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09. 02.
서해 5도 지역에 있는 함박도(咸朴島)는 부동산등기부에 '인천광역시 강화군 서도면 말도리 산 97'로 돼 있다. 대한민국 주소지다. 그런데 "우리 땅 맞느냐"는 논란에 휩싸였다. 북한 군사 시설까지 들어선 것이 확인되면서 몇 달 전부터 "강화도 부속 섬을 북한이 불법 점령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엊그제 TV조선 '탐사보도 세븐'은 인근 섬 말도에서 촬영한 함박도의 모습을 공개했다. 인공기가 펄럭이고 섬 곳곳에 해안포 같은 군사시설로 추정되는 시설과 공사 현장이 목격됐다.
▶ 이 섬은 모양이 함지박처럼 생긴 데서 지금 이름이 붙었다. 썰물 때는 말도와 갯벌로 이어진다. 1965년엔 섬 인근 주민 112명이 이곳에서 조개를 잡다 납북당한 일도 있었다. 해양수산부 고시에는 '절대 보전' 무인 도서로 명시돼 있고, 산림청 소속 국유지로 등록돼 있다. 국토교통부도 국가지정문화재 구역(천연기념물 제419호)으로 명시했다. 기록상으로 엄연히 한국이 실효 지배하는 섬이고 근처 주민들도 우리 땅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북한군이 섬을 불법 점거해 군사시설을 설치한 꼴이다. 하지만 국방부는 "서해 북방 한계선(NLL) 이북의 섬인데, 다른 부처가 잘못 알고 있고 지번을 표시했다"는 입장이다.
▶ 구글어스 엔진의 위성 지도를 분석해보면 2017년까진 숲에 덮인 무인도였는데 2018년부터 북한군 주둔 시설이 뚜렷하게 나온다. 2017~2018 사이 어느 시점에 군 시설이 들어섰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당시 한국은 탄핵 정국의 소용돌이 속에서 조기 대선과 새 대통령 취임으로 혼란스러웠다. 북한이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잇따라 시험 발사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남북 간에 영유권이 불분명하던 섬을 북이 남의 혼란기를 틈타 군사기지화했을 가능성이 있다.
▶ 설령 잘못 그어진 NLL 이북 지역 섬이라고 해도 서울 코앞에 북한군의 전진 기지가 존재하는데 군 당국은 쉬쉬하기에 급급하다. 전문가들은 "해안포가 개방돼 있는데, 그 자체만으로 '9·19 남북 군사 합의' 위반"이라고 지적한다. 군은 해안포가 아니라고 부인하고 있다. 그곳에서 방사포를 쏘면 불과 40㎞ 떨어진 인천공항은 물론이고 강화 김포까지 피해를 입는다.
▶ 국방부는 국토부에 지번이 잘못됐으니 고쳐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영토 범위를 놓고 정부 부처 간에도 의견이 엇갈리니 영문을 알 수 없다. 한 뼘 땅을 놓고 전쟁까지 벌어지는 게 영토 문제다. 군과 정부가 영토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믿음이 가지 않는다.
정권현 논설위원 khjung@chosun.com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