바로 생각입니다. 성경 요13:2절에 “마귀가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그렇습니다. 먼저 생각을 잘 지켜야 합니다. 불행을 행복으로, 미움을 사랑으로, 가난을 번영으로, 실패를 승리로,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열쇠가 바로 생각이라는 열쇠입니다.
환경탓만 한다고 내 구질구질한 인생이 바뀌지 않습니다. 생각을 바꾸십시오. 우리 인생을 지배하는 것은 운명이 아닙니다. 환경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고 믿음의 생각으로 내 삶을 채울 때 우리의 미래는 바뀔 수 있습니다. 성경은 수많은 변화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요셉은 노예에서 국무총리로, 목동 다윗은 왕으로, 어부 베드로는 초대교회 최고 지도자로, 핍박자 사울은 최고의 선교사요 사도인 바울로 바뀌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이 바뀌면 반드시 여러분의 미래도 바뀔 것입니다. 생각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타락한 인간이란 그릇 속에는 부정적 생각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부정적 환경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죽겠다, 힘들다, 괴롭다, 못한다, 안 된다, 못 살겠다” 등의 부정적인 말을 너무 많이 듣고 살아왔습니다. 신문을 보아도 뉴스를 보아도 드라마를 보아도 부정적인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이러한 속에 우리도 알게 모르게 늘 부정적인 생각과 실패의 생각들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사단의 전략입니다. 인간의 생각은 하나님이 역사하는 그릇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는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없습니다. 자신의 무능과 절망적 환경만 늘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결국 그 인생의 배가 침몰되고, 하나님이 쓰고 싶어도 쓸 수 없고, 복을 주셔도 받을 수 없는 그릇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침대공포증에 걸린 한 사람이 정신병원을 찾아 갔습니다. 그리고 의사에게 말합니다. “침대에서 자면 침대 밑에 누군가 있는 것 같고, 그렇다고 침대 밑에 들어가서 자면 침대 위에 누군가 있는 것 같아서 도저히 두려워서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그러자 의사는 일주일에 한 번씩 병원에 와서 1년을 치료받으면 고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다니던 교회 목사님은 이 소식을 듣고 10분 내로 이 공포증을 고쳐 버렸습니다. 어떻게 고치었야고요? 침대 다리를 톱으로 잘라 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을 불안하게 하고 실패로 몰아가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렇다면 잘라 버리십시오. 그 부정적인 생각 밑에 웅크리고 있지 마십시오. 믿음의 톱으로 잘라 버리십시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입니다.(롬8:6-7) 생각은 곧 선택입니다. 육신의 생각, 부정적인 생각을 제하고, 영의 생각, 믿음의 생각, 승리의 생각, 긍정적인 생각을 선택하십시오. 사람의 머리는 한번에 한가지씩만 생각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부정적인 체질을 바꾸는 길은 긍정적인 승리의 생각을 자꾸 꾸준히 지속적으로 하며 사는 것입니다. 때로 좋은 생각을 하려고 하는데 나쁜 생각이 찾아옵니다. 그때 그 나쁜 생각과 맞서 싸우지 마시고, 그냥 그 나쁜 생각을 버려두고 좋은 생각, 행복한 생각, 긍정적인 생각, 승리의 생각을 하십시오. 사단이 주는 생각에 문을 닫고 하나님의 방식대로 늘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분명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자리는 그리 만만치 않습니다. 오늘 갈렙에게도 수많은 실패의 요인들, 환경적인 불리함들이 있었습니다. 적들은 장대한 거인족속들이고, 성은 너무나도 견고하고, 갈렙의 나이도 이미 힘없는 85세였습니다. 변변한 무기도 없고, 강한 군사도 소유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갈렙은 소망이 넘칩니다. 반드시 승리하고 그 땅을 찾지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그의 마음은 기쁨과 희망으로 가득했습니다. 성공을 생각하십시오. 승리를 생각하십시오. 희망을 생각하십시오.
