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무
희뿌연 안개가 몰려온다. 모든 존재를 다 삼켜 버릴 듯 일순간에 덮쳐온다. 이윽고 낯선 길을 마주한 나를 막아선다. 시각장애인이 지팡이 하나에 오감을 의지하듯 온몸의 촉수를 곧추세운다. 한 치 앞의 사물도 자칫하다 걸림돌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봄이면 자주 출몰하는 안개는 새로운 곳에서 막 보금자리를 튼 나에게 본때를 보여 주겠다는 듯 달려들었다. 세상이 본시 이랬었던 것 마냥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는다. 인간의 본능을 있는 그대로 끄집어낼 수밖에 없는 상황을 연출해 낸다. 눈과 발이 묶인 지금 미세한 소리라도 들으려는 생존 본능이 한껏 살아 움직인다.
때론 그렇다고 믿고 싶을 때가 있다. 실제로 그랬을 수도 있겠다. 작은 어촌 가까이 있는 역사(驛舍)까지 파도 소리가 들리진 않았을 텐데. 아버지는 바다에 중요한 그 무엇을 두고 온 듯 늘 근처를 맴돌았다. 왠지 그 때를 생각하면 마치 바다가 지척에 있어 바람에 찝찔한 냄새가 묻어 있었다는 기억이 난다.
아버지는 어촌마을에서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했다. 고깃배 선장이셨던 할아버지는 해무 속에서 길을 잃고 배가 좌초되는 바람에 다시는 돌아올 수 없었다. 탐지기 하나 없이 물색만 보고도 고기떼를 예견하셨다는데 정작 해무는 예측하지 못하셨던 것일까. 뒤이어 형마저 사고로 돌아가시게 되니 아버지는 가족의 반을 잃는 슬픔을 감내해야 했다. “그날 징그럽게 온 바다를 덮었던 기라. 그리 지독한 해무(海霧)에 뱃길을 찾지 못하고 빨려 들어갔던 게지!” 아버지가 얼큰히 취하신 날이면 어김없이 그리움과 한을 담아 꺼이꺼이 쏟아내셨던 말이다. 심연 저 밑바닥에서 똬리를 틀고 앉아 있는 원초적인 외로움이 늘 아버지를 따라다녔다. 모두가 살아내기 어려웠던 시절, 삶과 죽음의 경계가 흐릿해진 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일은 어린 아버지가 감당하기엔 너무 큰 짐이었을 게다.
아버지는 도시에 있는 역을 마다하고 작은 어촌마을 역사로 전근을 하셨다. 연어의 회귀처럼 바다로 돌아가 그 시절을 마주하고 싶으셨던 것 같다. 기억에서 점점 사라지는 할아버지의 실루엣을 붙잡아 두려는 몸부림 이었을까. 아니면 수없이 침묵을 강요당해 온, 곰삭은 응어리를 위로 받으려 했던 것일까. 당신의 지난한 삶 속, 혼자 감당하기 어려워 발길이 거기로 이끌었는지도 모르겠다. 짙은 해무가 드리우는 날이면 바다로 나가 하염없이 저 너머의 세계를 바라보던 아버지의 뒷모습이 생각난다. 해무는 어쩌면 아버지에게 물리쳐야 할 두려움의 대상이면서 무의식에 잠재된 그리움의 촉매가 아니었나 싶다.
어쩌다 아버지가 숙직하시는 날이면 우리자매는 저녁 배달을 갔다. 그런날이면 모든 것을 집어 삼킬 것 같은 해무가 여지없이 뒤덮이곤 했다. 아직은 익숙지 않은 길을 더듬더듬 헤치고 가면 손에 땀이 자작하니 차올랐다. 바다 냄새가 가까워지면 목적지가 지척에 와있다는 암시였다. 마침내 손전등 불빛이 어슴푸레 비치고 동생과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아버지가 장막을 헤치고 나오면 이 모든 시름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역사 옆 숙소에서 늦은 저녁을 드시고 나면 우리는 다시 안개 속으로 묻혔다.
