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中年), 그 허구에 관하여
100세시대연구소 소장 이윤학, Phd
yun.lee@nhqv.com
‘뒤로 물러설 수 없는 단계로, 인생의 여정에 있어 끝보다 시작이 더 멀리 떨어져 있는 지점’
‘어떤 이는 들어가기를 원치 않고, 어떤 이는 떠나기를 원치 않는 시기’
무엇에 대한 말일까? 모두 ‘중년’(中年, Middle Age)에 대한 설명이다.
놀랄지도 모르겠지만, 중년이란 단어는 19세기중반 이전에는 없던 말이었다. 이 말은 1895년에 처음으로 사전에 등장했는데, 청년기와 노년기 사이에 있는 인생의 일부분이라고 정의되었다.
그 이전의 인생에 대한 분류는 어린이, 성인 혹은 노인 대략 이 정도의 분류였다. 당시에는 나이에 대한 정확한 개념도 없었고, 그에 대한 구분도 명확하지 않았다.
실제 1900년 이전에 실시된 인구조사에서는 출생일을묻지도 않았다. 사실 ‘어린이’의 존재도 18세기 이후 아동노동의 문제점이 부각되면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유대교에서도 13세를 성인의기준점으로 보았으며, 65세를 은퇴해야 할 나이로 보았지, 어디에도 중년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결국 중년은 청춘기나 갱년기처럼 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보는 것이 맞을 듯싶다.
미국의 언론인 패트리샤 코헨은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전환하면서 나이와 시간이 중요한 기준이 되어, 연령별 세대별 정체성이 형성되기 시작하였고, 그 속에서 중년은 ‘비효율과 쇠락과 위기’라는
왜곡된 정체성을 부여 받게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쉽게 말해서 ‘중년’이란 말 자체가 사회적 문화적 허구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중년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청년기와 성인기 사이의 기간이며, 일반적으로 40세에서 60세에 이른다’라고 하였다(New American Heritage사전). 미국 인구조사국은 중년을 45~65세로 정했으며, 옥스퍼드 영어사전에서는 45세~64세로 규정하고 있다.
어차피 근대에 들어와서 만들어진 말이니 뜻이 똑 같은 수는 없지만, 굳이 중년을 나이로 표현한다
면 대략 40세~65세까지로 정의될 듯싶다. 40세는 서양사회에서 전통적으로 성인으로서의 중요
한 전환점으로 여겨진다는 점에서, 65세는 유대교에서의 은퇴시기라는 점에서 중년은 40세~65
세를 통칭하는 말인 것이다.
동양에서는 중년에 해당하는 시기를 어떻게 규정지었을까?
동양철학의 대부인 공자(孔子)는 말년에 논어(論語) 위정편(爲政篇)에서 15세에 지학(志學)하고, 30세에 이립(而立), 40세에 불혹(不惑)이라고 하였다. 공자는 자신의 인생을 말하면서 30대까지는 학문에 뜻을 품고 학문의 기초를 세웠지만, 40세에 와서는 ‘불혹’ 즉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세상일에 시비분변(是非分辨)할 수 있고, 감정 또한 적절하게 절제할 수 있는 나이가 40세라는 것이다. 서양에서 말하는 중년의 시작점과 일치한다. 그리고 공자는 50세에 지천명(知天命)이라고 하여 나이 쉰에 천명(天命), 곧 하늘의 명령을 알았다고 했다. '천명을 안다'는 것은 하늘의 뜻에 순응하고, 하늘이 만물에 부여한 최선의 원리를 안다는 뜻이다. 즉, 마흔까지는
주관적으로 세상을 보았으나, 50세가 되면서 객관적이고 보편적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이다. 또한 60세는 이순(耳順)이라 하여, 귀가 순해져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이지 않고 모든 말을 객관적으로 듣고 이해할 수 있다고 하였다. 결국 서양에서 말하는 중년에 해당하는 40세~ 60세를 공자는 ‘미혹되지 않고, 세상의 이치를 알고, 모든 말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시기라고 하여, ‘중년’을 단순히 나이를 넘어서 철학적 의미까지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20세기를 들어서면서 중년은 ‘어쩔 수 없이, 마지 못해, 우울하게, 두려움을 가진 채’ 맞
이하는 인생의 한 과정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중년은 전성기가 아니라 쇠퇴기였으며, 젊고 발랄
한 청춘을 예찬하기 위한 비교열위의 도구였다. 그러나 최근 중년을 재발견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는 MIDUS(Midlife in the United States, 미국에서의 중년의 삶)
이라는 연구가 공적 기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등, 중년의 의미 규정 및 삶의 질에 대한 연구가 활
발하게 진행 중이다.
늘 움츠러들었고 수세에 몰렸던 중년들이 ‘비효율과 쇠락과 위기’라는 왜곡된 정체성을 벗어 던
지고 이제 반격을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그 반격의 선봉장은 40대이다. 소위 중년의 출발선인
40대들은 스스로를 중년이라고 생각할까?