“생각이 바뀌면 인생이 바뀝니다.”
2. 꿈을 이루는 사람은 항상 긍정적인 말을 하는 입술이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이 바뀌면, 제일 먼저 바뀌는 것이 우리의 말입니다. 긍정적인 생각은 긍정적인 말을 만듭니다. 생각이 바뀌면, 말이 바뀌고, 말이 바뀌면 환경과 상황이 바뀌고, 결국 우리의 인생도 바뀝니다.
오늘 갈렙은 45년 전, 젊은 나이에 이스라엘의 12정탐군에 뽑여서 약속의 땅 가나안 땅을 그의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왔습니다. 그 때, 10명의 정탐군들은 그 땅을 혹평하고, 부정적으로 보고하여 온 백성들을 낙담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만큼은 하나님의 비전과 약속을 보고 소리 높여 외쳤습니다.
“그 땅은 참으로 아름다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하나님이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저들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저들은 우리의 밥입니다.”
목이 터져라 외치고 외쳤습니다. 그로부터 45년, 그날 안 된다고 했던 사람들은 정말로 광야에서 다 죽고 말았고, 오늘 갈렙은 드디어 그가 말한 대로 그 비전을 이루고야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입술의 고백대로 되게 하십니다. 말한 대로 이루어 주십니다.
창세기 1장에 보면 우리는 말의 권세가 얼마나 대단하지 똑똑히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모든 것이 그대로 창조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인간 아담의 입술에도 말의 권세를 주셨습니다. 아담도 동물들의 이름을 부르면, 그가 말한 대로 그대로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입술에 권세를 주셨습니다. 야고보서에 보면 혀에 권세가 얼마나 큰지 마치 큰 배를 움직이는 키, 운전대와 같다고 했습니다. 그 작은 키에 따라서 큰 배가 이리 저리 움직이듯 우리의 말에 따라서 인생의 방향이 좌우되고 맙니다. 혀는 우리 지체 중에 심히 작은 것이로되,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잠18:21에도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려있다”고 했습니다. 말에는 예언의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말의 열매, 입술의 열매를 먹고 살아갑니다. 믿음의 말, 긍정적인 말, 칭찬의 말, 격려의 말, 복음의 말, 희망의 말들을 하십시오. 그대로 열매를 거둘 것입니다.
말은 부메랑과 같이 우리에게 다시 돌아옵니다.
민14:27-28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우리가 말을 하면 그 말이 다른 사람의 귀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의 귀에 먼저 들어옵니다. 내가 먼저 내 말을 듣습니다. 우리 입에서 나간 말이 다른 사람에게만 영향을 미칠뿐 아니라 먼저 내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자꾸 안 된다는 말, 포기하고 싶다는 말을 하면, 결국 낙심되고 맙니다. 그러나 자꾸 믿음의 말을 하고, 소망의 말,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고백 하면, 우리는 새로운 용기를 얻고, 꿈에 불타게 되며, 결국 오늘 갈렙과 같이 그대로 성취되는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죽겠다”라는 말은 버리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그렇게 죽겠다는 말을 쉽게하는지 모릅니다. ‘힘들어 죽겠다, 답답해 죽겠다, 여려워 죽겠다’ 심지어는 ‘좋아서 죽겠다’ 좋은 데 왜 죽습니까? 민경복 전도사님이 자주하는 말 “죽겠다 라는 말은 ‘주께 있다’ 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소망, 우리의 생명, 우리의 희망은 주께 있습니다. 주 안에서 우리는 능히 갈렙과 같이 꿈을 이루어 가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해 보겠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존재다/
주안에서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하나님의 복덩어리다/
나는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는/
이 땅의 진정한 승리자다/ 아멘”
아침마다 거울보시며, 꼭 이렇게 말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루가 달라질 것입니다.