외롭게 자란 아버지는 사람과의 관계가 어눌하고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했다. 간신히 마음을 연 이웃에게 속아 감당하기 힘든 금전 손실을 본 이후로 철저히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들었다. 물설고 낯선 곳에서 새로운 둥지를 튼 우리 가족은 마치 해무 속에 갇힌 한척의 배 같았다. 상실감에 빠진 아버지는 더 자주 바다를 찾았다. 할아버지가 해무 속에서 길을 잃고 좌초될 순간의 두려움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었던 것일까. 통제력을 상실한 선장은 선원과 배를 감당해내기엔 힘에 부쳤다. 걷어내어도 헤쳐 내어도 끊임없이 뒤덮어 버리는, 언제 사라질지 모를 악마의 손길이 끝이 없을 것처럼 드리웠었다.
해무는 무섭게 다가와 온천지를 삼키고 있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꼬리를 감춘다. 그 순간을 넘기면 살아남을 수 있다. 삶이 그러했다. 햇빛이 한 자락 비치기 시작하면서 마성의 손길이 요술처럼 사라져갔다. 우리 형제는 서서히 걷히는 안개와 함께 성장해 아버지를 하나둘 떠나왔다. 학업을 마치고 가정을 이루고 그렇게 작은 어촌마을 역사(驛舍)의 기억도 엷어졌다. 그래서인지 안개는 낭만적인 그 무엇이라기보다는 나에겐 애증의 대상이다.
나의 삶에도 해무가 짙게 드리워졌었다. 수출길이 막힌 남편은 강에서 세월만 낚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의 오종종한 눈망울을 보면서 전사가 되어야 했다. 그 시절 일찍 떼어 놓은 막내의 울음소리가 이명처럼 귀를 울렸다. 생활전선에서 장막을 헤치며 진군 할 때면 문득 아버지의 전철을 밟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내가 한없이 지칠 때면 홀연히 아버지의 모습이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해무를 거두며 가만히 내손을 잡아주던 따스한 손길을 지척에 있는 듯 느꼈다. 아버지가 힘든 여정을 무사히 헤쳐 나왔듯 분명 나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얻었다.
나에게 드리운 해무를 수없이 걷어내자 뿌연 안개는 서서히 사라지고 햇볕이 골목 깊숙이 들어왔다. 무사히 잘 성장한 아이들은 제 몫을 하러 떠나갔다. 먹어도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서늘한 허기가 찾아오면 바다를 찾았다. 남편의 쓸쓸한 뒷모습 속에서 아버지의 등이 중첩되곤 했다. 아버지를 향한 미움의 실체가 안타까움과 그리움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비굴하게만 보였던 당신의 모습이 더 나은 걸음을 위한 쉼이었다는 것을 왜 진작 알지 못했는지. 깊은 곳에 숨겨 두었던 원망이 짠함과 미안함으로 번지면서 가슴이 먹먹해 왔다.
짙은 안개가 앞을 가로 막아서면 뿌리의 깊이도 우듬지의 높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안개가 떠나간 자리에 초라한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사람은 없으리라. 그래서 아버지와 나는 더 치열하게 살아내었는지도 모르겠다. 해무는 할아버지를 삼켰고 아버지와 나의 인생에도 파고들었다. 절대 떼어 낼 수 없는 숙명의 존재라는 것을 당신은 바다에서 알았고 나는 그런 아버지를 보고 일찍 철이 들었다. 내가 힘들 때면 아버지를 떠올리듯 아버지도 바다에서 할아버지의 흔적을 더듬어가며 해답을 갈구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해무 속을 들어가면 모두가 혼자다. 절대 빠져 나올 수 없는 올가미에 걸린 듯 두려움이 몰려온다. 온 세상이 환할 때 절대 느낄 수 없었던 짙은 어둠만이 버티고 있다. 모든 실체가 선명하게 드러날 때 까지 처절하게 싸우는 것만이 살길이다. 사람은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태어났는지도 모르겠다. 삶의 질곡이 바닥을 치면 남은 것은 올라오는 것 밖에 없을 것이다. 아무리 좁고 어둠으로 꽉 찬 골목이라도 막다른 길은 없다는 것을,뚫고 나아가면 훤한 길이 나타난다는 것을 해무를 헤쳐 나오면서 알게되었다.
곳곳에 숨었던 회색 장막이 사라지자 멀리 마을이 희미하게 드러난다. 무디어진 손과 발을 살려 내어‘훠이’저어 본다. 변한 것은 없어 보인다. 다만, 단단해진 내 발걸음만 달라졌을 뿐.