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주사 경내로 들어가면서 놓여져 있는 갖가지 탑과 부처들.
운주사(雲住寺)는 ‘구름이 머무는 절’이란 뜻이다. ‘배를 띄우는 절’이란 뜻의 ‘運舟寺(운주사)’라는 설도 있다. 하늘을 흘러 다니는 구름이나, 물 위를 떠다니는 배나 그 이미지는 비슷하다. 운주사 골짜기는 커다란 배의 한복판이 되는 셈이다. 못난이 돌부처들은 울끈불끈 노 젓는 사공들이고, 우뚝우뚝 탑들은 물길을 잡는 노라는 얘기다. 도선 선사(827∼898)가 이 땅의 운이 일본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기 위해 운주사 골짜기에 천불천탑을 세웠다는 전설이다. 하지만 이 골짜기의 불상과 탑들은 12세기 이후에 만들어진 것이다. 도선 선사가 죽은 지 한참 뒤의 일이다. 저잣거리 중생들의 꿈이 도선 선사를 끌어들여 그러한 전설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운주사 골짜기엔 수많은 탑이 있다. 탑은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는 곳이다. 한 절에 1∼2개가 보통이다. 불국사의 석가탑, 다보탑 2개 탑이 그 좋은 예다. 절은 하나지만 탑은 수도 없다. 탑들은 돌부처와 마찬가지로 하나같이 투박하다. 모양도 가지가지이다. 백제탑, 신라탑, 고려탑에서 중국 송나라 냄새 나는 탑도 있다. 사각형 탑도 있고 아무렇게나 쌓아올린 듯한 거지 탑(동냥치 탑)도 있다. 초코파이나 주판알을 쌓아올린 듯한 빵떡탑(원형다층석탑), 납작 원반을 켜켜로 층층 쌓은 호떡탑(원반형다층석탑), 실 감는 실패 모양의 원반형돌탑 등 가지각색이다.
-운주사에 가면 다양한 표정의 부처님을 만날 수 있다. 왠지 정겹고 친숙하다는 느낌이 든다.
지금은 우리에게서 찾을 수 없는 옛 우리의 얼굴이 새겨져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운주사 못난이 돌부처와 탑들은 누가 만들었을까? 왜 만들었을까? 고려시대 석공들이 대량으로 만들어 팔다가 남은 무녀리 작품들인가. 아니면 고려 견습석공들의 어설픈 실습작품들인가. 시쳇말로 요즘의 ‘불상 만들기 주말 체험장’쯤이라도 됐던 것일까.
운주사 천불천탑은 백제 후손들이 건설한 ‘미륵의 땅’이다. 부처와 탑들은 한 골짜기 안에 오종종 모여 있다. 돌부처 100여 개, 돌탑 21개가 배시시 웃고 있다. 골짜기는 넓지 않다. 길어봐야 1.5∼2km나 될까. 경주남산 부처와 탑들을 제대로 보려면 적어도 일주일은 둘러봐야 한다. 하지만 운주사 부처와 탑들은 두세 시간이면 거의 다 볼 수 있다.
-바위그늘에서 쉬고 계시는 돌부처님들
-운주사로 경내로 들어가면 크고 작은 돌부처들이 다양한 표정의 얼굴로 길옆에 서서 나그네를 반긴다.
경주남산의 부처들은 마애불을 빼놓곤 앞모습 뒷모습 옆모습이 모두 새겨져 있다. ‘돌의 사방을 모두 깎아’ 만든 환조(丸彫·Carving in the round)작품이다. 하지만 운주사 부처들은 한쪽 면만 돋을새김한 부조(浮彫·Relief)이다. 경주남산의 화강암은 돌이 희고 겉에 작은 구멍이 많아 조각하기에 좋다. 토함산 불국사의 석가탑과 다보탑도 이곳 돌을 가져다 다듬었을 정도이다. 운주사 돌은 응회암이다. 응회암은 화산재가 켜켜로 쌓여 굳어진 돌이다. 시루떡처럼 층층으로 결이 있어 정교하게 깎기가 어렵다. 앞모습만 돋을새김한 이유다.