미국의 여성 기업가 가운데 오스틴이라는 여자 속옷을 팔아 부자가 된 사람이 있습니다. 오스틴은 미국에 뚱보들이 많아지며서, 팬티 사이즈 중에서 스몰, 미들, 라지, 엑스라지까지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되어서, ‘뚱보형’ 이라는 사이즈를 새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미국에 그렇게 뚱보형들이 많은 데, 새로 내 놓은 ‘퉁보형’팬티는 팔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스틴은 부정적인 말을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제일 큰 사이즈의 팬티를 ‘뚱보형 사이즈’란 이름대신에 여왕들의 옷이라는 뜻으로 “퀸즈 사이즈”라고 바꾸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 일 입니까?
그 때부터 퀸즈 사이즈 팬티가 불티나게 팔렸던 것입니다. 엉덩이 큰 여인들이 자기가 여왕인 줄 알고 모두 사서 입은 것입니다. 긍정적인 좋은 말이 오스틴에게 성공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긍정의 말, 희망의 말, 좋은 말을 하십시오. 여러분을 승리자로, 꿈을 이루는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롬10:9-10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붕어빵을 잉어빵으로 바꾸려면 빵틀을 바꾸어야 합니다. 인생을 바꾸려면 말이 바뀌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의 입술이 늘 긍정적인 말, 희망의 말만 찍어내는 잉어빵틀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꿈을 이루는 사람은 항상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눈이 있습니다.
꿈을 이루는 사람은 환경만 바라보며 포기하지 않습니다. 꿈과 소망은 포기하기에는 너무나 아깝습니다.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은 “물고 늘어지는 것이 곧 천재성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오늘 갈렙은 45년 동안 광야의 혹독한 세월 가운데도 결코 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려움이 오고 환난이 오면 쉽게 꿈을 버립니다. 사실 60만명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친 광야를 통과하는 동안 모든 꿈을 잃고 광야에 쓰러졌습니다.
그러나 갈렙만은 본문10절 말씀처럼 그 길 세월 고난의 땅, 광야를 이기고, 마침내 꿈을 성취하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갈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봄, 여름에 땀 흘린 수고는 결국 가을에 풍성한 결실이 되어 우리의 품으로 돌아옵니다. 포기하지 마십시오. 믿음의 눈으로 꿈을 이루게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신약성경의 가장 핵심적인 주제가 바로 믿음입니다. 신약성경에 믿음이라는 단어가 600번이상 나옵니다. 아마도 성경에서 믿음을 빼버린다면 텅비고 말것입니다. 신앙인이라는 말도 믿음을 가진 사람을 일컫는 말합니다. 신앙인이 믿음이 없다면 더 이상 신앙인이 아닙니다.
한소망교회 유영모 목사님 설교가운데 재미있는 예화가 있어 인용합니다. 오래 전 5층짜리 빌딩의 4층에 개척교회가 들어섰습니다. 주일낮예배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데, 주일 저녁예배, 수요예배, 금요 기도회 등이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교회에서 분위기 있게 찬양하면 위층 술집에서도 분위기 있게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러면 위층에서는 “이름도 몰라요 성도몰라” 또, “부름받아 나선 이몸~”조금 힘있게 찬양하면, 위에서도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예배가 안 되는 겁니다. 급기야 목사님은 술집을 좀 없어지게 해달라고 한달을 작정하고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작정하고 기도한지 25일이 지났을 때 그만 술집에 불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5층 술집만 새까맣게 타고 4층 예배당은 커튼 하나 타지 않은 것입니다. 술집 주인은 아래층에서 목사님이 작정기도하고 있다는 말을 들고, 결국 목사님을 경찰에 고소했습니다. 목사님이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게 된 것입니다. 경찰관이 묻습니다. “목사님 죄송합니다. 술집사장의 애기인즉 목사님이 기도해서 불이 났다고 합니다. 그게 사실입니까?” 목사님 왈 “내가 술집 없어지게 기도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내가 기도했다고 불이 났겠습니까?” 그랬더니 조사계장이 “목사님 참 이상하네요, 술집사장은 기도의 능력을 믿는데, 목사님은 기도의 능력을 믿지 않으니....” 결국 조사의 결론이 이렇습니다. “이렇게 믿음 없는 목사의 기도로 불이 난 것 같지는 않다.” 그냥 웃어 넘길 수 없는 이야기 같습니다. 혹시 우리의 믿음이 이와 같지는 않습니까?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아무리 험악한 산지라도 갈렙과 같이 믿음의 눈으로 보면 아름다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산을 옮긴다고 했습니다.