우리나라 40대의 주류는 2차 베이비부머로 분류되는 68년~74년생들이다. 우리나라 전체인구의 12%인 603만명이 이 세대에 해당한다. 이들은 90년대에 X세대로 불리며, 기성세대와 사뭇 다른 사회문화적 행태를 보였다. 핸드폰 이전에 ‘삐삐’를 먼저 차고 다녔고, 트로트 대신 발라드를 불렀으며, 이들이 사회초년생이던 때 IMF 외환위기를 맞아 시련을 겪기도 한 세대이다.
2015년 현재 우리나라의 중위연령은(전체인구를 나이 순으로 줄을 세웠을 때 정중앙에 위치하
는 연령) 41.4세이다. 따라서 대략 마흔이 안되면 젊은 편에 속하고 마흔이 넘으면 나이든 편에
속한다고 보면, 40세는 중요한 기준점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우리나라 중위연령이 고령화로 인하
여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1980년에 21.8세에서 35년만에 41.4세로 무려 스무 살이 늘어났다.
결국 40대는 본인들이 스스로 젊어지려는 노력도 있지만, 타인에 의해 젊어지고 있는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2050년이 되면 우리나라의 중위연령이 56세로 추정되어 젊은 층이 점점 늘어나고,
중년층은 더 뒤로 밀릴 것으로 예상된다.
요즘의 40대를 ‘영포티’(Young Forty)라고 부른다. 나이만 젊은 층으로 분류되고 싶은 것이 아
니라 사고방식이나 삶의 행태가 기존의 ‘아줌마-아저씨’세대와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현실에 적
응하되 많은 것을 편리하고 간편하게 해결하려는 세대, 미래의 행복보다 현재의 행복을 더욱 중
요하게 생각하는 세대가 요즘의 40대이다. 그런 40대들이기에 이들보고 중년이라고 부른다면,
펄쩍 뛸지도 모른다. 그래서 40대는 중년으로 ‘들어가기를 원치 않는’ 세대인 것이다.
그럼 50대는 어떤가? 이미 그들은 스스로를 중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이 중년
의 시기를 ‘떠나기를 원치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노인으로서의 자리매김을 아직은 거부하
고 있는 셈이다. 중년을 정당화하고 스스로 미화하는 작업을 서슴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요즘엔
‘꽃 중년’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이다.
지금의 50대는 1956년~66년생까지이다. 사실상 1차베이비부머(1955년~1963년)들이 지금의
50대이다. 이들은 본격적으로 은퇴를 시작했으며, 문화적으로는 아날로그세대이면서 디지털의
감성도 갖추고 있다. 100세시대연구소는 이미 시니어세대의 중심축인 1차 베이비부머를 규정하
면서 ‘화이트골드’(WHITE GOLD)라고 칭한바 있다(2015.04. 행복리포트 14호). 가장 부자인
세대이자, 정치적 관심도가 높고, 높은 교육수준으로 지적 수준도 높다. 새로운 문화를 이끌어 가
는 트렌드메이커 역할을 하기도 하면서, 인생이모작을 꿈꾸는 세대이다. 이들은 노년기로 들어서
기를 꺼려하며, 노인이 되기를 거부하는 세대이다.
그런 의미에서 40대가 영포티(Young Forty)라면, 꽃중년 50대는 ‘니프티 피프티’(Nifty Fifty)
이다. 원래 ‘니프티 피프티’는 증권시장에서 가장 우량한 50개 종목을 의미하는 말이다. Nifty는 '
멋진, 맵시 있는' 이라는 뜻으로, 시장수익률을 꾸준히 웃돌면서, 한 번 주식을 사놓고 계속 보유
하고 있으면 높은 배당수익과 꾸준한 주가상승이 기대되는 가치주를 말한다. 멋지고, 맵시 있고,
가치 있는…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50대는 ‘니프티 피프티’(Nifty Fifty)이다. ‘멋진 50대’인 것이
다. 경제적으로도 다른 세대에 비해 여유롭고, 정치적으로도 보수와 진보를 모두 다 아우르며 적
극적으로 참여하고, 높은 지적 수준으로 아날로그적 감성과 디지털적 첨단문화를 함께 공유하는
세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며 은퇴는 없다고 선언하는 세대, 그들이 ‘니프티 피프티’ 멋진 50
대인 것이다.
정말 중년(中年)은 인생의 여정에 있어 끝보다 시작이 더 멀리 떨어져 있는 지점일까? 아마도
‘영포티’(Young Forty) 40대는 들어가기를 원치 않고, ‘니프티 피프티’(Nifty Fifty) 50대는 떠나
기를 원치 않는 시기일 것이다. 그러나 어차피 중년이란 말 자체가 사회문화적 허구의 산물이라
면 이제 새롭게 중년의 모습을 만들어야 한다. ‘영포티’(Young Forty)도 좋고, ‘니프티 피프
티’(Nifty Fifty)도 좋다. 애매하고 어정쩡한 중년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개성 넘치는 멋진 중년
(中年)을 만들어 보자.
첫댓글 중년이라는 말보다는 영포티가 더좋은데요..어감도좋고요. 잘보았습니다..좋은글 감사합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댓글 달아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