경주남산 부처나 운주사 부처나 모두 저잣거리의 민초들이 만든 것이다. 하나같이 정겹고 소박하다. 유치원 어린이들이 그린 엄마아빠 얼굴 같다. 투박하기로는 운주사 부처들이 더하다. 화강암과 응회암의 차이일 것이다.
- 여기에 당신 얼굴의 원형이 있는지 잘 찾아 보시라.
신라사람들이나 백제 땅 사람들이나 모두 미륵세상을 꿈꿨다. 그들은 직접 부처를 만들고 탑을 쌓은 뒤 그 부처와 탑에 소원을 빌었다. 신라왕족이나 귀족들은 불국사 분황사 황룡사 사천왕사 같은 크고 화려한 절에 다녔다. 그런 절들은 백제 아비지나 아사달 같은 프로 석공들을 불러다가 만들었다. 석가탑 다보탑도 마찬가지이다.
-운주사 경내에 있는 다양한 모양의 석탑들.너무나 소박한 느낌이다.
미륵부처는 메시아이다. 석가모니가 죽은 뒤 56억7000만 년 뒤에 올 미래부처이다. 미륵불은 현재 도솔천에 살고 있다고 믿는다. 신라사람들이나 백제 땅 사람들이나 모두 미륵부처를 믿었다. 하지만 믿는 방식은 달랐다. 즉 신라인은 미륵상생, 백제인은 미륵하생을 바랐던 것이다.
-운주사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이 와불이다. 손발 모양이 좌불형태를 띄고있지만 누워있는 탓에 와불로 불린다.
신라사람들은 죽은 뒤 미륵불이 살고 있는 도솔천에 태어나길 빌었다. 그들은 먹고사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5만여 가구의 경주사람들은 숯불로 밥을 지어 먹을 정도였다. 삼국통일을 이뤄 정치적으로도 안정돼 있었다. 현실에 큰 불만이 없었다. 관심은 죽은 뒤 어떻게 되느냐는 것이었다. 미륵이 있는 도솔천은 기독교의 천국이나 같다. 죽어서 도솔천에 태어나는 것은 크리스천이 천당에 가는 것과 똑같다.
백제 땅 사람들은 미륵이 이 세상에 내려와 그들을 구제해주길 바랐다. 하루빨리 미륵부처가 이 땅에 내려와 ‘귀족과 평민, 남성과 여성,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 모두가 평등한 세상’이 이뤄지길 꿈꿨다. ‘모두가 굶지 않고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세상’을 바랐다. 그만큼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힘들었다는 방증이다. 1000개의 부처와 1000개의 탑을 만들어 그 꿈이 이뤄지길 간절히 빌었다. 와불(臥佛)이 벌떡 일어나는 날, 미륵세상이 이뤄진다고 믿었다. -김화성기자 기사 발췌-
‘나 운주사에 가서 와불에게로 가서/벌떡 일어나시라고 할거야/한 세상 내놓으시라고 할거야/와불이 누우면서 발을 길게 뻗으면서/저만큼 밀쳐낸 한 세상 내놓으시라고 할거야/산 내놓으시라고 할거야/아마도 잠버릇 사납게 무심코 내쳤을지도 모를/산 두어 개 내놓으시라고 할거야’ <신현정의 ‘와불(臥佛)’에서>
▼교통
광주에서 화순으로 가는 게 교통편도 많고 빠르다. 광주에서 화순까지는 30분 정도 걸린다.
△기차 KTX: 서울용산역→송정리역이나 광주역 하차. 그곳에서 화순행 버스(화순시외버스터미널 061-374-2254) 이용.
△고속버스: 서울강남고속버스터미널→광주(광주에서 화순행 버스).
△승용차: 서울→호남고속도로→서광주나들목→산월나들목→광주제2순환도로→소태나들목→화순
▼먹을거리
△한정식: 수림원(061-374-6560) △흑두부보쌈: 도곡달맞이흑두부(061-375-8465) △새조개: 남해바다(061-372-8555) △청국장: 빛고을청국장(능주 061-372-1616) △다슬기: 사평다슬기(061-372-6004)
▼문의=화순군 문화관광과 061-379-35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