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우리는 인생의 문제라는 산지, 환경이라는 산지, 인간의 한계라는 산지를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한순간도 믿음 없이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것이 다 믿음입니다. 출퇴근길에 버스에 몸을 맡기는 것도 믿음입니다. 어떻게 운전수를 믿을 수 있습니까? 우리가 차를 몰고 한강다리를 건너가는 것도 믿음입니다. 성수대교처럼 무너지면 어떻게 합니까? 우리가 병원에 가서 의사의 처방전을 받고 약국에서 주는 약을 먹는 것도 믿음입니다. 그 약이 제대로 된 약인지 독약인지 알 수 없습니다. 밤에 잠을 편하게 잘 수 있는 것도 믿음입니다. 이발소에서 면도칼을 든 이발사에게 목을 맡기는 것도 믿음입니다. 저녁밥상을 받아놓고 은수저를 넣어보지도 않고 된장국을 맛있게 먹는 것도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만드실 때, 서로 믿고 살도록 만드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지 않고는 살수 없도록 만드신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보는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보는 것이요, 바라고 소원하는 것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세상은 아무리 보아도, 정치, 경제, 교육, 그 어느것 하나 우리에게 희망을 주지 못합니다.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의 세계를 보아야 합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12:2).
만약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면 절망할 것입니다. 또한 자기 자신을 보아도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연약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 볼 때 우리는 평안할 수 있습니다. 바라보는 것이 믿음입니다. 환경만 보고 낙심하지 마시고, 오늘도 믿음의 눈을 열어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믿음은 의심을 포기하고 절망을 포기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절대로 희망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믿으십시오. “여러분의 믿음의 눈이 바뀌면 여러분의 인생도 바뀔 것입니다.”
그러므로 꿈을 이루는 사람은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과 함께 그 꿈을 이루어 갑니다. 갈렙은 결코 자신의 힘으로 그 꿈을 이루겠다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할려고 하면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힘으로 꿈과 비전을 이루려고 발버둥치다 좌절합니다. 오늘 본문 12절에 갈렙은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하시면 필경 그 꿈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갈렙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본문12절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이 외침은 결코 여호수아를 향한 외침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을 향한 외침인 것입니다.
“하나님, 45년 전에 분명히 약속하시지 않았습니까? 바로 그 약속하신 헤브론 땅,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그렇습니다.
꿈을 가지고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내게 부르짖으면 응답하겠고,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약속하십니다.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오늘 갈렙은 다른 땅이 아니라 바로 그 땅, 그가 젊어서 보았고 지금도 그의 가슴에 품고 있는 아낙자손이 사는 그 땅, 그 소망의 땅을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정해년 새해가 벌써 한 달이 지나갑니다. 여러분, 혹시 벌써 꿈을 포기하지는 않으셨습니까? 결코 광야를 바라보지 마시고, 나이85세의 연약한 우리 자신을 바라보지 마시고, 전능하신 하나님,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시고, 반드시 약속을 성취하시는 신실한신 하나님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꿈과 소망을 붙잡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입을 넓게 열어 기도하며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당당하게 그 꿈을 정복하며 나아가십시오. 네 발로 밟는 땅을 네게 주리라 약속하십니다.
(마15: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막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요14: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전능하신 하나님이 여러분의 편이십니다. 하나님 안에서 꿈은 이루어집니다. 믿음으로 여러분의 산지를 정복하고 꿈을 이루어가는 복된 한해가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